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셉션은 비즈니스 대화보다 손님간의 네트워크 형성이 목적”

신성대 사장

[신성대 도서출판 동문선 대표] 어느 다자간 정상회의에서 혼자 정시에 생뚱맞게 자리를 차지하고 앉은 한국 대통령 사진을 보고 혀를 찬 적이 있습니다. 다른 나라 정상들은 아직 아무도 제 자리에 앉아 있지 않았는데 말입니다. 이처럼 무게감 있는 국제회의에서 제 시간에 자리에 앉는 대표는 한국과 일본 밖에 없습니다.

무게감 있는 모든 국제회의에서 각국의 대표들은 항상 15분 지난 후에야 입장합니다. 그럼 정시는? 그건 실무요원들의 입장시간입니다. 그렇게 준비를 마치면 15분 쯤 지난 후에 입장하라는 안내를 합니다. 각국의 대표들은 5분이나 10분 쯤 지난 시간에 나타나 로비에서 서로 환담을 나누다가 15분이나 20분이 지난쯤에 입장해서 착석, 회의가 시작됩니다.

로비에서 잡담? 실은 이 로비에서 그날의 주요 사안들이 결정된다고 보면 틀림없습니다. 이 로비가 바로 식전 리셉션장인 셈이지요. 그곳에서 각국의 대표들과 인사를 나누며 사전 막후교섭 약조를 재확인하거나 미진했던 것을 마무리하는 것이지요. “아, 어제 저녁 즐거웠어. 부탁한 그 문제 꼭 좀 부탁해!” “어이 반가워. 그런데 말이야, 이번에는 우리 좀 밀어줘! 다음엔 우리가 꼭 갚을게!” 등등. 진짜 글로벌 내공은 로비에서 발휘하는 것입니다. 해서 로비할 일이 많은 대표가 남들보다 일찍 나옵니다.

대표들은 그렇게 로비에서 물밑 사전 담합, 조정, 확인, 교제, 환담하는 겁니다. 로비스트란 말이 왜 로비에서 나왔는지 짐작이 가지요. 그리고 정상들 간의 국제회의에선 로비나 이동 중에도 영양가 있는 강대국 정상과의 대면(인증샷)을 차지하기 위한 자리다툼 또한 은연 중 치열합니다. 내공이 부족한 정상들은 그대로 뒤로 밀려나 들러리 신세가 되고 맙니다. 양자 간 회동에선 서로 배려를 하기 때문에 자연히 돋보일 수밖에 없지만 다자간 회의에선 그런 것 없습니다. 각국 정상들의 진짜 글로벌 내공 수준을 가늠하는 자리지요. 해서 때로는 독재자의 나라에선 사진조작으로 자국 정상의 위치를 바꿔 홍보용으로 내 보내기도 한답니다.

 

리셉션도 코리안 타임

리셉션 시간 역시 초청장에 명시된 대로 정시에 도착했다간 반드시 낭패를 당합니다. 그보다 일찍 도착하면 말 그대로 글로벌 등신 취급 받습니다. 처음 리셉션에 초대받은 대다수 한국인들은 정시보다 10분 전쯤 행사장에 도착했다가 현장 종업원들에게 쫓겨나는 민망한 경험을 하곤 합니다. 국제회의와 마찬가지로 15분 이후에 도착해야 합니다. 보다 많은 사람들과의 만나야할 사람은 그때 쯤 나오고, 거물들은 대개 30분 쯤 지난 후에나 나타납니다. 늦게 나타날수록 그들은 더 많은 사람들의 주목을 받을 수 있으니까요.

무엇보다 리셉션 형식은 딱히 정해진 것이 없습니다. 해서 바쁜 사람은 아무 때고 제 편한 시간에 왔다가 중간에 그냥 가버리면 그만입니다. 인적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하는 초보자라면 남보다 일찍 나와 가능한 한 많은 사람과 인사를 터야겠지만, 이미 그 모임에 익숙한 사람이라면 굳이 일찍 나올 필요도 없고 편한 시간에 나와 꼭 필요한 몇몇 사람들만 만나도 누가 뭐라 하지 않습니다.

해외에서 처음 리셉션에 나갔다가 사람들이 명함을 건네고 인사를 하며 2,3분 쯤 간을 보다가 휙 하고 등을 돌리는 것에 당황해 했던 경험을 가진 한국인들 많을 것입니다. 리셉션에선 한 사람과의 대화 시간은 대개 3-5분 내외 정도. 보다 많은 사람을 만나려면 시간을 더 짧게 나눠야합니다. 차츰 내공이 쌓이면 쓱 하고 한 번 둘러보고는 자신이 오늘 만나야 할 사람을 금방 찍어냅니다. 리셉션은 본격적인 비즈니스 대화를 나누는 곳이 아니라 손님간의 네트워크가 목적이니까요.

따라서 주최측은 보다 효율적인 만남을 위해 리셉션장을 4-5개 존(구역)으로 나누어서 각 존마다 구역담당자를 정해 주어 적당한 인원 분배가 되도록 합니다. 그리고 각 구역담당자는 손님들의 부류나 목적에 따라 서로 연관이 있거나 필요한 사람들끼리 소개를 알선하지요. 저들끼리 그냥 잘 어울려 놀겠지 하고 방관하는 것은 호스트 자격 미달입니다. 아는 사람들끼리는 새삼 안면을 다지게 하고 낯선 이들끼리는 서로 사귀게 해서 이왕 영양가 있는 모임이 되도록 적극적으로 중매해야 합니다.

백악관 같은 곳에서는 디너 중심이지만 가끔 상대국 정상의 위신을 세워주기 위해 식전 대화위주의 리셉션을 열어줄 때도 있고 곧 퇴임하는 사람의 경우 작별인사를 도탑게 나눌 수 있도록 식후 리셉션을 열어주기도 한답니다. 그리고 수상축하나 무엇을 기념하기 위한 일반적인 리셉션이라 해도 굳이 한국처럼 식순에 따라 의식을 치르지 않습니다. 주요한 내용만 간단하게 프린팅해서 입구에 붙여두어 보고 싶은 사람만 보게 하면 되지요. 또 수상자나 초대 귀빈을 알아보게 하려면 그들의 가슴에 꽃과 같은 코사지를 꼽으면 됩니다.

회원들간에 중요하게 의논해야 할 주제가 있으면 리셉션이 끝난 후에 그들만 따로 모여 토의하면 됩니다. 대개의 서양 리셉션은 1시간 정도로 끝내고 주요 인사들(보통 20명 내외)만 남아 착석 디너를 합니다. 이때에는 고급와인을 즐기지요. 보다 상류층 리셉션이라면 디너에 이어 댄스파티로 마감하기도 합니다.

 

식순이 있는 리셉션은 한국밖에 없다

리셉션 초청장은 최소한 1달 전, 중요한 행사는 2달 전에 보내야 합니다. 이때에는 순수하게 초청문만 적은 초청장만 보냅니다. 특별한 경우에만 행사 내용을 적은 안내장을 함께 보내기도 하지요. 한국에서처럼 초청문과 식순을 한 장에다 인쇄해서 보냈다간 ‘상것’이 되고 맙니다. 바로 쓰레기통으로 직행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전화 혹은 만난 김에 구두로 초청했다간 역시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힙니다.

또 서양에선 리셉션이면 부부동반 초청이 관행화 되다시피 했습니다. 해서 굳이 초청장에 별도의 표시를 안 해도 대개 부부동반으로 참석합니다. 그에 맞춰 음료와 음식을 준비해야 낭패를 당하지 않습니다.

원칙적으로 모든 리셉션은 스탠딩입니다. 한국에서처럼 단상이 있고, 귀빈석을 따로 마련하고, 별볼일없는(?) 손님을 위한 테이블과 의자들 놓이고, 식순이 있는 리셉션은 세상에 없습니다. 해서 정각에 모든 손님을 입장케 해서 식순에 따라 개회사, 국민의례, 축사, 귀빈 소개, 경과보고, 동영상까지! 이는 완전 손님 모독입니다. 손님을 불러다 앉혀놓고 맹물 한 잔으로 박수치게 하고, 단체사진 홍보모델 역을 강제하는 것이니까요. 말이 리셉션이지 억지행사를 그럴듯하게 치르기 위해 서로 도우미 품앗이 하는 게지요. 정히 식순대로 행하자면 저들끼리 따로 치렀어야지 손님에게까지 강요하는 것은 난센스입니다.

챙겨주지 않으면 꿔다놓은 보릿자루만도 못한 단체장이나 정치인, 유명인사, 동원관객, 화환의 개수로 위세를 과시하고 회의를 성공적으로 개최했다고 자평하는 촌극! 박수부대에 의한 의례적인 축하에 삶의 의미를 찾는, 손님 개개인의 삶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허례허식 상조회인 셈이지요. 그나마 인심 좋으면 제 부하들 대접하듯 저녁 한 끼 먹여 보냅니다. 흡사 집단 자위행위에 몰입한 퍼포먼스 같다 하겠습니다. 아무튼 한국의 리셉션 매너 수준은 1945년에 고정되어 있습니다. 그러니까 해방 전 일본식을 지금까지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는 거지요.

아무튼 한국에선 리셉션다운 리셉션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때문에 주한 외국인들은 이런 이상한 나라의 괴상한 행사에 불려나가 후진매너를 인내하고 참아야 하니 그 고통이 여간 아닙니다. 문제는 이런 식의 전근대적인 행사에 타성이 젖은 한국인들이 글로벌 무대에 나가서는 하나같이 꿔다 놓은 보릿자루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지요. 그러니 비즈니스는 고사하고 정보수집, 사교, 인맥 형성이 제대로 될 턱이 없지요. 수 십 차례의 실수와 굴욕을 당하고서야 겨우 리셉션에서 어깨를 펴게 됩니다. 그렇지만 이미 이미지 다 망가진 터라 회복하는 데에 엄청난 에너지가 듭니다. 무엇보다 더 한심한 일은 한국인들은 모두가 이런 일을 똑같이 반복한다는 겁니다. 아무튼 리셉션이든 디너든 풍부한 화제 거리와 유머 없인 내내 지옥입니다.

 

리셉션장에서의 행동요령

리셉션장에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들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 넥타이 칼라는 리셉션 주최측 회사 로고색 또는 그 나라 국기색과 매칭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형태는 긴 타이보다 나비타이 시도를 강력히 추천합니다. 여성은 해당 색 스카프나 머플러를 준비하고 남녀 모두 가슴에 그 나라를 상징하는 꽃 국화(國花) 코사지까지 착용하면 의외의 환대와 주목을 받을 수 있습니다.

둘째, 선 자세는 똑바로 곧게 선 자세로 배 내밀고, 어깨 펴고, 턱 당기고, 눈은 크게 떠야 인격체로 인정받을 수 있을 뿐 아니라 전체적인 시야를 확보할 수 있습니다.

셋째, 행사장 내 여유있는 공간에 완전히 들어서면 잠깐 서서 정중앙, 좌, 우 3방향으로 두 다리 고정, 상체 몸통 전체를 좌우15도 틀어 행사장 전체를 스캔하여 우선 인사할 대상자들, 중반 이후에 인사할 대상자들을 점찍어 놓습니다.

넷째, 보행 자세는 선 자세를 그대로 유지합니다. 어금니는 다물지 말고 커피 스트로를 문 정도의 간극으로 띄워야 눈방긋 스마일 및 임기응변 멘트 구사가 비로소 가능합니다.

다섯째, 인사는 눈 방긋 0.5초 뒤 말 인사 덧붙이면서 시선은 상대방 눈에 계속 고정된 상태에서 손이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식의 굽신 인사나 손 보고 굽신 악수는 금물입니다.

여섯째, 비즈니스 명함과 사교 명함을 준비해야 합니다. 처음 인사한 사람과는 비즈니스 명함을 주고받습니다. 중요하게 관리해야 할 타켓인사라면 헤어질 때 다시 한 번 인사를 나누며 재차 자기 존재를 인식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이때는 별도의 사교명함을 주면서 "내일 꼭 전화 주십시오. 휴대폰 번호와 집 전화번호는 여기 있습니다."하고 아무 때나 피드백 해줄 것을 요청해야 합니다. 이 대목에서 외국인에게는 아주 작은 선물을 같이 건네면 더욱 확실합니다.

마지막으로 떠날 때 감사의 인사말 없이 그냥 가는 것은 말짱 꽝입니다. 그리고 사후 피드백은 결코 빠트려선 안 된다는 점 잊지 않으시기 바랍니다.

정장의 모델 폼 독일 메르켈 총리. 미 백악관 공식방문 일정 중 리셉션 때 복장. 검은 정장에 검은 나비넥타이 정장을 한 참가자들. /백악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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