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화 과정에서 국가 주권 약화…글로벌 형태의 주권 강화”

[공감신문=김인영 기자] 9·11 테러 이후 미국 지성인들 사이에서는 제국주의 논쟁이 벌어졌다. 이 논쟁은 자유주의 좌파에서 보수주의 우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전개됐다.

좌파적 행동주의 입장에서는 미국이 절대적인 군사적 힘으로 세계 자본시장 지배를 뒷바침하고 있다는 문제 제기가 터져나왔다. 이에 비해 우파들은 언제, 어디서 미국이 테러 공격을 받을수 있는 상황에서 미국은 ‘마지못해(reluctantly)’ 제국주의가 될 수 밖에 없고, 그 모습은 2차 대전 이전의 유럽 제국주의와 달리 ‘인간의 모습을 한 제국주의’라고 주장했다.

 

좌파적 시각의 제국주의론은 미국 듀크 대학의 마이클 하트(Michael Hardt) 교수와 이탈리아 극좌파 ‘붉은 여단’의 이론가이자 파도바 대학 교수인 안토니오 네그리(Antonio Negri)가 함께 쓴 ‘제국(Empire)’이라는 서적이 대변하고 있다. 9·11 테러 한달전에 출간된 이 책은 미국이 주도하는 세계단일시장, 즉 글로벌라이제이션을 제국주의 관점에서 보았으며, 테러 이후 반세계화 운동 세력에게는 칼 마르크스(Karl Marx)의 자본론(Das Kapital)에 버금가는 지침서로 부상했다.

이 책은 제국주의를 자본주의의 최후 수단으로 규정한 블라디미르 레닌(Vladimir Lenin)의 제국주의론을 현재의 세계 경제에 부활시켜 이론화했다. 이들은 “과거 제국주의 시대에는 여러 국가가 경쟁하고 갈등했지만, 제국주의 시대가 종식된 현재의 세계는 여러 나라를 하나로 지배하는 거대한 힘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좌파적 시각의 두 교수는 식민주의를 동반한 2차 대전 이전 상태를 ‘제국주의(imperialism)’라고 규정하고, 세계 단일 시장을 지배하고, 통제하는 거대한 주권을 ‘제국(Empire)’이라는 추상적 개념을 제시했다.

두 교수의 ‘제국’의 개념을 살펴보자.

‘제국(Empire)’이 구체화되고 있다. 지난 수십년 동안 식민지 체제가 붕괴되고, 자본주의 세계시장에 대한 소비에트 장벽이 와해되면서, 우리는 저항할 수 없는, 역전시킬 수 없는 자본과 문화 교류의 국제화를 맞고 있다. 글로벌 시장과 글로벌 생산 회로와 함께 글로벌 질서, 새로운 논리와 지배구조, 즉 새로운 형태의 주권이 나타나고 있다. ‘제국’은 글로벌 교환을 효율적으로 규제하는 정치 주제이며, 세계를 지배하는 주권이다.

글로벌라이제이션의 과정에서 국가의 주권을 약화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단계적으로 생산과 교환의 기본 요소들이 국경 밖으로 이동하고, 국가의 주권은 점차 국경을 넘나드는 자본 이동을 규제할 힘과 경제에 대한 권위를 잃는다. 변화의 과도기에는 정치적 통제, 국가 기구, 제재 장치 등이 경제적ㆍ사회적 생산 및 교환에 대한 규제를 지속할 것이다. 하지만 여기서 우리가 제시하는 가정은 주권이 단일 지배 논리에 의해 통일된 일련의 국가적 또는 초국가적 조직으로 구성된 새로운 형태로 변형된다는 점이다. 주권의 새로운 글로벌 형태를 우리는 ‘제국’이라고 부른다.

 

좌파 지식인들은 대영제국을 마지막으로 하는 유럽 제국주의가 영토를 기본으로 한다고 규정했다. 제국주의는 중심부 국가가 영토를 확장하는 것이며, 영토를 경계로 생산 및 교환의 이동을 제한한다. 이들은 제국주의가 무너지고, 국경을 넘어선 경제활동이 확산되고, 국가 주권이 쇠약해지고 있는 현단계는 ‘제국’ 출현의 과정으로 보았다. 따라서 ‘제국’은 근대적 개념의 주권이 사라진 후에 형성된다. ‘제국’은 영토의 중심을 두지 않으며, 국경의 장벽을 세우지 않는다. 제국주의는 구심적 경향을 갖지만, ‘제국’은 원심력의 힘을 가지며, 기업들이 전세계의 영역을 확장하며, 글로벌 생산체계를 수립한다. 제국주의는 세계를 영국령, 프랑스령, 스페인령으로 분할하지만, ‘제국’은 이들을 하나로 묶는다.

하트와 네그리 교수는 ‘제국’의 네가지 특성을 제시했다.

첫째 국경이 없고, 둘째 제국주의의 과도기 이행과정을 거친 완성 형태다. 셋째 인류 전체를 지배하는 주권을 형성하며, 넷째 엄청난 억압과 파괴력을 행사하지만, 새로운 해방의 가능성을 제시하는 단계다.

좌파 지식인들이 주장한 글로벌 제국은 과연 미국을 의미하는가. 하트와 네그리는 이 대목에서 애매모호한 견해를 제시했다. 그들은 주권 국가의 형태를 초월한 추상적 의미의 ‘제국’이라는 개념을 사용,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라이제이션을 타깃으로 하면서, 미국의 세계 경제 지배력을 ‘제국’의 과도적 단계로 설정했다. 반국제화 세력은 미국이 중심이 된 선진국가의 다국적 기구 및 회의, 즉 국제통화기금(IMF) 총회, 선진 7개국(G7) 회의, 아시아ㆍ태평양 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 세계무역기구(WTO) 총회가 타깃으로 하고 있다. 이들 다국적 기구가 ‘제국’의 맹아로 보고 있는 것이다.

2차 대전 이후 생성된 국제기구. 유엔, IMF, WTO의 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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