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브렉시트 협상타결…6월 영국 국민투표가 분수령 될듯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몸은 유럽에 있지만, 마음은 앵글로색슨족인 나라. 섬나라 영국의 이중성이다.

앵글로색슨족은 17세기 이래 4세기 이상 세계를 지배해왔다. 앵글로색슨의 고향인 영국은 1588년 스페인의 무적함대를 격파한 이후 3세기에 걸쳐 세계를 지배했고, 20세기 전반에 두차례의 세계대전을 거치면서 앵글로색슨의 이민자들이 건설한 미국이 지금까지 세계를 지배하고 있다. 영국의 고민은 여기에 있다. 경쟁국 프랑스와 독일와 손잡고 단일 유럽으로 가느냐, 대륙과의 고립외교를 펼치느냐. 이 고민의 봉합이 19일(유럽시간) 유럽정상회의 결과다.

▲ 캐머런 영국 총리(오른쪽 끝)가 19일 브뤼셀에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왼쪽 끝)과 융커 EU 집행위원장(왼쪽에서 두번째) 등과 협상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영국 탈퇴 압박에 프랑스와 독일, 양보…영국 잔류협상 타결

유럽연합(EU) 정상들이 19일 영국의 EU 탈퇴(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한 협상을 타결했다.

도날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이날 브뤼셀에서 열린 EU 정상회의에서 영국을 EU 회원국으로 남아있게 하기 위한 EU 개혁안 논의에서 28개 회원국 정상들이 만장일치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정상들은 브렉시트를 저지하기 위해 전날부터 30시간이 넘는 마라톤 협상을 벌인 끝에 이날 밤 극적인 합의를 도출했다.

이번 협상에서 영국이 요구한 EU 개혁안이 대부분 받아들여졌다. “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가겠다”는 영국의 막무가내를 EU의 맹주인 프랑스와 독일이 수용한 것이다. 그 뒤엔 미국이 있다. 영국은 동족인 미국이 멀리서 버티고 있으므로, EU를 떠나 앵글로색슨 대연합을 꾀할수 있다. 비록 쇠약해졌지만, 앵글로색슨의 맏형 지위를 갖고 있다.

영국은 굳이 EU의 족쇄에 매어있을 필요가 없다. 유럽 대륙에선 독일 마르크화의 연장인 유로화라는 단일 통화를 쓰는데 비해, 영국은 자국 통화인 파운드화를 고수하고 있다. 별도의 통화를 쓰는한 EU의 거시경제 통제를 받아들일 이유가 없다. 하지만 유럽대륙과의 무역거래가 전체의 절반을 넘기 때문에 EU에 남아있을 필요도 있다. 영국이 원하는 것은 대륙의 간섭받지 않으면서 EU 식구로 남아있는 것이다.

3년에 걸친 브렉시트[Brexit: Briton(영국)+Exit(탈퇴)의 합성어] 논란은 영국의 일방적인 승리로 귀결됐다.

이런 결과는 앞서 나온 양측의 대표적 은행 보고서를 읽어보면 알수 있다.

영국의 대표적 시중은앵인 바클레이즈는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EU의 혼란을 피해 자금의 안전한 도피처(safe haven)가 될수 있다”고 했다. 이에 비해 EU측 대표은행인 도이체방크는 “영국이 빠져나가면 EU는 세계 2위의 지위를 잃을수 있고, 세계적 협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될수 있다”면서 “영국의 견제가 빠진 프랑스와 독일의 축이 위태로울수 있다”고 정리했다. 동쪽에서는 ‘북극 곰’ 러시아가 밀려오는데, 영국 없는 EU는 심각한 위기에 처할수 있다는 위기감이 유럽대륙을 사로잡은 것이다.

이번 협상에서 영국은 EU내에서 특별 지위(special status)를 부여받았다. 28개 회원국 중에서 예외적 지위를 부여받은 것이다. 영국의 특별 지위는 크게 두가지다.

①이민 복지혜택 제한

영국은 최근의 시리아 난민사태에서 보듯 이주민 문제로 골치를 앓고 있다. 그런데 EU의 규제를 받지 않아도 된다. 합의안에서 영국은 이주민에게 7년간 복지혜택을 중단할수 있는 긴급중단'(emergency brake) 제도를 도입할수 있게 됐다.

이 조항에 동유럽 국가들이 반발했다. 동유럽 국가들도 시리아와 북아프리카 난민 문제로 고전하고 있는데, 자국은 EU의 강화된 규제를 따르고, 영국만 그 규제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은 불공정하다고 항의했다. 하지만 동유럽 국가들은 독일의 눈치를 보며 목소리를 죽여 영국 탈퇴를 저지하는데 표를 던질 수밖에 없었다.

②독자적인 금융규제 채택

유로화 사용 19개국(유로존)이 영국의 핵심산업인 금융산업 등 산업에 침해가 될 수 있는 결정을 내릴 때 영국은 긴급 세이프가이드를 발동할 수 길을 열었다. 프랑스는 영국이 유로존 결정에 거부권을 가져선 안 된다고 맞선 가운데 영국 측이 세이프가드를 갖는 것으로 타협했다. 뉴욕과 함께 세계금융시장의 또다른 한축인 런던은 프랑스와 독일의 간섭에서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됐다.

 

6월 영국 국민투표가 갈림길…캐머런 총리의 승부수

이번 합의는 오는 6월 영국의 EU 탈퇴 여부를 묻는 국민투표의 지지를 얻어야 한다. 영국으로선 1975년 EC(EU 전신) 가입 찬반 국민투표 이래 40여년 만에 맞는 역사적 선택이다.

오는 6월 23일로 예상되는 투표일까지 넉달 간 EU에 남을 것인가, 아니면 떠날 것인가를 놓고 각계각층에서 격한 공방전을 펼치게 된다.

영국의 여론은 혼전 양상이다. 조사업체에 따라 EU 잔류와 탈퇴 우위가 엇갈린다.

16일 공개된 여론조사업체 콤레스 조사에 따르면 EU 잔류 지지가 49%, EU 탈퇴 지지가 41%였다. 입소스 모리 조사에서도 잔류 찬성 견해가 51%로 36%인 탈퇴 찬성을 앞섰다. ICM 조사 역시 EU에 남아야 한다는 답변이 43%, 떠나야 한다는 답변이 39%로 잔류 여론이 높게 나왔다.

하지만 앞서 7일 공개된 'ORB 인터내셔널' 조사에선 EU 탈퇴를 지지하는 답변이 43%, 잔류를 지지하는 답변이 36%였다. 유고브가 16일 공개한 여론조사도 탈퇴와 잔류 지지가 각각 45%, 36%로 탈퇴해야 한다는 여론이 우세했다.

최근들어 잔류 지지도는 내려가고, 탈퇴 지지도가 올라가고 있는 점도 변수다. 콤렉스 조사에선 지난해 12월 조사 때와 비교해 잔류 지지 비중이 7%포인트 하락한 반면 탈퇴 지지 비중은 6%포인트 상승했다. 입소스 모리 조사에서도 잔류 의견이 2%포인트 떨어졌고, 유고브 조사에서도 잔류론이 5%포인트 하락하고 탈퇴론은 3%포인트 상승했다.

따라서 두자릿수인 부동층이 브렉시트 향배를 가를 결정적 변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국민투표 부결시 유럽은 대혼란 불가피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총리는 이번 합의를 성공으로 자평하고 EU 잔류 캠페인을 개시할 태세다. 그의 신념은 'EU 잔류'다. 합의안에서 영국이 요구한 조건을 모두 수용한 만큼 EU에 남는 것이 국익이라는 점을 설파하고 있다. 야당인 노동당과 스코틀랜드국민당(SNP)도 EU 잔류 진영에 포진하고 있다.

EU 탈퇴 진영도 만만치 않다. 캐머런 내각에서 일부 장관들은 탈퇴를 주장하고 있다. 보수당 내 내각 반란 세력에는 하원 원내대표와 고용연금부장관, 법무부장관 등 영향력있는 중진들이 자리하고 있다. 캐머런 총리는 내각의 '반란 세력'들의 개별적 탈퇴 캠페인 참여를 허용했다. 내각 내 반란 세력은 약 3분의 1정도로 관측된다. 상당수 보수당 의원이 협상 결과를 지켜보자며 찬반 결정을 유보했다.

반EU 기치를 내건 영국독립당(UKIP)은 브렉시트와 관련해선 무시못할 세력으 평가된다. 총선에서 12.6%를 득표했다.

탈퇴 진영은 벌써부터 실패한 합의라고 일축하며 캐머런을 향한 공세 수위를 높이고 있다. 이들은 주권국가로서 지위를 상실했다고 주장한다. '더욱 통합된 EU'를 단호히 거부한다.

연간 수십억파운드의 분담금을 내지만 돌아오는 건 EU 이주민들뿐이라는 인식을 갖고 있다. 국민투표에서 'EU 탈퇴' 지지도가 높으면 캐머런 총리의 실각 가능성이 거론된다. 캐머런은 탈퇴 결과가 나오더라도 사임할 뜻이 없다고 강조했지만 잔류 총대를 멘 이상 사임 압력을 무시하기 어려운 형국에 몰릴 가능성이 있다.

또한 EU 탈퇴 결과로 나오면 스코틀랜드도 기다렸다는듯 독립 재추진에 나설 공산이 크다. 이 경우 스페인 카탈루냐 등 유럽 대륙 곳곳에 독립 움직임을 촉발하는 계기가 될수 있다.

EU도 큰 타격을 받고, 존립 자체의 문제에 직면하게 된다. 영국-프랑스-독일 3각체계를 기반으로 한 EU가 유지될 수 있을 것인가? EU 존재에 대한 근원적 의구심에 직면한다.

공동체 출범 목적과 목표들, 그간의 성패 등 EU라는 존재의 재조명으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 도널드 투스크 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이 "영국의 EU 탈퇴 문제는 EU 미래에 가장 큰 도전이며 위태로운 순간"이라고 진단했다.

외부국경 통제를 강화해 역내 자유통행을 보장하는 솅겐조약을 지키려 하지만 지난해에 이어 다시 물밀듯 유럽에 들어올 난민에 버틸 수 있을지 미지수다. 영국 보수당 대표를 지낸 윌리엄 헤이그 상원의원은 "영국이 없다면 EU는 약화될 게 틀림없다. 세계 5위 경제, 대륙 최대 금융센터, 겨우 2개뿐인 신뢰할 만한 군사 강국의 하나를 잃는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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