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영국의 시인 하우스먼의 시 "내 나이 스물하고 하나였을 때"에 보면 이런 문구가 있다. " 내 나이 스물 하고 하나였을 때/ 어떤 현명한 사람이 내게 말했지요. / “크라운, 파운드, 기니는 다 주어도/ 네 마음만은 주지 말거라.”/ 하나 내 나이 스물 하고도 하나였으니 /전혀 소용없는 말/ “마음속의 사랑은/ 결코 거저 주어지는 게 아니지./그것은 숱한 한숨과 끝없는 슬픔의 대가이지.”/지금 내 나이는 스물 하고 둘 / 아, 그건, 정말 진리입니다."

누구나 마음속에 그리운 섬 하나 보듬고 살아간다. 그곳이 어릴 적 뛰어놀던 고향일 수도 있고 늘 꿈꾸는 새로운 피안의 세계일 수도 있지만 나를 찾아가는 거다. 언제든 여유가 생기면 훌훌 털고 떠나고 싶어 한다. 물론 어딘가로 떠남은 정리의 시간이거나 새로운 출발의 시간이기도 하다. 

그러나 다 내려놓고 홀로 떠난다고 하지만 결국은 한 곳에 정착하기 위해서다. 누구의 간섭도 없는 곳에서 눈에 보이는 것들을 응시하면서 지난시절, 지금의 골치 아픈 문제, 예상되는 미래까지도 불러내어 관찰하고 대화하게 된다. 나의 지나온 역사의 민낯을 보며 나를 재판하기도 하고 위로하기도 하고 응원하기도 한다. 어쨌든 여행은 누구에게는 희망을 쌓지만 누구에게는 추억을 쌓는다.

여행, 그곳에만 몰입하게 되면 짧은 시간이지만 무한의 자유와 마음의 치유를 얻는다. 그러나 그것도 생을 선명한 목적을 향해 열심히 달렸을 때만 가능하다. 비록 1박 2일의 일지라도 나를 위한 뭉클한 위로의 선물이 된다. 나는 어릴 때 집에서 멀지 않은 간이역의 기찻길을 자주 걸었다. 평행으로 이어진 철로에 끌려 기차가 기적소리를 내며 홈에 들어오면 친구들과 그 뒤를 쫓아가던 기억이 아슴하다. 

또 집에서 멀지 않은 강에서 물장난 치며 놀던 추억도 자주 아슴거린다. 친구들과 신나게 노는데 우리를 비춰주던 햇빛이 강을 건너 산모퉁이로 돌아갈 때면 더 놀지 못한다는 생각에 아쉬워했다. 그때를 생각하면 늘 마음이 푸근해진다. 마치 지금 그곳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사진출처: 네이버 코리아 맥블로그>

마음속의 그리운 섬으로의 여행은 어떤 의미일까? 왜 가고 싶고, 또 그와 비슷한 곳을 찾아 떠나는 걸까? 아마도 누구에게는 현실 도피일 수도 있고, 또 누구에게는 새로운 창조를 위한 충전의 시간이다. 어떤 이유이든 여행은 빠르든 느리든 일상의 궤도를 밟아 가며 이루어지기에 자아실현을 위한 과정이다. 

다시 말해 여행은 내밀한 내 안의 자아를 만나기에 순수하고 겸손해 수밖에 없다. 여행을 떠나면서 가면을 쓰고 가는 이는 없다. 조금 더 순수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떠나게 된다. 길을 나서는 순간 마음속에 그리운 섬을 향해 가기에 자유를 느낄 만큼 넉넉해진다. 

여행은 내밀한 자신까지 돌아보기에 아무리 거미줄처럼 뒤엉킨 것도 해결의 실마리를 안겨주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마주친 낯선 여행자와 웃으며 초콜릿을 나눠먹는 것도 여행이 주는 기분 좋은 우연이다. 여행지에서 만난 우연한 마주침이 인연이 되어 친구가 되거나 배우자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여행의 궁극적인 목적은 자아의 발견이다. 지난날을 회상하며 반성하고 칭찬하고 응원하며 또 가까운 미래를 설계하는 것, 다시 말해 자신을 경건하게 발견하고 발전시키는 기회가 된다. 시골 어느 후미진 간이역 대합실에서 목적지로 가는 기차를 기다리며 사유하는 시간, 물론 지난날의 잘못을 뉘우치는 일은 쓴 약을 마시는 것처럼 씁쓸하겠지만 한걸음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회가 된다.

먼 훗날 이 순간을 떠올리면 눈물 나도록 좋을 것이다. 아름답게 나이가 들어, 초연 해지는 날에는 지금, 여기, 내가 마주한 사람이 눈물 나도록 그리울 것이다. 그러니, 여행은 행길에서도 추억을 쌓아가는 아주 특별한 기회가 된다. 커피하우스에 앉아 물밀 듯이 오가는 행인을 볼 때에도 그들 가운데 투영된 자신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읽을 수 있다. 혼자서 산책하듯 여행하면 그 어느 때보다 마음을 평정한 상태로 유지할 수 있어서 살아 움직이는 듯한 그림을 보는 것처럼 생의 위안을 얻게 된다.

여행은 나름대로의 멋과 아름다움이 공존한다. 특히, 순수한 마음으로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낯선 도시의 아름다운 거리를 거닐면서 느끼는 순간적인 깨달음은 황홀감을 안겨준다. 마치 누군가를 뜨겁게 사랑할 때와도 같은 희열을 안겨준다. 

물론 기억, 추억, 그리고 회상은 결코 우연히 일어나지 않는다. 황홀감은 깨달음과 함께 느껴야 진정한 교감, 공감을 안게 된다. 꽃이 아무리 아름다워도 향기가 없다면 절반의 만족일 뿐이다. 여행도 마찬가지다. 자연과 사람,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 사이에 흐르는 순수한 물결, 깨달음이 깊은 교감, 그것이 진정한 소통이다. 어느 작가는 "여행의 양이 곧 인생의 양이다” 고 했다. 

그렇다. 여행을 많이 한 사람일수록 여백이 많아 넉넉하고 생이 풍요롭다. 결국 여행은 잃어버렸거나 도착해야 할 내 안의 '무엇'을 찾아가는 것이다. 더하여, 건너고 싶은, 건너야 할 바다와 같은 생 자체를 사랑하고 느끼고 끌어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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