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용서이다.

 

[공감신문] 그렇다면 용서는 무엇이며 우리는 왜 용서를 나누어야 할까? 용서는 영어로는 'forgive', '위한다'는 'for'와 '주다'란 의미를 지닌 'give'의 합성어이다. 영어에서 의미하는 것처럼 '누구'를 위해서 '누구'에게 한없이 베푼다는 말이다. 살면서 가장 힘들고 어려우나, 꼭 해야 할 일은 아름다운 용서이다. 한평생을 살면서 잘못 없는 삶이 어디 있겠는가! 그럼에도 사람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일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하면서 주고받는 갈등을 아름답게 용서하는 것이다.

사진출처=네이버 코리아맥블로그

한문의 용서(容恕)를 풀어놓은 것을 보면 ‘두 사람의 얼굴(容)에 같은(如) 마음(心)의 모습이 보이는 것’이다. 이것은 사람의 마음은 얼굴에 비쳐 보이는 것으로, 둘 중 어느 한 사람이 조금이라도 언짢으면 얼굴이 밝지 않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어떤 언어로 해석해도 용서는 내가 먼저 손을 내밀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면서 누군가에게 도움을 주고 또 도움을 받는다. 그런 과정에서 상대방에게 피해를 주기도 하고 상처를 입기도 한다. 타인에게 폐를 끼칠 때는 사과를 하고, 타인이 나에게 폐를 끼칠 때는 사죄를 받는다. 사죄를 받아들이는 행위가 용서이다. 누군가를 용서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를 확실히 인식해 두어야만 한다. 근본적으로 악한 사람인지, 단순히 잘못 생각을 해서 그런지 등을 이해해 두는 것이다.

그에 따라, 상대의 죄가 어떤 것이고, 어느 정도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용서는 나를 아프게 한 사람의 행위를 잊는 것이다. 또 용서하지 않으면 내가 자유롭지 못하고 힘들다. 그럼에도 용서하기란 쉽지가 않다. 내가 가진 재물이나 권력을 내려놓는 것보다 더 힘든 일이 용서이니까. 

타인의 죄를 죄로서 인정하고 처벌하는 것과, 죄를 범한 타인을 증오하는 것을 구별하고, 증오를 극복할 때에 용서하는 마음이 생긴다. 용서는 절대 없던 일로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이미 일어난 과거를 지우는 것도, 이미 저지른 과오를 잊는 것도 아니다. 용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처음의 마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물론 용서에도 쉬운 용서가 있고 어려운 용서가 있다. 나의 능력이 충분해서 잘 풀리면 ‘쉬운 용서’ 일 것이고, 일을 풀어나가려고 애를 상당히 쓰는 데도 잘 안 풀리면, 그것은 ‘어려운 용서’ 가 된다. 어쨌든 용서도 지금, 여기에서 해결해야 한다. 누구든지 지금, 여기에서 용서를 구하고 용서를 받는 일이 가장 힘들고 어려운 일이다.

그럼에도 지금, 여기에서 마음에서 우러나는 용서가 되어야 진정한 용서라 할 것이고 또 용서가 받아들여지면 몸과 마음이 자유를 찾게 된다. 자유를 찾는 것 그것이 용서의 끝이니까. 

탈무드에 보면 '참회(慙悔)하는 자에게 그 전의 죄과(罪過)에 대하여 생각하게 하지 말라'라고 적혀 있다. 루소는 '과실을 부끄러워하라. 그러나 과실을 회개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라'라고 하였다.

생각해보면 용서는 스스로 끝없는 죄의 고백과 참회가 반복되면서 이루어진다. 잘못을 뉘우치고 마음을 새롭게 고쳐먹어야 섭섭한 마음, 증오의 마음, 모두를 내려놓을 수가 있다. 진정한 용서는 자유를 찾는 것이고 또 스스로를 따뜻하게 위로하는 것이다.

'위로한다'는 말은 무엇일까? 사전적 의미로는 "따뜻한 말과 행동으로 괴로움을 덜거나 슬픔을 달래준다"라고 되어 있다. 그러니 말과 행동이 일치하여 용서하는 사람, 용서받는 사람의 괴로움과 슬픔을 달래줄 수 있어야 한다.

진정한 용서는 화해도 함께 이루어진다. 진정한 화해란 정의가 함께 실현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화해는 용서에서 한걸음 더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결국 완전한 용서라고 한다면 마음의 용서와 마음의 위로, 그리고 마음의 화해를 말한다.  

작가 헤르만 헤세는 용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를 미워하고 있다면, 그 사람의 모습 속에 보이는 자신의 일부분을 미워하는 것이다.' 또 생텍쥐페리는 그의 소설 '어린 왕자'에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서 가장 힘든 일은 사람의 마음을 얻는 일' 그렇다. 한평생을 살아가면서 사람을 만나 사랑하고 이해하고 배려하고 싸우다가 용서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용서를 해야 한다. 그 이유는 용서는 나를 위한 것이다. 또 용서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마음과 마음이 진정으로 나누는 것이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내려놓으며 처음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만일'이라는 단서가 붙는 용서라면 상대적인 용서가 될 뿐이다. 나아가 상대가 빌면서 사죄하기를 기다린다면 그것은 계산된 용서일 뿐이다.

사진출처=네이버 코리아맥블로그

사람들은 도덕적으로나 법적으로 용서받으면 진정한 용서라고 생각하지만 용서했다고 생각하면서도 억울하고 분한 마음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그것은 진정한 용서가 아니다. 진정한 용서는 계산하고 이익을 추구하는 머리가 아니라 모든 것을 다 받아들이고 끌어안아 나 스스로 평화롭고 가벼워져 자유로운 마음을 말한다. 가벼워지는 마음, 평화로운 마음, 한없이 자유로워지는 마음, 그것이 바로 섭섭함, 미움, 원망, 분노를 다 내려놓은 진정한 용서라 할 수 있다.

마음으로 누군가를 용서하기란 쉽지가 않다. 용서는 돈으로 사고파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나누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에게 피해를 준 누군가를 미워하고 그가 잘못되기를 바라는 마음은 어쩌면 사람의 본성이다.

살다 보면 머리는 용서를 했다고 하지만 마음은 여전히 용서가 안 되는 일이 많다. 미운 감정이 앞서고 화가 나기 때문에 쉽게 용서가 되지 않는다. 그럴 때에는 시간의 힘을 빌리는 것이 좋다. 시간이 흐르면 지독한 미움도 작아지거나 잊힌다. 따지고 보면 아주 작은 것을 쉽게 용서하지 못할 때가 많다. 하지만 용서하지 않는 시간이 길수록 마음이 무겁고, 아프고, 힘이 든다. 그러나 반대로 용서하면 마음이 편해지고 더 건강하게 살 수가 있다.

그대, 지금 한없이 마음이 불편한가! 용서로부터 자유롭고 편안해지고 싶은가! 그렇다면 당장 작은 일부터 용서해보라! 아침 출근길에 부딪쳐 커피를 쏟은 타인의 실수, 회사 내에서의 동료와의 마찰, 가족의 평화를 위한 가장의 하얀 거짓말 등을 웃으며 편안히 내려놓아라! 마음으로 용서해보라! 옷에 묻은 먼지를 툭툭 털어버리듯이 용서해 보라!

한 번 마음먹으면 용서가 된다. 이 세상에 안 되는 일은 많지 않다. 이 순간 누구 때문에 몹시 화나고 마음이 무겁다면 당장 큰마음으로 용서해 보라! 우울했던 마음, 어둡던 세상이 밝아진다. 내가 웃어야 가족도 이웃도 심지어 용서받을 사람도 웃을 수가 있다.

용서도 부메랑이다. 내가 용서하면 나중에 그 누군가에게 용서를 받을 일이 생긴다. 먼저 용서하는 마음을 가지고 진심으로 나눌 때 아름다운 용서라 할 수 있다. 두 마음 모두가 편안해질 만큼 완전하게 교감이 되어야 아름다운 용서라 할 수 있다.

사진출처=네이버 코리아맥블로그

아름다운 용서가 이루어지는 순간 용서하는 사람, 용서를 받는 사람, 그것을 지켜보는 모두가 입가에 웃음이 번진다. 또 몸도 마음도 새털처럼 가벼워지고 보이는 세상이 아름답게 느껴진다. 그것이 모두가 그토록 바라는 아름다운 용서, 완전한 용서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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