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에 길게 드리워진
내 그림자
등에 난 혹을 보고 나서야
내가 낙타라는 걸 알았다
(...)
혹이 한쪽으로 기울어져 있음을 보고서야
무거운 생을 등에 지고
흔들리며 흔들리며
사막을 건너왔음을 알았다"

[공감신문] 류시화 시인의 시 '낙타의 생'의 일부이다. 나이가 들수록 우리네 생이 낙타의 생과 닮았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 두툼한 입술, 요염한 콧구멍, 그리고 슬픔에 잠긴 듯한 눈망울을 가진 짐승, 낙타는 등에 혹을 달 고양 분과 물을 저장하며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살아간다. 굵은 털이 몸을 덮어 추위와 더위를 이기고 발바닥은 넓적해서 모래와 눈에 잘 빠지지 않는다. 낙타는 주인에게 길들여져 주인을 섬기며 산다.

인간의 생이 낙타의 생과 닮은 이유는 인간이나 낙타나 자신의 생의 무게를 등에 지고 평생을 걸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그림자 하나로도 모래벌판의 완벽한 풍경화를 만들어주는 낙타, 목이 길지만 슬프지 않고 눈빛은 부드럽고 사막을 걷는 내내 눈은 늘 젖어 있다. 

마치 세상의 모든 슬픔을 저 혼자 안고 견디고 삭이며 한 생을 살아간다. 낙타는 현재에 충실하며 순종과 침묵으로 인내하며 주인을 섬기고 따른다. 등에 주인을 태우고 또 주인의 무거운 짐까지 지고 사막을 묵묵히 걷는 것을 자기의 숙명으로 받아들인다. 그것이 어쩌면 매일의 생의 무게를 지고 묵묵히 견뎌 내는 사람의 생과 같다는 것.

김한길의 소설 '낙타는 따로 울지 않는다'에 보면 낙타에 대해 이렇게 표현했다. “오아시스가 나타나도 낙타는 열광하지 않아. 물이 있으면 마시고 없으면 안 마시고 그리고 또 가는 거야. 뛰지도 않고 쉬지도 않고 무조건 가는 거야.” 그렇다.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현실을 받아들이며 나름대로 만족하며 살아가는 자세가 평범하게 만족을 추구하며 살아가는 인간의 보통의 생과 흡사하다. 물론 하늘 높이 떠있는 별을 욕망하며 다리가 찢어져라 달려가는 사람도 있지만.  

<사진출처: 네이버 코리아 맥블로그>

나무를 보아도 하늘을 보고 자라는 나무와 집안에서 천장을 보고 자라는 나무의 생은 다르다. 집안의 나무는 태풍이 불어도 끄덕하지 않지만 햇빛을 제대로 보지 않아 힘이 없다. 마당의 나무는 비바람을 맞아가며 더욱 깊이 뿌리를 내리기 위해 죽을힘을 다한다. 

뜨거운 햇빛이 내리쬐면 나무는 더 많은 물을 빨아들이며 짙은 초록을 색을 뽐낸다. 살기 위한 도전을 저 혼자 치열하게 하는 거다. 우리의 생도 마찬가지다. 신은 누구에게나 자기 그릇만큼 의 어깨를 짓누르는 무게를 안겨주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짐을 어깨에 실어 주었다. 그 무게를 스스로 인내하며 감당해내야 그 무게만큼의 행복을 안게 된다. 

더 많은 것을 욕망하거나 자신의 무게도 감당치 못해 내려놓거나 하면 쓰러지거나 흔들리게 된다. 지옥 같은 쓰나미를 만나는 것도 능력은 부족한데 하늘의 별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허영과 욕망의 덫이 늪에 빠지게 하고 스스로를 몰락시킨다. 분수를 지키며 욕망을 내려놓고 산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늘 겸손하게 내 것만 탐하며 그것에 맞게 계획하고 실천해간다면 평범한 행복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모든 것은 경험하면서 깨닫게 된다. 그것이 미래도 예측해보는 지혜가 된다. 

낙타에게도 목적지가 있듯 우리의 생은 반드시 목적지를 정해서 가야 한다. 그리고 낙타처럼 현재에 충실해야 한다. 바로 '지금''나와 함께 있는 사람' 그리고 현재 '내가 하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한다. 한걸음 두 걸음... 꾸준히 나아가며  고비사막을 넘는 낙타처럼 굴곡진 생의 고비를 넘어갈 수 있다. 사막을 지날 때도 낙타는 걸음을 멈추지 않는다. 낙타의 등에는 물이 담긴 생명의 주머니가 있기 때문이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희망이라는 생명의 주머니가 있기에 견디며 사는 거다. 

지금 내 운명에 만족을 하지 못한다면 그래서 운명을 확 바꾸고 싶다면 시간의 주인이 되어 내가 이끌어야 한다.행복하게 평탄하게 잘 사는 것에 대한 정확한 사용설명서는 없다. 그러나 나에게 맞는 생의 프로그램을 짜서 실천을 하면 된다. 작정하고 달려들어 노력하면 원하는 것을 반드시 얻게 된다. 노래를 잘하는 그대보다, 노래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대가 더 멋지다. 공부를 잘하는 그대보다, 공부를 잘하기 위해 노력하는 그대가 더 멋지다.

생은 수많은 계단으로 이루어졌다. 계단은 꿈이고 욕망이고 희망이다. 무거운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 본 이는 안다. 계단을 오르는 것이 얼마나 힘이 드는지. 그게 생이다. 따사로운 봄햇살이 찰랑거린다. 아무리 힘들어도 희망을 품고 살자. 모진 것들 앞에 당당하자. 멋지게 펼쳐질 내일을 생각하며 헤세의 멋진 말을 떠올리자. "살아라, 자라나라, 피어나라, 희망하라, 사랑하라, 기뻐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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