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의 쓴맛을 통해 각설이의 존재가 저 자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거지꼴을 하고 정말 각설이처럼 다녔거든요” - 이상덕

모닝캄 대천 축제에서 사회를 맡은 이상덕 씨 / 사진 = 김상근 사진기자

[공감신문 라메드] 충청남도 보령시에 위치한 대천해수욕장. 석양 일몰이 장관인 이곳 광장은 전국에서 집결한 바이크 라이더 수백 명이 모여 있었다. 국내 최대 바이크 동호회인 ‘모닝캄’ 회원들의 축제인 제81회 모닝캄 대천 축제가 열렸기 때문이다.

화려한 무대와 조명, 연예인들의 축하 쇼가 준비된 이 큰 행사의 사회는 각설이 사회자로 유명한 이상덕 씨. 그는 초반부터 걸진 입담과 카리스마로 관중들을 휘어잡았다.

흥겨운 인생, 파란만장한 삶

충남 부여 출신인 이상덕 씨는 18세에 디제이 생활을 시작한다. 본래 노래를 잘하고, 입담도 좋고, 음악을 좋아했던 이 씨는 디제이 생활을 통해 리듬과 흥에 대한 기본기를 배웠다. 그는 20대 중반에 스탠드바 업소에서 일하면서 그곳에서 잘 나가는 엠씨들을 만났다.

“아무래도 디제이는 한계가 있으니까요. 그때 수원 스탠드바에서 잘 나가는 엠씨들을 보고 많이 배웠죠. 오랫동안 하기 위해서 그분들보다 더 나은 특기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각설이를 접목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생각 못 한 일이었죠.”

각설이를 접목한 사회자는 이 씨가 당시 최초였다고 한다. 이 씨는 전국을 돌며 사회자로서 입지를 다졌다. 걸출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잡고, 뛰어난 노래 실력과 각설이 타령으로 관객의 흥을 돋웠다.

“아시겠지만, 각설이는 단순한 가수가 아니잖아요. 노래도 하지만, 모인 관객과 공감대를 끌어내는 걸출한 입담으로 분위기를 최고도로 끌어냅니다. 관객들은 각설이와 대화를 하면서 하나가 되어갑니다. 한마디로 종합적인 요소가 다 들어가 있다고 봐야죠.”

이상덕 씨의 각설이 품바 공연 / 사진 = 김상근 사진기자

그의 30대는 이렇게 세상을 알아가는 시간이었다. 이후 이 씨는 사업가로 변신한다. 그가 눈여겨본 아이템은 나이트클럽이었다. 폐업 직전의 나이트클럽을 헐값에 인수해서 그동안 경험하고 보아온 모든 노하우를 동원해 인기 있는 나이트클럽으로 되살렸다. 이후 프리미엄을 얹어 되파는 방식이다.

“사업은 대박이 났죠. 돈을 긁어모았어요. 아내에게 마트도 차려주고, 돈이 필요하다는 친구들에게 몇 억씩 주었습니다. 어려울 때 같이한 친구들에게 좋은 일도 하고, 그렇게 베풀며 살아간다는 것이 참 좋았습니다.”

그런 그에게 시련이 닥쳐왔다. 10년 전에 지인을 믿고 큰 사업에 투자했는데, 이게 사기였다. 물리고 물리면서 이 씨가 가진 사업체의 연쇄 부도를 피할 길이 없었다. 부도액 128억 원. 그가 가진 전 재산이 한 방에 날아갔다.

각설이로 타인의 삶을 위로하다

각설이 사회자, 이상덕 씨 / 사진 = 김상근 사진기자

아내와 자식들을 떠나 이상덕 씨는 혼자가 되었다. 그렇게 주변에 많던 친구와 지인들도 떠나갔다. 전국을 내 집처럼 돌아다니며 공연하고 돈을 벌던 이 씨는 자살하러 한강에 네 번을 갔었다고 한다. 그때마다 가족들 생각에 매번 실패하고 돌아왔다.

“노가다, 보험외판원을 비롯해 안 해본 일이 없어요. 어떻게든 빚을 갚고 살아야 하니까요. 8개월 동안 라면만 먹고 산 적도 있어요. 그렇게 몇 년을 죽어라고 고생했어요. 지금은 거의 빚을 다 갚았어요. 그러다 문득 고향에 가서 자리를 잡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이 씨는 그 후 고향과 가까운 대천해수욕장에 와서 노래방에 취업했다. 이 씨가 근무하는 노래방은 인근에서 관광객이 가장 많은 노래방이 되었다. 그리고 다시 가족들과 합칠 생각으로 매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그 전에 무대 위에 서 있던 저는 그저 각설이를 흉내 낸 사람이었어요. 인생의 쓴맛을 통해 각설이의 존재가 정말 저 자신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거지꼴을 하고 정말 각설이처럼 다녔거든요. 이제 무대 위에 오르면 나 자신과 각설이가 하나라는 마음으로 더 절절하게 노래하고 관객과 하나가 돼서 공연합니다. 정말 행복하죠.”

공연이 막판으로 치달으며 이 씨의 각설이 타령에 관객들도 시름을 잊고 행복한 모습으로 돌아갔다. 이 씨가 걸어온 지금까지의 삶이 무대 위 각설이를 만들었다고 스스로 이야기했다. 그런 그가 걸어갈 앞으로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진솔하고 열정적인 공연이 되리라 생각 들었다. 그렇게 대천해수욕장의 밤은 깊어갔다.

사진 = 김상근 사진기자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