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마운 분들의 가르침에 감사할 뿐...

[공감신문=박범준 칼럼니스트] ‘농업, 농촌, 농민’의 길에 뛰어든지 어느덧 30여년이 지나고 있습니다. 돌이켜 보면, 저에게는 무수히 많은 스승님들이 계십니다.

박범준 칼럼니스트

대학때 김형섭 선배님은 “약속은 사람이 사회생활을 하는데 가장 기본이 된다. 약속을 했으면, 목숨을 바쳐서라도 지켜라”라는 가르침을 주셨고, 농민운동을 배우고자 처음 기독교회관을 찾았을 때, 나상기 선배님은 “농민이 잘살기 위해서는, 보다 냉철한 이성으로 치밀하게 연구하고 계획을 세워야, 목표한 성과를 이룰 수가 있다. 어영부영해서는 안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돌아가신 최종진 선배님은 “농민운동이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란다. 뜨거운 가슴으로 농민에 대한 무한한 애정이 있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주의 조계선 선배님은 “농민운동을 하는 사람이 지켜야할 자세의 가장 큰 것은 사심이 없어야 한다. 사심이 생기면 그는 더 이상 세상을 변화시킬 수 없게된다”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김종삼 선배님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서 일을 도모할 때, 포용성과 이해심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는 말씀을 주셨고, 박현채 선생님은 “20대의 정의로움을 결혼하고 나서 30대, 40대에도 유지할 수 있다면 그는 참사람이라 할 수 있다”면서 초발심을 강조하셨습니다. 문익환 선생님은 “통일에는 논리가 없다. 우리민족이 모두가 잘 살기 위해서는 통일이 되야한다. 통일에 이런 저런 논리로 반대하는 사람은 가히 우리민족이라 할 수 없을 것이다”라고 사자후를 토하셨습니다.

이외에도 무수히 많은 분들이 저에게 어떤 때는 격려로, 또 어떤때는 단호한 채찍으로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이 중에서도 가장 큰 가르침을 주신분들은 바로 현장에서 열정적이고 헌신적으로 노력하는 [농민지도자]들이었습니다. 무수히 많은 농민활동가들이 제 곁을 떠나 외롭고 고독하여, 제가 스스로 애써 생을 마감하고자 했을 때, “박범준 위원님. 저희가 열심히 할려고 하는데, 모르는게 너무 많습니다.

도와주십시요“라고 하면서,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저를 다시금 이생에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셨습니다.

과거 제가 참여했던 많은 [농업 농촌 농민]관련 일들을 돌이켜 보니, “과연 누구를 위한 일이었던가?”를 되새기는 외침이었고, 대부분 농민과 직접 관련이 없는 일들이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농민단체의 주의주장에 동조하고, 정치권의 정책 개발에 참여하고, 전문가들의 모임에서 지식자랑을 하고, 궁극적으로 [농민]을 위한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농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주지 못했다는 반성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에게는 스승만 있지는 않습니다. 친구이자, 동지이자 스승인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제가 병들고 아플 때, 저보다도 더 아파하며, 눈물을 흘리고, “한국 농업의 희망찬 미래를 위하여 밤샘 토론을 불사하고, 지혜를 모으고 있는 벗들이 있습니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김병률 박사, 30여년을 의형제로 살아가고 있는 가장 믿음직한 친구이자 동료인 김병문 변호사, 1986년 함평 엄다로 귀농했을 때, 동거동락 했던 벗 이영우, 농협에 있으면서 농협맨이 아닌 진정으로 우리나라 농업 농민의 이익을 생각하고 실천하는 김홍배 단장, 우리가 알지 못하는 정보를 바탕으로 설득력있게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을 제시해 주는 농민신문사의 최상구 부장님, 국회에서 농림수산위 국회의원 보좌관 모임을 통해, 보좌관들이 농업 농촌 농민 문제에 대해서 올바른 인식을 할 수 있도록 만들고, 이후 우리나라 농업의 과학 기술분야에서 한단계 도약의 발판을 마련한 이지 팜의 김태완 대표 등등 일명 [농업발전포럼] 혹은 [사당포럼] 회원들에게도 지면을 통해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아울러 [마을기업], [주민기업] 육성 지원사업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신 강원발전연구원의 지경배 박사에게도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올립니다.

 

'농업 농촌 농민'의 길을 선택하고 나서 무수히 많음 분들의 도움이 있었고, 해서 남들로부터 손가락질을 받지는 않았지만, 저에게도 아픔과 슬픔이 있고 사죄할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저에게 많은 기대를 하셨던, 그리고 그 기대를 저버리자 홧병으로 세상을 버리신 아버님에게 사죄의 글을 올립니다. 한 평생 제가 잘되기만을 바라고, 건강을 돌보지 못하여 항상 노심초사하시는 80순의 어머님에게도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귀하디 귀한 하나 밖에 없는 딸과 혼인을 승낙해 주신, 장인 장모님에게도 죄송스러운 마음을 전합니다.

결혼하고 나서 변변한 수입이 없어도, 묵묵히 저를 믿고 격려하며 뒷바라지를 하다가 몹쓸 병에 걸려 몇 년째 고통 받고 있는 평생의 반려자 한영실에게도 죄송그럽고, 미안하고, 감사하다는 글을 남깁니다. 겨우겨우 입에 풀 칠할 정도의 뒷 바라자와 사고 싶은 것을 충분히 사주지 못했는데도 구김살 없이 국방의 의무도 잘 수행하고, 열심히 살아주고 있는 나의 하나 밖에 없는 아들 박석용에게도 진심으로 미안하다는 말과 함께, 고맙다는 글을 남기고 싶습니다.

 

마지막으로 이 글이 미력하지만 무수히 많은 [살기 좋은 작은나라]를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간절히 바라며, 궁극적으로 [농민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농민세상]을 여는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아울러 좀 더 나아가 [살기 좋은 시군], [살기 좋은 대한민국]을 만드는데 도움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또한 이글은 완성형이 아니라 지금도 진행형으로 [고기를 대신 잡아주기 보다, 고기를 잡는 방법]을 알려주고자 하는 글이며, 무수히 좋은 사례들이 창조적으로 만들어지기를 바랍니다.

글의 내용은 주로 제가 체험한 내용으로 일부는 조금 과한 표현을 쓰기도 했습니다. 다만 보다 나은 길을 제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누군가를 일부러 폄하하거나, 명예를 훼손하고자 하는 목적에서 쓴 것이 아님을 재차 밝혀두고자 합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한 로스토우 박사가 “농업의 지속가능한 성장 발전없이는 국가가 성장발전할 수 없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고, 농업, 농민이 세상의 기본이자 근본이라는, [농자 천하지대본야]라는 조상님들의 지혜로은 말씀을 다시금 확인합니다.

 

강원도 양구에서

농민사랑 박범준

 

박범준씨 이력
▲1981년 서울대 농과대 입학 ▲1986년 전남 함평군 엄다면 영농 ▲1989년 전남 농민문제연구소 연구실장 ▲1989년 전국농민운동연합 전남 정책실장 ▲1990년 전국농민회총연맹 전남 정책실장 ▲1991년 동양식품 상무 ▲1992년 한우리유통 대표 ▲1997년 새정치국민회의 농어민특별위원회 사무국장 ▲1999년 성환식품 전무 ▲2001년 (주)한국농산물류 기획실장 ▲2005년 대통령자문 국가균형발전위 자문위원 ▲2013년 강원도 인재개발원 심의위원 ▲2011년~현재 강원마을기업 및 주민기업 육성 자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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