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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김정한 칼럼]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

[공감신문] 내가 아는 지인 중에 '카르페 디엠' 즉, '이 순간을 즐기자'는 말을 생의 지표로 삼고 있는 이가 있다. 그녀를 볼 때마다 나는 기분이 좋아진다. 언제 어느 때 찾아가도 환한 미소를 머금고 몰입하며 반찬을 만든다. 마흔 중반인 그녀는 살면서 우유배달부터, 마트 계산원, 학습지 교사 등 안 해 본 일이 없다고 했다.

작은 체구의 그녀에게 어디서 그런 힘이 나올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그녀의 대답은 한결같았다. "엄마니까요" 그녀는 일초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니까요"로 대답한다. 그렇다. 여자는 나약해도 엄마는 강하다는 말도 있듯이. 엄마의 힘이다. 물론 세상의 모든 엄마가 그렇게 살지는 않겠지만.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그녀에게도 힘들었던 과거가 있었다. 너무나 궁핍해서 지독하게 쓸쓸하고 외로웠다고 했다. 그러나 지금은 서울 한복판의 전통시장에서 직원 3명을 두고 반듯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사장님이다. 지금은 누구보다도 행복하다는 그녀. 그녀의 반찬가게에서 내가 좋아하는 것은 맛깔스러운 우엉 무침이다. 먹을 때마다 느끼지만 조미료를 거의 넣지 않은 듯 뒷맛이 개운하다. 

한 달에 한두 번 정도 찾는데 한결같이 친절하고 상냥하다. 이 집의 매력은 물론 맛도 좋지만 아무리 바빠도 웃으며 안부인사를 잊지 않는다. 십수 년 몸이 기억하도록 길들여진 친절 때문일까. 종일 반찬을 만들며 고되게 보내면서도 웃을 수 있는 여유, 바쁜 가운데도 농담을 건넬 수 있는 넉넉함. 친구 같고, 동생 같고 이모 같은 친화력이 아마도 고객을 끌어들이는 비법이 아닌가 싶다. 

특히 반찬을 사가는 이들과 눈 맞춤하며 "행복하세요"란 말을 잊지 않는다. 물론 "행복하세요"란 말 때문에 나의 시간이 행복하게 흘러간다는 보장은 없다. 그러나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관심을 보여주는 자체가 고마운 일이기에. 기분도 좋다. 기도는 아니더라도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바라는 그 따뜻한 마음에 사람 냄새가 난다.

줄 서서 순서를 기다리며 지켜보면 반찬을 담아주고 돈을 받을 때에는 누구에게나 똑같이 친절하다. 오랜만에 들른 할머니에게는 "얼굴이 핼쑥하시네요. 어디 아프셨어요?"라며 친정 엄마를 대하듯 토닥인다. 또 넉넉히 반찬을 담아주며 건강하시라고 말한다. 낯가림이 심하고 사교적이지 못한 나로서는 그런 그녀의 행동이 의아하기도 하지만 탁월한 친화력이 정말 부럽다.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중국의 사상가이자 교육자인 공자께서 말씀하셨다. "세 사람이 길을 걸어간다면, 그중에는 반드시 나의 스승이 될 만한 사람이 있다"라고. 그렇다. 어쩌면 그녀가 나에게는 인간관계에 대한 스승일지도 모른다. 자꾸만 나의 발길을 그쪽으로 끌어당기니까. 그럼에도 인간의 본성은 바꾸기가 쉽지 않다. 애를 써보아도 잘 안된다. 글 쓰는 능력은 있지만 말주변도 없고 부끄러움을 많이 타서 쉽지 않다. 

가끔 머릿속이 복잡해지면 그녀의 가게를 한 바퀴 돌고 온다. 옷이 젖도록 땀을 흘리며 분주하게 반찬을 만들고 포장하고 파는 그녀의 모습을 보며 느슨해진 마음을 다잡는다. 살면서 얼마나 많이 가졌든 얼마나 많이 배웠든 나이가 많든 적든 간에 만나는 모든 이들에게 배울 것은 있다.

그녀의 반찬가게로 들어가면 하얀 벽에 '카르페 디엠'이라고 붓글씨로 쓴 액자가 벽에 걸려있다. 그녀는 힘들 때마다 그 문구를 보며 힘을 얻는다고 했다. 친정아버지가 살아생전에 만들어주신 액자라며 일부러 일터에 걸어두고 매일 본다고 했다. 

반찬을 만들며 사람과 대화를 주고받으며 하루를 열고 닫지만 힘들 때마다 액자를 쳐다보며 아버지를 추억하며 또 힘을 얻는다고 했다. 나에게도 힘이 되는 문구가 있다. 가장 힘들었을 때 내 울음을 멈추게 해 준 말이 있다. '모든 것은 다 지나간다'는 성경의 한마디가 서른 중반부터 지금까지 나의 생을 지켜주고 있다. 

다시 그녀의 얘기로 돌아가서 그녀도 자신의 반찬가게를 운영하기 전까지 크고 작은 실패를 했다. 많은 것을 잃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가니까 좋은 날이 찾아왔다고. 살고자 하는 꿋꿋한 의지만 있으면 대단하지 않지만 평범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고.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 누구나 소중한 것을 잃어버리고 나서야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인가를 깨닫게 된다. 

그녀도 그랬다. 우유배달, 마트 계산원 등 여러 일을 한꺼번에 하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자식이 있었고, 또 보란 듯이 일어나겠다는 집념이 있었던 것이다. 새벽에 우유를 돌리면서도 아이에게 맛있는 것, 더 좋은 것을 사주기 위해 묵묵히 견뎠을 것이다. 엄마에게 자식은 비타민 같은 존재. 힘을 주고 미소를 번지게 한다. 삶에 탄력을 주는 힘은 똘똘한 자식의 눈빛이다. 

나는 늘 그녀의 얼굴을 대할 때는 웃음이 나고 기분이 좋아지고 무엇이라도 하나 사주고 싶은 마음이 든다. 정작 가족이라면 얼마나 애틋할까? 늦은 밤 식탁 앞에 둘러앉아 아이들과 오손도손 하루 일과를 풀어내며 맛있게 식사하는 그녀를 생각하면 웃음이 번진다. 덩달아 좋다. 

살다 보면 단 한 번을 만났음에도 기억에 오래 남는 이가 있다. 어떤 일을 하든 자신이 하는 일에 진심으로 최선을 다하는 이에게는 그만의 특유의 향기가 있다. 내가 만난 반찬가게 사장처럼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은 어딜 가나 있다. 그런 곳에는 사람이 모인다. 반찬가게든, 밥집이든, 옷가게든. 주어진 일에 사명감을 갖고 성실하게 스스로 길을 만들어 가는 이에게는 사람이 모인다. 하나 둘 사람을 모이다 보면 그 길을 따라가는 사람도 생긴다.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그렇게 되면 힘든 일을 하면서도 성취감은 차오른다. 커다란 성취감을 맛보고 나면 더 가치 있게 살려고 노력한다. 나름대로 새로운 꿈을 생각하며 그 꿈을 향해 새로운 도전을 하게 된다. 아름다운 도전의 연속이 아름다운 사람으로 거듭나게 한다. 스스로 아름답다고 느껴지면 그게 성공이고 행복이니까. 진정한 성공은 성취물와 행복감을 모두 안는 것이기에. 

누구에게나 생의 가치가 있다. 그 가치가 돈이든, 명예든, 권력이든 최종 목적지는 행복이다. 행복이라는 단어를 만나기까지 우리는 크고 작은 상실을 안게 된다. 상실을 겪지 않고 행복을 만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상실을 거치면서 내게 가장 귀한 것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향해 도전하게 되는 것이다. 가장 소중한 것을 상실하고 나면 정신이 번쩍 든다. 그리고 정확한 분별력도 생긴다. '소중한 것, 소중하지 않은 것' '내 것, 남의 것'이 분명해진다. 

깨달음의 경지에 이르고 나서야 가장 소중한 것이 무언인가를 발견하게 된다. 다만 무언가를 하기에 너무 늦지 않도록 부지런히 경험해서 깨우쳐야 한다. 깨우치고 나면 무엇을 하든 열정적이다. 무엇을 하더라도 최선을 다한다. 스스로 최선을 다했다고 느껴지면 감동이 따른다. 감동이 따라와야 땀이 젖은 옷에도 향기가 난다. 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향기가 행복이기에. 

산꼭대기를 향해, 해돋이를 향해, 희망을 향해 내디딘 가장 연약한 한 걸음이 가장 맹렬한 폭풍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조셉M. 마셜은 말했다. '그래도 계속 가라(Keep going)' 그렇다. 늦기 전에, 더 많이 후회하기 전에 가자. 머뭇거리며 웅크리고 앉아 있기에는, 절망하며 한탄하기에는 여전히 시간이 많다. 

당당히 가자.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되느냐고 세상에 묻지 말고 스스로에게 질문하자. 정답을 알고 있는 사람은 자신 뿐이다.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답을 만들어가자. '나만의 향기'가 나는, '좋은 향기가 나는 사람'으로 거듭 나자. 

    김정한 시인 | shin-wjd@hanmail.net

    <잘있었나요 내인생>외에 스물다섯권의 책을 써온 시인 김정한입니다.
    늘 행간에서 춤을 추며 기쁘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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