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산국 정벌 선형 연구는 연구 과제로 남겨두기로

이사부가 몇 대의 배로, 몇 명의 병력을 동원했는지에 대한 기록은 없다. 해양 전문가들이 자신의 경험으로 12~20척의 선단을 구성해 공격했을 것으로 추정했다.

 

1) 우산국 정벌시 이사부 함대의 규모

해양탐험가 이효웅씨는 이사부 장군이 20척의 전함에 600명의 병력을 동원했다고 보았다. 우산국의 주민이 400-500명(전투 인원 약300명)이라고 가정한 결과다.

“공격은 수비보다 많아야 하므로 2배 정도인 600명 정도의 군사가 필요하며 여기에 맞추어 함대 규모를 정한다. 이사부 함대 규모를 20척(30명씩)으로 결정하고, 10척씩 2개 선단으로 편성하여 한 선단은 5척씩 2개조로 편성한다. (울릉도 항로는 안개, 파도 등으로 선박이 많아지면 관리가 힘들다,)

전선의 크기는 제작하기 쉬운 중형선 20척으로 전선의 형태는 노를 주로 사용하고 돛 한 개를 보조로 사용하는 준범선의 다체성형선으로 제작한다. 노잡이의 수는 좌·우 6명씩 이렬방식 2교대(24명)로 운행하고, 척당 군사의 수는 30명씩, 20척, 목우사자 20두, 계 600명 정도로 계획한다. (여기서 대장선은 생략하고, 정보수집에 의하여 전선의 수는 증감한다.)

▲ 통일신라시대 장보고선 모형도(전쟁박물관)

이에 비해 정채호 코리아나 선장은 참전 선박 12척, 총인원 508명이라고 추정했다.

그가 오랜 선장 경험을 살려 이사부 함대의 추정 내역은 다음과 같다.

가. 전선2척. 한 척당 돗대 3개, 한노 10개, 승선원 62명

( 대변국관1, 선장1, 군관2, 포고관1, 기패관1, 타수2, 돛사공6, 기패관1, 취사3, 전투병력:24명, 능노군:20 )

나. 사후선6척. 한척당, 돛대2개, 한노 6개, 승선원46명

( 선장1, 군관1 ,선장1 기패관1, 타수2,

돛사공4, 취사3, 전투병력 21명, 능노군12,)

다. 정탐선4척. 한척당. 돛대2개, 한노 4개, 승선원 27명

( 선장1 군관1 포고관1, 기패관1, 취사2명 돛사공 4

전투병력9, 능노군 8 )

총출전 인원: 508명

전투선박과 전투참여 인원은 2개조 편성 가능성이 높다

2개조 편성이 지휘 통솔이 용이 함

항해거리: 약150Km( 직선항해를 할 수 없으므로 실제는 더 많음)

항해시간: 24시간 (시간당:6.66Km)

출항시간: 오전6시

근접도착: 오전6시 (여명대기후 도착가능 포구지형정찰 후 상륙결정)

전선대기 장소: 수심이 낮은 포구에 적정거리 유지 후 최소 선원으로 대기

점령기간: 교섭과 단판의 절차를 거처 7일 이내 평정

최초 상륙지 순위: 1.저동 2.도동 3.현포

남풍이 부는 계절로 저동 포구 가능성 높음

 

정채호 선장은 이어 이사부 함대의 항해를 다음과 같이 추정했다.

1. 남풍이 부는 계절로 남서풍 바람 대기후 출정 일자 선택

바람, 해류, 우천등 기상을 중시

우리나라는 1년 중 음력 6월이 장마가 거치고 바람이 순하고

춥지도 않아서 선상 생활이 최적시기임

2. 전선 돛대 3개에 3장

사후선 돛대 2개에 2장의 돛을 올리고 항해

3. 한 개의 한노에 노꾼1명과

전투병력 중 1명 지원으로 2명이 1조 2교대 근무

약 한 시간 근무 교대

4. 정탐선은 사전 출발 항해 코스 인도 임무겸함

야간항해에는 불빛 사용 후미선 인도

 

이효웅씨와 정채호 선장이 추정한 이사부 함대와 승선 전투원의 규모는 상이한 점이 있지만, 오랜 해상활동을 통해 얻은 추정이라 관심있게 보아둘 필요가 있다. 두 발제자의 주장은 추정이긴 하지만, 정확한 선형과 선대에 대한 기록이 없으므로, 참고 사항으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겠다.

▲ 장보고 군선 모형도
2) 전선 선형 연구는 앞으로의 과제

이사부 장군 출항지와 선박건조지, 함대 규모등에 대한 논의는 상당한 진척이 있었다. 아울러 채바다 고대 해양탐험연구소장, 섬 탐사 및 연구가 이재언씨, 연안 해운연구가 전우홍씨의 발제는 이사부 항로 고증 및 선형 연구와 직접적 관련은 없지만, 바다와 해운에 대한 관심을 높이는데 좋은 의견과 자료를 제시했다고 본다.

하지만 이사부 장군의 전선 선형에 대해서는 앞으로 크게 연구해야 할 과제로 남겨두었다.

이효웅씨가 고대 선박에 대한 연구 과정을 발표했다. 하지만 이사부 함대의 선형에 대해선 구체적으로 제시하지 못했다.

가야와 신라 고분에서 나오는 주형토기와 안압지에서 건져낸 선박 잔해로 이사부 전선 선형을 그려내기는 힘들었다. 일본 고분에서 발견된 선형토기와 가야의 주형토기에 대한 연구는 흥미로웠지만, 보다 진전된 선형연구는 학계와 전문가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하겠다.

채바다씨도 뗏목 제작방법에 관한 주제발표에서 고대 선박 발달사를 스치면서 언급했지만, 이사부 함대의 선형을 설명하지 못했다. 아니,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이번 행사는 많은 논쟁거리를 만들어냈다는 점에서 생산적이었다. 사료와 유물이 극히 부족한 상황에서 어려운 주제를 놓고 벌인 세미나였지만, 많은 논쟁거리와 연구 주제를 남겨놓았다.

이사부기념사업회가 답을 찾기 위해 앞으로 더 연구하고 투자해야 할 것임을 남긴 행사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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