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난 8일 제25대 프랑스 대통령으로 최연소·비주류 정당 출신 마크롱이 압도적인 득표율로 당선됐다. 그는 투우사, 비행기 조종사, 수학자 등 파격적인 내각 구성으로 전세계의 이목을 모으고 있다. 그렇다면 특이한 경력을 지닌 정치인은 이번이 처음일까? 이에 공감 포스팅팀이 이색 경력을 지닌 전·현직 정치인을 찾아봤다.   

■ 포르노배우 출신 <치치올리나>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포르노 배우이자 전직 국회의원. 가수와 예술계 활동도 활발하게 했다. 사실 ‘치치올리나’는 예명이고, 본명은 엘레나 안나 스톨러. 일로나 스톨러라 불리기도 한다.

1951년 헝가리에서 태어났지만 1970년대 이탈리아로 이주했다. 이 후 포르노 업계에 뛰어들면서 ‘치치올리나’를 예명으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녀는 점차 수위를 높여나갔고, 마침내 포르노 배우로써 높은 명성과 인지도를 획득하게 됐다.

그러면서도 정치에 관심 가졌던 치치올리나는 1979년 이탈리아 최초의 녹색당인 '태양당(Lista del Sole)' 후보로 공천됐다. 그 당시 이탈리아 정계에는 여성 정치인 자체가 흔치 않았다. 특히나 그녀는 여성 정치인 중 가장 지명도가 높은 인물이었다.

후에는 NATO와 핵무기, 대마초 등에 대해 진보적 입장인 '급진당(Partito Radicale)'으로 이적했다. 또한 1987년 총선에서는 약 2만표를 획득해 국회의원으로 당선됐다. 1991년에는 업계 동료와 함께 '애정당(Partito dell'Amore)을 창당했다.

매춘 합법화 등의 공약이나, 한쪽 유방을 드러낸 그녀 특유의 선거운동은 큰 이슈가 됐다. 2002년에는 사담 후세인에게 “대량살상무기 시찰을 받는 조건으로 섹스해 주겠다”는 발언을 하기도 했다. 물론 거절당했지만 말이다.

■ 건달 출신 <김두한>

한국 독립운동가인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다. 그리고 한국의 1세대 건달 두목이자 2선 국회의원이기도 하다. 워낙 다채로운 경력을 가졌던 탓에 후대의 평가가 매우 심하게 갈린다.

항일투쟁이 한창이던 청년 시절에는 종로에서 유명한 주먹왕으로 군림했다. 광복 이후 한독당 재정위원·대한민주청년연맹 부위원장·대한노조총연합회 최고위원 등을 지냈다. 1954년에는 3대 국회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서 당선됐다.

이 후 자유당에 입당해서 활동했으나 이승만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목적으로 한 사사오입에 반대하다가 자유당에서 제명됐다. 1965년 제6대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도 한국독립당(약칭 한독당) 후보로 출마해 당선됐다. 그러나 이른바 ‘한독당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되는 바람에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됐다가 풀려나기도 했다.

그러다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 당시 국무위원에게 오물을 던진 '국회오물투척사건'으로 인해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된 뒤 같은 해 국회의원직을 사퇴했다. 이후 야인으로 다시 생활하다 1972년 11월 사망했다. 이 파란만장한 삶으로 인해 각종 미디어의 소재가 되기도 했다.

■ 복역수 출신 <보비 샌즈>

평범한 청년이던 보비 샌즈는 북아일랜드의 독립을 요구하는 폭력 투쟁단체 IRA(아일랜드 공화국군)의 일원이 된다. 이에 샌즈는 테러 행위로 체포되서 14년 형을 선고받는다.

당시 영국의 수상이었던 마가릿 대처는 보수 강경파였다. 그녀는 샌즈를 비롯한 북아일랜드 투사를 정치범이 아닌 테러범으로 다루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샌즈는 “한 마리 종달새를 가둘 수는 있어도 그 노래를 가둘 수는 없다”며 단식투쟁으로 맞선다.

한편 샌즈가 단식을 시작한지 5일 후 북아일랜드를 지역구로 한 하원의원이 사망한다. 이에 따라 열리게 된 보궐선거에서 복역 중이던 보비 샌즈가 단일후보로 선정된다. 영국 선거법은 수감된 죄수나 전과자의 입후보를 제한하지 않았다. 

이 허점을 파고든 샌즈의 직업란에는 ‘정치범’이라 적혀 있었다. 그를 ‘테러범’ 취급하던 영국 정부로서는 난처한 상황이었다. 그렇게 감옥에서 단식투쟁 중이던 보비 샌즈와 영국과의 통합을 찬성하는 상대 후보의 선거전이 치러졌다. 사실상 아일랜드인과 영국 정부의 대결이었다.

이 선거에서 샌즈는 3만492표를 득표하면서, 27살 북아일랜드 최연소 하원의원으로 당선된다. 이 결과에 영국 정부는 경악했으나, 당선 자체는 합법이었다. 그러나 보비 샌즈는 ‘의원’으로써 한 달을 채 넘기지 못하고, 단식 66일 만에 사망한다.   

■ 호스티스 출신 <오타 가즈미>

윤락여성이 국회의원 후보로 출마한다는 영화 <대한민국 헌법 제1조>의 실사판. 심지어 이겼다! 그 주인공은 바로 일본 중의원으로 당선된 민주당 ‘오타 가즈미‘.

26살 최연소 국회의원이기도 한 그녀는 고졸에 술집 호스티스 출신이다. 상대 후보는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합 공천을 받은 도쿄대 경제학부를 졸업한 통산성 엘리트 관료 출신이었다.

오타는 선거 초반부터 과거 ‘호스티스’였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 당시 ‘가짜 메일’ 사건으로 민주당 자체가 힘든 상황에서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과거’를 변명하거나 부인하지 않고 정면 돌파하는 방법을 택했다.

그녀는 “(호스티스 출신이라고) 사회에서 부정당해서는 안 된다. 직장여성 중에도 밤에 호스티스를 하는 사람도 많다. (호스티스들 중에는) 생활을 위해 잠 잘 시간을 아껴서 일하는 사람도 있다는 것을 국회에서 국민들에게 전하고 싶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진영도 “(호스티스로) 2개월 정도 일했다. (이 사실을) 감추지 않는다. 땅바닥을 기면서 살아온 여자다”라고 맞섰다.

오히려 이 호스티스 경력을 적극적으로 활용했다. 오타는 유세 차량을 거의 이용하지 않고, ‘서민’ 이미지로 유세전을 이끌었다. 한 달 동안 6800엔(5만500원)짜리 자전거를 탄 채 무려 374㎞를 달렸다. 또한 그녀는 특정 집단을 소외시켜선 안 된다며 “‘패자 제로(0)’의 사회를 만들자”고 호소했다. 그 결과 엘리트 출신 상대 후보를 제치고 당선되는 영광을 누렸다.

■ 프로레슬러 출신 <제시 벤투라>

제시 벤투라는 특수부대 출신 프로레슬러이자 정치인이다. 네이비씰 일원으로 베트남 전쟁에 참가하기도 했던 그는 제대 이후 프로레슬러로 활동했다. 건강에 이상이 생겨 은퇴한 뒤로는 WWF와 WCE에서 레슬링 해설자로 활약했다. 그 외 ‘프레데터1’ 등에 출연했으며, 라디오 DJ로도 활동했다.

그는 은퇴 이후 브루클린파크 시정에 끊임없이 이의를 제기하고, 비판을 퍼붓기 시작했다. 시민들은 그 발언에 통쾌해 하긴 했다. 하지만 1990년 그가 브루클린파크 시장 선거에 출마했을 때 당선되리라 생각하진 않았다. 그러나 벤투라는 18년 장기집권을 해 온 기존 시장을 거꾸러뜨리고 시장에 당선됐다.

벤투라의 질주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그는 1998년 미네소타 주지사 선거에 도전장을 던졌다. 프로레슬러 출신이 주지사 후보로 출마한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상대 후보들은 코웃음을 쳤다. 심지어 벤투라는 거대 정당인 공화당과 민주당이 아닌 제3의 개혁당 소속이었다.

시장 선거에서야 프로레슬링에서의 인기가 표로 이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한 주를 책임지는 지도자가 된다는 것은 입심과 지명도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이에 벤투라는 ‘인터넷’을 그만의 소통 방식으로 선택한다.

그는 홈페이지를 통해 지지자와 의견을 교환하는 그 당시 혁신적인 시도를 했다. 벤투라는 일방적인 정보제공이 아닌 온라인 공간을 통해 유권자를 움직이는 최초의 사례를 제시했다. 덕분에 그는 1998년부터 2002년까지 미네소타 주지사 임기를 지내는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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