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딸아이를 데리고...

[조병수 프리랜서] 아내가 딸아이를 데리고 영국 뉴몰든 동네 근처에 있는 조그만 백화점에 가면 딸아이가 낯 설은 외국사람들을 보며 자꾸 울어대 길래, 한국에서 가져간 처네로 애를 등에 업고 나갔다가 우산을 잊어버리고 온 적이 있었다. 나중에 다시 그곳에 유모차를 끌고 갔을 때 계산대직원이 아내를 기억하고 우산을 돌려주었는데, "우산에 monkey(원숭이)라고 적힌 메모지가 붙어있더라"고 했다.

한번은 연휴기간에 스코틀랜드를 갔다가, 끼니때가 지나도록 인적이나 마을이 안 보이는 길을 달리게 되었다. 때마침 캠핑장 표지가 있길래 들어가서, 관리실의 청년에게 "어린애 분유라도 먹일 수 있도록, 물이라도 끓일 수 있도록 잠깐 머물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그랬더니 대뜸 "안 된다"고 했다. 재차 간청을 하자 그 청년이 안쪽에 있던 자기 어머니를 부르고, 그 여인은 나오자말자 다짜고짜 "당장 나가지 않으먼 경찰을 부르겠다"며 쌍심지를 돋우웠다.

어린아이나, 같이 길을 나선 일행의 가족들을 생각해서 비용을 내더라도 잠깐 쉬면서 요기라도 할 생각이었는데, 말도 제대로 붙이지 못하고 내몰렸다. 마치 서부영화에서 장총을 들고 나와 쏘아대는 장면에서나 봄직한 험악한 몸짓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었다. ‘캠핑장의 기존 고객들을 보호하려는 차원이었을 것이라’고 아무리 좋게 해석하려고 해도, ‘유색인종에 대한 배타심이 강한 시골마을이어서 그랬던 모양이라'는 생각이 앞섰다. 차를 돌려 나오면서도 한참 동안 씁쓸한 기분을 털어낼 수가 없었다.

그로부터도 약 10년의 세월이 흐른 1990년대 중반, 미국 뉴저지주의 크레스킬이라는 주택가에서 맨해튼으로 오가는 버스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출근시간대라도 좀 일렀든지 버스정류장에는 나 혼자 뿐이었는데, 그곳을 지나던 소형트럭에 타고 있던 건장한 젊은이들이 이쪽을 보고 큰 소리로 욕지거리를 내뱉으면서 지나갔다.
한국인 주재원들이나 교포들이 제법 사는 동네이고, ‘조경회사 로고가 적힌 차량이니 한인사회와도 제법 거래관계가 있을 법함에도 왜들 저러나?' 싶었다. 아침 출근길에 느닷없이 그런 봉변을 당하고 나니 마음이 좋을 리가 없었다.

또 다시 10년의 세월이 지난 2000년대 초반의 어느 여름, 주말을 이용하여 가족여행 겸해서 맨해튼에서 자동차로 두 시간 남짓 떨어진 뉴욕 주 중부의 어느 리조트에 투숙한 적이 있다.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외관이 그럴듯해서 제법 기대를 하고 갔었는데, 상당히 큰 규모에 비해서 그렇게 깔끔하진 않은데다가 식사할 곳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그 인근 지역의 조그만 선술집(pub)같은 시골식당을 찾아서 저녁을 먹으러 갔다.

어두워진 산길 가에 제법 운치 있어 보이는 식당 문을 열고 들어서니까, 앞 쪽의 조그만 바(bar)가 가득 찬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자리안내를 받으려고 물어보고 잠깐 기다리는 동안에 그 안의 사람들이 힐끔거리는 것을 느껴졌지만, 애써 모른 체했다.

식당 쪽으로 난 문을 열고 비어있는 자리로 안내를 받아가니까, 그리 크지 않은 실내의 테이블에 앉아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일제히 우리가족에게로 집중되었다. '그들과는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살피는 그 쏴한 느낌은 뭐라고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저 태연한 척하며 식사를 주문하고 나름대로 조그만 시골식당의 조용조용한 분위기를 즐기려고 노력했지만, 마침 우리가 앉은 자리가 조그만 홀의 한 가운데 여서 거의 모든 시선들이 집중됨을 느낄 수 있었다. 부모와 같이 앉아서 식사하던 아이들도 조용조용 이쪽을 살펴보다가 나와 눈길이 마주치기도 했다.

뉴욕 시에서 자동차로 서너 시간 떨어진 곳이었는데, 그곳에는 여러 인종의 사람들이 다녀가지 않은 곳 같았다. 그들만의 리그(league)에 왠 이방인들이 끼어들었으니 신기하지 않을 수 없었으리라. 인종문제를 다룬 영화 속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들이고 분위기였다.

미국 아틀란틱 시티 인근의 아침

 

한참 훗날에, 아프리카계 미국인 소설가이자 민권운동가였던 제임스 볼드윈(James Baldwin)이 스위스의 로이커바드(Leukerbad)를 방문하면서 격은 경험을 기록한 에세이 『낯선 사람(Strange in the Village)』에 대한 강의를 들은 적이 있다. 그 에세이에서 '작가가 미국에서 흑인으로 살면서 느꼈던 감정들을 묘사한 부분들이, 그날 그 식당에서 호기심 가득 찬 뭇시선들을 감당하던 내 기분과 비슷했구나' 라고 느꼈다.

그 글에는 이런 표현들이 있다.
“가능한 모든 증거로 미루어 볼 때 내가 오기 전에 이 조그만 스위스 마을에 발을 들여 놓은 흑인은 전혀 없었다. ···나는 오늘도 내가 여기 처음 도착했던 날과 똑같이 이방인이며, 길을 따라 걸어갈 때면 아이들은 검둥이! 검둥이!하고 소리친다. ···
미국에 있을 때, ···내가 햇볕아래 오분 넘게 앉아 있으면 어떤 대범한 사람이 꼭 나타나서는 마치 감전될까 봐 두려워하듯이 내 머리카락에 손을 대거나, 내 손을 만지면서 색깔이 지워지지 않음에 놀랐다. ···”

타인들의 따가운 시선을 의식하며 느끼던 아픔과 자신의 신체적 특징이 사람들의 구경거리가 되던 흑인들의 마음을 활자로 접하면서, '어느 사회이든 낯선 사람으로 산다는 것이 참으로 힘들겠다' 싶어서 무척 공감이 갔다. 그리고 그날 저녁 시골식당에서 구경거리가 되는 듯한 그 느낌이나, 오래 전 스코틀랜드 길가의 캠핑장에서 쫓겨나던 순간들이 겹쳐 올랐다. 

그런데 경우를 바꾸어서 생각해보면, 처음 외국 땅을 밟았을 때는 나 스스로도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을 보면서 신기해하기도 했었다. 그들이 나를 보면서 어떤 생각들을 하는지는 신경 쓰지도 않은 채로 말이다.

그 볼드윈의 글을 읽으면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은근히 나는 그들과는 다르다고 생각하고 있고, 또 다르게 대접받고 싶은 잠재의식을 가지고 살아왔음'도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여름날 저녁의 그 시골마을 식당에서 물위의 기름처럼 느껴지게 만들던 뭇시선들을, 어지간히 배타적이던 그 스코틀랜드 캠핑장 주인의 편견을, 나 스스로도 은연 중에 우리 주위에 있는 '낯선 사람들'에게 보내고 있지는 않았는지 되돌아보게 되었다.

2017년이 시작되는 요즈음, 지구화시대라는 말에 걸맞게 우리가 사는 이 땅에도 많은 '낯선 사람들'이 보인다. 식당에서 그들이 모여서 식사하는 모습을 우연히 쳐다보다가도, 지난날 남의 나라에서 느끼던 그 느낌들을 떠올리고는 얼른 시선을 거두곤 한다.

예전에는 외국인들이 말을 걸어올까 봐 일부러 시선을 피하거나 짐짓 못 본체하던 때가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의 젊은이들은 식당이나 상점의 계산대에서 거리낌 없이 우리말로 주문을 받고 이야기들을 하는 것을 보면서, ‘참 많이 변했다’고 여겼었다. 그래서, 이제는 이 땅에서 외국인들을 봐도 전처럼 당황하거나 거리를 두는 사람들은 없는 줄 알았다.

그런데 지난 여름 명색이 국제도시라는 송도의 록 페스티벌 공연장 인근에서 인파들이 밀려 나올 때, 외국인들 여럿이 이리저리 모여서 손을 흔들어도 빈 택시들이 외면하고 지나쳐버리는 것을 보면서 매우 안타까워했던 적이 있다.
 
또 얼마 전에는 어느 지방 대학에 근무하는 미국인으로부터 잘 믿겨지지 않는 이야기도 들었다. 캠퍼스 부근 길을 걷던 그 여(女)교수를 자동차가 부딪치고도 그냥 가버린 모양이었다.  주저앉은 채로 "’help me(도와주세요)’를 외쳐도, 길 가던 이들이 힐끔거리며 들여다보고는 그냥 지나쳐버리더라”고 했다. 바로 근처에 대학병원이 있는데도 아무도 도와주려하지 않기에, “상처에서 흐르는 피를 스스로 어찌어찌 지혈하면서 병원으로 갔다”는 것이다.

행인들이 보기에 큰 사고가 아니라고 생각했던지, 아니면 외국어를 두려워해서 가급적 회피하려는 심리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어려움에 처한 ‘낯선 사람’을 외면하는 것에 제법 충격을 받은 모양이었다.
말이 통하지 않으면 몸으로 통하는 만국 공통어, ‘바디랭귀지(body language)’라는 것이 있는데, 아무래도 그날 그곳에는 그럴만한 용기를 지닌 사람이 지나가지 않았던 모양이다.

인구의 이동이 심해진 지구화 시대이다. 지난 날 낯선 땅에서 이방인으로 살아야했던 사람으로서, 각자의 사정에 따라 이 땅에 와있는 '낯선 사람들'이 제대로 된 생활정보나 사회제도의 안내를 받고 있는지 마음이 쓰인다.
애써 이 땅에 유치해놓은 기구나 단체들이 후속 지원법규나 제도의 미비, 생활불편 같은 사소한 부주의들 때문에 일이 그릇되거나, 인구절벽을 걱정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스스로 이 땅을 찾아오거나 ‘코리안 드림’을 이루려고 찾아온 '낯선 사람들'을 자칫 소홀히 대함으로써 영원히 등을 돌리게 만드는 일들은 없었으면 좋겠다.

새해가 밝았다. 각자에게 주어진 환경과 분깃(portion)에 따라 열심히 자신들의 삶을 사는 이 땅의 동시대(同時代) 사람들이 모두 행복하기를 빌어본다.

요세미티 국립공원 남쪽 메리포사 숲속의 사슴(Yosemite-Maliposa Grove of Giant Sequoia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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