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 “공모관계 성립 의문”...임종헌 전 차장 구속과 대비

사법행정권 남용 사건에 관여한 의혹을 받는 박병대(왼쪽), 고영한 전 대법관이 7일 오전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경기도 의왕 서울구치소를 나서고 있다.

[공감신문] 서지민 기자=양승태 전 대법원장 당시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으로 수사를 받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이 기각됐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것과 대비되면서, ‘꼬리자르기’가 아니냐는 의심이 고개를 들고 있다.

7일 새벽 서울중앙지법 임민성·명재권 영장전담 부장판사는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의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전직 대법관의 구속영장이 청구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은 양 전 대법원장 때 법원행정처장을 지냈다. 당시 청와대와의 재판 거래 등 사법농단 사건의 핵심 인물로 지목되면서 검찰이 전 대법관에게 영장을 청구하는 헌정 사상 초유의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7일 오전 서울중앙지법 앞에서 한국진보연대 등 시민단체 모임이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 구속영장 기각 규탄 기자회견을 열었다.

그러나 법원은 이들의 영장을 기각하며 구속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았다.

영장실질심사를 진행한 임 부장판사는 박 전 대법관에 대해 “범죄 혐의 중 상당 부분에 관해 피의자의 관여 범위 및 그 정도 등 공모관계의 성립에 대하여 의문의 여지가 있다”고 기각 사유를 밝혔다.

이어 “이미 다수의 관련 증거자료가 수집돼 있는 점, 피의자가 수사에 임하는 태도 및 현재까지 수사경과 등에 비춰 증거인멸의 우려가 있다고 보기 어려운 점, 피의자의 주거 및 직업, 가족관계 등을 종합해 보면 현 단계에서 구속사유나 구속의 필요성 및 상당성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검찰 구속 후 첫 소환조사를 받기 위해 지난 10월 28알 호송차에 내려 서울 서초구 중앙지검으로 향하고 있다.

이는 임 전 차장이 구속됐을 때 밝힌 사유와 대비된다. 당시 임 부장판사는 “범죄사실 중 상당 부분에 대해 소명이 있다”며 구속영장을 발부한 바 있다.

이에 임 전 차장 선으로 꼬리자르기에 나선 것이 아니냐는 의문이 제기된다. 임 전 차장의 범죄사실에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이 공모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법원이 이번 사건을 사실상 임 전 차장의 단독범행으로 판단하고 있다는 맥락으로 읽힌다.

대법원 앞 글귀

나아가 사법농단 사건에 있어 ‘임 전 차장-박·고 전 대법관-양 전 대법원장’으로 이어지는 공모관계 의혹에 대한 검찰의 논리 구조를 법원이 사실상 전면 부인하는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이 사건은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철저한 상하 명령체계에 따른 범죄로서, 큰 권한을 행사한 상급자에게 더 큰 형사책임을 묻는 것이 법이고 상식”이라고 밝혔다.

이어 “하급자인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구속된 상태에서 직근 상급자들인 박·고 전 처장 모두의 영장을 기각한 것은 재판의 독립을 훼손한 반헌법적 중범죄 전모의 규명을 막는 것으로서 대단히 부당하다”고 비판했다.

검찰로서는 박·고 전 대법관의 영장 기각이 뼈아프다. 향후 수사는 불가피하게 양 전 대법원장을 직접 조사하는 쪽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크다는 관측이 나온다.

다만 임 전 차장의 구속영장에는 ▲통합진보당 재판개입 ▲법관 사찰 ▲헌법재판소 기밀 유출 등 여러 사안에서 양 전 대법원장과의 공모한 것으로 적시돼있는 만큼, 수사 진척에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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