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떠나고 싶었습니다. 

[공감신문 김정한 에세이] 문득 떠나고 싶었습니다. 점점 시간의 갈피가 얇아진다고 느낄 때마다 아쉬운 것들을 붙잡고 싶습니다. 희망을 찾아, 그리움을 찾아, 해묵은 추억을 찾아 떠나고 싶습니다. 새 희망으로 가는 출구가 너무나 간절했고, 소중한 것을 지키고 싶고, 행복했던 추억을 되새기며 위로받고 싶습니다. 그래서 떠납니다. 

집을 떠나는 순간 새로운 도전이 시작된다고 믿기에 이것저것 짐을 챙기지 못했습니다. 이리저리 두리번거리다가 결국은 남한강과 북한강이 만나는 두물머리로 향했습니다. 청량리역에서 기차를 타고 양수리역까지는 집에서 넉넉히 두 시간이면 충분했습니다. 늘 두물머리로 갈 때에는 몸보다 마음 먼저 도착했습니다. 그곳은 나의 이십 대, 삼십 대의 추억이 고스란히 묻어있어 발길이 그쪽으로 향했던 것 같습니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두물머리는 기대어 울 수 있는 친구가 없을 때, 울 곳을 찾아 떠나고 싶을 때 나에게 전부를 내어 주었습니다. 물론 사랑을 시작한 곳도 그곳이었고 인생의 터닝포인트(turning point, 전환점)를 만나 방황했을 때 찾았던 곳도 그곳이었고, 쓰러진 나를 일으켜 세워 작가로 거듭나게 해 준 곳도 두물머리였으니까요. 어쩌면 내 마음의 가장 편안한 안식처이고 고향입니다. 

두물머리는 양수리(兩水里)의 순우리말이기도 합니다. 금강산에서 흘러내린 북한강과 강원도 태백 검룡소에서 발원한 남한강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는 곳이라 해서 두물머리라고 부릅니다. 옛날에는 두물머리가 서울로 가는 이들이 마지막으로 머물던 쉼터이기도 했습니다. 강원도 오지마을에서 강을 타고 온 뗏목도 뚝섬이나 마포나루로 들어가기 전에 두물머리에서 쉬어갔다고 하니까요. 지금은 나처럼, 새 희망을 향한 도전을 결심하거나, 지나간 해묵은 아름다운 추억이 그리워, 막 사랑을 시작하기 위해 연인의 손을 꼭잡고 이곳을 찾습니다. 

언제부턴가 영화·광고·드라마 촬영지로 유명해졌지만 언제 찾아가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입니다. 두물머리의 두 물줄기가 합쳐지면 물길은 호수처럼 아늑한 수면을 만듭니다. 누군가 흙탕물을 쏟아부어도 원심(原心) 그대로 다시 맑아집니다. 나는 그 맑음에 허리 굽혀 경의를 표합니다.

이른 아침 여명 속에서 피어오르는 물안개는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모습일 텐데 삶이 매워서인지 나에게는 풋풋하기보다는 알싸하게 느껴집니다. 400년이 넘었다는 느티나무 그늘에 앉아 강물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살면서 짊어진 근심 걱정이 강물로 씻겨 내려가는 듯합니다. 강가의 노란 돛단배는 아름다운 풍경에 절정의 방점을 찍습니다. 

무언가를 시작하려는데 확신이 서지 않는 날, 마음이 빙빙 돌아 답답한 날, 삶에 지쳐 울고 싶은 날에는 홀로 이곳을 찾습니다. 강가에 앉거나, 거닐면서 현재의 고민거리나 고통을 다 쏟아냅니다. 회색 빌딩 숲에서는 보이지 않던 것들이 아담하고 포근한 이곳에서는 보이기 시작합니다. 강물을 바라보며 묻고 답을 하며 침묵의 독백을 오래도록 이어갑니다. 

얼마가 지나면 비릿한 강바람이 스며들어 가슴이 후련해집니다. 다 비우고 털어내고 나면 빙그레 웃음이 나오고 살면서 용서할 수 없는 것들까지 끌어안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의 이치란 것이 때로는 가까이 다가설 때보다 한 걸음 물러났을 때 더 많은 것이 보인다는 사실입니다. 

<사진출처: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

오늘따라 두물머리에는 사람이 무척 많았습니다. 가족끼리 친구끼리 연인끼리 강변을 걷거나 벤치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평화로웠습니다. 강마을에 펼쳐진 세상은 각박한 현실과 달리 아주 많이 여유로웠습니다. 한쪽에서는 순간의 아름다운 포착을 놓칠세라 열심히 셔터를 누르는 사진작가들이 눈에 뜨입니다. 아름다운 자연과 사람과의 진정한 소통을 보는 듯합니다. 

물론 이곳을 찾은 사람 중에 모두가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심각할 만큼 고통스러운 표정을 짓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들의 모습 모두가 나에게는 거울입니다. 아프고 행복했던 지난날, 현재의 내 모습이니까요. 그 거울에 나를 그대로 비춰보는 것 또한 두물머리가 나에게 주는 선물입니다. 

특히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의 풍광과 시간을 거스르는 듯 노란 돛단배를 타고 유유히 노를 젓는 사람의 모습은 거친 세파를 잊기에 충분했습니다. 그 옛날 남한강과 북한강을 따라 서울 한강으로 들어가기 전 사람들이 이 두물머리 포구에서 쉬어가던 그때처럼 지금도 물과 물이 만나고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아름다운 곳입니다. 

어떤 이는 지나간 사랑을 지우기 위해, 또 어떤 이는 새로운 희망을 담아 멋진 출발을 위해, 또 어떤 이는 행복의 결실을 위해 찾을 겁니다. 결국 두물머리는 사랑과 이별, 기쁨과 슬픔, 희망과 절망이 교차되는 곳입니다. 그래서 나에게 두물머리는 성찰의 시간을, 깨달음의 선물을 안겨줍니다. 비우고 또 비워 새털처럼 가볍게 해줍니다.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 하나를 이루는 장엄한 모습을 보고 있자면 마음이 절로 숙연해집니다. 올 때마다 느림의 미학을 두물머리에서 배웁니다. 콧노래도 나옵니다. 기다란 물음표를 여러 개 안고 두물머리에 머물다가도 돌아갈 즈음에는 단 하나의 커다란 느낌표를 안습니다. 지금, 여기, 이 소중한 봄날에 내가 당장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무엇을 희망해야 하는지를 깨닫게 합니다. 그리고 가슴속으로 잔잔한 평화가 물결치며 파고드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올 때마다 선명한 해답을 쥐어주는 두물머리, 나에게는 소중한 친구이고 든든한 배후입니다. 울면서 찾아와 웃으며 돌아갑니다. 웃음을 찾고서야 도스토옙스키의 <카라마조프의 형제들>에 나오는 말이 별 거 아니란 생각을 합니다. "고통은 곧 생활이다. 고통이 없는 인생은 아무런 쾌락도 없다" 그렇습니다. 희망은 희망이 낳는 것이 아니라 결핍이나 절망에서 시작된다는 것을. 간절하게 희망을 이룬 사람은 압니다. 희망이 얼마나 귀하고 절실한가를. 가장 깊은 수렁에 빠졌다고 생각되는 그때가 가장 큰 희망의 기회라는 것을. 

한적한 곳에 앉아 오랫동안 강물에 시선을 두고 있으면 작은 섬 주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르고 새들이 그 주위를 빙빙 돌며 납니다. 강둑에 정물처럼 앉아있으면 혼란스러웠던 마음, 무게중심을 잃어 사정없이 흔들렸던 마음이 중심을 잡습니다. 방황하던 마음이 스스로 잔잔해지고 금방 빨아 널어놓은 하얀 원피스처럼 하얗게 나부낍니다. 

나를 붙들고 있던 내 것이 아닌 것에 대한 집착, 안쓰럽게 매달려 있는 흉칙한 욕망, 쓸데없는 들러붙어 고통스러웠던 욕심, 하나 가득 걱정에 불안해하는 조각들이 바람에 날려갑니다. 기다림을 기다리다 보면 무엇이 내 것이고 무엇이 남의 것인지, 무엇이 쓸데없는 걱정이고 무엇이 희망인지를 깨닫는데 오래 걸리지 않습니다.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남들처럼 ‘소원나무(wish tree)’로 불리는 느티나무 앞에 서서 작은 조약돌에 소망을 적어, 나무 옆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으며 소원을 빌었습니다. 가벼운 마음으로 소원을 빌고 나니 이리저리 뒤엉킨 고민거리가 술술 풀릴 것 같아 저절로 입가에 미소가 번집니다. 물먹은 소금처럼 묵직했던 파라만장했던 인생 풍파도 조금은 가벼워진 듯합니다. 

토닥토닥 쓰담쓰담 위로받으니 칼날 같은 아픈 기억도 강물을 붉게 물들이며 나에게 작별의 손짓을 합니다. 새로운 도전에 대한 희망이 내 앞에 머무는 듯 어둑하던 하늘이 금빛 햇살을 품어 냅니다. 더도 말고 이렇게 환한 햇살처럼 희망이 나에게 더 많이 허락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덧붙여 다시 찾아온 이 봄날에는 나날이 토실토실해지는 희망을 마중하러 함께 손잡고 갔으면 좋겠습니다. 가족, 동료, 친구, 이웃과 함께 아름다운 도전을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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