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김이사부 장군과 이사부함대 출항지
 1) 실직군주(悉直軍主) 김이사부(金異斯夫) 장군
  가. 실직군주가 되기까지
  김이사부 장군은 성은 김씨로 내물왕의 4세손으로 태종(苔宗)이라고 한다.(삼국유사에는 이찬 박이종이라고 함.) 이사부장군은 지증왕 때 변방의 관리가 되어 거도(居道)장군의 마숙(馬叔)놀이를 이용하여 가야국을 속여 점령하였다. (김부식, 삼국사기 권 제44 열전 제4 거도, 이사부)
 이 공로로 지증왕의 북진정책을 수행할 선봉장이 되어 실직까지 영토를 회복을 하여 나라에서는 실직 이남의 파리, 미실, 진덕, 골화 등의 12성을 쌓게 하였고, 김이사부 장군은 지증왕 6년(505년) 2월 실직군주에 임명되었다. 

나. 김이사부(金異斯夫) 장군의 우산국(于山國) 정벌계획(征伐計劃)
 <표-3>에서 보듯이 왜는 신라 박혁거세에서 내물이사금(402)까지 459년 동안 15회의 크고 작은 침범이 있었고, <표-4>와 같이 이사부가 태어나기 전 실성이사금(402년)부터 소지마립간(500년)까지 약100년 동안 왜인(왜병)들이 14회나 침범하였다. 특히, 서라벌의 길목인 형산강 및 태화강 주변의 백성들은 많은 피해를 입었다. 지증왕이 등극하기 직전 이사부가 15세 정도의 젊은 시절에도 왜인들이 침범하여 장봉진이 함락하기도 하였다. 어떻게 보면 고구려 보다 더 골치 아픈 존재들이어서 신라의 국왕이하 모든 백성들의 근심거리였다.
 그러므로 지증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나라 이름을 신라(新羅)로 정하고 과거의 영토를 회복하기 시작하였다. 이사부는 젊은 나이였지만 지방의 관리가 되어 가야(伽倻)를 공격·점령하여 지증왕의 북진정책을 수행할 신라군의 선봉장으로 발탁되었을 것이고, 이사부 장군 특유의 전략과 전술로 실직성(悉直城)을 탈환하여 신라의 영토를 회복하였다.

 
 이사부 장군은 505년 2월에 실직군주로 임명되어 주변의 모든 정보를 수집·분석하여 ‘북진을 할 것인가? 동쪽의 우산국을 먼저 공격할 것인가?’를 많은 고민을 하였을 것이다. 그리하여  ‘우산국을 먼저 정복하고, 동해의 제해권을 확보하여 왜나 고구려로부터의 침입을 단절하고 안정적으로 영토 확장정책을 수행하는 방향으로 전략을 세웠다.
 그리하여 실직군주로 우산국 정벌계획을 세우고 11월에는 선박기술자들을 보내달라고 주청(奏請)하여 선박(주즙:舟楫)의 이용에 관한 제도를 만들어 김부식, 삼국사기 권 제4 지증마립간 6년
 506년부터 본격적으로 이사부 함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2) 이사부 함대(異斯夫艦隊) 출항지(出港地) 및 제작지 여건(與件) 
  가. 이사부 함대 출항지 여건
   ① 우산국은 보이는가?
  이사부장군은 육상으로 북진하면서 우산국 정벌에 관한 정보를 수집하였을 것으로 본다. 울진 지역과 삼척지역에서는 옛 부터 그 지역의 노인들로부터 울릉도(무릉도)의 이야기는 많이 전해지고 있다. 
 서라벌에서 실직 까지 오는 옛길은 동해안을 따라 평탄하다가 죽변에서 호산 구간과 호산에서 장호 구간이 제일 어려운 코스이나 높은 곳이 해발고도가 300-400m 정도이다. 특히, 옥원(호산)에서 임원을 지나는 곳은 예로부터 높은 지역에서는 날씨가 좋은 날에는 울릉도(무릉도) 볼 수 있었다. 
 필자도 삼척의 옛길인 소공대를 10차례 오른 결과 절반 정도는 볼 수 있었다. 물론 날씨가 좋은 때를 선택해야한다. 이 곳 뿐만 아니라 동안거사 이승휴는 고려 때 요전산성(두타산성 내성)에서 보았으며, 필자는 동해시 초록봉에서도 예전에 보았다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울릉도(무릉도)를 보았다는 기록은 여러 곳에 있으나, 고려1253년 이승휴의 동안거사집에도 실려 있다. 이승휴는 삼척에 거주하면서 몽골군의 침입을 피해 주민들과 함께 요전산성에 들어가 있는 동안, 파도 속에서 출몰하는 산을 보았는데 마을 어른들이 무릉도라고 일러주어 망무릉도행(望武陵島行)이라는 시편을 지었다.

越癸丑秋 因避胡寇 一方會守 眞珠府 寥田山城
城之東南面 熐浡際天 而四无涯 極中有一山
浮沈出沒 於雲濤 煙浪之間 震昏媚嫵 若有爲之者
父老云 武陵島也 江陵田使君命子賦之 聊以鄙語形容云
 
성에 올라 성의 동남쪽은 바다가 하늘에 닿아 사방은 끝없이 펼쳐졌다. 그 속에 산이 하나 있는데 구름, 물결, 안개, 파도 속에 떴다 가라앉았다 나타났다 잠겼다 하였다. 아침저녁에 더욱 아름다웠는데, 마치 무슨 일 치례하는 것 같았다. 노인들이 무릉도입니다. 하였다. 손승철, 2013년 삼척이사부·독도수호 유적탐방가이드북

 
 이승휴는 고종40년(1253년) 7월초에 몽고군이 침입하자 강도(江都) 정부가 7월8일에 5도 안찰사(按察使)와 3도 순간사(巡間使)로 하여금 본토 주민들을 산성(山城)과 해도(海島)로 입보시키도록 한 조처에 따랐을 것이다.

           

▲ <도2-1> 2010.09.24. 08:24 소공대에서 본 울릉도

                         

▲ <2-2> 2010.9.27. 05:54 소공대에서 본 울릉도

 

 

▲ <도2-3> 2011.09.06. 05:54 소공대에서 본 울릉도

                
     

▲ <도2-4> 2010.6.10. 05:00 공해상에서 본 울릉도(코리아나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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