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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강란희 칼럼] “많이 듣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리고 표현하라.”“공공의 이익 등에는 더 넓고 깊게 적용돼야!”
  • 강란희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4.08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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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곁을 맴도는 ‘표현의 자유(表現-自由)’”

[공감신문] 강란희 칼럼니스트= “먼저 강원도를 비롯하여 전국 산불로 인해 피해를 보신 많은 이재민께 위로의 마음을 전합니다. 아울러 발 빠른 대처로 피해를 최소화 할 수 있도록 최선의 조치를 해 주신 청와대와 정부에 깊이 감사를 드립니다.”

<지난 4월 5일 0시 20분 강원도 산불 관련, 위기관리 센터를 방문해 긴급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사진 = 청와대

오늘은 “표현의 자유”라는 미명아래 밑도 끝도 없는 이야기 들이 생산되고 가공되고 퍼 나르고 보도되며 오염되고 번지는 우리 사회가 괜찮은지에 대해 잠깐 살펴보자.

먼저 표현의 자유…?. 우리에게 꼭 필요한 자유 중에 하나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수많은 표현이나 의사표시를 하면서 살아가고 있다. 법의 테두리 안에서 말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 예의나 존중의 의미를 찾아보기는 좀 드물다. 특히 지도층일수록 더 그렇다.

우선 우리가 어떤 주장이나 의사 등을 표현하는 데는 인격이 있어야 하고 존중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많은 사람은 입 모아 합창을 한다. 특히 표현하는 내면에는 반드시 예의가 있어야 한다고 말이다.

다시 말하면 어떤 행위 등을 하기 위해서는 행동을 취하기 전에 반드시 한번 생각해 보고 하라는 말일 것이다.

그럼 여기서 “표현의 자유”는 <법률>적으로 어떻게 규정하고 있을까? 표현의 자유는 “아무런 억압 없이 자신의 의견이나 사상 주장 등을 외부로 나타낼 수 있는 자유. 즉 언론이나 출판, 통신 등의 자유를 말한다.”라고 되어 있다.

결국, “억압 없이”란 말은 마구잡이로 뱉어내고 써지고 행동 등을 하라는 말이 아닐 것이다. 그냥 생각 없이 한다고 다 표현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 또한 자유가 아니다. 적어도 내가 어떤 형식으로든 표현하는 그 자유 속에는 정중함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다시 말하면 주야장천 말하는 것이지만 최소한의 “예의”를 말하는 것이다. 밑도 끝도 없이 상대에게 모욕감을 주고 명예를 실추시키는 등의 행위는 표현의 자유가 될 수 없다는 말이 하고 싶다는 이야기다.

<김영란의 열린 법 이야기>에서는 표현의 자유를 “민주주의를 유지하는 근본적인 도구”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다. 민주주의라고 무조건 허용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 속에는 반드시 “예(禮)”가 들어 있어야 하고 배어 있어야 한다. 이것이 결국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가 최소한 유지가 될 수 있다는 말일 것이다.

물론 유교 사상 등을 강요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적어도 “禮” 속에는 민주주의의 근본인 “인간의 존엄성” 즉 인간 존중“이 들어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금의 사회는 표현의 자유라는 핑계로 쓰레기들이 넘쳐난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남의 인격이나 명예 등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예의는 실종되고 도덕은 온데간데없는 가짜뉴스가 우리 곁을 오염시키며 맴돌고 있다는 말이다.

<지난 4월 5일 오전 11시 강원도 산불과 관련하여 국가안보실 위기관리센터에서 긴급 회의를 주재하는 문재인 대통령.>사진 = 청와대

이것이 표현의 자윤가? 라고 반문하는 사람들도 많다. 절대 아니다. 하지만 작금은 헌법에서 보장된 표현의 자유를 맘껏 누리며 살고 있다. 그 위에서 수 없는 언론이나 SNS 등에서는 정말 보기도 듣기도 힘든 표현들이 홍수를 이룬다.

다시 말하면 표현의 자유라는 최대의 명절을 누리고 있다는 말이다. 물론 그 속에는 최소한의 예의도 도덕도 찾아볼 수가 없는 것들이 태반이다. 예컨대 일부이긴 하지만 그들은 스스럼없이 공개적으로 국가원수를 “빨갱이”라고 말한다. 과연 이것이 표현의 자윤가 싶기도 하다.

“참 기가 찰 일이지요. 아무리 싫어한다고 대통령에게 그런 모욕감을 주다니요. 아직 우리나라는 국가보안법이 살아 있거든요. 빨갱이들은 빨리 신고해서 잡아넣어야지요. (중략) 그럼 우리가 대통령을 ‘빨갱이’를 뽑았단 말입니까? (중략) 이건 아니지요. (이하 생략)”

우리가 살아가는 곳이 그 어느 곳이든 반드시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한다. 특히 공공의 이익과 관련된 것이거나 공적인 인물에 대한 것에는 더 넓게, 더 깊게 표현되어야 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근거가 없거나 부족한 것을 표현의 자유랍시고 마구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한편 공자(子曰)가 말씀을 잠깐 빌리면 “(전략) 무례불상견야(無禮不相見也) (후략)” 라고 말씀하셨다. 다 아시겠지만, 공자는 일찍이 “예의가 없으면 서로 보지도 말라.”는 말을 남긴 것이다.

<서울 서초구 교대역 8번 출구의 조그마한 쉼터에 있는 조형물. 이 조형물의 의미는 “귀를 열고 들어라.”라는 의미와 느낌을 주는 듯하다.> / 강란희 칼럼니스트

어쨌든 여기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자유로운 인간의 의사 표현”을 비판하자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반드시 보호되어야 마땅하다. 더구나 자신이 하는 의사표시에는 禮를 지녀야 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반드시 말이다.

다시 말하면 상대방에 대한 명예나 인격 등을 무시하는 짓을 해서는 안 된다는 말을 하는 것이다.

더불어 아름다운 민주주의를 꽃피우고 튼튼한 열매를 수확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많이 듣고> <한 번 더 생각하고> 그리고 <표현하라.>는 것이다. 언론이든 출판이든 SNS 등 말이다.

“법(法)은 우리가 지켜야 할 최소한의 약속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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