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그 열등감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상태바
[공감신문 지해수 칼럼] 그 열등감은 이미 예견되어 있다
  • 지해수 칼럼니스트
  • 승인 2019.07.22 19:0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공감신문] 지해수 칼럼니스트=우리는 공부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아이들을 보고, “그거 몰라도 살아가는데 아무 지장 없어”라는 말로 위로를 하곤 한다. 물론 10대였던 당시의 본인도 스스로를 그렇게 위로했을 테지만 큰 효과는 없었을 거다. 남다른 재능을 발견하지 못했던 대부분은- 사회가 ‘불안’을 구워대는 냄새 덕에 잠을 이룰 수 없었을 테니. 배도 안 고픈데 자꾸 허기가 져가지고.

내 생각에도 이제 공부는 하나의 ‘재능’같은 것이 아닐까 싶다. 공부를 잘 한다고 ‘모범생’이라는 건 정말 구시대적 발상이다. 학교는 ‘사회생활’을 미리 체험하는 또 하나의 거대한 사회이다. 어쩌면 남들보다 조금 더 일찍 학교에 와서 청소를 돕는다던지, 학교 분위기를 더 탄력적이고 유쾌하게 만드는 애들이야말로 사회에선 더 모범일 지도 모를 일이다. 

모범 模範, 본받아 배울만한 대상. 그래, 다수가 그렇게 하면 일부 엘리트는 더욱 이기적으로 굴 수 있어 매우 편해질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는 모범 시민이 되고 싶은가? 아직은 그런 편이다. 내가 이 사회에 대한 애정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애정이 사라진다면- 그게 나랑 다 무슨 소용 있겠는가. 

<비키니 섬의 세 스핑크스>, 살바도르 달리

학교에서 하는 저런 ‘모범생’같은 아이러니한 말보다, 차라리 ‘이거 나중에 커서 안 써먹어’가 훨씬 진솔한 얘기다. 정말이다. 아이들은 거기에서 인내심을 키울 수 있다. 하기 싫은 것을 하는 것, 참는 것, 그리고 꾸준히 하는 것... 또는 성취감을 말이다. 

하지만 정작, 그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반드시 배워야할 것 같은 무언가는 배우지 못하고 있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지금의 교육 과정, 아니 실제 학업 분위기는 어떠한지 모르겠으나 유발 하라리와 같은 학자들의 이야기와 더불어 내가 직접 학교에 가서 아이들을 만나본 바에 의하면 별로 달라지지 아니한 것 같다. 하긴, 선생님도 그걸 잘 모를 테니까. 

세계적인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인 ‘21세기를 위한 21가지 제언’에 이렇게 썼다.

 ‘...(중략)... 이런 세상에서 교사가 학생들에게 전수해야 할 교육 내용과 가장 거리가 먼 것이 바로 더 많은 정보다. 정보는 이미 학생들에게 차고 넘친다. 그보다 더 필요한 것은 정보를 이해하는 능력이고, 중요한 것과 중요하지 않은 것의 차이를 식별하는 능력이며, 무엇보다 수 많은 정보 조각들을 조합해서 세상에 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내 입장에서 이건 정말 100% 공감되는 이야기다. 아이들은 컴퓨터보다 빠르게 계산할 수 없다. 네이버나 다음 보다 정보를 많이 알지 못한다. 구글의 빅데이터는 인간의 모든 욕망을 이제 알고리즘으로 예측할 수 있지 않나 싶다. 이런 세상에서- 학교에선 도대체 무엇을 가르친다는 거야? 알아야할 것은 정말 단순하다. 정보를 어떻게, 이해할 거냐는 것이다. 정보를 찾는 방법은 너무나 간편하고, 한 꺼풀 뒤에 감추어진 것들을 찾는 방법들도 어떤 패턴들을 이해하면 가능해진다.(어쩌면 이건 지금의 어린 아이들이 선생보다 훨씬 잘할 수도 있다.)

<A Couple with Their Heads Full of Clouds>, 살바도르 달리

가장 먼저 배워야할 건, 어떤 정보를 받아들일 것인지 선별, 식별하는 능력이다. 유발 하라리 박사가 책에 쓴 대로 ‘차고 넘치는 정보’속에서 무엇이 진짜인지 알아차리고 선택해야 한다. 대부분 우리는 이것을 무시하는 경우가 많았다. ‘가짜뉴스’가 계속 나오는 이유? 정치적인 공작? 글쎄, 나도 이 세상이 어떻게 굴러가는 지 다 알 수가 없기에 이런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사람들이 그런 뉴스를 계속 수요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사람들은 자극적이고 재밌는 것을 원한다. 영화 ‘굿바이 레닌’은 통일된 직후의 독일 한 가정의 엄마와 아들의 이야기다. 평생 동독을 열혈 지지해온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자, 아들은 통일 소식을 숨기고 ‘가짜 뉴스’를 만들어내기 시작하는 거다! 서독의 상황이 안 좋다는 둥, 동독은 오늘도 이렇게 끝내줬다는 둥 하는 뉴스들이었다. 

맞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이야기를 이런 식으로 들으며 통쾌해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 속에서 그런 어른들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걸 무슨 게임처럼 보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치 그들은 ‘이번 판은 내가 이겼다’하는 거 같은 표정이었다. 그래서 어떤 이들에게는, 그것이 그들이 사회에서 유일하게 ‘이겼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무엇인가- 하는 생각이 들어 씁쓸하기도 했다.

이와 반대로 자신과 대립되는 의견의 가짜뉴스도 때론- 다른 느낌으로 자극적이라 사람들에게 수요 되기도 한다. SNS에서 공유되는 뉴스들이 대부분 그러하며, 사람들이 실시간으로 들여다보는 것은 TV보단 SNS이기 때문이다.

정보 식별이 되지 않으면 가장 큰 피해를 보는 것은 ‘본인’과 그 주변 사람들이다. ‘이게 지금 핫한 뉴스’라며 퍼다 나르는 시대는 지났다. 그런 뉴스들은 지금도 계에에에속 나오고, 사람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돈의 흐름 같은 것을 예견하는 유튜버가 국내에도 정말 몇 만 명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잘못된 정보에 대한 믿음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그건 모를 일이다.

정보 식별이 21세기를 살아가며 조금- ‘당연시 되어야할 능력’이라면... 여기에 한 가지 더- ‘특별해질 수 있는 능력’이 있다. 나는 학교에서 이런 것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는 유발 하라리 박사의 글에 완전 공감하였으며, 그가 ‘역사학자’이기에 이런 것들을 더욱 절실히 느꼈으리라는 것을 왠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건 바로 정보를 어떻게 이해하고, 처리하고, 가공하느냐는 것이다.

 내가 잘났다는 건 아니지만- 어쨌든 내가 제일 잘 아는 나로 예를 들어보겠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가 되게 많은 경험을 해왔기에 글을 쓴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그럴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나는 남들과 비슷한 것들을 보고 다르게 생각할 줄 안다. 그것만 특수하다. 

그리고 내 주변에는 그런 사람들이 꽤 많고, 대부분은 창조적인 일에 종사한다. 그도 그럴 것이, 21세기에는 더 이상 새로운 것이 나올 수 없다. 다 이미 존재하는 무언가를 변형하거나 가공한 것일 뿐이다. 현재는 그런 능력이 내 주변처럼 음악이나 기획을 하고, 스토리나 옷을 만드는 직업군에서만 필요한 거 같아 보일지 모르겠으나... 조만간 모든 분야에서- 아니 사실 지금도 모든 분야에서 필요로 할지 모른다는 얘기다.

지나가던 꿈 많은 청소년을 붙잡고 물어보라. 그 아이는 특별한 누군가가 되고 싶을 수 있다. 직업적으로 그 분야에서 ‘획기적인 누군가’가 말이다. 그런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1년만 지나면 못 써먹는 정보가 아니라, ‘와, 어떻게 이런 생각을 했지?’하는 감탄을 자아내게 하는 ‘가공력’이다. 

아니- 여보! 여보는 어떻게 이렇게 간단한 걸로 뚝딱 이런 맛을 내?
하는 그런 신혼 부부 달달한 멘트 같은 걸 사람들에게서 한 몸에 받는 그런 것들-
그것이 그들에게 부와 명예, 달콤한 인생을 선사해 줄 수 있으니까. 나는 적어도 그런 꿈을 꿨기에 꾸역꾸역 학교에 나갔던 것 같다. 그래서 보상 받았냐고? 부와 명예까진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 인생이 지금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실은 지금도 몇몇은 그런 나- 뿐만 아니라 내 주변에 진짜 남다른 시야를 가진 이들을 부러워하는 이들을 꽤 많이 본다. 그 대상은 성별과 나이를 초월한다. 만일 누군가가 정보에 대한 본인만의 이해, 가공, 처리 능력을 가지려하지 않는다면 그런 열등감은 계속 지속될 수밖에 없다. 또한 그걸 배우지 않은 애들의 열등감은 이미 예견된 것이 아닐까.

Salvador Dali(1904-1989)

그것을 가장 잘 배울 수 있는 것?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난 그게 예술과 역사라고 생각한다. 역사학자인 유발 하라리가 써서 더 공감한다는 게 이 부분이다. 나는 예전에 내 유튜브 채널에서도, 우리가 왜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지 이야기한 바 있었다.(그거까지 쓰자면 너무 기니까 참고하시길) 하물며 다양한 역사관을 가진 이들의 말을 들어야하는 것도, 주어진 정보를 어떻게 각자 다르게 이해하는 지를 볼 수 있게 한다. 

작년에 어느 회사에서 나오는 모의고사 시험지 언어 영역에서... 비문학 파트의 시험지 지문을 쓴 적이 있었다. 그 회사에서는 ‘이런 문제를 낼 예정’이라는 것을 미리 알려준다. 그래서 나는 그런 문제를 내기 적절한 지문을 써야 했다. 거기에는 이해력을 보는 문제, 문제해결력을 보는 문제 등등... 이 적혀있었는데... 도대체 문제 ‘해결’능력을 어디서 확인할 수 있는 건지 알 길이 없다.

학교에선 정말, 알려주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도 안 알려주는 것 같다. 이것은 혼자 배워야하는 능력이다. 그것을 배우기 위해서 일단 그 능력이 얼마나 필요한 지를 먼저 느껴야 할 것이다. 주변에 운 좋게도 그런 사람들이 존재한다면 더욱 빠르겠지만 말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