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래전 딸아이가 대학 입학을...

[피터신 칼럼니스트] 이 글은 오래전 딸아이가 대학 입학을 앞두고 있었던 당시 작성했던 것이다.

토론토에 도착하고 나서 두 달이 채 안된 지난 어느 겨울날. 북극의 블리져드(blizzard)가 너무나 멋지게 몰아치고 있었다.  눈보라 가운데 너무나 아름다운 상아탑의 실루엣을 그윽하게 보여주었던 저 뒷 건물은 나중에 알고 보니 토론토 대학의 Art & Science 학부 건물 이었다. 설립된 지 200년이 넘어가는 이 아름다운 캠퍼스에 눈이 쌓이는 모습은 정말 예뻤다. 난 이곳 넓은 토론토 대학 교정을 돌아보며 그 장중하면서도 발랄한 정취에 취하고 공대 건물에 들러서 곳곳에 나붙어 있던 아카데믹한 향취에 또 설레었었다.

강의실 복도에 붙어 있던 발표 자료들은 학부 고학년, 아님 석사 과정 학생들의 프로젝트 발표 자료 등이었던 것 같은데 그 내용들을 보고 있으니 학창 시절의 설렘이 기분 좋게 밀려 왔었다.

엔지니어링 과 사이언스.. 참 비슷할 것 같지만 많이 다른 학문 분야다. 사이언스의 기본적 토대 위에 공학이라는 학문이 지어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 학문적 내용은 물론, 어프로치 하는 자세, 사람들의 성향, 그리고 사회에서 쓰임새는 확연히 다르다. 사이언스를 추구하는 소위 과학자 집단은 비용에 대한 개념이 희박하다. 비용은 물론, 소요되는 시간에 대한 개념 역시 그리 대단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물론 연구를 위한 비용과 관련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종종 국가나 기업 등 스폰서 그룹과 절충을 시도하기도 하지만, 과학자들은 자신들의 연구 결과가 언제 손익분기점을 넘어 자신이 속한 공동체나 국가에 얼마 많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것인가에 대한 사항은 차후 문제다. 사이언스 입장에서는, 문제를 풀어간다는 것 그 자체, 미지의 영역을 개척해 나간다는 사실 그 자체, 그 깊고도 정교한 지적 호기심을 채워 나간다는 그 사실 자체로 족한 경우가 많은 것이다.

반면에 공학을 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큰 화두는 바로 비용이다. 즉 소요되는 자금, Man-hour, 소요 기간, 재료 등 제반 비용에 대한 최대의 이익 즉 최대한의 비용 효과 및 엔지니어링적 기능 효과를 창출해 내야하는 것이 공학이다. 주로 프로젝트의 형식으로 진행되는 공학의 과제들은 명확한 임무와 소요기간, 인력, 자금 그리고 이러한 엔지니어링 과제를 수행하기 위한 상세한 업무 정의, 업무 할당이 필요하다. 그리고 프로젝트 완성까지 가기 위한 주요 마일스톤 정의 및 리스크 설정, 관리, 감독 등 일반적 관리 사항이 부가되어 복잡하게 진행된다.

그런데 이렇게 매우 다른 종류의 능력을 요구하는 엔지니어링과 사이언스 분야에 둘 다 잘 할 수 있다면 좋지 않을까? 두 분야에서 모두 요구되는 부문을 개발시켜 제대로 된 인재로 양성하면 어떨까? 로지컬하지만 정형화되고 시스템적 접근에 익숙한 엔지니어가 사이언스에서 창조적이고 직관적인 마인드를 가지게 하고, 호기심이 넘치는 창조성과 집중력 그리고 지칠 줄 모르는 탐구심에 불타는 과학자들에게 방법론적 어프로치와 우선순위 관리 그리고 비용 효과적 연구에 대한 마인드라 심어지면 좋지 않을까.

공대생이라고 공업수학 만 풀게 하지 말고 수학자들이 만들어 놓은 재미있고 기발한 수학 장난감 틀 속에서 머리를 식히게도 하고, 물리학 한다고 우주의 기원이나 논하게 하지 말고 전자회로도 들여다보고 분자 화학의 세계로 빠져 허우적거리게도 하고.. 그래서 만들어 진 科 가 있었으니, 토론토 대학의 엔지니어링 사이언스 학부가 되겠다. 엔지니어링 사이언스 과는 토론토 대학의 학부 학과들 중 합격자들의 고등학교 성적이 가장 높은데, 학교 홈 페이지에 따르면 입학생들의 평균 성적이 93점 즉 4점 만점에 3.75 가 된다. 이런 우수한 입학생들을 선발하여 캐나다에서 가장 힘들기로 악명이 높은 커리큘럼을 진행 시키는데, 모든 분야의 기초가 되는 수학을 가장 강도 높게 커리큘럼의 무게 중심 하에 두면서 확률 통계학, 컴퓨터 공학 및 전자공학 등의 엔지니어링 과목과 물리, 화학, 생물학 등의 순수 과학 수업을 병행하여 진행된다. 특히 물리학은 고전 물리학을 비롯, 전자기학, 열역학 및 현대 물리학 등을 섭렵하게 한다. 이렇게 수학을 중심으로 한 초고강도의 첫 학기 커리큘럼으로 인해, 꿈 많은 첫 학기를 지나며 많은 학생들이 토론토 공대의 다른 학과로 전과하거나 아예 다른 학교로 전학하는 경우가 숱하게 발생하게 된다. 아이들이 다 영재 급이다 보니 수업의 질이 보통 도전적이지 않은 모양인데 같은 과목이라도 강의 대상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 교수가 리드하는 수업의 내용이 많이 달라지기 때문에 어느 학과의 학생들이 등록했느냐에 따라 과목 진행의 난이도가 크게 차이가 나게 된다. 9시 부터 5시 까지 꽉 찬 강의 일정에 점심 먹을 시간이나 제대로 있을지.. 강의가 끝나고 다음 강의실을 찾아 마구 뛰어도 앞자리에 앉기가 힘들고 이중에서 특별하게 뛰어나 교수 눈에 들어 교수의 연구 프로젝트라도 끼어야지 그렇지 못하면 교수와 대면 대화는 거의 힘든 모양이다. 하지만 2년을 무사히 잘 넘기며 살아남아 공부에 이력이 붙고 전공을 정해 들어가는 3학년과 4학년 그리고 PEY (통상 Co-Op 이라 불리는 일년 정도 기간의 유급 산학 협동 인턴제)까지 잘 끝내고 졸업하게 되면 세계 유수의 대학원이나, 연구소 혹은 글로벌 기업들에서 러브콜을 받는 천하무적의 졸업생이 되는 거다. 3학년부터 정해지는 전공은 여덟 분야로 나뉘게 되는데 엔지니어링 사이언스 학과는 토론토 공대의 기존 학과들 하고 다른, 에너지 시스템 엔지니어링, 항공우주 엔지니어링, 공업 수학, 통계 및 재무, 바이오 메디컬 엔지니어링, 엔지니어링 물리, 나노 엔지니어링, 인프라스트럭쳐 엔지니어링, 전기전자 및 컴퓨터 엔지니어 등의 자체 전공을 가져 간다

 

딸아이는 미국 아이비리그 대학들에서 고배를 마신 후 토론토 대학 공대의 엔지니어링 사이언스 학부에 합격했는데, 아이에게 온 입학 허가서를 읽어 내려가면서 오히려 내가 가슴이 더 두근거렸다. 사실 MIT 합격자 발표 날, 뭐 그리 실망하지 않는 딸아이의 의연한 모습을 본 이후 난 딸에게 은근히 그리고 지속적으로 토론토 공대의 엔지니어링 사이언스 프로그램의 장점에 대해 이야기 해 왔었는데, 딸이 이젠 학교 기숙사 까지 보러 다닐 정도로 마음을 굳힌 것 같아 내심 기쁘기도 했다. 누굴 닮아 그런지 모르지만, 도전 그 자체를 몹시 즐기는 딸이 자신 보다 훨씬 더 똑똑할지도 모를 다른 많은 학우들과 함께 선의의 경쟁 속에서 밤을 새고, 코피를 쏟아가며 공부해나갈 모습이 벌써부터 그려진다. 그래서 이젠 전혀 다른 감흥을 지닌 채 딸의 모교가 될 학교의 학부형 입장으로 간 캠퍼스엔 3년 전 그날처럼 눈보라가 치고 있었는데, 매우 포근하면서도 정다운 눈보라였다. 녀석이 너무나 좋아해 지금 열심히 배우고 있는 재즈 댄스와 이제 막 시작한 발레도 학업을 진행하면서 계속 했으면 좋겠고, 피아노와 플릇도 밤새 공부하는 와중에 달빛 아래서라도 치고 불고하면 좋겠고, 그렇게 재미있어 하는 요리 경연 프로그램 시청과 만화 영화 보기도 어떻게든 조금 씩 볼 짬이 났으면 좋겠고, 한창 물이 오른 스패니쉬와 중국어도 그쪽 나라에서 온 친구들과 쉽게 사귈 수 있는 좋은 도구 이었으면 좋겠고.. 그런데 진짜 이런 거 저런 거, 다 할 수 있을 여유가 될지.. 아마도 철저한 시간관리 이상의 피나는 노력과 자기 관리 그리고 지혜가 필요할지 모른다.

1923년 노벨 의학상 수상을 필두로 토론토 대학은 노벨상 수상자 9명을 배출했는데 이는 캐나다에서 배출한 18명의 노벨상 수상자의 반을 차지한다. 노벨 의학상 세명, 평화상 두명, 화학상 두명 그리고 물리학상 두명 등 모든 분야에 골고루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하고 있다. 또한 6명의 캐나다 총독과 총리를 배출하였으며 4명의 타국 대통령, 총리를 배출했고 많은 수의 대법관들을 비롯해 왕립 학회 회원의 42%가 토론토 대학 출신들이다. 그런데 토론토 대학 출신을 제외한 캐나다의 다른 9명의 노벨상 수상자 중 8명이 몬트리올의 맥길 대학에서 나왔다. 2009년의 노벨 물리학상 과 의학상 수상을 비롯해, 화학, 물리, 생리학 및 의학에 걸쳐 8명의 노벨상 수상자를 배출한 거다. 노벨상에 관한 한 토론토 대학과 맥길 대학 졸업생 및 교수들이 모두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 이곳에선 누가 노벨상을 수상했다고 해서 사회 전체가 떠들썩하지를 않으니 나 역시 2009년에 물리학과 의학 수상자를 캐나다가 배출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지나 갔었다. 개인들에겐 더 없는 영광이겠지만 범국가적 뉴스거리가 되지는 않는 것이다. 토론토 대학 도서관은 장서가 많기로 유명한데 천오백만권을 보유하여 세계 대학 중 네 번째로 많으며,  토론토 대학교의 종합대학으로서의 학교 순위는 세계 29위로 나와 있다. 캐나다 내에서는 8년 연속 1위를 하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랭킹 수행 기관의 방식을 문제 삼아 토론토대는 이들 기관에 데이타 제공을 거부하기도 했다.

오랜 전통과 함게 자라온 토론토 대학의 나무들도 너무 마음에 드는데, 마침 학교의 모토는 라틴어로 'Velut arbor ævo'.. '세월을 따라 자라나는 나무처럼' 이다. 딸아이가 토론토 대학교의 모토 처럼, 나무 처럼 푸르고 씩씩하고 또 끊임없이 자라나기를 기원해 본다.

 

세월이 많이 흐른 지금, 2016년.. 아이는 제가 일하고 싶어하던 글로벌 컴퓨터 칩 회사 AMD 의 연구소에서 반도체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다.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