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공감신문] 백용욱 칼럼니스트=벤처캐피털(Venture Capital, 이하 VC)은 펀드를 결성하고 일정 기간 동안 스타트업에 자금을 투자해 투자한 기업의 성장과 함께 높은 자본이득을 실현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모험자본의 일종이다. 

우리나라는 현재 평균 7년 정도의 만기를 가지고 VC펀드를 운용한다. 반면, 미국과 같은 선진 모험자본 시장에서는 평균 10~12년 정도 운용하며 그 만기가 점점 늘어나는 추세다. 가령, ‘애플’ ‘야후’ ‘구글’ ‘유튜브’ ‘페이팔’ ‘인스타그램’ 등의 투자자로 40년이 넘는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실리콘 밸리의 ‘세콰이어 캐피탈’(Sequoia Capital)의 경우 10~14년 만기의 다양한 VC펀드를 운용하다가 이제는 특정 만기가 없는 VC펀드를 조성해 운용하기 시작했다. 

VC펀드의 평균 운용 기간이 길다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투자를 가능하게 하는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이 그 사회에 풍부하다는 것을 의미하며, 한 나라의 스타트업 생태계의 성숙도를 반영하는 척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 나라의 경제체제 입장에서 VC펀드의 평균 운용 기간이 길다는 것은 그만큼 다양한 혁신형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는 의미도 된다. 특히, VC 업무집행조합원(General Partner, GP)이 단기 및 장기 프로젝트 모두에 투자할 수 있는 구조적 여건을 확보했다는 것을 뜻한다. VC펀드는 결성 초기에 그 만기를 고려해 운용 기간 내에 투자금을 회수할 수 있는 스타트업에 관심을 갖고 투자하기 때문이다. 즉, 스타트업이 기업상장(IInitial Public Offering, IPO)이나 인수합병(M&A)을 통해 펀드 운용 약정 기간 내에 엑시트(Exit)을 할 수 있는 경우에만 VC가 투자를 하게 되며, 펀드 만기 전에 투자 지분을 현금화하고 펀드 결성에 참여했던 출자자(Limited Partner, LP)들에게 원금과 투자자본이득을 돌려주게 된다.

이런 이유로 우리나라에서는 7년 내에 엑시트할 수 있는 스타트업을 찾게 되고, 주로 “7년짜리” 혁신 프로젝트에 집중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우리나라에서는 주로 단기간에 엑시트할 수 있는 기업과 개인간 거래(B2C) 모바일 앱 혹은 디지털 플랫폼 기업에 투자가 편중되며, 대부분의 국내 유니콘 기업들 또한 모바일 앱 기반이다. 

반면 미국은 최대 12년까지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에도 VC들이 투자를 꺼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다. 그렇다 보니 B2C 디지털 플랫폼 외에도 신약개발, 자율주행, 제조, 화학, 소·부·장(소재·부품·장비) 등 소위 ‘Deep Tech Innovation’(박사급 이상의 고급인력을 많이 필요로 하는 첨단기술 분야) 및 기타 하드웨어 사업 등 연구개발과 상용화 주기가 긴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에도 투자가 원활하고 민간자본이 몰린다. 그리고 이는 전기자동차의 상용화에 도전한 ‘테슬라’(Tesla), 신형 우주선 및 인공위성 인터넷 통신의 상용화에 도전한 ‘스페이스엑스’(SpaceX), 코로나 백신 mRNA 기술을 연구해온 ‘모더나’(Moderna)와 같은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성공할 수 있었던 바탕이 됐다.

미국은 최대 12년까지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에도 VC들이 투자를 꺼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에 ‘테슬라’(Tesla) ‘스페이스엑스’(SpaceX) 같은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사진 픽사베이
미국은 최대 12년까지 소요되는 장기 프로젝트에도 VC들이 투자를 꺼리지 않고 할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됐기에 ‘테슬라’(Tesla) ‘스페이스엑스’(SpaceX) 같은 스타트업이 탄생하고 성공할 수 있었다./사진 픽사베이

 

나아가 우리는 테슬라, 스페이스엑스, 모더나에서 상용화한 이러한 혁신 기술들을 기존 대기업에서는 개발하고 상용화하지 않았다는 사실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즉, 기존 대기업들이 잘하는 부문도 있지만 세상을 바꿀 와해적 혁신은 보수적 대기업보다는 주로 스타트업에서 많이 나온다는 의미다. 그만큼 미국은 장기 VC펀드의 등장이 다양한 혁신형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스타트업들이 지속적으로 성장하고 발전하는데 한 몫을 한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도 펀드를 운용하는 VC들에게 만기를 늘려달라고 하면 되는 것일까? 아니다. 물론, 장기 VC펀드가 더 많이 생기면 신약개발, 자율주행, 제조, 화학, 소·부·장 등 국가적으로 전략적인 분야에서 스타트업들이 더 많이 탄생하고 성공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나라의 지속적 성장과 혁신경제에도 이바지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VC펀드의 운용 기간은 하루 아침에 만기를 늘리겠다고 선언해서 되는 일만은 아니라는 것이다. VC펀드의 현재 운용 기간은 출자자들의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혀 있어, 시장 균형을 이루며 형성된 것이 현재의 7년 만기 펀드인 셈이다. 

이제 우리나라도 스타트업 생태계가 충분히 성숙한 단계에 이르렀음을 감안할 때, 장기 VC 펀드 조성 및 다양한 혁신형 프로젝트에 도전하는 스타트업을 더 많이 육성하기 위한 정책적 마중물로 다음과 같은 아이디어들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첫째, LP들이 출자 시 갖게 되는 VC펀드 지분을 비교적 쉽게 매각 거래할 수 있는 시장을 마련해 줄 필요가 있다. VC펀드에 현재의 7년보다 조금 더 장기간 돈을 묶어 두는 것이 큰 부담이 되지 않도록 말이다. 이는 중고시장과 같은 개념이라고 보면 된다. 가령, LP 지분 세컨더리 마켓 역할을 하는 펀드를 성장금융 혹은 한국벤처투자 등에서 운용하는 것을 생각해 볼 수 있다. LP 지분의 새로운 매수자는 기존 이해관계자와의 이해충돌이 없어야 하므로 정부에서 중립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정책자금 집행 기관을 이용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둘째, 인내자본(patient capital)을 많이 보유하고 장기간 돈을 묶어 둬도 큰 지장이 없는 LP들의 모험자본 시장 참여를 세금혜택 등을 통해 유도하는 것을 고려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국민연금을 비롯한 각종 연기금과 대학발전기금, 패밀리오피스, 국부펀드 등 다양한 출자자들이 모험자본에 더 많이 참여하고 장기간 투자할 수 있는 세금혜택을 주면 된다. 선진국의 경우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제도(CalPERS)는 운용자산의 8%, 싱가포르 국부펀드(GIC)는 13%, 해외 패밀리 오피스는 16%, 예일대학(Yale)은 20%가량을 모험자본 시장에 출자하고 있다. 이를 감안하면 우리나라 국민연금이 4%가량의 운용자산을 모험자본 시장에 출자하는 것은 좀 보수적이다. 우리나라도 인내자본을 보유한 다양한 기관들이 모험자본 시장에 적극 참여한다면 VC펀드가 조금 더 장기화돼도 큰 부담이 되지 않는 환경이 조성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벤처투자에서 운영 중인 팁스(TIPS) 프로그램의 운영사 선정 시 사업 허용 기간(현 6년)도 조금 늘려주면 장기 VC펀드 조성에 도움될 수 있다.  

이렇듯 세계 10위권 경제대국에 걸맞은 스타트업 생태계로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장기 VC펀드가 더 많이 조성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정부도 이를 달성하기 위해 마중물 역할을 할 수 있는 다양한 지원책을 고민할 단계에 왔다. 

글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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