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웅이 되고 싶던 지난날의 당신을 추억하며

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지해수칼럼] 그저께 영화 <택시 드라이버(Taxi Driver, 1976)>를 보았다. 이 고전을 이제야 봤다. 그리고 이 영화를 본 여느 관객들과 같이 우울해졌다. 내가 이전에 보았던 많은 영화의 장면들이 스쳐 지나갔다. 

아마도 이 명작은 수많은 영화들이 탄생하는 데 영감을 주었을 것이다. 아예 오마주를 삼은 것이 아니더라도 마치 날씨에 영향을 받는 우리들처럼, 그렇게 가슴속에 남아서. 

특히나 꿈이 원대했던 남자들의 경우, 더욱 그러했을 것이다. 영웅을 꿈꿨던, 악당을 물리치고 싶던 어린 시절의 당신, 그리고 현실의 당신. 그 간극을 누구나 가지고 있기에 우린 이 영화를 아직도 아련하게 느끼는 게 아닌가. 

배우를 꿈꿨던 시절이 있었다. 대학도 연극영화과엘 갔었다. 사회에 나온 후, 어느 좋은 매니지먼트 회사와 전속 이야기가 오고 가게 됐었다. 대표님과 두 번째쯤 미팅하는 자리였다. 대표님은 나에게 왜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으셨다. 당시 나는 ‘연기가 좋다’, ‘내 평생 직업이라 생각한다’는 식상한 말을 꺼내기 싫었다. 당시에 그건 너무도 당연했으니까. 그러니까 그렇게 비가 오나 눈이 오나 프로필을 들고 일산, 상암동, 신사동, 홍대로 뛰어다닌 게 아니었겠나. 이미 많은 오디션에서 떨어져 본 나는, 에라 모르겠다며 가슴 깊이 숨겨있던 나의 속내를 꺼내놓았다. 

“저는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고 싶어요.”
그러자 그 대답을 들은 대표님이 더 구체적으로 말해보라고 하셨다.

“제가 아름다운 세상에 살고 싶기 때문이에요. 좋은 집에 살고 싶은 것처럼 상당히 이기적인 이유예요. 제가 유명한 사람이 되면 그런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이 될 만한 영향력이 생기니까요. 근데 이제 와서 공부하긴 글렀고요. 그럴만한 파장이 큰 일 중에 제가 즐기면서 열심히 할 수 있는 게 연기 같아요.”
그리고 그에게 정말 듣기 흡족한 대답이 들려왔다. 

“그러게요, 해수 씨처럼 생각하는 사람이 많으면 세상이 좀 더 좋아졌을 텐데.”
그리고 우리는 아름다운 세상을 구현해내기 위한 개인과 사회의 노력에 대해 좀 더 이야길 나누었던 것 같다. 많은 배우들의 성장을 도와왔으며, 또 한편으로는 ‘사업가’라는 직함을 가진 바빠 보이는 그 역시, 가슴속엔 아름답고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불씨가 있었던 거다. 
물론 난 지금 연기를 하지 않는다. 배우가 됐다고 해서 유명해졌으리라는 보장도 없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빌빌대고 있었을지도 모르지. 난 지금 글을 써서 매체에 내고, 가끔 중/고등학교에 가서 적게는 20명, 많게는 전교생 앞에서 강연을 한다. 아마도 아름다운 세상 만드는 데에 이바지할 수 있는 사람으로, 한 발짝 씩 가까워지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아, 그러기 위해서 정말이지 내 주변에 사람을 잘 두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름다운 세상이 무엇인지 그 개념을 잘 잡고, 명확하게 보도록 나의 중심을 잘 잡아두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또 그렇지 않을 경우 어떤 무서운 일이 벌어질지 깨닫고 있다. 이건 아마도 내가 글을 더욱 열심히, 활발히 쓸 것이기에 더욱 그러할 거다. 

어린 시절 우린 누구나 영웅을 꿈꾼다. 아니, 어린 시절엔 당연했고 커서도 그러하다. ‘용감한 시민상’이 저명한 이유도 그러한 맥락이 아니겠는가? 우리에게 그런 ‘영웅심리’가 분명 존재한다는 거다. 나 살기 바쁘다지만, 우린 여전히 히어로가 되어 이 사회에 이바지하길 꿈꾼다. 그건 우리가 먹고 사는 것이 충족이 되면 당연스레 생기는 것이다. 
매슬로우라는 학자는 우리 인간에게는 5가지의 욕구 단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피라미드 형태의 이 욕구 단계는 맨 하위 단계의 것부터 출발하며, 하위 단계가 충족이 되면 상위 단계의 것을 원하게 되어 있다고 한다. 
위의 그림에서 보다시피, 하위 1/2단계는 의식주와 관련된 것이다. 3단계는 ‘관계’에 관한 욕구다. 사회적 동물인 우리 인간들이 어느 집단에서 소속되어 귀속감, 그리고 사랑을 느끼고 싶어 한다는 거다. 그리고 그 다음이 바로 4단계인 존경의 욕구. 여기서부터 우리는 남들, 즉 그 사회 안에서 ‘인정’과 ‘존경’을 받고 싶어 한다. 선망의 대상이 되길 원한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아니 어떻게 하면 가장 쉽나? 사회 구성원들이 좋아하는 것을 많이 가져다준다던지, 그들이 싫어하는 것을 없애주면 된다. 그러면 그들이 박수를 쳐줄 것이다. 이를 테면 비를 원하면 비를 내려주고, 옆 부족이 괴롭히면 그 부족 놈들을 박살내면 되는 거다. 오, 히어로(hero)! 영웅이 탄생하는 거다. 그는 존경받을 수밖에 없다. 우리 사회는 살기 좋은 사회가 된다. 아름다운 세상이 만들어지는 거다, 평화롭기에. 
그러나 우리의 욕구는 여기가 끝이 아니다. 마지막 5단계, 자아실현의 욕구가 남아있다. 말 그대로 내가 원하는 일을 통하여 자아 성취감을 갖는 그러한 욕구가 최종적이다.  
맙소사. 이게 문제다. 이래서 우리가 우울한 거다. 이래서 택시 드라이버였던 트래비스(로버트 드니로 분)의 마지막 표정이 우리 마음을 저릿하게 만들었던 거다. 

우리 모두 1/2단계는 충족이 된 상태로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스마트폰이나 PC등으로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이라면. 
그렇다면 당신 역시 사회에 귀속되고자 하며 존경받고 싶을 거다. 3/4단계의 욕구가 발현되고 있는 것이다. 그렇기에 나, 타인, 우리, 사회를 알기 위하여 이런 얄팍한 글도 읽고, 유행하는 옷을 걸치며, SNS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3단계)... 또 가슴 속에는 늘 ‘정의’에 대한 신념이 있을 거다. 물론 가끔 피곤하고 먹고 사는 게 바쁘고, PC방에서 담배 피는 중딩들의 키가 생각보다 너무 커서 모른 척 했을 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그러면서도 정의롭지 않은 뉴스를 보며 욕을하고, 마블 시리즈가 개봉할 때마다 다 가서 보고 있을 거다! 그게 대리 만족을 시켜주니까. 그렇다. 3/4단계의 욕구는 우리를 히어로(hero)가 되고 싶게 한다. 문제는 5단계인 자아실현이 되지 못한 채 그럴 경우가 많다는 거다. 마치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고자 했던 택시 드라이버처럼. 

택시 기사인 그는 쓰레기 같은 뉴욕을 깨끗이 청소하고 싶었다. 아직 영화를 못 본이들을 위해 스포일러 하지는 않겠다, 꼭 보시라. 다만 여기서 말하는 ‘쓰레기’란 쓰레기 같은 인간들이 대부분임을 말해두겠다. 그러나 그의 노력들은 거의 대부분 좌절되고 만다. 그는 회의감을 느낀다. 어느 날 자신의 택시 기사 선배인 비자트에게 자신의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 그러자 비자트는 많이 듣지도 않고 뭔지 알겠다는 듯, 이렇게 말한다.

 “A man takes a job, you know and that job becomes what he is.....”
 (한 인간이 어떤 일을 하게 되면, 그 직업이 그의 모습이 되는 거야.)

그랬다. 그는 정치인도 아니고 택시 기사였다. 그는 누구보다도 세상을 아름답게 만들려던 의지가 투철했으나 그가 할 수 있는 일들은 상당히 한정적이었다. 그게 그의 모습이었다. 사회의 소시민. 

우리 주변에 자아실현의 5단계까지 다 이룬 후, 이전에 가지고 있던 욕구들을 보다 적극적으로 실현하는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사진작가인 나의 아버지도 돈 버는 일 보다는, 독거노인 무료 영장 사진 찍어드리기나 소방관 돕기 등 봉사로 사진을 활동을 더 많이 하신다. 요즘 연예인들의 유기견 보호 활동, 팬들과 함께하는 연탄 나눔 배달 봉사 등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물론 좋은 이미지를 위해서도 있겠지만 원래부터 남을 돕는 일에 앞장섰던 사람들도 꽤 많다. 이런 이들은 무척 행복할 것이다. 자아실현은 물론이요,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데 이바지하고 있으니. 

우리 모두가 영웅으로 불릴 수는 없다. 하지만 어느 곳에서, 어떠한 장면에서 그렇게 될 수는 있을 것이다. 그것을 ‘겨우’라고 생각하지 마시길. 왜냐하면 그런 당신의 활동은 주변을 환기시킬 것이다. 

씁쓸한 부분이 있다는 거 안다. 당신이 생각하는 이상과, 당신이 해낼 수 있는 현실과의 괴리감이 너무 크다는 것! 하지만 ‘나’아닌 ‘우리’가 된다면 그건 가능해질지도 모른다. 아니, 세상에 그런 소리라도 꺼내볼 수 있는 거니까. 심지어 그런 장면들이 꽤 있었노라 역사가 증명해주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가능해질 수 있는 건, 저 이의 마음속에도 분명 그러한 영웅심리가 존재할 거라는 명백한 사실이다. 가만 보면 인간들은 참, 뜨거운 가슴을 숨기려고 그토록 냉철해보이려 한단 말이지! 사랑스럽게도 말이야. 

(추신 : 일부러 그런 건 아닌데 ‘영웅’에 관한 글을 쓴 시점에 하필 삼일절이군요. 삼일운동은 33인의 영웅이 아닌, 3천만이 모두가 영웅이었던, 뜨거운 날이었으리라 감히 예상해봅니다. 그런 뜨거움으로, 이제야 따뜻한 날들을, 덕분에 비로소 보내는 우리들이... 내일 하루는 그 뜨거움을 꺼내어 봤으면 합니다. 대한독립만세! 영웅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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