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지난 가을 여행자들과 '민박집 주인'의 만남과 그들 각각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풀어내며 인기를 끌었던 한 '게스트하우스 예능프로그램'이 겨울을 맞아 시즌2를 준비하고 있단다. 또, 저렴한 비용으로 해외여행을 하고, 출연자별로 여행코스를 구성해 비교하는 TV프로그램도 인기를 끌고 있다.

그것 말고도 왜, 요즘은 '디지털 노마드'라고 해서, 전자기기의 발달로 원하는 곳에서 언제든 일할 수 있다는 생활 방식이 이슈가 되고 있단다. 그렇게 여행하듯 여유로운 삶을 즐기는 이들이 부러워진다. 하지만 그건 모두 우리와 거리가 먼, 남의 얘기일 뿐이다. 어쨌거나 저쨌거나 오늘도, 내일도, 모레도 우리는 출근을 해야하니까.

"아, 지겹다!"

많은 분들이 입에 달고 사시는 말일 것이다. 특히 지난 일요일 밤, 내일이면 또 어김없이 회사로 기어들어가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불퉁거리면서 내뱉으셨을지 모를 말이다. 지겹다. 그래, 바쁘고 정신없는 우리 현대인들은 모두 지겹다. 늘 반복되는 일상이 지겹고, 매일 오가는 길목 풍경은 거기서 거기라 지겹다. 너무 지겨워서 하품이 나지만, 벗어나긴 힘들기에 하루 하루를 또 꾸역꾸역 집어삼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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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대부분은, 늘 어디론가 떠나고 싶어한다. 그래서 "여행 가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산다. 하지만 창고 구석에 먼지만 쌓여가는 캐리어를 쉽게 꺼낼 수는 없다. 혹자는 "그냥 떠나라!"라고 말할지 모르지만, 어디 그게 그렇게 쉽나.

여행 가고 싶다. 훌쩍 떠나고 싶다. 온갖 도구들로 빵빵해진 배낭을 들쳐매고, 혹은 얇은 셔츠에 보트슈즈 차림으로 이국적인 거리, 대자연 속을 거닐고 싶다. 하지만 당장은 돈, 시간, 직장 등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불가능한 선택이다.

그렇다면 스크린을 통해서라도 대리만족을 해보는 것은 어떨까?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 소개하는 영화들은 여러분이 언젠가 떠나고픈 곳들의 아름다운 풍경을, 그리고 그 속에서 느린 삶을 향유하는 이들의 모습을 다루고 있다. 또, 여러분을 "이것저것 돌아보지 말고 떠나라!"라며 충동질할 수도 있겠다.

[Photo by Matthew Smith on Unsplash]

아직은 비록 선뜻 떠날 엄두가 안 날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행은 결국 용기가 없어서 못 떠나는 거"란 말도 있듯, 이 영화들을 보고나면 "그래, 바로 저거다!"라며 용기를 내고, 마침내 떠날 수 있게 될지도 모른다. 비약이 심하다고? 사람이 뭔가를 결정할 때는 때로 사소한 것이 가장 큰 동기가 되기도 한다. 그리고 또, 안 떠나면 좀 어때. 길고 긴 여행 끝에 "역시 집이 최고야"란 말을 하는데, 그 최고로 좋은 집에서 여행하는 기분을 대리체험할 수 있으니 얼마나 좋은가.

 

※ 아래 영화에 대한 스포일러가 포함됐을 수 있다.

-로마 위드 러브

-한여름의 판타지아

-사랑해, 파리

-버킷리스트

 

■ 로마 위드 러브(2012)

예술과 문화. 역사의 흐름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건축물과 유적지들. 와인과 커피. 그리고, 무엇보다도 사시사철 따뜻하게 내리쬐는 햇빛. 이 모든 것이 있는 로마를 아름답게 담은 영화들은 많다. 1950년대에는 오드리 햅번이 주연한 '로마의 휴일'이 아름다운 로마 풍경을 묘사하면서 관광명소들을 새롭게 탄생시켰고, 소설 '냉정과 열정 사이' 역시 영화화되면서 피렌체 두오모를 상징적으로 그려내 관광객 몰이에 한몫 했다.

[영화 로마 위드 러브 장면]

이 영화, '로마 위드 러브'는 그런 낭만적인 로마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여러 환상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 이 영화의 장르를 무어라 구분해야 할까. 로맨스라 하기도, 코미디라 하기도, 판타지라 하기도 애매하다. 그런데 그 애매한 요소들을 두루 갖추고 있다.

[영화 로마 위드 러브 장면]

뿐만 아니라 누군가 펑펑 눈물을 터뜨리거나, 가슴 아픈 이별을 나누지도 않는다! 흔히 갈등 없는 영화는 밋밋하다고들 하는데, 이 영화는 별 다른 갈등 없어도 그리 심심한 느낌이 안 든다. 아마 지중해성 기후의 따사로운 햇살이 간을 해줬기 때문이지 않을까?

[영화 로마 위드 러브 포스터]

로마 위드 러브는 우리가 알고 겪고 몸 담고 있는 현실과 조금 다른 일상, 그리고 그 일상으로부터의 소소한 탈출을 그리고 있다. 앞날을 걱정하고, 계획을 세우고, 노후를 대비하는 우리와는 달리, 그들은 돌발적인 상황에 유동적으로 대처하고, 인생이란 급류에 흘러가는 대로 몸을 맡긴 것 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런 점이 부럽고, 우리도 저 곳으로 가면 한결 여유를 만끽할 수 있을 것이라 꿈을 꾸게 된다. 특히나 온 몸의 근육을 긴장시키는 요즘의 강추위가 지긋지긋하다면 이 영화를 추천한다. 앞서 언급한 '로마의 휴일', '냉정과 열정사이'가 로마를 '관광'하고 싶게끔 만든다면, 이 영화는 로마에 '눌러살고 싶게끔' 만든다.

 

■ 한여름의 판타지아(2014)

혼자 훌쩍 여행을 떠나는 이들 중에는 '여행지에서의 짧지만 뜨거운 로맨스'를 꿈꾸는 이들도 많다. 아마도 낯선 나라, 낯선 도시와 사랑에 빠지면서 세상이 평소보다 한결 낭만적으로 보이기 때문에, 그때 느끼는 로맨틱함을 누군가와 공유하고 싶어서 그런 꿈을 꾸는 건 아닐까 싶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장면]

이 영화의 1부는 흑백으로 영화 감독이 촬영지를 사전답사하는 내용인지라, 영화 속 배경인 고조(五條) 시의 한가로움이 그리 선명하게 드러나진 않는다. 쇠락해가는 아름다운 고조 시의 모습은 본격적으로 색채가 등장하는 2부에서 조금 더 잘 드러난다. 그리고 2부는, 고조 시를 방문한 한국 여인 '혜정'과 현지에서 감을 재배하며 사는 순수한 청년 '유스케'의 짧은 로맨스를 다루고 있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장면]

흔히 '일본 여행'하면, 복잡하고 화려한 도쿄나 고즈넉한 전통이 담겨있는 교토, 식도락 여행을 위해 떠난다는 오사카 등을 꼽는다. 헌데 영화는 별 다른 매력도 없어뵈는 이 도시, 고조 시를 느긋하게 비추면서 관객들의 호기심을 자아낸다.

작품 속 혜정과 유스케는 초면이다. 그런만큼 둘 사이에는 호감 이상의 뭔가가 오가기엔 아직까지 어색하다. 그래서 두 사람의 대사 사이에는 어색한 침묵이 맴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점이 '사랑도 빨리, 이별도 빨리', 뭐든 바쁘게 맺어지는 우리네 보통의 로맨스와는 달라 더욱 설레고, 흐뭇한 미소를 자아낸다.

[영화 한여름의 판타지아 포스터]

느리게 흘러가는 시골 마을의 정다운 풍경. 누군가는 '이런 곳에 뭐 볼게 있나' 핀잔할 수도 있겠지만, '정신없다'는 말을 온 몸으로 느껴본, 지친 사람들이라면 이곳을 찾아 게으른 산책을 해보고 싶어질지도 모르겠다. 또, 음악도 끝내주게 '판타지아'스럽다.

 

■ 사랑해, 파리(2006)

'낭만의 도시'라 불리는 파리를 정말 낭만적으로 그려낸 영화는 수도 없이 많다. 아마 많은 이들이 떠올릴 '비포 시리즈'도 파리가 주 무대고, 환상적인 1920년대 파리의 밤을 그린 '미드나잇 인 파리'도 그렇다. 그런가하면 심지어 소설 원작의 스릴러 영화 '다빈치 코드'에도 파리, 루브르 박물관이 등장하고, 이 낭만적인 도시의 상징적인 조형물 '에펠탑'이 등장하는 영화는 정말 많다.

[영화 사랑해, 파리 장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부득불 '사랑해, 파리'를 '여행 뽐뿌 영화' 중 하나로 꼽고 싶다. 다양한 감독들이 파리의 명소 곳곳을 테마로 여러가지 이야기를 엮어냈으니까, 그만큼 파리의 면면을 다양하게 드러내 보여주니까. 

[영화 사랑해, 파리 장면]

영화에서는 무려 열 여덟 장소에서 열 여덟 가지 이야기가 짤막짤막하게 펼쳐지는데, 불현듯 찾아오는 청춘의 사랑, 파리의 지하철에서 곤경에 처한 관광객의 이야기 등 그 종류도 다양하다. 심지어 어떤 이야기는 뱀파이어가 등장하고, 또 어떤 이야기에선 유령이 등장한다.

[영화 사랑해, 파리 포스터]

아무런 접점 없는 이 영화 속 각각의 이야기들이 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여러분의 취향에 꼭 맞을 것이라 장담할 수는 없다. 아무래도 열 여덟 가지 이야기들이 각각의 장소에서 펼쳐지니까. 하지만 이 영화는 '이 중에 네 취향이 하나쯤은 있겠지'라는 요즘 말로 설명할만 하다.

또, 그런 중구난방의 이야기들이 파리 곳곳의 명소들을 배경으로 펼쳐지다보니 거기서 오는 시각적인 만족감도 상당하다. '세느 강변' 이야기에서는, 첫 눈에 반하는 두 청춘남녀의 모습이 한결 더 낭만적으로 느껴지고, '마들렌느 구역' 이야기에서는 무채색 배경과 대비되는 붉은 피가 영화 '씬 시티'의 영상미를 떠올리게 한다.

 

■ 버킷리스트(2007)

요즘은 '버킷 리스트'란 말이 자주 사용된다. 죽기 전에 꼭 해보고 싶은 일 등을 나열한 리스트(list)를 의미하는 이 단어는 영화 '버킷 리스트' 이후 널리 쓰이게 됐다.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봤을 법한 이 리스트를 버킷 리스트라 부른다는 것이 영화를 통해 알려지자, 사람들은 각자 나름의 꿈, 포부 등을 버킷 리스트란 이름으로 정리해보기 시작했다.

[영화 버킷 리스트 장면]

영화 버킷 리스트는 죽음을 앞둔 두 노인이 인생에서 한 번쯤 이루고 싶었던 일들의 리스트를 하나 둘씩 이루면서 지워가고, 그 과정에서 삶과 죽음, 인생과 행복, 신의 존재, 윤회 등 온갖 것들에 대해 소탈하게 대화를 나누는 과정을 그렸다.

[영화 버킷 리스트 장면]

영화는 '에드워드(잭 니콜슨)'와 '카터(모건 프리먼)'과 함께 북극 상공, 아프리카 세렝게티 초원, 타지마할 등 우리가 한 번쯤 꿈꿔봤을 세계 곳곳의 장엄한 광경들을 찾아간다. 특히 이집트 피라미드 꼭대기에 앉아 석양을 등지고 사후세계에 대해 두런두런 대화를 다누는 장면은 숱한 몽상가들에게 로망으로 남기도 했다.

[영화 버킷 리스트 장면]

누군가는 우스갯소리로 "우린 에드워드처럼 부자가 아니라 죽기 전에 저렇게까지 다 해보진 못할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꿈꾸는 것의 힘은 의외로 강력한 법, 간절히 소망하는 것은 구체적인 노력을 불러오고, 구체적인 노력은 꿈을 실현시키는 가장 큰 원동력이다. 그러니 툴툴거리기보다는, 지금 당장이라도 리스트를 업데이트하고, 그것을 이루기 위해 무엇부터 시작해야할지를 고민하는 게 낫겠다.

 

■ 떠날 수 있게 될 언젠가를 꿈꾸며

마지막으로 소개한 영화, 버킷 리스트의 엔딩곡으로는 존 메이어의 'Say'가 삽입됐다. 이 곡은 우리에게 "패배하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나이드는 걸 두려워하지 말고", "스스로 자신에게 필요한 말을 해보라"고 권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말은 뭘까? 사람마다 원하는 바는 다르겠지만, 이 길고도 지루한 글을 끝까지 따라와주신 분들이라면 '떠나는 것' 그 자체가 꿈인 이들도 분명 계시겠다.

[Photo by Yousef Alfuhigi on Unsplash]

그런 분들께 무턱대고, "자, 이제 떠나자!"라 무책임하게 조언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각자가 처한 환경도 다 다를터고, 모니터(혹은 스마트폰 화면) 너머의 여러분이 무엇을 꿈꾸고, 무엇이 그 꿈에 방해가 되는지까지 기자가 알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

어쩌면 여러분이 아직은 아쉽게도 뭔가에(주로 돈이겠다) 얽매여, 혹은 여력이 되지 않아 훌쩍 떠날 수 없는 상황일지도 모른다. 또는, 기회가 왔지만 쉽사리 용기가 나질 않아 "다음에" 하며 떠나길 미루고 있을지도 모른다.

다 좋다. 그럴 수 있고, 무엇이 두렵고 무엇이 걱정되는지, 왜 현실적으로 어려운지 이해한다. 하지만 결코, 절대로 "떠나겠다"는 꿈을 쉽게 포기해버리진 마시길 바란다. 한 곳에만 붙박혀 있기엔 여러분은 너무나도 자유로운 영혼이고, 꿈을 "현실에 순응한다"면서 포기하는 건 그 자유의 날개를 꺾어버리는 행동이니까.

[Photo by Matese Fields on Unsplash]

항상 꿈꾸시길. 언젠간 모니터 너머 화면이 아니라 두 눈으로 장엄하고 아름다운 광경을, 아름답고 여유가 넘치는 낭만의 거리를 담아내겠다는 그 다짐을 결코 잊지 않으시길 바란다. 그리고 늘 스스로에게 속삭이자. 자유로운 우리에게 필요한 말을 우리 스스로가 들려주는 거다. "언젠간 꼭 떠나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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