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유행은 돌고 돈다’는 말이 있다.

살아온 날에 비해 살아갈 날들이 한참 남은 젊은 층에게는 그리 와 닿지 않는 말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어느덧 어린 시절 본 것들이 재차 유행하는 것을 목도할 수 있는 나이의 사람들 대부분은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과거와 현재 시점을 교차로 등장시킨 영화도 많다. [써니 영화 장면]

한 때 유행했던 것들은 언젠가 다시 주목받게 마련이다.

유행과 관련된 말 중에, ‘10년 전의 유행은 촌스럽지만 20년 전의 유행은 신선하다’는 말도 있다. 과거의 유행이 다시금 트렌드로 떠오르기 위해서는 한 20년쯤은 묵어야 한다는 의미겠다.

와… 지금 보니까 되게…(말잇못)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이 말도 생각해보면 일리가 있다. 2007년의 트렌드는 요즘 다시 유행하기엔 상당히 촌스러우니까.

왜 20년일까? 10년으로는 조금 짧은 건가? 여기에 대해서는 몇 가지 해석이 있는데, 그 중 기자가 공감한 견해를 소개해볼까 한다.

 

■ 복고 열풍이 유난히 뜨거운 요즘

우선, 10년이란 시간은 유행이 사회 전체에서 완전히 사라지기엔 짧다는 의견이다.

한 십 수년쯤 전 대유행했던 저 'Be The Reds!' 티셔츠, 지금 입을 수 있겠는가?

한때 유행했던 것들은 저마다의 황금기를 보내고 점차 퇴색되는데, 고작 10년 가지고는 그 영향력이 완전히 사라지긴 힘들다는 얘기다. 크든 작든 그것들은 살아남아 나름의 영향을 미친다.

또한 20년쯤 전이라는 시간이 폭넓은 세대를 아우를만한 시간이란 말도 있다.

청춘, 푸른 봄이라! 참 싱그러운 말이다.

30대나 40대 이상인 사람들에게 ‘20년 전’은, 인생 가장 화려했을 10대~20대, 내지는 30대까지의 청춘기를 회상케 한다. 그런가하면 10대나 20대는 본인들이 접해보지 못했을 문화들이 신선하게 느껴질 수 있겠다.

앞서도 설명했듯 유행이란 돌고 도는 법이기에, 그리고 과거에는 그보다 더 먼 과거에 대한 ‘복고 열풍’이 있었다. 그런데 어째 요즘은 과거 언젠가 불었던 복고열풍에 비해 그 열기가 훨씬 더 뜨거운 것 같다. 체감상 그렇다는 얘기다.

90년대 서울 시내의 모습. [인스티즈 캡쳐]

올해는 2017년이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이면 1997년이다. 요즘 유행하는 복고풍 콘텐츠, 제품들은 90년대 즈음의 것들이라 볼 수 있겠다.

 

■ 복고 열풍의 주역들

1990년대, 그 시절 X세대는 어느덧 30, 40대가 되었다. 당시 용돈을 모아 좋아하는 아이돌 가수들의 음반을 사던 세대들이 이제는 주요 소비자 층으로 성장해 황금시기를 추억하며 90년대 복고 열기를 고조시키는 일등공신이 됐다.

30대~40대, 50대가 추억하는, 그리고 10대, 20대에게 신선한 90년대 트렌드 중 최근 문화산업계를 뜨겁게 달구는 것들은 무엇이 있을까?

 

-토토가의 성공과 1세대 아이돌의 컴백

90년대 가수들을 다시 만나볼 기회를 준, MBC 무한도전 '토토가'. [MBC 무한도전 방송 장면]

지난 2014년, MBC 인기 예능 프로그램 ‘무한도전’이 특별기획의 형식으로 90년대 인기 가수들을 한 자리에 모았다. 짧게는 십 수년, 길게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지났지만 그들의 무대는 여전히 뜨거웠다.

43세라는 나이를 무색케 하는 터보 김정남의 파워풀한 댄스, 아무나 따라 부를 수 없는 ‘롱다리 미녀’ 김현정의 명곡들에, 그때 그 시절 패션으로 갖춰 입은 관객들도 폭발적으로 호응했다.

이분들, 환장한답니다. [MBC 무한도전 방송 장면]

방영 이후에도 각종 인터넷 게시판들은 ‘토토가’의 열기로 뜨거웠다. 출연하지 못한 가수에 대한 아쉬움, 좋아했던 가수의 새로운 모습에 대한 감상평부터 TV로 무대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댓글까지…

과장 조금 보태, 당시 TV를 봤던 시청자들은 무한도전 제작진에게 감사까지 표현하며 추억에 들뜬 토요일 밤을 보냈다.

최근 재결합해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왕년의 아이돌 젝스키스. [나무위키 웹사이트 캡쳐]

그런가하면 지난 2000년 공식 해체를 선언했던 젝스키스도 무한도전의 성공적 반응에 힘입어 16년 만에 컴백했다. 같은 해에는 1세대 걸그룹 ‘S.E.S’도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리고 그들을 추억하는 이들 뿐 아니라 젊은 세대들에게까지 긍정적인 반응을 얻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듣고 있자니, 내 일도 아닌데 괜시리 마음이 흐뭇해진다.

 

-승승장구하는 응답하라 시리즈

흔히 90년대를 물질적 풍요가 꼭짓점을 찍은 시기라고 평한다. IMF 이전에는 경기가 계속해서 좋아지고, 저마다 희망을 품을 수 있었던 시기였단다.

응답하라 시리즈의 성공적인 개막을 알린 작품, 일명 '응칠'. [tvN 응답하라 1997 스틸 이미지]

당시 젊은이들은 낡고 비효율적인 것들을 깨부수고, 저마다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었다. 90년대는, 대담하고 과감하며 뭐든 할 수 있던 ‘X세대’의 탄생 시기였다.

지난 2012년,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97’은 90년대 학창시절을 보냈던 많은 이들에게 커다란 울림을 전해줬다. 특히 과거 ‘아이돌 빠순이’였던 서른 셋 ‘성시원’이라는 캐릭터를 주인공으로 내세우며 왕년에 방송국 앞에서 대기 좀 타봤던 누님들을 공감시키고, 추억을 자극했다.

90년대 유행부터 크고 작은 사건들까지 전반적으로 다뤘던 '응사'. [tvN 응답하라 1994 방송 장면]

그런가하면 2013년 후속작 ‘응답하라 1994’에서는 작중 1997년 한국 사회를 강타한 외환위기를 직접적으로 그려냈다. 당시 직접 고통을 겪어봤던 세대들은 그 때에 대한 기억을 결코 회자하고 싶지 않았겠지만, ‘응사’는 작품을 통해 그들에게 나직한 위로의 메시지를 건넸다.

저 왕방울만한 안경도 드라마 방영 이후 핫 아이템으로 등극했다. [tvN 응답하라 1988 방송 장면]

지난 2015년에는 시리즈 최신작 ‘응답하라 1988’이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그간 지적받았던 ‘남편 찾기’보다는 따뜻한 가족애, 이웃사촌간의 정을 잘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다시금 ‘쌍팔년도’에 대한 복고열풍을 불러일으켰다.

응답하라 시리즈는 특히 시대적 배경 고증, 당시 유행가의 활용 등에 공들였다. 그 결과 1997년, 1994년, 1988년을 살아온 세대들은 물론이고 작중 주인공과 비슷한 또래일 젊은이들에게까지 상당한 파급력을 미쳤다. 어찌 보면 토토가 이전에 이미 응답하라 시리즈가 90년대 복고열풍의 신호탄을 쐈다고 볼 수도 있겠다.

 

-IT와의 결합, 레트로 디자인 제품들

최근 IT업계 이슈들을 살펴보고 있자면 참 감개가 무량해질 때가 있다. 어릴 적 16색 크래파스로 그렸었던 ‘날으는 자동차’가 나와 시험 비행을 한다질 않나, AI가 세계 최정상 바둑기사를 줄줄이 격파하고 이제는 스타크래프트 종목에 도전한다질 않나…

잔 디테일을 싹 배제한 심플한 디자인의 제품이 전자기기 트렌드다. [맥프로 / 애플 웹사이트 캡쳐]

‘과거로의 회귀’라는 점에서 복고란 단어는 IT업계와 가장 거리가 멀 것만 같다. 특히 최첨단 디지털 디바이스들은 갈수록 미래지향적 디자인을 선보이고 있다.

타자기의 옷을 입은 키보드. 사용은 상당히 불편하다고 한다.

그런 와중에도 IT와 복고열풍을 결합한 제품들이 등장하고 있다니 놀랄 따름이다. 공감포스팅 팀이 앞서 소개한 제품들이 대표적 사례다.

최근 출시되는 전자제품 중 일부는, 그때 그 시절 투박하고 불편했던 모습을 하고 있다. 물론 기능까지 ‘복고’했다간 단숨에 단종될 수 있겠지만 말이다.

 

-복고 패션

큼지막한 브랜드 로고가 박힌 티셔츠, 와이드 진, 왕잠자리 안경 등 최근 길거리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패션 아이템들도 다 한때 유행했던, 이른바 옛날 스타일이다.

경기가 안 좋으면 꽃무늬 등 화려한 패턴이나 복고 스타일이 유행한단 말이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두에 언급했듯, 만약 이 아이템들을 몇 년 전에 입었다간 ‘촌스럽다’는 소릴 듣기 딱 좋았을 것. 하지만 10년과 20년이라는 차이는 참 애매한가보다. 더 시간이 지나고 나니, 이 아이템들이 다시 트렌드로 자리를 잡게 됐다.

 

■ 독특해서? ‘아날로그에 목말라 있어서’

MBC 김영희 PD는 “1990년대는 실험적이고 독창적인 사람들이 활동하기 좋은 분위기였고 대중문화의 춘추전국시대였다”며, “90년대 문화는 최근 문화와 비교해도 뒤떨어지지 않는다”고 말한 적이 있단다.

90년대 후반이나 2000년대 이후에 태어난 세대들은 TV나 영화로만 접해봤던 90년대를 궁금해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복고 열풍이 그 ‘춘추전국시대’를 경험해 보지 못했을 이들까지 끌어들이고 있다는 점은 특이하다. 90년대 후반에는 태어나지도 않았을 10대, 그때 당시에는 꼼지락거리며 뒤집기나 하고 있었을 20대 초반 젊은이들까지 이 트렌드에 관심 갖는 이유는 뭘까?

90년대 대중문화가 청년층에게도 어필할 수 있는 것은 단순히 독특해서가 아니다. 독특한 분위기라면야, 한국 문화산업계 흑역사(…)랄 수 있는 세기말 스타일도 있겠다. 하지만 그건…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달리 보일지 모르겠지만, 당시 모 광고 캐치프레이즈 말마따나 ‘이 세상 스타일이 아니다.’ 웩.

고달픈 젊은 세대들 중에는 사람냄새나는 90년대 대중문화에 대한 동경을 품는 이들도 분명 있다.

현 시대를 사는 청년층들은 고달프다. 낭만 넘쳐야 할 20대는 사랑조차 하기 쉽지 않은 요즘이다. 그런가하면 10대 학생들은 숨 돌릴 틈 없이 공부에 전념해야 한다. 명문대 진학을 위해 방과 후에도 학원을 전전한다.

힘겨운 시기를 살아가는 젊은이들은 사람냄새 나는 무언가를 찾으려 한단다. 그런 그들에게 90년대 대중문화는 ‘신대륙’과 마찬가지다.

90년대를 지향하는 복고 문화의 밑바탕에는 '아날로그 감성 속의 인간미' 추구가 있을 지 모르겠다.

사람은 누구나 좋았던 시절에 대한 추억에서 위안을 찾으려한다. 복고 문화에서는 요즘 대중문화에서 느낄 수 없는 아날로그 감성, 인간미를 느낄 수 있다. 조금은 불편해도 괜찮았던 그런 소소한 부분에서 말이다.

팍팍하고 건조한 디지털 시대를 살고 있는 현대인들은 아날로그에 목말라있다. 그리고 당분간은 그 아날로그 감성을 찾으려는 흐름, 복고 열풍이 지속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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