한국화 이끌고 있는 103년 전통의 필방

[아주로드 임권택 편집국장] 한국화 작가들에게 ‘九霞山房’은 사랑방이다. 7평 남짓의 구하산방에는 붓과 한지 등 문방사우(文房四友)는 물론 각종 서화재료를 판매하는 필방이다.

구하산방(九霞山房)은 서울 인사동에서 가장 오래된 필방이다. 올해로 103년을 맞았다. 구하산방은 단순히 문방사우를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필방은 단순히 만들어서 판매하는 곳이 아니다. 匠人과 작가를 연결해주는 가교의 역할을 한다.

서울 인사동 179-2번지 ‘구하산방(九霞山房)’을 거쳐간 작가만 해도 무수히 많다.

“품질 좋은 물건만 가져다 놓아 고종, 순종도 구하산방 붓을 썼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이다.

“朴壽根, 李象範, 李應魯, 千鏡子까지 구하산방 문지방을 안 넘은 화가가 없다”는 것이 洪洙憙 사장의 자랑거리 중 하나다.

홍 사장은 “청전(靑田) 이상범(李象範) 선생 같은 분이 돈을 못 벌던 시절에 와서 이 붓, 저 종이 만지작만지작 했다. 돈은 없는데 솜씨는 있으니 ‘연장’은 좋은 걸 쓰고 싶어 했다. 그러면 그림 한 장 그려 받고 붓도 공짜로 줬다”고 덧붙였다.

구하는 구천(九天)의 운하(雲霞·구름과 안개)라는 뜻이다. 따라서 구하산방은 신선이 머무는 산중의 공간을 의미한다고 洪洙憙 사장은 말한다.

구하산방은 1913년 일본인 상인이 개업한 이 가게에 우당 홍기대(95) 선생이 1935년에 점원으로 들어가 광복 이후에 인수했다. 우당 홍기대는 우리나라 골동계의 역사이자 산증인이다. 당대의 서화가인 이당 김은호, 청전 이상범, 소정 변관식 고암 이응노 등이 지필묵을 사 갔다. 이당과 청전의 그림은 당시 쌀 한 가마니 정도인 10원 정도 했다고 한다. 간송 전형필 선생도 구하산방을 통해서 고미술품들을 수집했다. 홍수희 사장은 그의 조카다. 충무로에서 시작한 가게는 한국전쟁과 1·4 후퇴 등 한국사의 주요 고비에 이전을 거듭하다 1980년대에 인사동에 정착했다. 2013년에는 서울시 미래유산으로 지정됐다.

지난 103년 깊은 역사를 지니고 있는 구하필방은 단순히 서화재료에서 머물지 않고 한국의 유물은 물론 많은 중국의 유물도 소장하고 있다. 소장하고 있는 작품을 박물관을 건립해 일반에게 공개 했음 하는 바램도 있다. 특히 洪洙憙 사장은 유물은 가치를 알아보는 사람이 소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구하산방이 보유한 유물시리즈

용천요 龙泉窑

남송때 출현해 원대초기까지 유행한 13세기 후반 청자어룡장식화병(靑磁魚龍飾花甁). 浙江省에 용천요가 절정에 올랐을 때 특징이 고스란히 나타난다. 청동기 병을 본뜬 단정한 형태는 송나라 황실용 자기의 품격을 보여준다. 목양쪽에 어룡장식귀가 달린 병은 세계적으로 드물다. 높이 19.9cm, 구경 7.5cm, 동경 8.8cm 무게 482g

南宋出现一直流行到元代初期的,13世纪后期的青瓷鱼龙饰花瓶。浙江省的龙泉窑到达顶峰时它的特征被完美的显现。像青铜骑兵一样整齐的形态是宋代皇室对自己身份的彰显。颈两边挂着鱼龙花纹的耳朵的样式在全世界都是很稀有的。高 19.9cm、口径7.5cm、足径 8.8cm、重量 482g

 

당인 산수화 唐寅山水画

당인(唐寅)은 중국 명(明)나라 때의 화가로서 자는 자외(子畏), 백호(伯虎)이고 호는 육여거사(六如居士)이다. 당인은 명라의 4대 명화가중의 한 사람이다.

1498년 강남 향시(鄕試)에서 첫사람으로 거인(擧人)에 뽑혀 <해원(解元)>이라는 계관을 얻었다.

그후 관직을 그만두고 ‘강남 제일 풍류 재자(江南第一風流才子)’라는 인장(印章)을 사용하여 정묘한 산수, 인물, 화조(花鳥)를 그렸다.

당인唐寅의 그림작품에서 ‘강산취우도(江山驟雨圖)’, ‘매화도(梅花圖)’, ‘우죽도(雨竹圖)’, ‘춘앵도(春鶯圖)’,‘기려귀사도(騎驢歸思圖)’ 등이 있다. 문헌으로는 당인唐寅의 시문을 수록한 ‘육여거사집(六如居士集)’, 그림작품을 수록한 ‘당백호화보(唐伯虎畵譜)’,‘당백호선생집(唐伯虎先生集)’ 등이 있다.

唐寅是中国明代画家,字子畏(原字伯虎)号六如居上。唐寅是明代四大画家之一。1498年江南乡试头名举人,被封解元一职,后辞官开始用“江南第一风流才子”印章创作山水、人物、花鸟画。唐寅的书画作品中有《江山骤雨图》、《梅花图》、《雨竹图》、《春荧图》、《骑驴归思图》等。收录的唐寅的文献有《六如居士集》,收藏的书画作品有《唐伯虎书谱》、《唐伯虎先生集》等。

 

오창석 꽃그림 吴昌硕 花画

오창석吳昌碩(1844-1927)은 중국 절강성 안길(安吉) 사람. 서, 화, 전각에서 근현대 서예계,중국화계를 대표하는 거장이다.그의 서예는 <석고문石鼓文>의 영양을 많이 받았으며 독특하게 草法(초서의 법)으로 전서를 쓴 중국 회화를 개조한 사람.

吴昌硕(1844-1927)是中国浙江省安吉人。是一位擅长书、画、篆刻近现代中国书画界非常有代表性的巨匠。他的书法受《石鼓文》的影响很深,开创了独特的草书法来写篆书的风格。

 

오관중유화불상 吴冠中油画佛像

 

오관중 화백은 1919년 중국 동부 浙江省 의흥현의 한 농민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8살부터 미술을 공부하기 시작했고 23살에는 절강성 杭州의 국립 예술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47년, 오관중은 프랑스 파리 국립 고등 미술학교에 입학해 저명한 진 소버비어(Jean Souverbie) 교수로부터 유화를 공부하게 되었다.

1950년 귀국 후, 그는 선후로 중국 최고 미술학부인 중앙미술대학과 최고 명문인 청화대학 건축학과, 베이징예술대학 및 중앙공예미술대학 등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오관중 화백은 자유분방한 화풍(畵風)과 뛰어난 성과로 유명하다. 오관중 화백의 그림은 국제 예술시장에서 거래 가격이 매우 높다.

吴冠中画伯,1919年出生在中国东部浙江省兴县的一个农村家庭。他18岁开始学习画画,23岁从浙江的国立艺术专门大学毕业,1947年,吴冠中前往法国巴黎的国家高等美术学院,师从 Jean Souverbie,开始学习油画。

1950年回国后,他先后在中国最高的美术学府中央美术学院、清华大学建筑学院、北京艺术大学以及中央工艺美术学院等高校授课。吴冠中画伯以自由奔放的画风和超凡的成果闻名,吴冠中画伯的作品在世界书画市场的交易价格非常的昂贵。

 

文化

韩国最悠久毛笔名店‘九霞山房’

引领韩国书画界103年历史的传统笔店---

 

对于韩国书画家来说‘九霞山房’是他们的厢房。仅有7平多的九霞山房除了笔墨纸砚文房四宝外,还是一个销售各种书画材料的笔店。九霞山房是首尔仁寺洞最老的笔店,今年正好是第103年。九霞山房不只是单纯销售文房四宝的店铺,也不只是做高质量的毛笔进行毛笔销售的店铺。它是一个把匠人和画家们联系在一起的桥梁。位于首尔仁寺洞179-2号的‘九霞山房’单是路过的画家也不计其数。可以说到了“把品质好的东西拿出来放那,高宗、顺宗也会用九霞山房的笔”的程度。

“就连李寿根、李象范、李应鲁、千镜子这样的画家也不会忽视九霞山房。”洪洙惠社长这样自豪的说。

洪社长说:“像青田(号)李象范老师这样有名的画家,在还没有出名的时候也会常常到店里来抚摸这些毛笔和纸张。虽然没有钱却非常有实力,所有也非常想用好的工具。因此就让他留下幅画来换笔墨纸砚。”洪洙惠说九霞是九天的云霞的意思,因此九霞山房就是神仙们居住的山房。九霞山房是1913年日本商人最早创办的,友堂(号)洪起大先生1935年在店里做店员,随后在光复后承接过来。友堂洪起大是我们国家古董界的历史和见证人。当代的书画家:以堂金良殷、青田李象范、小亭卞宽植、顾庵李应鲁都买过这里的笔墨纸等。以堂和青田当时的画值10元(相当于那个时候一代大米的钱)。涧松全荧弼先生也会通过九霞山房收集古玩字画,洪洙惠社长是他的侄子。在忠武路开始的商店由于韩国战争以及“一四后退”等主要历史原因不断的转战,于1980年定居到仁寺洞,2013年被认定为首尔市未来遗产。经历了103年历史的九霞山房不只是单纯收藏韩国的书画文物,中国的书画文物也收藏了不少。有不少人希望能够把这些收藏的书画文化放到博物馆中向一般人进行展示。洪洙惠社长也说过文物应该由懂得它价值的人进行收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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