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왜?’라는 물음은 언제나 어렵다. 물음에 답을 하려다 보면 어느새 미궁 속에 빠지곤 한다. 그렇다고 쓸만한 대답을 건지는 경우도 드물다. 어쩌면 멋지고 그럴싸한 이유를 찾고 있기 때문은 아닐까. 툭 터놓고 생각해보자. 나는 왜 여행을 하고싶어할까. 무한한 예술적 영감을 얻기 위해서? 지금보다 더 괜찮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물론 모든 행동에 이유를 설명할 필요는 없다.

나에겐 나름의 이유가 있었다. 저기로 가고 싶다기 보다는, ‘여기를 떠나고 싶었’다. 저기엔 자아실현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유가, 여기에 없는 무엇이 있을 것 같은 막연한 기대감이 있었다. 여기가 참을 수 없이 힘들어 질수록 저기는 낙원이 되어버린다. 어떻게 해서든 가야만 할 것 같은, 낙원.

하지만 여행은 늘 가깝고도 멀어서 당장이라도 떠날 수 있을 것 같으면서도 막상 떠나려하면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 기다렸다는 듯이 썩 괜찮은 핑계거리가 생겨난다. ‘아직 학교도 졸업 안 했는데’, ‘혹시 강도라도 만나면’, ‘이 돈이면 이걸 할 수 있을 텐데.’ 결국 시간과 돈의 문제이지 내 문제가 아니라고 합리화 한 뒤 여행을 단번에 접어버리곤 했다.

하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여행을 가지 않는다고해서 시간과 돈을 알차게 쓰는 것도 아니었다. 여행을 안 가는대신 더 노는 거야, 더 사는 거야, 더 먹는 거야. 쉴 틈 없이 돈을 벌고 또 소비 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상하게 쌓이는 건 허무함 뿐이었다. 방 안에는 쓸 데 없는 물건들이 넘쳐 났고, 어떻게 내 마음을 충족 시킬지 몰라 방황했다.

어느 샌가 내 삶의 방향은 돈이 되었고 언제나 찾아오는 것은 불행이었다. 그토록 바라던 돈이었는데 왜 행복하지 않을까. 내 방향이 잘못 된거라면 나는 도대체 어디에 방향을 둬야하는 걸까.

현실과 이상이 얽히고 설켜 만들어낸 미로 속에서 이렇다할 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던 그때, 나는 휴학을 했다. 하지만 그저 시간을 벌기위한 방법일 뿐 출구가 될 수는 없었다. 학교를 그만둬야 하는 건지, 편입준비를 해야하는 건지, 공무원 준비를 해야하는건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채 끝없는 자기 비하와 열등감 속에 살던 어느날, 몇 장의 사진을 보았다. 어느 여행자의 시선으로 담은 세상의 모습이었다.

‘나도 보고 싶다’

처음으로 강렬한 열망이 깊은 곳에서부터 끌어올랐고, 늘 남들의 인생을 부러워만 했던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라고 왜 못 해’

순간 백지 위에 첫 획을 그으려 망설이다, 에라 모르겠다 찍 그어버린 것처럼 속이 후련했다. 세상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고 싶다는 단순한 욕망. 과거에 바라던 현실도피가 아닌 현실 직시. 어쩌면 내 여행은 원대한 포부에서가 아니라 쪼잔한 마음에서부터 시작됐다.

그래, 나라고 왜 못 해.

우리는 저마다 다른 이유로 떠나고 돌아온다. 나는 아직도 매번 다른 이유로 떠난다. 별 볼일 없는 이유일지라도, 마음속에 나만의 무언가를 품고 오길 바라면서.

[여행기는 첫 여행 이후 끊임 없이 여기와 저기를 오가며 기록한 저의 일기와 사진을 토대로 구성됩니다. 시기상 현재의 현지 정보와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제가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느꼈던 감정이 가감없이 공유 되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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