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 (244건)

-‘사랑의 입맞춤에 /내 몸은 서서히 생기를 띤다 /밥상을 마주하고 /지난 일주일의 밀린 얘기에 / 소근소근 정겨운 /우리의 하룻밤이 너무나 짧다’(박노해 시 중에서) [공감신문] 얼마 전 한 소설을 읽었다. , ,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진 러시아의 대문호 도스토예프스키의 처녀작, 이란 소설이었다. 나는 대학에서 연극영화과를 다녔었다. 연극 수업에서 빠질 수 없는 희곡 작가는 러시아의 안톤 체호프. 그는 희곡 외에도 수많은 소설을 남기기도 했다. 또 그 유명한 ‘메소드 연기’ 역시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의 연기론이다. 나에게는 러시아의 문학이 그리 멀거나 낯설지 않았다. 러시아의 문학은 정말 매력적이다. 한 번도 그 나라에 가본 적이 없지만 문학을 살펴보면 꽤 쓸쓸하다는 느낌을 자주 받았다. 아니 한없이 나약한데, 심지어 작가 스스로도 그러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다른 세계의 작품들보다 더욱 와 닿는 기분이다. 사실적인 러시아의 문학 세계는 작가들의 솔직함 때문에 더욱 발현되는 느낌이랄까.그중에서도 도스토예프스키는 더욱 그렇다. 난 그의 성격을 조금 짐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7-23 10:05

[공감신문] 누군가를 처음 만나게 되면, 흔히 '무슨 일 하세요?'라고 묻곤 한다. 어쩌면 실례가 될 수 있는 질문이라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그래도 그 사람이 하는 일이 그 사람의 성향을 잘 드러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것은 어떤 직업군에 몇 년 이상 종사해본 사람이라면 더욱 그렇게 느낀다. 특정 분야의 사람들끼리 모이면 흔히 '이 바닥'이라는 표현으로 성향을 이야기하곤 하니까. 나는 글을 쓰며 다양한 직업군의 사람들을 만나왔다. 여러 주제에 글을 쓰려면,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의 조언이 필요한 경우가 많다. 나는 나의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최대한 사실에 입각한- 신빙성 있는 정보를 근거로 한 내용을 전달하고자 한다. 때문에, 내 능력 안에서 최대한 그 분야의 전문가들에게 조언을 구하려 한다. 대부분은 정말, '그 바닥' 사람다운 사람들이었다.한번은 내가 어느 특정 분야에 대한 글을 쓰려는데, 그 분야에 내 고등학교 동창이 종사하는 것이 생각났다. 같은 반이었던 그를 우연히 몇 년 만에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나에게 나중에 밥이나 먹자며 명함을 줬던 걸 용케 찾아낸 거다. 그걸 기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7-20 10:13

[공감신문] 얼마 전 한 백화점에서 물의를 일으킨 ‘진상녀’가 화제였다. 결국 그녀는 업무방해죄로 경찰에 불구속 입건되고야 말았다. 그녀 영상이 SNS에서 뜨거웠던 건 ‘갑질의 정도’ 때문만은 아니었다. 댓글에 ‘미친-’이라는 표현이 많았다. 어쩌면 정말 그럴 지도 모른다. ‘아픈 사람은 아닐까?’ ... 그녀의 분노가 드러나는 모습은 과연 기이하게도 보였으니까. 한 기업 총수 일가의 ‘갑질’ 논란은 대단히 충격적이었다. 계급이 없는 사회라고 없다고 뻔뻔히 말할 수 없다. 모순적이다. 갑과 을은 존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평등’을 제창하면서도- 누구나 암암리에 인정하던 사회 속 계급이 적나라하게 드러난 느낌. 그 뿐인가. 그 ‘갑질’의 정도는- ‘을’들은 물론이요, 그걸 누리던 ‘갑’들 역시 놀랄 수위. 이 일가에게서 피해를 당한 이들의 증언 및 녹취 파일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대중들을 놀라게 한 것은 백화점 진상녀와 마찬가지로 ‘분노가 드러나는 양상’이었다.많은 매체에서 심리/정신건강의학 전문가를 모셔두고 ‘분노 조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와 관련된 전문 의학 매체들에서도 이 사건을 주제로 이야기하였다. 한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7-16 09:57

[공감신문] 2002년 여름을 기억한다. 당시 전 세계인들은 그 어떤 드라마보다 더 드라마틱한 광경을 눈으로 실감했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대한민국 대표팀의 16강 진출, 8강 진출, 거기에 4강이라니! 후반에 강한 우리 대표 팀의 특성(?)이, 경기를 더욱 쫄깃하게 했다. 그리고 사실, 난 몇 년 동안 축구에 큰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 월드컵 독일과의 경기를 통해, 2002년 월드컵 이탈리아 전만큼- 아니 그보다 훨씬 더 큰 감격을 받았다.그렇다. 전 세계가 1%의 가능성만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16강 진출? 아니, 독일과의 경기에서 우리가 패배할 확률은 99%일 거라고. 과연 1%의 가능성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에게 이런 기적이 일어날 수 있었을까.나는 주로 혼자 하는 운동을 즐긴다. 수영이나 등산, 자전거도 혼자서 즐기고 웨이트 트레이닝을 할 때도 마찬가지다. 여기에 한번씩, 스스로 약속을 거는 게 있다. 이를 테면 수영을 할 때, ‘마지막 다섯 바퀴는 하얗게 불태우기’ 이런 것이다. 수영 선수가 될 것도 아니고, 누구와 시합을 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마지막에는 내 기록이 어떠하든(아무도 내 기록을 재고 있지 않으며 나 스스로도 그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7-03 10:01

- ‘한 겨울에야 나는 내 안에 여름이 계속 도사리고 있음을 깨달았다.’ - 알베르 까뮈 [공감신문] 오늘, 엄마가 죽었다 아니 어쩌면 어제.... 라고 시작하는 소설이 있다. 아마 꽤 많은 분들이 이 소설의 제목을 맞추셨을지 모른다. 왜냐하면 최근 몇 년 사이 이 작품이 유행(?)을 탔기 때문이다, 심지어 고전인데도. 이건 알베르 까뮈作 의 첫 구절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을 읽은 후, 까뮈의 생애에 대해 궁금해 한다.도대체 어떤 삶을 살다 갔기에 이런 글을 썼을까? 그는 얼마나 불행한 삶을 살았을까? 이런 글을 쓰기까지... 그는 고통을 이기기 위하여 얼 만큼의 술을 마셨을까? 그는 얼마나 가난했을까? 오- 그는 이런 것들을 예술로 승화시켰구나! 아, 이런 보편적인 감상들이 뭉게뭉게... 그러나 나는 을 읽고 이런 한 가지 감상밖에 할 줄 모르는 누군가의 삶이, 까뮈의 삶보다 훨씬 불행하다고 느낀다. 물론 이것은 나의 주관적인 기준에서다. 이런 감정-까뮈는 불행했다-을 느끼는 사람이라면 단언컨대, 글을 써본 적이 없는 사람일 것이다. 물론 누구나 글을 쓰며 살아간다. 요즘은 문장부호 대신 ‘ㅋ’을 붙이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6-22 09:52

[공감신문] 이 글을 읽고 있는 어느 세대의 분들이더라도 아마 전 세계 누구와 견주어도 더 많이 공부하셨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을 줄 아는 당신이 한국인인 확률이 높기 때문이고, 대부분의 한국인들은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시간 공부해왔다. 그러나 노력의 결과치고 조금은 기운이 빠진다고 느끼는 건 나뿐인 가.사실 우리들은 진짜 공부를 해본 적이 별로 없다. 그렇기에 많은 시간을 책상 앞에 앉아 있었으면서도 아는 것이 별로 없다. 활용할 줄을 모른다. 공부하는 방법도 제대로 모른다. 교과 과정의 공부만 해보았기 때문이다. 공부의 주제가 조금만 달라져도 학습법을 알지 못해 쩔쩔맨다. 공부를 잘하는 아이들은 ‘학습 목표’에 주목할 줄 안다. 그것이 시험 문제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걸 알기에. 여기서 더욱 응용된 문제들이 출제되어 진짜 실력자를 가리게 된다. 공부에 대한 것에도 ‘목표’를 알고 가는 이들은 다르다. 내가 이 공부를 해야 할 목표가 있다면 하겠지만, 그것을 모르는 경우가 대부분이다.안하면 안 되니까- 다들 하니까- 이게 트렌드니까- 나만 뒤처지기 싫으니까-라는 생각으로 하면 그 쉬운 문제하나 맞추지 못할 거다. 그럼 그리 오랜 시간을 책상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6-21 10:53

[공감신문] 헬조선 루저 모쏠 흙수저 나레기– 스스로의 삶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통변해주는 듯한 단어들이다. 이런 신조어들의 전체적 이미지는? 비참함이다. 그저 평범하게 살고 싶은데 그 작은 소망이 ‘짓밟히고 있어요’라는 이미지가 강렬하다. 그러나 이전에도 대부분 모든 시간을 친절한 적이 없었더라는 세상의 성격을 보노라면, 차라리 스스로 바뀌는 것이 빠르지 않겠나 싶다. 그런 마음가짐으로 수양하며 내 몫이나 잘 해내자며 살고 있다. 그런데 가끔 타인 때문에 불쾌감을 느낀다. 위로를 원하는 그들 때문에 심하게는 나의 심적 고요가 강제로 추행을 당한다는 기분마저 든다. 누구나 타인과 관계 맺고 상호 간 작용하며 살아간다. 사람 사이에 스트레스가 없을 리 없다. 그러나 내가 말하는 불쾌감은 여기서 비롯된 게 아니다. 어쩌면 내 직업이 ‘작가’이기에 따라 붙는 불편함인지도 모르겠다.작가라는 직업을 택하게 된 몇 가지 이유 중 하나는, 혼자를 만끽해도 된다는 거였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한다. 그래야 타인과 있을 때에도 더 나다울 수 있다고 느낀다. 장시간 사람들과 있고 나면 하루 정도는 혼자 시간을 보내려 한다. 성향이 이렇다보니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6-15 09:52

‘얼음 위에 댓잎 자리 펴서 그대와 내가 얼어 죽더라도 정든 오늘 밤 더디 새소서, 더디 새소서’- 고려가요(작자미상) 중에서.[공감신문] 유치원 때 놀이터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던 놀이기구는 미끄럼틀과 그네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아찔하다. 그네에 올라타 쇠줄을 위로 말아 올리다가 손을 놓으면, 힘센 줄이 풀리면서 나를 태운 그네가 팽글팽글 어지럽게 돌았다. 그때 나는 겨우 십 몇 키로나 나갔을까? 작은 두 손으로 온몸을 그네에 잘 고정하지 않으면 튀어나가기 십상이었을 거다. 그래서 우리들은 놀이터에 엄마들이 없을 때에만 몰래몰래 그렇게 그네를 돌려가며 놀았다.때로는 그네에 올라서서 춘향이처럼 아주 머어얼리 공중으로 솟구쳐 오르기도 했었다. 그네가 뒤로 빠졌을 때 무릎을 힘껏 접었다 펴면서 화알짝 공중으로 독수리처럼 가슴을 열었다. 아파트 건물에 가려져서 내다볼 것은 없었더라도 해방감이 무지 좋았다. 생각해보면 그 보수적인 조선시대에, 치마 입은 아낙네들이 이런 그네를 타고 놀았다니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선 여인들은 담 밖을 내다보려 널을 뛰었다.양기가 가장 왕성한 날이라는 단오엔, 체력을 보충하는 음식을 먹었다. 여성들은 창포물에 머리를 감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6-11 11:01

'로켓 여름', 따뜻한 사막의 공기 때문에 창문에 낀 성에의 모양이 변하고 예술작품이 지워졌다. 스키와 썰매는 갑자기 쓸모 없는 물건이 되어버렸다. 레이 브래드버리 소설중에서[공감신문] 나는 이태원동 경리단길에 산다. 스무 살에 자취를 시작하여 줄곧 강남에 있다가 2013년에 왔으니 햇수로 벌써 5년째다. 그 때 경리단길은 지금처럼 ‘주말스럽지’ 않았었다. 누가 어디사냐는 질문에 대답하면, 요즘은 ‘오, 핫한데 사시네요.’라는 반응이 심심치 않게 나온다. 특히나 루프탑 플레이스(rooftop place)가 한창 떠오르던 작년 재작년엔 더욱 그랬었다. 그들은 내가 그런 분위기가 좋아 여기 사는 거라 생각할 수 있다. 그냥 ‘아, 네’하지만- 사실, 산책을 좋아해서 자주 밖에 나간다. 이 산동네에서 보이는 전부가 루프탑이다. 굳이 경리단길 루프탑 바에서 청담동스러운 가격의 칵테일을 사 마실 필요가 없다. 그냥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 있는 단골 가게에 간다.출퇴근을 하지 않으니 주말-평일 개념이 없다. 느즈막히 일어나 편의점 도시락이나 사 먹으려고 나갔을 때, 동네에 사람이 많으면 주말임을 안다. 셀카봉을 든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6-07 10:08

[공감신문] 어떤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느냐는 대단히 중요한 질문이다. 해가 뜨고 해가 지고- 모두가 회복을 위하여 밤의 시간을 보낸다. 이렇게 시간은 매순간 왔다가, 흩어진다. 내가 지금을 어떻게 살고 있는 가- 하는 문제는 곧 나의 삶을 말해준다. 내가 무엇을 욕망하고 또 따르고 실행하는 지 보면 알 수 있다. 말로만 행하는 것은 지저귀는 것, 그 이상 이하도 아니다. 그러니 우리는 매순간 그 시간의 끝에서 물어보아야 한다.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데 이 질문은 중요하지만 대단한 것은 아니다. 엄청난 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게 아니다. 어쩌면 인생에서 ‘계획’을 세운다는 것 자체가 오만이라 생각된다. 인생을 어떻게 감히, 계획대로 살 수 있을까? 그저, 목표하고 소망할 뿐.인생은 프로젝트처럼 이렇게 하겠다, 고 시작하는 것도 아니다. 지금도 저물어가는 시간의 끝을 잡고 물어보자는 거다. 내가 건강해지기로 결심했다면 케이크 대신 과일을 먹겠다고 하는 것- 그건 과일의 효능에 대한 믿음이 있는 것이고, 케이크와 과일의 차이를 인정하는 거다. 그런 물음을 지속적으로 할 뿐이다. 다만, 우리는 이런 질문을 할 여유를 가지지 못하고 살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6-04 10:12

‘알지 못하였다. 장자가 꿈에 나비가 된 것인가, 나비가 꿈에 장자가 된 것인가?’– (장자중 ‘호접지몽’에서) ※ 이 글은 영화(2018)의 줄거리를 인용,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공감신문] 어떤 학자들은 이렇게 주장한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가장 수려한 글솜씨를 가졌다고 이름난 두 인물 맹자와 장자가, ‘동일 인물’이라고. 그들은 매우 상반된 성격의 철학을 펼쳤다. 두 사람의 출생-사망년도가 3년 차이로 비슷하게 추정되는데, 이들이 서로의 존재를 몰랐을 리가 없다. 그러나 그들은 서로에 대한 언급이 단 한번도 없었다는 점에서 그런 ‘환상적인’ 주장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정말 둘은 같은 사람이었을까? 뭐, 진실은 아무도 모르지. 그런데 얼마 전 영화을 보며, 혹 저들이 한 사람이었다면- 마치 벤(스티븐연 분) 같은 성격이지 않았을까 싶었다. 아니, 벤- 이렇게 동양적인 오빠라니! ‘개츠비’들에 대한 나의 열등감? 그런 것이 나에게 존재하는 지 몰랐다. 종수(유아인 분)도 처음엔 몰랐겠지. 하지만 보는 내내 내 속에 있던 구름들이 스멀스멀- 거대하게 뭉쳐져 얼어붙었고 아랫배가 막 아플 정도더라.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5-23 10:14

[공감신문]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아직 많은 단어를 알지 못하는 아이들에게, ‘착하다’는세상 모든 긍정적인 것들의 총체다. 청소를 잘하면, 깔끔하구나- 해야 되는데 착하다고 한다. 친척을 만나 인사를 잘하면, 예의가 바르구나- 해야 되는데 또 착하단다. 어른이 된 우린, 이제 안다. 청소를 잘하고 인사성이 좋다고 착한 사람인가? 상관 없잖아. 그러니 아이들에게 착하다는 건, 다- 부모들 입장에서 하는 말이다. 부모 입장에서 좋은 것이다. 깔끔하고, 예의 바르고, 슬기롭고, 친절하고, 공부도 잘 하고… 이 모든 것이 ‘착하다’다. 착한 어린이로 인정받기 위하여 부단한 노력을 한다. 형보다, 동생보다, 친구보다 착하기 위해서 자제력을 훈련한다. 거기서부터 사회에 적응하는 우리의 시민성이 나온다. 사회에서 이러한 착함을 아마도, ‘성실’이라 할 지도.부모는 성실해지기 위하여 아이들에게 착하라고 한다. 아이들이 착해야 부모가 성실해지기 쉽기 때문이다. 우린 더불어 살아야 하니, 필수적인 덕목이다. 그런데 중요한 건- 부모가 성실하기 위하여 양육에 적극적이지 못할 수 있다. 아마 대부분의 부모님이 그랬을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5-17 18:07

[공감신문] 아프면 서럽다. 안 그래도 퍽퍽한 삶에 서리가 낀다. 그래서 어떤 측면으로는 괜찮아질 수도 있다. 일말의 동정심으로- 치열했던 스스로를 바라보는 계기이기도 하며, 또 누군가의 챙김을 받는 이벤트가 생기기도 하니까. 아, 나는 사랑받는 사람이구나- 새삼 느낀다. 물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땐 서리가 차가워서 퍽퍽한 감자를 얼어붙게 만든다. 소중한 사람에게- ‘아플 땐 잘 먹어야 한다’며 영양이 듬뿍 담긴 죽을 사다 주곤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약을 복용해야 하는 경우라면 식사가 동반되어야 하지만, 진짜 건강을 위해선 ‘좀 안 먹는 게’ 약일지도. 실제로 야생 동물들은 몸이 아프면 단식에 들어간다. 스스로 치료해야 하는 그들은, 이렇게 해서 치유력을 끌어올린다.동물들과 비슷한 것을 먹으며 진화해 온 인간이라고 많이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과거 인류는 사냥에 실패하면 굶어야 했다. 음식을 저장하는 기술을 터득했지만, 지금의 수준과 비교할 수 없다. 사실 우린 꽤 오랜 시간, 단식할 수 있는 신체를 가졌는 지도 모른다. 예수와 석가모니 모두 꽤 오랜 기간을 단식했었다. 그런데 왜 지금 우리는, 한 끼라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5-16 10:09

‘너의 벽들이, 가슴에 창문이 달린 너의 벽들이 / 너의 부재를 알리는 듯 낮게낮게 신음할거야.’(채호기 시중에서) [공감신문] 길진 않지만 아주 짧게 몇 분이라도 매일 명상을 하고 있다. 처음에는 스트레스 완화에 도움이 될까 싶어서 시작했었다. 사실 스트레스 완화-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다. 글을 쓸 때 나는, 예민한 상태가 편하기 때문에 한없이 날카로움의 극치를 달리려 한다. 타고나길 예민한 성격인데 여기에 커피를 더욱 마셔 말초를 자극시키기도 했었다. 그러다가 작업이 끝나면 또 보란듯이 풀어지길 원했으니! 내 몸은 스위치가 아닌데, 그런 허튼 꿈을 꾸었던 거다. 내 마음을 다스리겠다고? 지나친 욕심이었다. 내 몸, 내 마음- 둘 다 컨트롤 할 수 있는 것이 아님을 이제는 안다. 다만- 내가 내 상태를 알아차리는 것만으로도 큰 도움이 된다. 원래 잘나가는 CEO들은 인재를 적절히 잘 뽑아서 그 사람의 사용처에 맞게 배치한다. 나 스스로도 그렇게 다스려가야 하는 것이다. 할 수 있는 것은 그것 뿐이다. 지금은 어떠한 모습의 ‘나’인지, 바라보는 거다.나는 명상을 하며 나의 마음을 들여다보기 시작했고, 그러다 보니 스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5-11 13:50

[공감신문] 프랑스의 대문호 샤를 보들레르의 세계관에서, 중요히 다뤄지는 것 중 하나는 매춘이다.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할 수 있는 과 을 본다면, 그가 왜 ‘매춘’에 대하여 많은 묘사를 했었는지 알 수 있다. 그의 세계관을 통찰했던 독일의 철학자 발터 벤야민은 보들레르가 파리의 ‘산책자(flâneur)’였다고 말한다. 그 안에 속했던 인물이 아니었으므로, 비교적 중립적인 관찰이 가능했었다는 것이다. 그건 보들레르가 겨우 21살의 나이에 아버지의 모든 유산을 탕진했던 과거가 한 몫 하지 않았을까. 사실 보들레르가 ‘악의 꽃’이라 일컫던 ‘돈’은 그에게 모든 향락을 제공하던 수단이었다. 권태로움을 앗아가 줄 수 있던 유일한 지우개. 그런 부류의 사람이던 보들레르는, 겨우 21살에 더 이상 그것들을 누릴 수 없게 되어버린 것이다. 그저 무심하고 또 부러운 듯- 향수에 젖어 도시를 바라보는 산책자가 된 보들레르. 그는 우울한 파리, 병폐로 짙은 도시를 살폈다. 그가 보기에 ‘부르주아’들은 대부분 권태로움을 느끼며, 이 도시에서 권태로움에서 도피하기 위해선 ‘악의 꽃’(돈)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권태야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5-09 09:53

‘진눈깨비가 비인지 눈인지 판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다.’-김연수 소설 중에서 [공감신문] 아무래도 남자들끼리 만나면 빠지지 않는 것이 단연 ‘여자’얘기. 이건 사실 여자들도 마찬가지다. 여자들끼리 만나 이런저런 수다를 떨다 보면 어느새 남자 얘길 하고 있다. 아마도 수다에서 가장 긴 시간을 차지할 것이다. 온갖 남자가 다 등장한다. 최근 알게 된 남자 얘기, 그에 대한 느낌을 설명 혹은 비교하려다 나오는 예전 남자 얘기, 그냥 사람 남자얘기, 아는 오빠 얘기… 그 이야기의 온도가 항상 뜨거운 건 아니다. 마치 재미있는 드라마를 이야기하듯 한다. ‘수다’라는 샐러드에 ‘이성 얘기’를 드레싱처럼 버무리는 것이다. 하긴- 샐러드는 드레싱 맛으로 먹는 거지. 그러나 어떨 때엔 정말 그 온도가 짙어 지기도 한다. 그건 TV드라마가 아닌, 정말 자기 이야기를 꺼낼 때다.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이 확실한- 나의 드라마. 이 드라마, 저 드라마가 아닌 한 명의 남자 주인공이 존재한다. 여자 주인공은 드라마 속을 빠져나와 친구들을 만나서, 이전 회차 줄거리를 말하고는 남자 주인공의 심리를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5-01 09:52

[공감신문] 어제는 할머니가 돌아가신 지 1년 되는 기일이었다. 할머니가 어디선가 나의 하루를 지켜보고 계실 것 같아 왠지 모르게 서늘하고 따뜻하고 또 쭈뼛거리게 되는 기분이었다. 난 스무 살 때까지 할머니와 함께 살다가, 이후에 독립했다. 10년이 지난 후의 내 생활을, 할머닌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고 계실까.이런 사뭇 감상적인 분위기를 타던 중에, 어쩌면 할머니는 ‘지금 쟤가 무얼하고 있는 거지?’하고 생각하시진 않을까 싶었다. 얼굴에 거즈나 호일로 된 팩을 붙인다거나, 할머니는 이전에 보지 못했을 아이코스 같은 걸 피운다던가. ‘신소재’로 만든 옷을 입고 자거나 그런 마스크를 착용하기도 한다. 할머니는 일평생 부엌에서 본적 없는 도구로 요리를 한다. 이전에 그녀가 본적 없고, 익숙지 않던 물건들이 거의 하루 종일 나를 감싸고 있었다. 요즘 구매자들은 ‘똑똑’해야 한다. 돈만 많다고 해서 좋은 물건을 고를 수 있는 게 아니다. 돈이 많으면 선택지가 넓어진다. 하지만 똑똑하면, 더 좋은 물건을 살 수 있게 된다. 그리고 그것은 단순히 ‘입소문’에 빠르다는 게 아니다. 얼리어답터적 기질이 뛰어나다는 얘기다.내가 중, 고등학교 때엔 휴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4-24 17:06

'휴식이란 하지 않으면 안 된다'가 사라져버린 상태다. 휴식이란 다름아닌 행위의 부재를 의미한다. / 라즈니쉬 [공감신문] 작년엔 네번의 해외여행과 두번의 국내여행을 했었다. 그렇게 다녀오고나서 든 생각은, 올해엔 적당히 가겠다는 것. 한 두 번의 긴 여행이면 족할 것 같다. 그 여행 중 하나는 관광이 목적이어야 하고, 또 하나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생경한 경험이길 바란다.우리들에게 ‘여행’과 ‘관광’은 큰 차이가 있는 것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여행 둘째 날 시내관광을 한다’라고도 말하며 근소한 구별을 두지만 말이다. 또 ‘여행’이란 단어를 들었을 때에 곧바로 ‘휴식’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아니 연상되어진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행은 관광화 되었으며, 그것은 아마도 휴식과 거리가 멀지 모른다. 나의 작년 여행 중 ‘휴식’이라 부를 만 한 건 딱 한 번이었다. 초가을 즈음이었다. 당시 나는 거마비를 받고 제주에서 열리는 어느 론칭 행사에 참석하기로 되어있었다. 행사 일정은 금요일 저녁이었는데, 화요일 오전 제주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물론, 혼자 였다. 제주에 아빠가 작업실로 쓰시는 공간이 있어서 거기에 짐을 풀었다.금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4-18 10:09

[공감신문] 산책은 나에게 굉장한 기쁨 중 하나다. 특히 혼자서만 할 때에 그러하다. 나는 침묵할 수 있는 시간을 얻으며, 세상 것들에 친절하지 않아도 될- 혹은 친절해도 될 기회를 갖는다. 주관적으로 내가 집중할 수 있는 것을 찾는다. 밤, 아니 잘 시간이 되면 침대에 누워 명상을 한다. 주로 호흡 명상보다는 바디스캔을 하면 금방 잠에 빠질 수 있다. 명상 프로그램에서 시키는 대로, 깊게 호흡한 후 오늘 날 위해 고생한 발에게 조용히 맘 속으로 미소를 건네어본다. 금세 나는 마치 따뜻한 물 위에 떠 있는 듯 편안한 기분을 느낄 수 있다. 어릴 때부터 걷는 것을 무지 좋아했었다. 난 의정부에서 고등학교를 다녔었는데, 의정부는 서울보다 지하철 역 구간 거리가 긴 편이다. 우리 집에서 내가 다니던 고등학교까지 4개의 역이었는데, 때로는 학교가 끝나면 걸어서 집에 갔었다. 당시 난 또래들보다 시간 많은 고딩이긴 했었다. 인문계고를 다녔지만 예체능을 택해서 조금 자유로웠다. 레슨 간다고 거짓말을 하고 하염없이 걷곤 했었다. 그때 걸으며 했던 것들이 망상이었을까? 뭐라고 불러도 좋다. 그러나 마음 속 만보계에 대단한 숫자로 기록되었을 것들이, 아직도 나에게 커다란 마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4-16 10:25

[공감신문]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얼만큼 부자인지 모르겠으나(혹은 무감각하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5만달러’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일 것이다. 지금 연봉에서 추가로 5만 달러, 그러니까 5000만원 좀 넘게 더 생긴다면? 질문하여 뭘 하나? 진짜 좋을 것이다. 난 경제전문가가 아니기에 그런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나의 의견을, 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장르부터 말하자면 연애와 사랑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관계다. 캐나다 토론토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바로, 일주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연봉에서 5만 달러를 추가로 버는 것과 같은 행복을 얻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행복감은 애정이 있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포옹과 눈맞춤, 키스 등 사랑의 기운이 가득한 행위 가운데서 이런 행복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반면 너무 잦은 성관계는 오히려 행복감을 감소시킨다고 했다. 하긴, 돈도 너무 많은 것보다 적당히 풍족한 게 좋지 아니한가.그런데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것도 어딘가에서 발표한 연구

지해수 칼럼 | 지해수 칼럼 | 2018-04-11 10: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