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신도연칼럼] 갑오농민혁명이 일어난 123년전 갑오년. 동학농민전쟁이 청나라와 일본 전쟁 즉 청일전쟁이 일어난 후 을사늑약과 한일합방으로 대한제국은 망국에 이르게 된다. 말 그대로 통한의 역사를 갖게 된다.

1974년 박정희 유신정권은 긴급조치를 발동해 이미 반사상태의 민주주의를 더욱 후퇴하게 만드는 결정타를 때렸다. 1974년 1월 8일 발령된 긴급조치 1호는 유신헌법을 개정하자는데 반하는 모든 국민을 영장 없이 체포하고 재판에 회부시켜 가뒀다.

글을 쓰면서도 이 상황을 상상해보면 아찔한 상황들이 펼쳐지는 듯 하다. 암울했던 유신-긴급조치 시대도 시간이 흐름에 따라 역사의 뒷안길로 접어 들고 다시 5공화국이 들어서면서 독재 치하의 연속을 알렸다. 

비로소 87년 6월 항쟁으로 마침내 작지만 민주주의라는 말을 꺼내 들기 시작했다. 민주주의라는 틀을 만들기 위해 무던히도 많은 제도와 법규들이 갖춰지기 시작했고 드디어 우리는 민주주의를 성취한 나라로 평가 받았다.

<사진출처: 기자누리>

이쯤에서 우리가 진정한 민주주의에 살고 있는가를 다시금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 하다.
헌법과 법률로 정한 자격에 맞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선거에 투표를 할 수 있게 하는 ‘보통 선거’원칙이지만 실상 그렇게 투표가 이어지고 있는가. 
적잖은 사람들이 이러한 참정권을 포기하는 경우가 많다. 직장이다 가정이다 늘상 일어나는 일이 있어 우리는 그런 참정권을 찾지 못하는 일들이 많다. 바로 현실은 우리 민주주의가 아직도 충분히 제도화 되지 못하고 있음을 말해주는 대목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더 걱정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은 바로 ‘민주주의’에 대한 사람들의 잘못된 인식이다. 
모 연예인이 ‘민주화시키다’라는 말을 강압에 의해 다른 사람들의 의견을 묵살 한다는 의미로 사회적 지탄을 받을 적이 있다. 
이 발언에 대해 우리는 심각하게 민주주의에 대해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는지 생각해 필요가 있다. 연예인의 언급은 많은 사람들이 다수결의 원리와 같은 제도 정도로 민주주의를 이해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럴수 있다. 하지만 우리 사회의 많은 문제들이 다수의 의사에 의해 합법적으로 결정되고 이행되고 있는데 이러한 것들을 민주주의 원리라고 생각하지 않길 바란다.

이러한 착오적 생각들이 민주주의를 작게 만드는 실수 일 수 있다는데 서글퍼진다. 즉 우리가 누리고 있는 민주주의의 위기일 수 있다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어떠한 규제나 규칙 보다는 행하는 과정이고 정착된 문화여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 말은 절대 완결되서 끊어지지 않고 계속 되는 진화와 성장이 토대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토대는 시대에 맞는 민주주의를 실현시킬 수 있는 기술이 필요하다. 

에리이 프롬이 사랑에는 ‘기술’이 필요하다고 말했던 것처럼 민주주의에도 구성원들이 시스템을 다룰 수 있는 민주주의적 기술이 필요하다. 그 기술을 알기 위해서는 구성원들의 학습이 필요하고 이로 인해 주어진 민주주의에서 풍요로운 삶은 영위하는게 바로 구성원들의 행복이다.
아직 우리에게는 살아 있는 민주주의가 있다. 아직 살아서 움직이는 대한민국 민주주의에 필요한 기술이 뭘까? 미국의 프란시스 무어 라페는 여성 운동가로 그녀가 말한 민주주의의 기술들을 우리가 학습해 봄도 좋을 듯 하다.

그녀는 적극적인 경청, 창의적인 논쟁, 평가와 성찰을 바로 그 기술로 꼽았다.
민주주의에 필요한 기술들이 크고 거대한 것이 아니다. 가장 작은 기술들 즉 일상에서 행할 수 있는 것들이 바로 민주주의 기술들이다.

<사진출처: 기자누리>

오랜 시간 피와 목숨으로 바꿔온 민주주의의가 시대적 환경에 오염되고 변질 되는 것을 보면서 실로 우리에게 필요한 민주주의의 생각하게 한다.
많은 시간 우리가 누리기 위해 싸워온 결과가 작금의 대한민국과 같은것이 민주주의라면 우리는 다시금 민주주의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아직 우리에게는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자랑스런 명찰이 붙어 있지 않는가. 대한민국은 자랑스런 민주공화국이다.

누군가의 실수와 누구가의 잘못된 행동이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드는 절대적인 군주적 행동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몸소 실천했고 봤다.
그렇게 대한민국은 자유민주주의의 역할을 꾀하고 이루고 발전 시키며 새로운 5천년을 일궈간다.

* 본 칼럼은 당사의 입장과는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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