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해수 칼럼니스트

[공감신문 지해수칼럼] 상당히 오랜만에 사랑도 아니고 연애 칼럼이다. 제목 그대로다. 오늘은 정말 왜 이런 걸 굳이 따지는 지 싶을 거다. 이걸 주제로 글을 꼭 써야했었나 싶겠지만, 오히려 이 세상엔 중요하고 거창한 일에 대해 떠드는 사람은 많아도 정말 하찮고 쓰잘데기 없는 건 아무나 안 가르쳐준다는 놀라운 사실. 그래서 내가 그 희귀한 팁을 알려드리려 한다. 

남녀 관계, 특히나 ‘썸탄다’는 단계에서는 문자메시지 하나하나에 크게 반응하게 되고 많은 의미를 부여하기 마련이다. 이 문자를 보낸 상대방의 의중이 무엇일까 생각하고 누가 먼저 마음을 여는 지 안 여는 지 은근한 기 싸움이 시작되는 것이다. 누군가는 이 단계가 가장 즐겁고 짜릿하다고들 말하지. 왜냐하면 언제든 놓쳐버릴 수도 있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그리고 또, 모호하기 때문이다. ‘나’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는지 마구 물어볼 수 없으니까. 

(영화 <너의 이름은> 중에서)

사랑을 하면 시인이 된다지, 여자들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되면 ‘시나리오 작가’가 된다. 머릿  속에서 별의별 시나리오가 다 튀어 나온다. 어릴 적 보았던 예쁜 동화들부터 치정극, 로맨틱 코미디 영화까지. 물론 시도 쓴다. 거기에 ‘함축적’의미를 파악하려고 든다. ‘그’가 그 단어를 불러주기 전에는 그 단어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그가 그 단어는 그녀에게 로와 ‘시어’가 된다……. (이 구절에서 남자들이 얼마나 무서워할지, 표정이 상상이 된다)
나는 그게 대부분 말 그대로이며, 별 뜻이 없음을 알기 때문에 최대한 가볍게 넘기려고 하는 편인데, 요즘 확- 꽂힌 게 있다. 바로, ‘뭐해?’ / ‘어디야?’ 이 두 가지다. 맙소사. 아니, 이 흔하디 흔해빠진 뭐해 어디야가 무슨 의미가 있다고 이런 글까지 쓰냐고? 더 소름 돋는다고? 어쩌겠는가. 난 이 두 가지 사이의 차이를 알아버린 것을! 뭐해랑 어디야는 정말, 천지차이였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뭐해는 엄청 좋은 거고, 어디야는 덜 좋은 거다. 

나는 나에게 연락을 해오던 두 남자를 어쩔 수 없이 비교하게 됐었다. 나이도, 외모도, 생활 방식도, 날 대하는 태도도 정말 다른 두 사람. 그 사이에서 양다리를 걸치며 오고간다는 것이 아니라, 두 사람 모두 어떤 사람인지 알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정말 극과 극의 성격인 두 사람이 가장 큰 차이를 보인 것은 바로 연락하는 패턴이었다. 한 사람은 문자 메시지는 간단히 보내는 대신 통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오히려 전화는 거의 하지 않고 문자 메시지를 줄곧 보내곤 했었다. 이들은 나에게 일상을 묻는 방식 역시 아주 달랐다. 한 사람은 나에게 뭐해, 다른 한 사람은 어디야 라고 물었다. 물론 위에서 말했다시피 뭐해가 더 좋은 것이기에, 나는 후자가 더 좋은 남자라고 결론지었었다. 

이제부터 이게 왜 큰 차이가 있는지 알려드리리다. 물론 철저히 나의 경험에 입각해서 설명하겠다. 
보통 나에게 ‘어디야?’라고 연락하는 경우, 대부분 집이 아닌 밖에 이미 나와 있는 사람들이었다. 내가 밖이라고 말하면 함께 만나서 놀자고 하거나 얼굴을 보자는 식이었다. 말 그대로 ‘지금 시간 되면, 멀지 않은 곳에 있으면 보자’는 의미인 것이다. 물론 좋아하는 이성이 갑자기 어디야? 라고 물어서 보는 건 정말 설레는 일일 것이다! 갑자기 일하다가 짬이 생겨서 보자고 한다면 말이다. 그 바쁜 일상 틈 구멍에 날 보겠다니? 이렇게 반가울 수가!  
하지만 매번 이런 식으로 급 만남을 이루려는 사람들도 있더라. 그러면 사실 기분이 상하게 된다. 상대방을 존중한다면, 상대방의 시간도 소중히 물론 존중해줘야 한다. 자유시간이 생겼거나 약속이 펑크 나서 만나는 것과 날 위해 시간을 내었구나, 라는 건 정말 큰 차이니까. 

나에게 습관적으로 ‘어디야?’라고 묻는 남자 때문에 난 정말 힘들었던 것 같다. 그건 그 남자가 아닌 내 잘못이었다. 마치 난, ‘가라면 가고 오라면 오는 아이’라고 나 스스로 자기 소개를 한 셈이다. 난 그가 언제 ‘어디야?’라고 물을지 모르기 때문에 항상 내 시간의 어느 틈은 비워둘 채비를 했던 것 같다. 그게 내가 그들을 만나는 방식이었고, 사랑하는 방법이었다. 물론 틀렸던 거다. 그렇게 매력 없이 사랑을 주면서 사랑받고 싶어 하다니, 욕심이 과했던 거다. 그들을 미워할 이유가 전혀 없는 것이다.
물론 당시 나의 일상들은 땅에 붙어 있지 않고 어딘가 붕 뜬 느낌이었다. 

손에 꼽을 정도로 아주 가끔씩
엉뚱한 시간에 넌 내가 어딘지 묻지
'어디긴 니 마음이지'라는 본심을
속이며 차분하게 말했지 '지금 집' 

심상치 않은 징조, 심장은 보다 신속
혹시 모를 급만남이 꿈처럼 이루어
질 수도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지금 너의 위치가 어디든 let's bring it on girl
(빈지노 <Aqua man> 중에서)

관심 있는 이성과 데이트 약속이 정해지면 우린 분주해질 수밖에 없다. 급 만남은 굉장한 이벤트지만, 그 이벤트를 열 수 있는 사람이란, 벌써 그 관계에서 ‘갑’이 아닐까. 이미 그 이벤트에 환호하며 펼쳐놓은 일상을 빨랫감 치우듯이 둘둘 말아 한쪽 구석으로 밀어 넣는 순간, 저 노래처럼 어장 속 한 마리의 물고기가 될 지도 모른다는 거다, 헤엄 헤엄 헤엄…….

반면 뭐해? 라고 묻는 건 좀 다르다. 이건 진짜 되게 좋은 거다. 사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뭐해, 라는 연락 다음의 뉘앙스가 중요한 거다. ‘어디야?’의 조금 더 부드러운 버전이라면 이건 별반 다르지 않다. 새벽 시간 뜬금없이 보내는 구 남친의 ‘자니?’같은 버전이나 ‘바쁘지 않으면 지금 만날래?’ 라는 뉘앙스의 연락이라면 말이다! 이건 좋은 ‘뭐해?’랑은 거리가 멀다. 
좋은 ‘뭐해?’는 이러하다. ‘난 지금 널 만날 수 있는 게 아니지만 그냥 네 일상이 궁금해’라는 뜻에서 보낸 따뜻한 느낌! 사실 ‘뭐해?’라는 메시지만큼 짧고 간단하지만 사랑스러운 표현이 또 있을까? 보고 싶어, 같은 거 말고 담백한 버전 중에서는 뭐해가 최고다. 그건 지금 이순간은 ‘난 지금 네 행동에 관심이 있어’라는 게 될 수도 있으니까. 우선 상대방이 나에게, 나에 대해서 무언가 질문을 한다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운 일일 것이다. 나는 이 즐거움을 최대한 만끽하는 편이다. 그래서 일부러 ‘어디서 뭐해?’라는 메시지를 받으면 뭐하는 지만 답장을 보낸다. ‘어디서?’라는 질문이 또 날아오길 기다리는 것이다! 원하는 메시지를 받으면 난 기분이 날아갈 듯 하다! 맞다. 난 애정결핍이 확실한 것 같다. 어쩌겠는가? 내가 관심 받고 싶은 사람은 정말 한정되어 있고, 그에게서 질문을 마구마구 받고 싶은 걸! 더 물어봐줘, 더더더!

사실 썸 타는 관계에 있어서 상대방과 연락을 잘하려면 질문하라고들 한다. 대부분 질문에는 웬만해선 답을 해주기 때문에 연락이 끊길 확률이 적다고. 여기서 뭐해, 어디야, 라는 질문들이 가장 만만한 거다. 하지만 앞으로 최소 이 칼럼을 읽은 여자 분들이라면 나에게 연락이 오는 남자가 ‘뭐해’라고 묻는지, ‘어디야’라고 묻는지 생각해보게 될 것이다. 그리고 자기 여자 친구들에게 이걸 말해주겠지. 그러니 남자 분들아, 이제 ‘뭐해?’라고 물으시라. 써야할 메이크업 도구가 많은 여자들에게 급 만남으로 분주함을 선사하는 일이 습관적이지 않았으면! 

정리하자면 연락한 ‘용건’이 있는 경우는 어디야, 없는 경우는 뭐해? 라고 물을 확률이 높다는 거다. 그런데 그와 나 사이엔, 용건이 없었으면 좋겠다. 그냥 너랑 나, 이게 용건의 전부였으면. 우리 사이엔 아무 이유도 존재하지 않았으면. 그래야지 아무 용건 없이 늘 만나고 늘 떠들게 아닌가. 그냥 널, 안 보고 있어도, 또 보고 있어도 보고 싶은 거야. 그래서 보고 또 보고 싶은 거야! 

오늘도 난 서로 만날 계획이 없는 사람에게 ‘뭐해?’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가 궁금해 하고 물어봐주어서 고마웠다,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래, 오늘 하루 그걸로 되었다. 따뜻하게 잠들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뭐해? 라는 메시지가 온 창에 그의 이름이 있어서 좋았다.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고, 따뜻한 이불도 되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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