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

 

[공감신문] 정상조 칼럼니스트=토스뱅크로 인터넷은행의 돌풍을 일으킨 ‘비바리퍼블리카’(Viva Republica)는 불어로 ‘공화국 만세’라는 뜻이다. 1789년 대혁명 당시 프랑스 시민들이 ‘공화국 만세’를 외친 것처럼, 비바리퍼블리카는 이제 소비자들이 ‘플랫폼 공화국 만세’를 외칠 것이라고 확신한 것이다. 18세기 프랑스 시민들은 왕이나 귀족이 아니라 자신들이 주인이 되는 민주공화국을 갈망했다. 21세기 비바리퍼플리카는 소비자들이 토스뱅크의 주인이 되는 플랫폼공화국을 건설하겠다고 하는 희망과 의지를 보여줬다. 

헌법에서는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으로 규정하고 있지만, 사실 우리 현실은 이미 플랫폼 공화국이 됐다고 말해도 무방하다. 아침에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심지어 우리가 잠자고 있는 사이에도 우리의 삶이 펼쳐지고 있는 나라, ‘플랫폼’이 민주공화국 이상으로 우리 삶에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구글·네이버·아마존·카카오·페이스북·애플·삼성과 같은 플랫폼은 우리들이 먹고 사는 일상을 편리하게 만들고, 새로운 사업과 기술혁신을 실현하는 터전이 되고 있다. 반면 우리 정부는 어떨까. 기술활용에 뒤처진 탓에 공공서비스가 낙후돼 있다는 비판을 받는 실정이다. 그래서 윤석열 정부는 세계 최고의 디지털 플랫폼 정부를 구현하겠다고 선언했다. 모든 데이터가 연결되는 ‘디지털 플랫폼’ 위에서 국민·기업·정부가 함께 사회문제를 해결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정부의 구현을 정책과제로 추진하려고 한다. 

플랫폼 정부는 정부가 생산·수집·관리하는 방대한 데이터를 국민과 기업에 디지털 형태로 공개해 창의와 혁신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이를 통해 데이터에 기반한 과학적인 의사결정으로 투명하고 효율적인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다.

디지털 형태로 데이터를 공개하는 것은 정부 서비스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높이는 데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데이터의 공개와 활용의 필요성은 행정부뿐 아니라 입법부와 사법부에도 그대로 요구된다. 하지만 현재 우리의 현실은 플랫폼 정부의 이상과는 너무나 다르다. 입법절차는 불투명하고 판결문은 극소수만 공개되고 있다. 

현재 ‘종합법률정보’(https://glaw.scourt.go.kr)라는 법원 공식 사이트를 통해 공개되는 판결문은 전체 대법원 판결의 3.2%, 각급 법원 판결의 0.003%에 불과하다. 사법개혁은 대법원장을 처벌한다고 해서 간단히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판결문 공개와 법관 인사 같은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으로부터 시작돼야 한다. 정치적인 보복의 문제가 아니라, 투명한 사법부를 만드는 게 가장 큰 관건이기 때문이다. ‘유전무죄’ ‘전관예우’ 등으로 대표되는 국민의 사법 불신은 판결문을 공개하지 않는 사법부의 불투명성으로부터 나온다.

우리 정부의 1년 예산에 육박하는 매출액을 자랑하는 미국기업 애플(Apple)은 플랫폼으로 성공을 거둔 기업이다. 단순한 단말기 제조업체를 넘어 ‘원스토어’라는 플랫폼을 제공해 누구나 앱을 개발해 사업을 수행할 수 있게 했다. 이에 따라 매월 3만 개 이상의 앱이 개발, 활용되고 있다.

반대로 20여년 전 일본의 NTT도코모는 세계 최초로 인터넷을 사용할 수 있는 스마트폰을 개발했지만 현재는 보잘 것 없는 기업으로 몰락했다. 애플은 플랫폼만 제공하고 다른 기업들로 하여금 앱을 개발해 자신의 플랫폼을 활용하도록 했지만, NTT는 모든 앱을 자체 개발하는 방식으로 스스로 ‘갈라파고스 섬’으로 전락하는 길을 자초한 것이다. 

우리나라의 플랫폼 정부가 NTT보다는 애플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점은 명백하다. 플랫폼 정부는 정보와 데이터를 디지털 형태로 공개해 기업과 국민의 혁신과 창업을 활성화하고 공무원들이 효율적인 정책 결정을 위해 활용하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한다. 정부가 앱을 자체 개발하거나 스스로 웹서비스까지 할 필요는 없고, 해서도 곤란하다. 민간기업의 배달앱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정부가 공공 배달앱을 만들고, 데이터 공개를 게을리한 채 종합법률정보사이트를 만들어 정부가 직접 운영하는 것은 갈라파고스 플랫폼을 자초하고 민간의 혁신을 위축시킬 뿐이다. 

우리 정부는 플랫폼으로 정부의 권한과 역할을 확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과 개인의 혁신을 지원하고 경제를 활성화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 페이스북이나 카카오와 같은 플랫폼 기업은 일방적인 서비스 제공으로 성공한 것이 아니다. 이용자들과 함께 만들고 이용자들의 창의와 혁신이 빛을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해 성공한 것이다. 

정부는 본질적으로 플랫폼이다. 빵과 우유를 직접 만들어 국민에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이 양질의 빵과 우유를 만들 수 있는 환경과 기반을 제공해야 한다. 빵과 우유를 직접 운송하고 배급하는 것이 아니라, 신속하고 저렴한 물류가 이뤄질 수 있도록 고속도로를 건설하고 공항과 항만시설과 같은 플랫폼을 제공하는 것이 정부의 역할인 것이다. 

우리 역사를 보면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는데 야당의 반대가 있었고, 데이터를 공개하는데 공무원의 저항이 있었으며, 판례공개에 판사들의 반대가 있었다. 플랫폼 정부의 목표가 무엇이고 기업과 국민에게 어떠한 도움이 되는지 명쾌하게 설명함으로써 내부의 저항과 반대를 돌파하고 세계 최고의 플랫폼 정부로 성공할 수 있게 되길 기대한다. 

글 정상조 서울대 법대 교수/국가지식재산위원회 민간위원장

관련기사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