웬만한 정책보다 강한 이영자의 영향력

[공감신문] 박진종 기자=10일 오후, 서재에서 여느 일요일처럼 메일로 들어온 자료들을 살피고 있었다. 메일 제목을 읽으며 마우스 스크롤을 드르륵, 드르륵 굴리는데, 거실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오빠, 오빠! 이리 좀 와줘” 출산 예정일은 2주 정도 남았는데, 이미 3.8kg을 넘어버린 아이를 품고 있는 만삭의 아내가 나를 부르는 소리였다.

올 게 왔다. 아이가 드디어 나오는구나.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하지만 나는 의연하게 보이려고 천천히 거실로 향했다.

“무슨 일이야?” 거실로 나가보니, 짐볼 스트레칭을 하며 TV를 시청하는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얼핏 봐도 진통 때문에 나를 찾은 것은 아닌 듯했다.

“이거 봐봐, 정말 맛있어 보이지?” 전날인 9일 저녁 방송됐던 MBC 예능프로그램 ‘전지적 참견 시점’에서 이영자와 그의 매니저들이 명태조림(코다리찜)을 먹고 있었다. “이영자가 나오는 저 식당, 우리 집에서 가까워 우리도 명태조림 먹으러 가자!”

언제 출산을 해도 이상하지 않은 민감한 상황이지만, 오랜만에 아내가 먹고 싶은 음식이라고 하니 먹지 않을 수가 없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알겠어”라고 답한 나는 주섬주섬 외투와 출산 가방(출산 및 입원 준비물이 담긴 가방)을 챙겼다. 이동 중이나, 식사 중에도 진통이 올 수 있어, 바로 병원에 갈 준비를 한 것이다.

그렇게 이영자가 전참시에서 식사를 한 음식점으로 향했다. 도착해 보니 번화가는 아니고, 평범한 곳에 위치한 식당이었다. 이영자가 먹은 명태조림을 먹는다는 생각에 들뜬 만삭 아내와 나는 천천히 식당 입구로 향했다. 그런데 입구에는 재료 소진으로 영업이 마감됐다는 안내문이 붙어있었다. 불과 오후 6시 밖에 되지 않은 시간이었다.

"이게 다 전참시 이영자 때문이야" / 박진종 기자

우리가 찾은 식당의 공식 영업시간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0시까지였다. 하지만 영업시간이 4시간이나 남은 시간에 재료가 소진돼 영업이 끝난 것이다. 영업이 일찌감치 마감된 이유가 이영자 때문인지, 원래 맛집으로 유명해서인지는 확인할 수 없었으나, 마감으로 발길을 돌린 손님은 우리 외에도 4~5팀은 더 됐다.

무거운 몸을 이끌고 어렵게 왔는데, 이영자가 먹은 명태조림을 먹지 못한 아내는 크게 실망했다. 나는 부랴부랴 휴대폰에 있는 포털 앱을 켰다. 이렇게 아내를 실망시킬 수는 없었다. 다행히도 우리가 찾은 식당은 여러 곳에 매장을 두고 있는 프랜차이즈였다.

비록 이영자가 먹은 곳은 아니었지만, 같은 레시피의 명태조림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다른 지점에 전화를 걸었다. 신호음이 한참 울렸지만, 상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전화를 끊어야 하나 생각이 들 때쯤 한 남자가 전화를 받았다. 나는 지금 식사를 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내가 예상한 답은 “네, 지금 오시면 된다”나 “몇 분이세요?”였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지금 사람이 많다. 오셔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다”였다. 순간, 이곳에도 이영자가 다녀갔나 싶었다. 당황스러웠지만, 우선 알겠다고 말한 뒤, 전화를 끊고 아내에게 통화내용을 전했다.

실망한 아내는 집으로 돌아가자고 했다. 큰마음 먹고 나왔는데, 이렇게 돌아갈 수는 없었다. 차를 타고 주변을 돌았다. 2분 거리에 넓은 주차장까지 완비한 명태조림(코다리찜) 전문식당이 눈에 들어왔다. 꿩 대신 닭이라고, 아내에게 저곳에서 식사를 하자고 설득했다.

명태조림 먹으러 왔다가 주차장에 자리가 없어 발길을 돌리는 차량등 / 박진종 기자

썩 내켜 하지는 않았지만, 아내는 수락했고, 3층에 위치한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이번엔 엘리베이터 문에 재료가 소진돼, 재료를 준비한 후 영업을 재개한다는 문구가 붙어있었다.

영업재개 시간은 6시였다. 우리 부부가 방문한 시간이 6시를 막 넘겼을 때였으니, 우리는 먹을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이곳도 대기 손님이 많아 최소 30분 이상을 기다려야 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앉아서 기다릴 자리도 없었다. 이곳에서 신기했던 점은 우리와 함께 이영자가 나온 식당입구에서 발길을 돌렸던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다. 다들 비슷하게 생각하는구나.

만삭 임산부를 식당 입구에 세워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었고, 집으로 돌아가기로 했다. 하지만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했던가. 아내와 나는 마지막으로, 앞서 전화했던 곳에 한 번 더 전화했다. 역시 늦게 받았지만, 남성은 이번엔 사람이 많이 빠졌으니 방문해도 된다는 희소식을 우리 부부에게 전해줬다.

어렵사리 방문한 명태조림 식당(이영자가 먹은 곳과 같은 브랜드)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내와 나는 약 5분 정도 서서 대기한 뒤 자리에 앉았고, 고대하던 명태조림을 먹었다.

한참 명태조림을 먹는데, 주변의 대화가 들리기 시작했다. “이영자가 먹었던 곳은 잡채도 있던데, 여기는 없나봐”, “이영자가 김에 싸먹어야 맛있다고 했어” 아, 역시 다들 이영자가 전참시에서 명태조림을 먹는 걸 봤구나.

이영자가 전참시에서 추천했던 방법 / 박진종 기자

순간 씁쓸한 감정이 들었다. 오늘 이 난리가 다 이영자 때문이었다니. 정부는 자영업자를 지원하고 경제를 부양하기 위해 막대한 예산과 인력을 투입해도 어려움을 겪는데, 이영자의 먹방 한 번이 이같은 상황을 만들다니.

물론, 이영자가 완판 시킨 음식은 이전에도 있었지만, 이번은 좀 달랐다. 최근 번화가나 관광지가 아닌 곳에서 이렇게 붐비는 식당을 본 적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도 이영자가 방문한 식당을 포함한, 같은 메뉴의 식당 여러 곳이 동시에.

지난 4일 통계청에 따르면 작년 3분기 자영업자는 568만7000명으로 전년 동기 대비 1.0% 감소했다.

하지만 자영업자 대출은 늘고 있는 추세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3분기 말 자영업자 대출은 609조2000억원이다. 지난해 535조3000억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13.8%나 늘었다.

자영업 대출 증가와 함께 나타나는 최근 자영업자 감소는 생계형 대출을 받은 자영업자들이 폐업한 영향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대출을 받아 사업체를 차렸지만, 내수 둔화와 시장 포화 등으로 영업에 어려움을 겪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들이 늘었다는 것.

아울러 지난해 임대료 상승, 최저임금 인상, 금리 인상 등도 자영업자의 부담을 키웠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에 정부는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수수료 인하, 자금 지원, 가게 계약 갱신청구권 연장 등 다양한 정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이들 정책이 효과를 거둘지는 지켜볼 일이다.

기해년 새해에는 이영자 먹방 같은 강력한 정책이 나와, 효과를 거두고, 많은 자영업자와 국민들이 밝게 웃기를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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