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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평범함을 버리고 최고의 자리에 오른 여인들

[공감신문] 한국에는 고학력 경력단절여성이 넘쳐난다. 그만큼 ‘일과 가정’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기가 어렵다는 뜻이다. 하지만 아직 포기하기엔 이르다. 평범한 주부에서 부와 명예를 쟁취해낸 여성들도 분명히 존재하니까. 공감 포스팅팀과 함께 평범하게 살다가 갖은 노력 끝에 마침내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그녀들을 만나보자.

■ 해리포터 시리즈 작가 <조앤 롤링>

조앤 롤링은 가난에 시달리던 무명의 작가 지망생이었다. 심지어 결혼한 지 약 1년만에 이혼녀가 된 롤링은 아기까지 딸린 싱글맘이 된다. 영국 에딘버러에 정착한 그녀는 제대로 된 수입도 없어서 생활보조금 등에 의지하면서 간신히 생계를 유지했다. 허름한 단칸방에 살면서 본인이 굶는건 물론이고, 아기에게 줄 분유가 부족해 물을 타먹였을 정도였다.

이래선 안 되겠다는 궁지에 몰린 심정에서 쓰기 시작한 것이 바로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이다. 그러나 원고를 완성한 뒤에도 출판사마다 애들이 읽기에는 너무 길다며 계속 거절당했다. 총 12번을 거절당하고 13번째로 찾아간 소규모 출판사 ‘블룸즈베리’에서 1997년 6월 500부를 출판하게 됐다. 이때 받은 원고료는 1500파운드(당시 약 200만원)이었다.

이후 2부 ‘비밀의 방’과 3부 ‘아즈카반의 죄수’가 연이어 나오면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인기는 나날이 높아져갔다. 4부 ‘불의 잔’부터는 영국과 미국에서 동시 발매돼 베스트셀러 목록을 장악했다. 예약 판매만으로 판매량 1위를 기록하며 ‘해리포터 신드롬’이라 불릴 정도가 됐다.

소설과 영화의 연이은 성공 덕분에 조앤 롤링은 문인으로는 보기 드문 억만장자로 손꼽히게 됐다. 아이 신발을 사주지 못해 미안해하던 소박한 싱글맘에서 전 세계적인 명성을 가진 인기작가로 인생역전에 성공한 것이다.

■ 버마의 독립운동 지도자 <아웅 산 수지>

아웅 산 수지는 버마의 국부로 추앙받는 보조 아웅산의 딸이다. 옥스퍼드대에서 정치학을 공부했으며, 대학에서 남편인 마이클 에어리스를 만났다. 결혼 후에는 아들 둘을 낳고, 교수인 남편을 내조하며 철저하게 가정주부로 살았다.

그러나 1988년 어머니 병간호를 위해 버마로 귀국한 후 군사 통치에 반대하는 집회(통칭 8888 항쟁)에 참여하면서 그녀의 인생은 180도 바뀐다. 평범한 영국 가정주부에서 갑자기 버마 민주화 운동의 지도자로 급부상한 것이다. 한국으로 치면 안중근 의사, 백범 김구 주석의 자녀가 전두환 군부 정권에 맞서는 민주화 운동 지도자로 나선 것과 비슷하다.

아웅 산 수지는 버마를 일당 통치하던 사회주의계획당에게 다원적 민주주의를 받아들이라 요구했다. 이 후 군부정권에 맞서 야당을 망라한 민주주의민족동맹(NLD, National League for Democracy)을 창설하고 사무총장직을 맡았다.

그러나 아웅 산 수지는 군사정변으로 인해 가택연금 당했다. 그럼에도 투쟁을 계속해 1990년 5월 다당제 선거 실시의 성과를 거두었다. 뿐만 아니라 총선거에서 NLD가 친군부세력인 민족통일당(NUP)을 물리치고 압승을 거두었다. 1991년 민주화 운동의 공적을 인정받아 노벨평화상을 받기도 했다.

■ 세계 최초의 여성 우주 비행사 <발렌티나 테레시코바>
발렌티나 테레시코바는 타이어 공장, 방직 공장에서 일하던 평범한 여성 노동자였다. 그녀가 우주비행사로 뽑히기 전 독특한 이력이라고는 '낙하산 타기'가 취미인 것이 전부였다. 그런데 이 취미가 바로 우주 비행사가 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당시 우주선은 충격 때문에 지면에 곧바로 착륙할 수 없어서 6000m 상공에서 비행사가 낙하산을 타고 탈출해야 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낙하산 타기'는 우주비행사의 필수 조건이었다.

그녀의 우주비행 성공으로 우주가 남성의 전유물이라는 인식이 깨졌다. 또한 여성이 우주에 장기간 체류할 때 일어나는 신체적 변화를 연구할 수 있는 최초의 사례이기도 했다. 그녀가 지구로 보낸 첫 메시지 "여기는 갈매기"는 강하고 자유로운 여성을 뜻하는 유행어가 됐다.

■ 진정한 인간승리자 <오프라 윈프리>

그야말로 가난과 절망을 딛고 전 세계 흑인 여성 중 가장 성공한 인물이다. 오프라 윈프리는 어린 시절 친척의 성폭행에 시달렸다. 그 와중에도 공부를 포기하지 않아 명문사립학교에 진학했으나, 계속되는 성적 학대를 견디다 못 해 집 밖을 나돌게 된다.

이 시기에 의도치 않은 임신과 첫 아이를 2주 만에 떠나보내는 아픔을 겪는다. 그녀는 기구한 인생에 좌절해 자살도 생각했고, 마약이나 담배에 빠져 현실을 잊고자 했다. 한때는 폭식으로 몸무게가 엄청 나가기도 했다.

그러다 우연히 라디오 프로에서 일을 얻었고, 19살에는 지역의 저녁 뉴스 공동캐스터를 맡게 됐다. 하지만 그녀의 즉흥적 감정 전달로 인해 8개월 만에 해고된다. 이 후 1983년 오프라 윈프리는 시카고에서 30분짜리 아침 토크쇼 진행자가 됐다. 당시 그녀가 맡은 ‘AM Chicago’는 가장 낮은 시청률을 기록하던 프로였다.

당연히 오래가지 못할거라 생각했던 이 방송은 한 달 만에 동 시간대 시청률 1위로 올라섰다. 그리고 1986년에는 이 프로그램 이름까지 '오프라 윈프리 쇼'로 바뀌었다. 25년간 총 5000회 방송, 미국 내 시청자수 2200만명, 전 세계 140개국 방영, 일일 시청자 수 700만명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이 토크쇼에는 연예인, 정치인, 스포츠 선수 등 3만명이 넘는 이들이 출연했다.

오프라 윈프리는 1992년 미국 포브스지 선정 미국 방송인 소득 순위에서도 여러 유명인들을 제치고 여성 방송인 소득 1위를 차지했다. 더불어 2007년지 포브스지 선정 역대 미국 여성 부자 10인에서 유일한 흑인으로 들어갔다.

■ 전업주부에서 성공한 CEO가 된 <조이 망가노>

조이 망가노는 미국 롱아일랜드의 평범한 싱글맘이자 경력단절 여성이었다. 그녀는 깨진 포도주잔을 치우다가 대걸레에 손을 직접 대지 않고도 깨끗하게 짤 수 있는 제품에 대한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그녀는 그 아이디어를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한 결과 1990년 ‘미라클 몹(Miracle Mop)’ 개발에 성공한다. 그 후 자신과 지인들의 돈을 모아 지역 상점을 통해 판매를 시작한다. 그러나 무역박람회까지 참가했지만 연이은 실패로 빚만 떠안게 됐다.

조이는 거듭된 실패에 좌절하던 중 우연한 기회에 홈쇼핑 방송에 ‘미라클 몹’을 내보낼 기회를 얻는다. 1992년 ‘QVC(Quality, Value, Convenience)’라는 미국 케이블 홈쇼핑 방송을 통해 첫 번째 방송을 내보냈지만 또다시 처참한 실패로 끝나게 된다.

모두의 신뢰를 잃은 후 마지막으로 얻게 된 20분간의 홈쇼핑 방송 시간. 그녀는 쇼호스트 대신 자신이 직접 나서기로 결심한다. 조이는 이 제품을 만들게 된 계기, 만들 때의 심정을 솔직하게 밝히며 제품의 우수한 품질을 증명했다. 그 결과 기적적으로 30분 만에 1만8000개 판매라는 큰 성과를 거두게 된다. 덕분에 입소문이 난 조이의 걸레는 승승장구 했고, 그녀는 직접 회사를 차려 다양한 아이디어 상품을 잇달아 선보이며 성공한 CEO로 자리를 잡는다.

그녀의 이야기는 많은 매체에서 주목됐다. 결국 <조이 JOY>라는 영화까지 만들어졌다. 영화 <조이 JOY>는 가난한 싱글맘이 참신한 아이디어를 통해 성공한 CEO가 된 조이 망가노의 실화를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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