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쓸데없는 것들이 주는 즐거움에 대하여"

 

[공감신문] ‘효율적’이란 말은 들인 노력이나 돈, 시간에 비해 결과가 컸을 때 쓴다. 우린 누구나 그렇게 살기를 원하고, 그렇게 사는 게 슬기롭다고 교육받아왔었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라, 효율적으로 행동하라, 효율적으로 생산하라.

그런데 여기서 잠깐, 왜 효율적이어야 하는가? 그건 우리가 가진 돈과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학창시절, 효율적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몸소 배웠다. 학기당 두 번, 시험 치러야 할 과목의 수가 10가지가 넘었었다.

이상한 나라의 엘리스

어쩔 수 없이 국.영.수에 비중을 두고 암기 과목은 요점정리를 보며 공부를 할 수 밖에(공부를 못했던 나는 그랬다). 그땐 효율적으로 사는 게 맞았다. 할 게 너무도 많았으니까! 근데 효율적으로 사는 게 슬기로운 방법일진 몰라도 정말 피곤하다는 것이다! 시간은 매 순간 제일 부지런하고 제일 빠르다만- 때로는 ‘난 가진 게 시간뿐인데?’라는 생각이 들 때도 많다.

어떨 땐 세상 제일 냉정하고도 또 어떨 때에는 제일 인자한 것이 시간 같다. 그런 시간을 어떻게 쓸 것인가? 효율적으로 쓰는 게 잘 쓰는 거라고? 음, 내 생각에 효율적으로 시간을 쓰는 건, 그러니까 그렇게 사는 건- 적어도 예술적이지는 않다고 말하고 싶다. 아 물론, 예술적인 게 좋을 지 나쁠 지는 읽어보고 독자 여러분이 판단하시길.

누군가 ‘예술가는 사는 데에 정말 쓸데없는 것들을 생산해내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럼 예술은 쓸데없는 거라는 얘기인데… 그래 어쩌면 그럴지도 모른다. 누구는 ‘Art is Here & Now!’라고 했다. 지금, 여기! 라는 거다. 지금, 여기! 이게 바로 예술이다. 효율적인 삶은 ‘지금, 여기!’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과정은 짧을수록 좋으며 그에 ‘따른’, 아니 그에 ‘비한’ 결과가 더 중요할 뿐이다. 그럼 과정의 시간들은? 그건 당신의 삶, 당신의 시간이 아니야? 누군가에게 빌려 쓴 시간일 리 없잖아. 주안점에서 과정을 밀쳐두고 결과만을 보는 삶은, 또 다른 결과들을 갈망하게 만든다.

나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한다. 사실 본집에서 나와 친구와 둘이 자취를 하는 내가, 요리를 해먹는 것은 결코 효율적인 행위가 아닐지 모른다. 재료를 사놓고 다 소진시키지도 못할 것이며, 재료를 사러 갈 때 드는 차비, 나의 노동력, 시간, 설거지, 가스 비, 물… 어찌 보면 사먹는 게 더 싸게, 손쉽게, 빠르게 먹힐지도 모른다. 그러나 난 요리를 계속 즐길 생각이다.

우선 난 요리할 때 몹시 행복하다. 요리는 나에게 몰입의 기쁨을 준다. ㄱㄴㄷㄹㅁㅂㅅㅇ… 한글들이 내 손에서 어떠한 표정과 생각을 담은 문장이 되어지듯, 제각기 모양과 색, 향을 가진 식재료들이 내 손에서 변해가는 것을 보는 게 좋다. 물론 내가 좋아하는 재료는 더 많이, 싫어하는 것은 넣지 않는다. 요리를 할 때에는 일부러 생소하고도 멋진 음악을 튼다. 생전 처음 들어보는 외국 아티스트의 연주 음반 같은 게 적합하다.

오늘은 제철을 맞은 제주도산 은갈치 조림과 마파두부를 요리 하면서 브뤼셀 필하모닉의 앨범을 들었다. 누군가는 허세랄 지 모르겠지만 난 아무도 없는 부엌에서 홀로 몹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마구 몰입된 시간이 어디로 흘러간 지 모르겠다. 갖가지 재료들은 귀를 잡아당기는 소리를 내며, 내가 그리던 모습과 향, 그리고 맛을 내기 시작하더라. 그 시간 속에 ‘지금, 여기’에서 나의 시각, 촉각, 후각, 청각, 그리고 혀의 촉각(식감)은 모두 만족감을 느꼈다.

거기에 함께 나누는 이의 행복한 표정이라니! 설거지 하는 내내 따뜻한 감흥이 내 마음 속에 오래오래 이어졌다. 음식은 미술품이 아니다. 결과는 이미 사라졌고 겨우 시각만 담을 수 있는 사진만이 남았다만- 난 과정을 즐겼기에 만족하며 이 행위를 또 다시 할 생각이다.

할 일이 없어서 효율적으로 살지 않는 게 아니다. 내가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은 새벽 한 시이고, 앞으로 이 칼럼 외에도 해야 할 작업이 더 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수학을 잘 못했지만, 어려운 수학문제를 푸는 행위야말로 정말 예술적인 행위라고 생각한다! 아마 내가 수학 공식들이나 원리를 이해했더라면 그런 수학 문제를 푸는 이 옆에서 격양된 눈빛을 하고는 박수를 쳤을 거다. 그건 예술과는 달리 정해진 답이 있다.

하지만 풀어내는 그 과정, 그러니까 그 길은 본인이 선택하는 것이고 해결하는 데 힘쓰는 사람 역시 본인이다. 영화나 TV에서 그런 천재들이 하는 걸 보았는데 어떤 작곡가가 멋진 음악을 쓰는 것처럼 대단해 보였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푸는 행위는 정말 경이롭고 철학적인 것 같다. 감히, 글을 쓰는 행위보다 더욱 철학적이며 본질에 가깝다 말하고 싶다. 하긴 문학은 때론, 본질을 외면하려고도 하질 않나! 그렇게 해서 더욱 본질을 온몸으로 느끼게도 만들지만! 그래서 문학은 인간적이다.

예술품을 즐기는 것 역시 이러하다. 자기식대로 즐기면 된다. 누군가는 몬드리안의 그림이나 비너스 조각상을 보고는 수학적인 비율에 감탄할 것이며, 또 어떤 감성적인 누군가는 그 아름다움에 감동받아 예찬할 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어떤 식으로든 과정을 즐기는 것이다.

예술은 쓸데없는 것이 맞지만 그것을 즐기면 삶이 매 순간 가치 있어 진다. 당신의 삶 곳곳에 예술적으로 즐길 것이 얼마나 많은 지! 하물며 친구와의 대화에서도 우린 예술을 찾을 수 있다. 당장 누군가의 대화나 만남에서, 대단한 분명함 한 장이라도 더 받아가야지 생각하거나 무엇을 배워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냥 즐기는 거다.

얼마 전 TV에서 우연히 <미운 우리새끼>라는 프로그램을 봤다. 거기서 비추어진 가수 김건모 씨가 사는 방식이야말로 과정 자체를 즐기는 삶, 삶을 즐기는 삶이라고 느꼈다. Here and now. 겨우 한 편밖에 못 봤지만 그게 느껴졌다.

아마도 누군가는 여유가 없어서 내가 쓴 이 글에 ‘정말 세상 편한 소리 하네!’라고 할 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이건 정말 세상 편한 사람이 손으로 지껄이는 글을 지도 모른다. 마치 온갖 식재료를 잔뜩 사다 놓고 정체 모를 요릴 하듯이.

그러나 얼마가 지난 뒤 당신이 여유가 있어졌을 때에, 즐길 수 없는 이 깜깜한 과정이 걷히고 난 후 결과가 나왔을 때- ‘자, 수고하셨습니다. 이다음엔 과정을 즐길 줄 아는 사람이 되면 더 좋은데 어때요?’라고 조심스레 제안해보는 것이다.

여인의 향기

남녀 사이에도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이 엉킬 듯 말듯한 탱고 스텝 같아야, 맞닿았을 때 더 좋은 법이잖아. 안 그래? 나, 내 주변, 그리고 세상도 길들이기 마련이다. ‘효율적으로 말고, 나 오늘부터 예술적으로 살 테야!’라며 나 자신부터 주변을 조금씩 길들여보시길. 시간은 어느덧 인자한 미소를 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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