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상식적으로 쉽게 이해가 가지 않고 소위 ‘약 빨고 만든 듯’한 느낌을 주는 것을 보통 ‘병맛’이라 표현한다. 흔히 웹툰 작가 ‘귀귀’, 가수 ‘노라조’의 음악을 대표적 병맛 사례로 꼽는다.
예측 가능하겠지만, 병맛이란 단어는 한 네티즌이 올란 만화의 ‘병X 같은 맛’이라는 댓글로부터 파생됐다. 병맛은 경우에 따라 ‘웃기다’는 긍정적 의미로, ‘의미를 알 수 없다’는 부정적 의미로도 사용할 수 있다.
이 병맛이 서브컬쳐계 핵심 키워드로 등극한지도 꽤 지났다. 그 파급력 또한 상당해서, 젊은이들이 향유하는 문화 전반에 ‘병맛’이 새로운 열풍처럼 불고 있다. 그 열풍이 불어오는 곳에는 게임업계도 포함된다.
공주 구출, 전쟁, 좀비 생존 등 유사한 테마로 제작돼오던 게임업계에도 최근에는 ‘병맛’이라 표현할 수 있는 여러 게임들이 출시되고 있다. 그런 게임 속에는 비장한 테마 음악과 한 편의 영화처럼 다이나믹한 연출, 영광스러운 승리따위는 없다.
우리는 왜 게임을 하는가? 게임 속에서 원하는 무엇이든 돼 볼 수 있기 때문에? 그렇다면, 왜 축사에 묶인 ‘염소’가 되어 볼 수는 없는 걸까? 바쁜 아침 허기를 때워주는 ‘빵’은? 정말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이 되어볼 수도 있을까?
남들과 다른 시각으로 바라보면, 세상 무엇이든 게임이 될 수 있다. 심지어 업무 중간 중간 담배를 피우는 것도 게임으로 출시되고 있으니 말이다.
선량한 마을 주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마왕을 무찌르고, 공주를 구해내는 데 질렸는가? 그렇다면 공감포스팅팀이 소개하는 ‘병맛’ 게임들에 도전해보는 것은 어떨까?
■ 아빠와 아기의 한판 승부, ‘후즈 유어 대디’
이 게임은 멀티플레이로 즐기는 액션·대전 장르로 구분된다. 그러나 플레이 가능한 캐릭터는 ‘아빠’와 ‘아기’ 둘 뿐이다. 못된 생각은 하지 마시길, 지금 상상하고 있는 그런 종류의 게임은 아니다.
아빠와 아기 측(?) 플레이어의 목표는 다르다. 아기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온갖 방법으로 빠르게 ‘죽어야’ 승리한다. 아빠 플레이어는 아내가 돌아오기 전까지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막는 것이 목표다.
아하, 이제 조금 감이 잡히는가? ‘후즈 유어 대디(Whos your daddy)’는 평범한 가정집을 무대로 아빠와 아기가 서로 다른 목표를 위해 경쟁하는 게임이다.
앞서 게임의 유일한 ‘맵’이 평범한 가정집이라고 소개했는데, 게임을 하다보면 그 평범한 가정집에도 영유아에게 위협이 되는 물건과 가구들이 얼마나 많은지 순식간에 깨닫게 될 듯 싶다.
게임 내에 존재하는 무수한 오브젝트(아이템)들은 모두 아기 측 플레이어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도움이 된다. 다시 말하지만 아기 플레이어의 승리 목표는 ‘자살’이다.
아빠 플레이어는 아기가 중독 또는 질식사, 감전사, 익사하는 것을 막아야만 한다. 아기 플레이어가 획득한 위험한 아이템을 빼앗을 수도, 물건을 캐비넷에 숨기고 자물쇠로 잠궈 둘 수도 있다.
아기가 죽는다는 것을 다룬 점이 다소 막장스러워 보일 수 있다. 특히 서구권에서는 대부분의 캐릭터를 죽일 수 있을 정도로 자유도 높은 게임 속에서도 아동·영유아만은 죽일 수 없게 설정해놓는다. 그만큼 ‘영유아 살해’를 금기시 하고 있기 때문에 이런 콘셉트가 자칫 논란을 빚을 수 있었다.
그러나 오히려 게임은 ‘교육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대체 어디가?’라는 생각이 드는가? 하지만 집안에 아기에게 위험한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를 깨닫지 않았나?
실제로 이 게임처럼 아기들은 보이는 건 다 입에 넣고 보는 습성이 있다. 따라서 사망사고도 다수 발생하기 마련이다.
이 막장스러워 보이는 게임도 정작 플레이해보면 위험으로부터 아기를 보호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실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상당한 호평을 얻고 있다.
■ ‘달리기’는 사실 엄청나게 힘든 일이다, ‘QWOP’
제목에 있는 키보드 Q키, W키, O키, P키 네 개를 이용해 100미터를 달리는 플래시 게임이다. 게임은 머리나 몸통이 땅에 닿으면 실패한다.
이 게임도 설명만 들으면 ‘뭐야, 엄청 쉽네’라는 생각이 들지 모른다. 그러나 안일한 마음으로 게임을 시작했다간 순식간에 키보드에 ‘샷건’을 치게 될 것이다.
게임에서 누를 수 있는 키는 위에서 설명한 QWOP와 ‘재시작’ 기능을 하는 스페이스 바 뿐이다. 왜 재시작이 있는지는 게임 시작 1초만에 알게 된다.
Q와 W는 장딴지 근육, O와 P는 종아리 근육을 조작하는 데 쓰인다. 각각 왼쪽 다리와 오른쪽 다리다. 그러나 이 조작법으로는 한 걸음을 걷기조차 힘들다. 터무니없는 조작방법과 앞뒤로 쓰러지고 다리 찢기를 시도하는 캐릭터는 어처구니없는 웃음을 유발한다.
처음 시작하면 1미터를 넘기는 것이 관건이다. 하지만 이 게임의 핵심이자 묘미인 극악한 조작법 때문에 본의 아니게 뒤로든 앞으로든 자빠지기 일쑤. 심지어 ‘스트리트 파이터’ 속 ‘가일’에 빙의해 썸머쏠트 킥을 시전하는 것은 부지기수다.
몇 판, 아니 몇십 판쯤 하다 보면 ‘이걸 클리어할 수는 있나’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키를 누르는 타이밍과 조작 요령에 익숙해지면 상당히 수월해진다고 한다. 실제로 이 게임을 클리어하는 영상들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그런데 한 가지 반전이 있다. 사실 이 게임 속에 등장하는 운동종목은 100미터 달리기가 아니라는 것. 클리어한 플레이어들의 영상을 보면 100미터를 뛴 후 점프해 멀리뛰기를 해야 한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극악의 난이도로 기자는 진작 포기했으니 포스트 독자들은 한 번 도전해보시길. 난이도와 더불어 캐릭터의 괴악한 모션 때문에 도리어 입소문을 타고 인기를 얻었으며, 결국 아이폰 버전으로도 출시됐다고 한다.
■ 맛있게 구워져서 먹히기 위해… ‘아이 앰 브래드’
게임 제목은 ‘아이 앰 브래드(I am Bread)’. 브래드가 주인공 이름이냐고? 아니다. 주인공은 다름아닌 ‘빵’이다. 먹는 빵.
클리어 조건은 플레이어가 빵을 조작해 맛있게 구워지도록 해야 한다. 단순하게 들리는 조건이지만 막상 게임을 실행해보면 어렵기로 유명한 ‘다크소울’만큼 하드코어하다.
외과의사가 돼 수술을 하는 게임, ‘서전 시뮬레이터’를 알고 있는가? 같은 개발사에서 만든 게임이다. 다시 말해, 조작법부터가 이미 병맛이라는 거다.
플레이어는 사각형 빵의 네 귀퉁이를 움직이고 붙으면서 맵에 존재하는 다양한 열원들, 예를 들면 토스터기나 촛불 등을 찾아가야 한다. 물론 조작법 말고도 플레이어를 방해하는 요소들은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맵에는 앞서 소개한 토스터 등의 열원과 함께 더러운 바닥, 물, 벌레 등등이 있다. 만약 플레이어(빵)가 이것들에 닿으면 ‘에디빌리티(Edibility)’, 즉 먹을 수 있는 부분이 깎여나간다. 일반적인 게임 속의 ‘체력 게이지’를 생각하면 된다.
그다지 중요한 부분은 아니지만 이 게임은 서전 시뮬레이터의 프리퀄이라고 한다. 스토리를 파해쳐보면 마냥 병맛 코믹 게임인 것은 아니다.
집 주인 밥 머튼은 실직과 이혼으로 살아갈 의지를 잃어버린 어느 날부터 집을 비운 뒤 돌아오면 저절로 빵이 구워져있고 집은 난장판이 돼 있는 것을 발견한다. 물론 우리의 플레이어들이 저지른 짓이다.
스테이지를 진행할수록 빵이 저절로 구워진다는 사실을 깨닫고 미쳐가는 밥 머튼을 볼 수 있다. 이후의 얘기는 스포일러지만, 모종의 이유로 밥은 사고에 휘말리게 된다.
이후 서전 시뮬레이터의 환자 이름 중 ‘밥 머튼’이 등장하게 된다. 두 게임이 같은 세계관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것. 개발사의 빅-픽쳐가 돋보이는 전개다.
■ 헬조선에서 취준생이 살아남는 법… ‘내꿈은 정규직’
몇 년 전 스마트폰 게임으로 출시돼 크게 인기를 끌었던 ‘살아남아라! 개복치!’와 상당히 흡사한 게임이다. 다만 게임의 테마는 쉽게 죽는 개복치를 키우는 것이 아니라, 쉽게 퇴사당하는 취준생을 승진시키는 것이다.
게임의 시작은 다름 아닌 면접이다. 그러나 플레이어들은 시작부터 수차례 면접 탈락을 겪게 될 것. 기자는 최초로 게임을 실행하고 약 8차례동안 계속해서 면접을 탈락했다. ‘혹시 뭘 잘못했나?’ 싶을 수 있지만 그런 건 아니다. 생존 확률이 낮아서다.
거듭 면접 탈락을 겪다 보면 생존 확률이 상당히 올라간다. 면접도 몇 차례 겪어봐야 잘 볼 수 있다는 현실을 반영한 듯 싶다. 그렇게 생존 확률이 올라가면 마침내 ‘인턴’으로 취직할 수 있게 된다. 진짜 게임은 그 때부터 시작된다.
사무실에는 계약직, 정규직, 대리부터 과장, 차장, 부사장 등 다양한 직급의 상사들이 있다. 그리고 플레이어는 이들 중 막내로 입사해 이들이 지시하는 업무를 수행해야 한다.
그런데 그들이 맡기는 업무량이 만만치 않다. 밀려드는 업무에 플레이어의 책상에는 어느새 ‘서류탑’이 쌓인다. 캐릭터를 탭해 더 빠른 속도로 일을 할 수 있지만 체력이 깎인다. 물론 체력이 많이 떨어지면 병원에 입원해 눈물을 머금고 ‘자진 퇴사’를 하게 된다.
적당히 완급조절을 하더라도 좀처럼 인턴 딱지를 떼기 쉽지 않다. 일이 너무 많아지면 더 이상 일거리를 받을 수 없는데, 그래도 권고사직. 일이 너무 없어도 구조조정으로 권고사직이다.
같은 사유로 퇴사를 거듭하면 그 사유로 퇴사당할 확률도 점점 내려간다. 또한 수당이나 알바(투잡)로 돈을 모아 업무속도, 화술, 승진확률 등을 올릴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런다고 해서 게임이 쉬워지지는 않는다. 현실처럼.
요즘은 ‘헬조선’이라는 말이 들려오지 않은 지 꽤 됐다고 한다. 정권 교체로 많은 부분이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아직도 여전히 많은 부분에서 개선이 필요하고, 특히 근로자 노동환경이나 고용 문제에 관해서는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한 상황이다.
아직 기자는 게임을 초반부밖에 플레이하지 못했는데, 벌써부터 마음이 심란해진다. 이 게임은 어찌 보면 이 같은 현실을 잘 반영했기에 주목을 받고 있는지 모른다.
실제로 개발자도 게임 속 주인공처럼 수차례 퇴사를 당한 경험이 있다고 한다. 그 경험을 토대로 만들어진 게임이니 현실 반영이 되지 않을 수가 없다.
개발자가 직접 겪은 인턴 경험을 갈아 넣은 이 게임이 기성세대들에게 ‘노오력’만으로는 안 되는 것도 있다는 것을 깨우쳐줄 수 있을까? 기자가 이 게임을 한 문장으로 평가하자면, ‘인턴으로 맨든 게임… 이건 굉장히 귀한 게임이네요’다.
■ 뻔한 게임과의 차별화, 조금 다른 시선의 게임들
우리는 게임 속에서 선량한 마을 주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마왕을 무찌르고, 전쟁 지휘관이 돼 적진을 휩쓸거나 혹은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외계인과 처절한 싸움을 벌인다.
대체로 게임 속에는 이러한 멋들어진 ‘명분’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다수의 게임들은 플레이어를 전설의 용사, 전장의 군인, 혹은 좀비로 가득 찬 세상 속 유일한 생존자로 만들어준다.
그런데, 그처럼 그럴듯한 명분을 갖다 붙이지 않으면 재밌는 게임을 만들 수 없는 걸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조금은 시대에 뒤떨어진 감각을 지닌 걸지 모르겠다. 최근 출시되고 있는 게임들은 그런 게임에 대한 선입견을 보기좋게 깨뜨려 호응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그 게임 속에는 가슴을 뛰게 하는 테마음악도, 한 편의 영화처럼 다이나믹한 연출도 없다. 그저 가벼운 마음으로 뛰어들고 ‘뭐야- 바보같아’라며 깔깔 웃게 만드는 것 기발한 요소들이 들어있을 뿐이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의 게임들은 때로는 어처구니가 없기도 하고, 극악의 난이도로 열을 돋우기도 하지만 기발함과 참신함을 매력으로 대중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그리고 막상 게임을 해보면 ‘의외로 재밌다’는 점이 더더욱 어처구니가 없다. 그래서, 앞으로 더 많은 ‘병맛’ 게임들이 나올 것이라는 확신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