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공감신문] 백용욱 칼럼니스트= 직장생활과 육아를 병행하는 ‘워킹맘’(working mom)의 고충이 우리나라에서 유난히 심하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출산과 양육에서 아이 돌봄에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는 어느 나라나 아빠보다 엄마가 상대적으로 훨씬 많다. 물론, 임신과 모유 수유처럼 엄마만이 할 수 있는 부분이 존재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고 하지만 출산 이후에도 아이들의 병원 내방 동행, 예기치 않은 상황의 응급조치 혹은 영아 관련 심야 수면 방해의 빈도 증가도 엄마들이 경험하는 몫이 절대적으로 많다.

그리고 한국의 경우 아이가 취학연령이 되면 학교 선생님과의 상시 소통, 반 아이 엄마들과의 정보교류 및 원활한 친목 유지, 아이들의 방과 후 활동 조율 및 차편 마련 등 다양한 멀티태스킹(Multitasking)까지도 고스란히 엄마의 몫이다. 그러다 보니 직장에서도 워킹맘들은 출장, 회식, 저녁 혹은 주말의 추가 근무 일정 등을 되도록 회피하게 되고 조직에 대한 헌신과 충성에 대해 오해를 받는다.

그래서 아이들 돌봄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보수적인 남성 위주의 직장문화가 여전히 많은 대한민국에서는 눈치 보며 퇴근해야 하는 워킹맘들의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육아와 직장생활을 병행하는 것을 탐탁지 않게 여기는 시어머니라도 있으면 고부갈등은 덤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대한민국 워킹맘들은 슈퍼우먼이고 애국자임에도 불구하고 가정에서는 아이에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자괴감과 직장에서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 낙인효과 경감에 이바지하고 있지 못하다는 죄책감을 동시에 갖고 살아간다.

그런데 워킹맘의 문제는 여성 개인만의 문제가 아니다. 여러 가지 사회문제와도 직결되며 더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경제 성장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가령, 워킹맘이 겪는 고충은 노동시장에서의 성차별, 경력단절 여성의 증가, 저출산 및 인구 감소 문제, 지속적인 남녀 간 임금·소득 격차, 부부 간 갈등 및 여성의 상대적 지위 약화, 우수 인재의 해외 이탈 등 다양한 사회문제를 파생시킨다.

사실 우리나라의 남녀 임금 격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크게 나와서 우리나라가 OECD에 가입한 1996년 이래로 26년간 줄곧 1위 자리를 내준 적이 없다는 사실도 우리를 씁쓸하게 만든다. 결국 대한민국의 우수한 여성 인적자원의 비효율적 활용은 지속적 경제성장에도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지난 9월에 방한했던 카말라 해리스(Kamala Harris) 미국 부통령이 우리나라의 성평등 정책에 대해 우려를 표시한 것도 근거가 없는 이야기가 아닌 것이다.
 

워킹맘의 문제는 사회문제와도 직결되며 더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경제 성장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필자는 워킹맘들의 고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스타트업의 원격근무제를 더 확산시키면 어떨까 생각한다. / 사진 픽사베이
워킹맘의 문제는 사회문제와도 직결되며 더 나아가서는 한 나라의 경제 성장률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게 된다. 필자는 워킹맘들의 고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스타트업의 원격근무제를 더 확산시키면 어떨까 생각한다. / 사진 픽사베이

 

필자는 이런 다양한 사회문제와 워킹맘들의 고충을 완화할 수 있는 방안으로 스타트업의 유연한 ‘원격근무제’를 더 확산시키면 어떨까 생각한다. 코로나 때문에 많은 직장인이 비대면 원격근무를 경험해 봐서 잘 알겠지만, 정해진 시간에 정해진 장소에서 근무를 해야 한다는 제약조건을 완화해 주는 원격근무제는 출퇴근 시간 절약, 불필요한 잡담 차단, 가사와 업무 간의 충돌 완화 등 많은 장점이 있다. 

물론, 팀워크나 구성원 간 유대관계를 형성하는 데에는 다소 취약점을 보인다. 그래서 컴퓨터 프로그래밍 개발자가 많고 사무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은 스타트업 업계를 중심으로 유연한 원격근무제가 예전부터 많이 존재했고 사회적 거리가 종식된 지금도 많은 곳에서 원격근무제를 유지하고 있다.

한 헤드헌팅 전문기업의 조사에 따르면, 이직을 희망하는 경력자 중에는 예전과 다르게 ‘재택근무가 가능한 기업에 이직하겠다’고 답하는 응답자가 전체의 75%를 차지한다고 한다. 그래서 스타트업뿐만 아니라 네이버, 카카오, 삼성SDS 같은 대형 IT 기업들도 그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사회적 거리가 끝났음에도 원격근무제를 그대로 지속하고 있다.

원격근무제에 관해서는 런던비즈니스스쿨(London Business School)의 엘리엇 셔먼(Eliot Sherman) 교수가 2017년 영국의 어느 바이오 기업에서 수행한 사회적 실험 연구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 실험에서는 모든 회사 구성원들에게 필요한 만큼 자유재량으로 원격근무를 해도 된다고 했는데, 예상과는 달리 남녀 모두 비슷한 비율로 일주일 중 대략 이틀 정도만 원격근무를 하고 나머지 삼일 정도는 출근해 대면 업무를 했다. 업무와 직책별로 편차가 좀 있기는 했지만, 일주일에 5일 내내 출근하는 것도 최적이 아니며 일주일 내내 재택 근무하는 것 또한 최적이 아니라는 것을 시사한다.

무엇보다도, 남녀 모두 업무 생산성이 향상됐음을 보여줬고 그 효과는 워킹맘에게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났다. 아이 돌봄 및 기타 가정의 일과 직장 업무를 병행하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그 대신 워킹맘은 남성 직원이나 아이가 없는 여성 직원에 비해 오전 9시에서 오후 6시 사이의 전통적인 근무시간을 벗어나서 업무를 처리한 경우가 훨씬 많았다고 한다. 그만큼 전통적인 근무조건은 워킹맘에게는 맞지 않는 직장문화라는 것을 보여주며 원격근무제가 워킹맘들에게는 절대적으로 필요했다는 것을 시사한다. 또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워킹맘의 업무 생산성을 향상시켰다는 것을 보여준 사실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본다.

유연한 원격근무제는 어느 정도 잘 갖춰진 사내 IT시스템과 구성원에 대한 신뢰가 전제되고 생산직이나 고객, 환자, 승객 등 고객 응대 업무를 직접 해야 하는 직종에는 부적합할 수 있다. 하지만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인구가 점차 많아지고 IT 시스템이 더 보급되며 사용자가 IT기술에 더 익숙해지면서 자유재량의 원격근무에 대한 수요도 자연히 많아질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정부기관 및 공공기관 등에서 먼저 유연한 원격근무제를 적극 도입해 사회적 분위기 조성에 긍정적 신호를 보내고 워킹맘의 고충도 완화해주면 어떨까 생각한다.

글 백용욱 KAIST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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