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밤하늘의 별을 보며 우주를 대한 무한한 호기심과 동경을 느껴본 적이 있는가? 오랜 시간 인류에게 있어서 우주란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였다. 오랜 세월 선망의 대상이었기 때문일까? 과거 냉전시대 ‘우주개발’은 미국과 소련의 국가 경쟁력을 과시하는 수단으로 이용되었다. 당시 기술경쟁의 중심에 위치하고 있었던 ‘우주왕복선’에 대해 알아보고자 한다.

우주는 예로부터 동경과 선망의 대상이었다.

■ 역사의 중심에서 뒤안길로
- 순탄치 않은 시작
아폴로 11호를 통해 성공적으로 ‘유인우주계획’을 마친 미국·NASA는 기존의 일회성의 성격을 가진 우주선에서 수십 수백 차례 지구와 우주를 왕복할 수 있는 차세대 우주선 제작 프로젝트를 준비하였다. 프로젝트의 결과로 탄생한 것이 모두 알고 있는 ‘우주왕복선(Space Shuttle)’이다. 미국·NASA는 이를 통해 우주에 정거장을 건설하려는 큰 계획을 실현하고자 했다.

우주왕복선 엔진의 모습

누구도 시작하지 않았던 영역이었기에 첫 시작부터 순탄하지 않았다. 제한된 예산 속에서 왕복선의 크기와 형상, 수용력, 추진력 확보 등 해결해야 할 문제가 산더미처럼 많았다. 이런 난제 속에서 모든 요건을 만족할 수는 없었지만, 끊임없는 노력을 통해 만들어진 결과물이 현재의 ‘우주왕복선’이다.

오랜 활강을 위한 삼각형의 날개와 화물과 사람을 싣기 위해 설계된 날렵하지 않은 몸, 대기권을 벗어날 추진력을 얻기 위해 장착된 거대한 외부 로켓이 최종 결과물이다.

좌측부터 차례대로 콜롬비아호, 챌린저호, 디스커버리호, 아틀란티스호, 엔데버호

- 우주왕복선의 성과
뚜렷한 역할 없이 예산을 낭비했다는 비난을 받아왔던 우주왕복선이 재조명 받기 시작하게 된 계기는 ‘국제우주정거장’ 건설이다. 우주정거장 건설에 필요한 자재들을 운송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로 재평가된 것이다. 우주왕복선은 우주정거장이 완성된 이후에도 보급품과 우주 실험을 위한 과학자 수송, ‘허블 우주망원경’ 건설 등 인류의 역사에 길이 남을 역사적인사건의 중심에서 제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이외에도 각종 인공위성을 수송하거나 회수하는 임무 등을 훌륭하게 완수했다.

좌 :국제우주정거장, 우 : 우주왕복선을 이용해 허블 우주망원경을 설치하는 모습

- 사소한 실수로 인해 벌어진 대참사
큰 성공 뒤에는 항상 실패라는 그림자가 있기 마련이다. 우주왕복선도 이를 피해갈 수는 없었다. 첫 번째 대 참사는 1986년 1월 28일에 ‘챌린저호(Challenger)’에서 일어났다. 당시 7명의 승무원을 태우고 10번째 임무를 수행하려던 챌린저호는 발사 후 73초 만에 공중분해 됐다. 당시 발사 장면을 생중계하고 있었기 때문에 미국 사회 내에서 충격이 컸다. 이 사건을 계기로 우주왕복선 운용은 2년 8개월 동안 중지되게 되고 각종 안전수칙, 장비 정비가 대폭 강화되었다.

챌린저호 대참사, 공중분해

당시 사고 원인으로는 외부 추진로켓의 연료 누출 방지로 설치된 고무링(O-Ring)의 부식으로 판명 났다. 부식된 고무링 사이로 내부의 고온·고압의 연료가 새어 나왔고 연이어 불이 붙어 대폭발로 이어졌다. 이로 인해 승무원 전원 사망이라는 끔찍한 결과를 가져왔다.

챌린저호 승무원 6인의 모습

두 번째 대형 참사는 ‘콜롬비아호(Columbia)’에서 일어났다. 2003년 2월 1일, 우주에서 임무를 마치고 대기권으로 진입하던 콜롬비아호는 많은 사람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공중분해 되고 만다. 사고 원인으로는 이륙 직후 외부 추진로켓에서 떨어져 나간 단열재 파편이 우주왕복선 왼쪽 날개를 강타해서 생긴 작은 구멍으로 판명 났다. 단열재가 떨어져나가는 현상은 흔한 현상이었기에 아무도 콜롬비아호에 닥쳐올 큰 비극을 예상하지 못했다. 대기권에 재진입 하던 도중 작은 구멍을 통해 엄청난 대기마찰열이 그대로 전해졌다. 우주왕복선 내부는 열을 이기지 못하고 녹아 내렸으며 불안해진 기체는 그대로 공중에서 폭발해버렸다.

콜롬비아호 승무원 7인의 모습

-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우주왕복선
두 차례의 대형 참사를 만들어낸 우주왕복선의 운명은 불 보듯 뻔했다. 사실 사고가 일어나기 이전부터 우주왕복선을 쏘아 올리는데 필요한 비용에 대한 비난들이 존재했다. 쏘아 올릴 때 비용도 천문학적인 비용을 동반했지만, 지구로 귀환할 때마다 시행되는 장비들의 교체·정비에도 수많은 지출이 동반되었다. 단순히 인공위성을 쏘아 올리는 1회성 우주선의 경우 발사 비용이 약 1억달러 수준인 데 반해, 우주왕복선은 발사 회당 평균 4억달러 이상의 비용이 사용되었다.

콜롬비아호 사고로부터 1년 뒤 조지 부시 대통령은 우주왕복선 운용을 2010년 정도에 종료하겠다고 발표했다. 정확히 2011년 7월. ‘아틀란티스호(Atlantis)’의 마지막 임무를 끝으로 인류의 역사에 한 획을 그었던 우주왕복선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게 되었다.

미국 스미소니언 항공우주박물관에 전시 중인 디스커버리호

■ 비운의 우주왕복선 소련의 ‘부란(Buran)’
흔히 우주왕복선을 떠올리면 미국과 NASA를 떠올린다. 하지만 미국과 더불어 당시 최고의 기술력을 지니고 있었던 소련도 우주왕복선을 개발했었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지만 부란(Buran = 눈보라)이라는 이름의 소련판 우주왕복선이 있다. 미국에 비해 늦게 제작된 까닭에 미국의 우주왕복선에 비해 뛰어난 성능을 지녔다고 한다. 미국의 우주왕복선과 비교하여 가장 큰 차이점은 부란에는 메인 엔진이 없고 그 역할을 ‘에네르기아’라고 불리는 외부 추진로켓이 도맡아 한다는 점이다. 대기권으로 재진입 할 때는 자세제어용 소형 로켓만 사용하였다고 한다. 이외에도 전천후 비행 능력과 자동 대기권 기술 적용 등 안전성과 성능 면에서 미국의 우주왕복선을 능가했다고 전해진다.

소련판 우주왕복선 '부란Buran'의 모습

뛰어난 성능을 보유하고 있었다고 전해지는 부란의 프로젝트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1호기를 시작으로 2호, 3호기를 제작하고 있던 도중 소련이 붕괴함에 따라 부란 프로젝트도 자연스럽게 소멸됐다. 남겨져 있는 기록은 1988년 단 1차례의 무인비행 기록이 전부다. 남겨져 있던 1호기도 2002년 격납고 지붕 붕괴에 따라 완전히 파괴되었다. 현재 남아 있는 기체는 대기권 테스트 기체 세 대만이 유일하다.

격납고 지붕 붕괴로 인해 파괴된 부란의 외부 추진로켓 '에네르기아'의 모습

■ 차세대 우주왕복선에 대한 전망
미국이 우주 개척에 대한 열망을 아주 버린 것은 아니다. 그중에서도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있다. 바로 미 공군의 X-37B다. 이 기체는 2010년부터 지금까지 네 차례 비밀리에 운용하였다. 최근에는 718일의 비행 끝에 무사히 귀환했다. X-37B는 기존 우주왕복선 대비 무게는 5톤 수준으로 4분의 1에 불과하고 길이는 8.8m로 작은 편에 속한다.

베일에 감춰진 미 공군의 X-37B

미 공군은 신뢰도가 높은 재사용 무인 우주 시험 플랫폼 기술을 검증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많은 전문가들은 X-37B가 군사적인 용도로 개발되는 기체로 추정했다. 비록 기존과는 다른 목적으로 이용될지도 모르지만, 재사용할 수 있는 우주선이라는 점에서는 그 명맥을 잇는다고 볼 수 있다. 아울러 민간에서도 ‘우주여행’을 목적으로 한 우주선 개발사업이 이루어지고 있으므로 우주왕복선에 대한 미래가 어둡다고만 할 수는 없다.

민간용 유인우주선 Crew Dragon, 2018년 민간인 2명을 달에 보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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