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랑은 꿈이다가 생시이다가 그 전부이다가 마침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는 일이다. (허영자 시, <그대의 별이 되어> 중에서)

[공감신문] 암스테르담! 이 도시의 이름을 들었을 때 머릿속에 그려지는 이미지는 어딘지 모르게 다채롭다. 단지 겨우 ‘튤립’ 같은 것 때문만이 아니다. 그 도시엔 왠지 모를 다양한 표정들까지도 존재할 것 같아서다. 수많은 세계의 유명 DJ가 네덜란드 출신이며, 전 세계적으로 사랑받는 맥주인 하이네켄의 본고장, 합법화된 대마초 카페, 그리고 다양하게 사랑을 즐기는 모습들까지도. 아, 이 나라에선 성매매 역시 합법이다. 

암스테르담 섹스 박물관에는 쇼윈도에 앉아 ‘콜걸’의 기분을 체험해 볼 수 있는 섹션이 마련되어 있다고 한다. 그렇다. 성매매를 법적으로 뿐만 아니라, 윤리적으로 하나의 직업으로 인정한다는 얘기다. 그러니 그곳의 밤 풍경은 이 곳 서울보단 다채로울 것임이 분명치 않은가! 

(네덜란드 영화, )

그래서 궁금해졌다. 왜 수많은 유럽 국가들 중 이 나라가 유독, 인간적인 욕망에 관대한 걸까. 역시 세상 모든 일에는 이유가 있었다. 네덜란드는 어쩌면, 인간이 꾸며놓은 듯한 에덴동산에서 탈출(?)한 하와들의 집단에서부터 번영했을 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들의 관용정신은 이렇게 출발한다. 

16세기, 네덜란드는 오래전부터 스페인의 영역 아래 있었다. 가톨릭의 수호자를 자처했던 나라 스페인의 펠리페 2세는 자신이 통치하는 모든 국가를 가톨릭으로 단일화 하길 원했고, 네덜란드 사람들은 종교적 자유를 가지고 싶었다. 이때 확산된 것이 바로 ‘칼뱅주의’였다. 우리가 알다시피 칼뱅주의는 기존 가톨릭교회들을 반박하고 저항하며 출발했다. 

결국 네덜란드는 스페인에 저항하며 긴 독립전쟁을 치루고, 마침내 승리하게 된다. 긴 투쟁이었던 만큼 그들의 열매는 꽤나 달콤했다.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의미에서 모든 자유를 획득하게 된다. 이후 네덜란드에는 각국의 고급 인력들이 몰려들었고 이 나라는 이주민들을 수용하여 해양 등의 산업 중심지로 성장한다. 세계 최초의 주식회사와 증권 거래소가 생겼던 것도 바로 네덜란드다. 

이런 역사를 거치며 계승된 그들의 관용정신은, 마치 우리의 일제강점기처럼 절대 잊히기 어려운 것이며 그 역사가 상당히 길다. 이들이 서로의 다른 가치를 인정하는 것은 뼛속부터라는 사실. 스페인의 기존 교회들이 만든 에덴동산에서 탈출한 아담과 하와들이 멋들어지게 승리한 것이다!  

아마도 그들에게 이렇게나 단단한 투쟁이 가능했던 이유는, 그 저항의 출발지가 ‘종교’였기 때문은 아닐까. 이것은 유태인들에게서도 비춰지는 모습들이다. 전 세계적으로 각 분야에서 성공들 거두고 있는 유태인들에게는 남다른 교육법들이 있다고 한다. 어느 다큐멘터리에서 유태인들은 아침마다 꼭 ‘가족식사’를 하는 것이 전통이라 소개했었다. 당시 욕심 많던 서울의 부모들은 비몽사몽인 자식을 깨워 식탁에 앉혔었다. 

그러나 거기서 포인트는 ‘가족식사’가 아니었다. 아침 식사든, 가족식사든, 저녁 식사든, 브런치든, 중요한 것은 ‘유태인들의 전통 계승’방식 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스스로 유태인이며, 자신들의 역사와 전통을 인지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을 실천하고 계승하며 결합되어 진 것이다. 함께하는 식사도 그러한 측면의 활동이다. 이게 바로 유태인들의 교육법의 핵심이다. 

종교가 인간, 사회 그리고 국가의 흥망성쇠에 대단한 영향을 끼쳤던 것은 아주 오래전부터였다. 인간들은 비를 원했고, 맹수에게 물려죽지 않기를 원하면서 보이지 않는 누군가에게 간절히 바래왔다. 그렇게 원초적인 목적의 종교들은 인간의 뇌가 커가면서 쇠퇴한 반면, 나름의 교리를 가진 종교들은 계승되어졌다. 

세상엔 많은 복잡한 교리들이 존재하지만, 공통적인 것은 착한 일을 하면 보상(천국)을 받고, 나쁜 짓을 하면 벌을 받는 다는 대단히 단순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믿음 아래 있는 사람들을 비교적 더 잘 믿게 된다. 그는 나와 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 혹은 그가 절에 다니는 사람, 이라서. 

이런 믿음이 누군가에게 더 잘 마음을 열게 만드는 것이다. 나 역시도 낯선 이들에게는 잘 웃어주지 않으면서, 이상하게 교회에서 만난 이들에게는 친절한 미소를 건네게 된다. 마음속에 그러한 믿음이 있는 것이다, 저이는 나와 같은 생각을 한다고. 

BBC의 어느 다큐멘터리를 보니, 단체 생활을 하는 동물일수록 지능지수가 높다고 하더라. 그것은 생물학적으로 근거가 있는 얘기였다. 사자의 경우 보통 30마리가 무리지어 생활을 하는 반면, 인간과 생물학적으로 유사하다는 침팬지는 최대 120마리까지 무리 생활이 가능하다고한다. 지능 지수가 높은 생물체 일수록 무리가 크다는 얘기인데, 이것은 두뇌의 대뇌피질 부피와 인지 가능한 공동체의 규모가 유사해서 그러하다. 이것을 ‘던바의 숫자’라고 한다. 

돌고래의 경우는 좀 그 형태가 다양한데, 쇠돌고래의 경우 90%가 단독이나 가족 위주로 생활하는 반면, 캐나다 밴쿠버에 7년간 발견된 한 범고래 무리는 무려 200마리였다고 한다! 물론 그들은 서로를 식별해낸다. 돌고래들은 저들끼리의 지역 방언도 있을뿐더러, 사물을 지칭하는 용어들도 사용한다. 

그들은 꽤나 은밀(?)하고도 쾌락적인 취미를 즐긴다. 동물학자인 롭필리는, “돌고래들이 매우 약하고 섬세하게 복어를 깨문 뒤에 그 독에 의한 효과를 즐긴다. 그들은 한 마리의 복어가 죽지 않도록 신중하게 살살 물어 그 복어를 20-30분에 걸쳐 단체로 돌아가며 즐긴다.”고 한다! 즉, 돌고래의 취미가 환각파티, 즉 ‘마약’이라는 놀라운 사실! 마치 인간들이 극한의 쾌락을 맛보기 위하여 마약에 취하듯이- 돌고래들도 해저에서 그런 파티를 즐기고 있다는 거다. 

우리는 마약을 해보지 않았어도, 각종 매체들을 통해 환각이 우리에게 주는 효과에 대해 어렴풋이 알고 있다. 헛보일 환幻, 깨달을 각覺. 국어사전엔, ‘감각 기관을 자극하는 외부 자극이 없는데도 마치 어떤 사물이 있는 것처럼 지각함.’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보이지 않는 것을 지각한다, 라. ‘약쟁이’들끼리 ‘약 친구’로서 그 유대관계를 끈끈히 하듯, 돌고래들 역시 그러해온 것이다. ‘보이지 않는 것을 함께 지각한다.’ 

이것은 인간들의 유대관계에서도 그 영향력이 대단했다. 사랑, 우정, 질투, 미움, 그리고 신. 결국 두뇌 대뇌피질이 발달한 동물들일수록 보이지 않는 것에 자극받으며, 믿고, 상상하고 그 관계들을 이어온 것이다. 이것이 두뇌가 발달한 이들의 습성이다. 심지어 이러한 ‘믿음’이 핍박받으면 받을수록 유대감이 단단해지더라. 봐라, 사회에서 용납되지 않는 사랑일수록 그들의 열정은 불타오르지 아니하던가! 

(거울 속에서 자신의 모습을 식별하는 돌고래)

이러한 단단함을 증폭시켜주는 행위 중 하나가 바로 섹스다. 섹스를 할 때 두 사람에게는 옥시토신 호르몬이 분비된다. 이것은 임신 중 모체에게서 태아에게 분비되는 유대감 호르몬이기도 하다. 두 사람이 잦은 섹스를 할 경우, (사랑은 모르겠지만) 끈끈한 유대감으로 결속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아 물론, 옥시토신이 활발히 분비될 만큼 괜찮은 섹스이거나 그 상대가 오롯이 한 사람이어야 하겠지만! 

모든 종교들이 인류의 발전을 위해서만 역할을 수행해온 것은 아니다. 가끔 사이비 종교에 열광하는 광신도들을 보면 그렇지 않은가. 자신은 물론이요, 가족과 가까운 관계들 역시 파멸 속으로 몰고 가기도 한다. 그 결속력이 대단한 것은 우리의 두터운 대뇌피질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일부 종교들에서는 단체 내에서 결속력을 다지기 위하여 섹스를 하기도 한다. 

이들은 주변의 핍박을 받으면 받을수록 그 믿음이 단단해질 수밖에 없다. ‘이 신앙이 옳은가’ 혼란스러울 때, 그들은 상처와 배신의 순간을 회피하고자한다. 그래서 그 보이지 않는 신을 스스로 더욱 합리화 시키고 구체적으로 상상해서 믿어버린다. 높고 단단하고 견고하며, 허물어뜨리면 치울 게 너무 많은 성곽이 쌓여버리는 것이다. 

뇌에는 대뇌피질만 있는 것이 아니다. 상황을 판단하거나 인지하는 능력 역시, 상상력만큼이나 중요하지 않을까. 당신이 믿는 진실이 사실에 의한 것인지- 똥인지 된장인지 먹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어야 덜 수고롭지 않을까 싶다. 

사실 나는 어딘가에 속한다는 것이 어색한 인간이다. 단체 생활을 잘하지도 못하겠고, 거의 일도 혼자 작업실에서 하며, 영화나 밥 역시 혼자 혹은 소수로 즐기는 걸 좋아한다. 나는 대뇌피질이 엄청 얇은 종류의 인간일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얇은 대뇌피질의 부피를 겨우 약간의 사람들에게 집중할 생각이다. 

겨우 한 두 사람에서도, 보이지 않는 엄청 대단한 무언가를 느낄 수가 있더라. 그것은 아마도 구체적으로 상상하는 것을 즐겼던 나의 습성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지 혼자서 마구마구 커진 보랏빛 상상력들은 보란 듯이 깨어졌고,  나는 상처받아왔으며 그러다보니 나의 대뇌피질 역시도 점점 얇아지는 기분이다. 정 주지 않을 테야, 기대하지 않을 테야, 믿지 않을 테야, 사랑하지 않을 테야 ....! 

구슬을 문지르듯 나의 대뇌피질에게 주문을 걸어 본다. 그러나 그렇게 타이를수록- 마치 선악과를 따먹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나던 하와처럼, 오늘도 그렇게 반항하며 개혁을 시도한다. 
그래, 보고 싶은 마음 / 호수만 하니 / 눈 감을 밖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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