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서 자라는 탐욕의 씨앗, 배려로 다스려야

“배려는 사랑이요, 욕심은 먼지다!”

“욕심의 최고 경지, 가는 손님은 뒤통수가 예쁘다.”

“인생은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

 

[공감신문] 지난 9월 10일 일요일의 일이다. 우연히 아주 옛날 지인을 노인이 되어 다시 만났다. 그 옛날처럼 형님이라고 부르기엔 지금은 너무 많은 변함이 있다. 이것은 30년 전과 현재를 연결하는 일이다. 잠깐 이 사람에 대해 이야기 할까 한다.

그는 구두쇠 자린고비 짠돌이 등으로 불릴 만큼 매사에 욕심도 많고 남을 위해 뭔가를 베푼다는 것은 꿈에도 생각지 못하는 사람이다. 부부가 한 치도 기울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는 한번 그의 호주머니에 들어 간 것은 어떤 일이 일어나도 나올 줄도 모르고 나올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 중에서도 그의 아내는 더 심했다. 그렇게 알뜰히(탐욕) 모으고 또 모우다 보니 남부럽지 않는 삶을 살게 되었다.

사진=국민행복신문DB

하지만 남들이 보기엔 항상 그들은 남루한 옷차림에 머리는 헝클어져 있었다. 다시 말하면 꾸미거나 갖춰 입거나 좋은 음식은 먹지도 입지도 않았다. 그런 생활에도 그들은 아이가 셋 있다. 유달리 그는 큰 아들을 좋아했다. 돈이 생기는 족족 큰아들에게 줬다.

그런 와중에도 그들은 늙기를 무서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월은 그들을 빗겨 가지도 않았고 그들의 욕심은 멈출 줄도 몰랐다. 다른 이가 득이 생길 것 같으면 여지없이 어떤 훼방을 놓든 이득을 취했다. 그는 남의 집에 방문하는 것은 누구보다도 좋아 한다. 그렇지만 자신의 집에 오는 손님은 반갑지 않게 생각했다. 손님에게 하는 대접는 부담스럽고 아깝기 때문이다. 그 사람의 아내가 가장 많이 사용 한 말은 “가는 손님은 뒤통수가 예쁘다”란 유행어를 만들고 실천했다. 다시 말하면 내 것 덜 축내고 빨리 가 주면 고맙다는 이야기다.

이런 그를 만난 것이다. 그 부부의 상징은 오직 내 것에 의한 내 것과 타인의 것 등을 포함한 모든 것이 내 소유화 하는 것이다. 그런데 돈 많고 부자 이었던 그를 만났을 때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그 정도로 남의 생각은 하지 않고 자신만 생각 한 사람이라면 지금쯤 노년을 아주 행복하게 보내야 할 거라고 생각했다.

마을 어귀의 그늘진 느티나무 밑의 허름한 평상에서 지팡이에 의지 한 채 먼 산을 멍하니 보고 있는 그를 발견 하고 내가 본 그의 지난날의 일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간다. 비록 늙었지만 옛 모습이 있다.

▶아이고 형님! 오랜 만이십니다. 이 동네 사세요?
“(한참바라보다) 자~ 자네~ (말이 없다) ... (머뭇거린다.)...(눈물을 글썽인다.) ... 잘 지냈는가? 아~ 얼마 만인가?” 더듬거렸다.

▶네, 형님 건강은 어떠세요. 형수님은요?
“나야 그렇네 만... 집사람은 지금 병원에 있네...(그리고는 말이 없다.)”
미안하고 창피한 눈치다.

▶이게 20년입니까? 30년입니까? 정말 반갑습니다.

“(또 말이 없다.) ....”

난 주책없이 질문을 쏟아냈다. 솔직히...사실 반갑기 보다는 그의 삶이 궁금했던 것이 더 먼저 일 것이다. 하지만 표정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젊은 날의 수많은 일들을 생각 하는 듯 했다. 나는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저 쪽에 상점이 보였다. 옛날에 좋아 했던 콜라를 사서 마시게 하고 안부를 물었다. 그는 “고맙다”는 말 외는 도통 말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는 느닷없이...

“이보게 자네 건강은 어떠신가? 내 젊을 때 참 많이 인색했지? 그런데 그때는 그게 잘못 된 것인 줄 알면서도 안됐어. 지금 내 처지가 벌을 받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답답하네. 하지만 자네들은 베풀고 살게, 그렇게 욕심을 부리고 끌어 모으고 집짓고 건물사고 해도 언제나 내 마음은 허했어. 그것이 뭔지? 지금 이 나이에 깨닫게 됐거든. 그런데 그런 것들이 지금은 나에게 하나도 없어 먼지처럼 사라졌지. 마누라도 병원에 있지만 병원비도 힘들어...(울먹인다. 고통스런 얼굴이다.)”

사진=국민행복신문DB

▶아니 어쩌다...(말을 걸 수가 없다.)

“(다시 말을 잇는다.)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어. 탐욕이지. 지금 와서 보니 그것들이 내 것이 아닌데 말이야. 그 탐욕이 화를 부르고, 더 큰 탐욕으로 이어 지면서 더 큰 화를 부르더군. 세상에 공짜가 있는 곳이라면 저승까지도 갔을 정도로 좋아 했지만 공짜는 반드시 대가를 치루더라고... 자네들은 나처럼 살지도 않았겠지만....”

“(그리고 다시 이어 갔다)모든 것을 내려놓으니 편한 것을... 왜 내가 내려놓지 못하고 돈만 쫓았을까? 남에게 상처만 줬을까? 이게 다 욕심이었어. 버리고 비우면 새로 차는데 나는 그것을 못해서 지금은 이 꼴이 된 것 같네.(눈물을 주룩 흘린다.)”

(중략)우리는 한 동안 말이 없었다. 버리고 비우면 새것이 찬다는 평범한 진리를 여기서 이 노인에게 들으니 가슴이 먹먹하다. 그리고 그는 아내와 가족관계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어느새 어저께 만난 형제처럼 수많은 이야기를 했다. 그때서야 주름진 얼굴에서 핏기가 돌기 시작했다. “이제 자네 덕분에 살 것 같네, 고맙네”라며 그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또 한사람의 젊은 친구를 이야기 할까 한다. 이 친구는 나이가 젊다. 머리 회전도 빠르고 좋다. 자기 것은 자가가 확실히 지킨다. 그렇다고 위에서 이야기한 노인처럼 구두쇠도 노랑이도 아니다. 그저 새로운 문물을 받아들이고 즉응이 빠른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 친구가 욕심이 많다는데 있다. 그는 주식을 한다. 주말이면 경마장에도 간다. 주식이든 경마든 꽤 승률이 높은 편이다. 하지만 승률이 높으면 뭐하나 더 큰 욕심을 부리다 항상 화를 당하고 결국 그 청년의 손에는 빈털터리 먼지뿐이다.

좀 더 깊게 들여다보면 이친구의 지식은 얄팍하기 짝이 없었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다. 이친구가 그 꼴이다. 다시 말하면 짧은 지식으로 이익을 봤다면 적당히 할 줄도 알아야 하고 더 중요한 것은 ‘스스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하기야 살아가면서 자신을 아는 사람이 몇 있겠냐만 그것도 경험이라고 통장과 전세금에 손을 대고 빈손의 거지가 되었다.

우리는 여기서 이 두 사람에게 얻는 교훈은 뭘까? 젊으나 늙으나 욕심의 끝은 결국 큰 화를 부른다는 것이다. 그래서 사람은 짐승과 달리 생각을 한다. 적당한 이익과 적당하게 나누면서 살아가는 것이 서로의 화를 피하고 상생하는 길일 것이다. 적당한 것이 어느 정도일까? 그것을 단정지우거나 예단하기는 정말 어렵다. 하지만 굳이 나타낸다면 ‘타인에게 피해가 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욕심이 왜 나쁘냐? 반문하는 사람도 있다. 맞다. 욕심도 전부 나쁜 것만은 아니다. 지나친 욕심이 문제다. 적당한 욕심은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활력소이기는 하다. 욕심이 영 없으면 발전이 없고 성장도 더딘 법이다.

글쓴이가 욕심에 대해 글을 쓰는 것은 두 번째다. 한번은 본지에서 지난해인 2016.09.09. [화를 부르는 욕심, 더 채워야 할 욕심]이다. 더불어 세심하게 살펴보면 욕심이 가득한 사람은 ‘배려’라는 것이 없다. 또한 욕심은 우리보다 나를 앞세운다.

돈도 권력도 마찬가지다. 가지면 또 가지고 싶고 누리면 더 누리고 싶은 것이 욕심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사람이기 때문에 절제라는 것을 한다. 다시 말하면 욕심에 절제까지 없으면 스스로 낭패를 보거나 끝에는 좋게 되지 못한다는 말이다.

그건 그렇고 이글을 쓰다 보니 옛날에 보고 들었든 글귀하나가 아련 거린다. 이 글귀가 생각나지 않아 인터넷 검색하기를 수십 번으로 헤매고 있을 때 누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매주 일요일 좋은 글 하나씩 SNS로 보내주는 지인에게 찾던 글이 왔다. “어라~ 웬일? 너무 반가웠다.”

그리고 이 글을 그대로 옮기기 전 요약을 해 보면 대략 이렇다. “빈손으로 와서 먼지 한 톨 가져 갈 수 없이 빈손으로 간다”는 이야기다. 다시 말하면 아무리 욕심을 부리며 긁어모아도 내가 가지고 가는 것은 수의 한 벌 뿐이라는 것이다. 어느 가수의 유행가 노래처럼 “세상에 태어나서 옷 한 벌 건진 것”도 다행이랄까?

유튜브 캡처

그럼 여기서 지인이 보내준 ‘신과 남자와의 대화’(출처:인터넷) 그대로 옮겨보기로 한다.
한 남자가 죽었다. 그가 죽음을 알았을 때 신은 손에 가방을 들고 다가오고 있는 것을 보았다. 여기서 신과 한 남자의 대화는 시작 된다.

“자~, 당신은 이제 하늘나라로 가야 할 시간입니다.” “지금요?”
“나는 아직도 해야 할 많은 계획이 있는데요?” “유감스럽지만, 이제 가야 할 시간입니다.” “그런데 신께서는 그 여행 가방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요?” “이것은 당신의 것들이 들어 있습니다.”
“내 것 들이라면? 그렇다면 내 물건, 옷, 돈 들인가요?” “그런 것들은 당신의 것들이 아니지요. 그것들은 지구의 것입니다.”

“그러면 내 기억들이 들어 있는지요?” “아닙니다. 그것들은 시간 속에 있습니다.”
“그럼 내 재능들이 들어 있는지요?” “아닙니다. 그런 것들은 환경 속에 있는 겁니다.”
“내 친구들이나 가족들이 있는 건지요?” “아닙니다. 그들은 당신 인생의 과정 속에 있는 겁니다.”
“내 아내와 아이들은요?” “아니요, 그들은 당신의 마음속에만 있을 뿐입니다.”
“그럼 내 몸은 있잖아요?” “아니... 그건 먼지일 뿐입니다.”

그 남자는 절규하며 말했다.
“그럼 영혼은 내 것이겠지요~!” “미안하지만, 잘못 생각하는 겁니다. 당신의 영혼은 신이 가지고 있는 겁니다.”
그는 눈물을 흘리며 공포에 찬 마음으로 신이 여는 여행 가방을 바라보았다. 가방 속은 텅 비어 있었다. 비탄에 잠겨 회한의 눈물을 흘리며 신에게 물었다.
“그럼, 내 것은 아무것도 없나요?” “맞습니다. 당신의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럼, 내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당신의 순간들... 당신이 사는 순간들이 당신의 것일 뿐입니다.”

우리는 이 대화를 그냥 흘러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삶은 단지 순간일 뿐이다. 그러기에 삶에서 서로 배려하고 베풀기도 하고 사랑하며 살아야 할 것이다. 이런 삶 속에 희노애락(喜怒哀樂)이 존재하며 잘한 것은 칭찬하고 슬픈 일에는 같이 하고 잘 못한 것은 반성하고 사과하며 신이 가진 빈 가방 속에 욕심 없는 사랑 하나 쯤은 넣을 수 있는 삶을 살고 싶은 생각이다.

어쨌든 우리들의 삶 주위에서 너무 지나친 욕심으로 인해 낭패를 보는 경우를 어렵잖게 볼 수 있다. 그리고 그 욕심은 스스로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 욕심은 마음 속에서 자란다. 아주 빠르게 끝도 없이 자라는 괴물이다. 지나친 욕심의 끝은 파멸이다. 욕심이란 놈은 마음이 허하거나 초조할 때 주로 싹을 틔운다. 빨리 갈 때나 빨리 가려고 할 때 주로 많이 자란다. 그럴 때 일수록 천천히 가야한다. 주위를 보며 마음의 평온을 찾아야 한다.  빨리 갈 때 보이지 않던 것들이 천천히 가면 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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