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인들의 고충, 유형별 '파워하라' 뜯어보기

[공감신문 시사공감] 2015년 10월, 도쿄의 한 경찰서에서 당시 29세였던 경관이 권총을 이용해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벌어졌다. 이로 인한 충격이 채 가시기도 전인 2016년 2월, 똑같은 장소에서 53세의 경관이 똑같은 방법으로 자살을 선택해 일본 사회를 충격에 빠뜨렸다. 

두 경관 모두 자신들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로 한 상사를 지목했다. [pxhere/CC0 public domain]

이 2명의 경관은 죽기 직전 각각의 메모를 남겼는데, 그 안에는 놀랍게도 이들 모두 자신의 죽음에 대한 책임자로 한 사람을 지목했다. 책임자로 지목된 인물은 같은 경찰서에 근무하는 상사였다. 고인들은 메모를 통해 상사의 지속적인 폭언으로 인한 괴로움이 자신들을 죽음으로 떠밀었다고 밝혔다.

이처럼 직장 내에서의 괴롭힘으로 인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사례가 늘어나면서, 최근 몇 년 간 일본 사회에서는 ‘파워하라’라는 단어가 심각한 사회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파워하라는 ‘권력’을 뜻하는 파워(power)와 ‘괴롭힘’을 뜻하는 하라스먼트(Harassment)를 합한 조어로, 직장 내 권력형 폭력을 모두 아울러 가리키는 단어다. 

파워하라에 대한 지적은 꽤 오래 전부터 이어져왔다. 그러나 끊임없는 문제제기에도 줄어들기는커녕 오히려 ‘세쿠하라’(직장 상사가 부하직원을 성(性)적으로 괴롭히는 행위), ‘마타하라’(임신, 출산 등으로 직장에서 차별을 받는 행위), ‘파쿠하라’(상사가 사원의 ‘아버지 역할’을 막는 행위) 등의 파생어마저 등장하고 있는 상황이다. 

없어지라는 파워하라는 안 없어지고 오히려 파생어만 난무하는 상황이다. [CC0 photo/CC0 public domain]

일본 후생노동성(후생성)의 조사 결과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노동국에 접수된 노동상담 중 ‘괴롭힘·추근거림’에 대한 건은 무려 7만917건에 달하며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지난해 조사에서는 직장인 3명 중 1명이 최근 3년간 파워하라를 경험한 적이 있다고 답했으며, 이 가운데 70% 이상은 그로 인한 분노, 불만, 의욕감퇴 등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했다.

후생성은 이에 대처하기 위해 파워하라에 해당하는 사례들을 소개하고, 이에 대한 대처법을 안내하는 핸드북을 발간하는가 하면, 관련 법 제정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에서 다룰 내용은 말만 들어도 스트레스 받는 직장 내 권력형 폭력에 대한 이야기다. [pexels/CC0 License]

오늘 시사공감 포스트에서는 일본 내 사회문제로 심각하게 거론되고 있는 파워하라에 대해 함께 들여다보고자 한다. 어쩌면 포스트를 읽는 사이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거리고 있는 여러분을 발견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 부장님, 그것도...! 
파워하라는 직장에서의 우위를 이용해 타인의 인격과 존엄을 침해하는 모든 행위를 아우르는 단어다. 흔히 물리적인 폭력이나 폭언만이 이에 해당할 것이라 생각하기 쉽지만, 후생성에서 정의하는 파워하라를 보면 꼭 그렇지만은 않은 듯하다. 

상사가 갑자기 뚫어져라 바라보면 왠지 잘못한 게 없어도 미안해지는 기분이다(...) [pexels/CC0 License]

후생성에서는 파워하라를 여섯 개의 유형으로 나누고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를 들어 어떤 행위들이 해당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생각보다 파워하라의 범위가 넓기 때문에 직장 관계에서는 항상 ‘을’이라고 여겨졌던 우리마저도 어디에선가는 파워하라의 가해자였을지 모를 일이다.

(1) 신체적 공격 : 발로 차거나 때리는 등 몸에 위해를 가하는 행위는 당연히 파워하라에 속한다. 그것이 설령 가벼운 서류라 할지라도 타인을 향해 물건을 던지는 등의 행위는 절대 금해야 한다고 후생성은 안내하고 있다. 

 

(2) 정신적 공격 : 후생성에서는 “쓰레기”와 같은 심한 욕설 외에도 “그만둬라” 등의 사원으로서의 지위를 위협하는 말, “너는 초등학생 수준이야”, “무능자” 등 모욕, 명예훼손에 해당하는 말까지도 파워하라에 속한다고 얘기한다. 설령 이런 말들이 업무지시 중 나온 말이라 하더라도 업무를 수행하는 데 필요하다고 생각할 수 없다는 것이다. 

(3) 인간관계의 고립 : 직장 내 ‘왕따’ 역시 파워하라에 해당한다. 혼자만 다른 곳에 책상을 갖다 둔다거나, 사내 행사에 일부러 부르지 않는다거나 하는 모든 행위들이 포함돼 있다. 물론 같은 직급의 직원들 간에 생기는 왕따도 마찬가지다. 

‘권력형 폭력’이라고 하면 지휘권을 가진 직장상사가 부하 직원에게 행하는 폭력만을 떠올리기 쉬우실 테지만, 직장 내에는 그보다 더 다양한 상하관계가 있다는 것이 후생성의 설명이다. 이를 테면 똑같은 직급을 가지고 있더라도 좀 더 전문적인 업무를 수행하는 직원, 이전부터 오래 근무한 직원 등은 그렇지 않은 이들보다 우위를 점하게 된다는 것. 그렇기 때문에 이들 관계에서 생기는 고립까지도 파워하라에 포함이 된다고 한다. 

(4) 지나친 요구 : 업무상 불필요한 일이나 수행이 불가능한 일을 떠넘기는 것 역시 파워하라다. 물론 개인의 업무량은 회사나 그 부서의 업무량에 따라 제각각이기 때문에 단순히 일의 양이 많다는 것만으로는 파워하라가 될 수 없다. 하지만 개인의 능력과 경험을 고려하지 않고 다른 직원들보다 몇 배로 많은 업무량을 떠안기는 것은 ‘과대 요구형’ 파워하라에 해당한다. 

(5) 과소한 요구 : 반대로 개인의 능력과 경험에 동떨어진 정도의 사소한 일을 시키는 것이나 업무를 부여하지 않는 것도 파워하라에 속한다. 이를 테면 영업직으로 채용된 직원에게 직무와 관련된 일은 주지 않고, 사무실 청소를 시킨다거나 아예 일을 주지 않는 것이다. 

(6) 사생활 침해 : 일본의 노동법상 연차 등의 휴가를 신청할 때 직원들이 휴가의 이유까지 밝혀야 할 필요는 없다. (이는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직원의 휴가가 업무에 크게 방해가 되지 않음에도 휴가 사유를 꼬치꼬치 캐묻는 것은 사생활 침해형 파워하라라고 후생성은 안내하고 있다. 

이외에도 휴대폰, 사물함, 가방 등 개인소지품을 함부로 열어보거나 직원의 SNS에 도를 넘게 참견하는 등의 행위 역시 파워하라로 규정되고 있다.

 

■ 파워하라, 이렇게 대처하세요

상사님의 그 파워하라, 저는 반댈세!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그렇다면 파워하라를 당한, 혹은 당할지도 모르는 이들은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 사전 교육과 대화를 통해 미리 예방하고 대처해야 한다는 건 누구나 잘 아는 이상이지만, 사실 그렇게 되기란 쉽지 않다. 일본에서는 파워하라를 행하는 상사들의 타입별로 어떻게 대처해야 할지, ‘실질적’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하고 있다. 

 

“자아도취타입” 자기 자신을 너~무 사랑하다 못해 자기자랑을 밥 먹듯이 하는 상사들이 있다. 이런 타입의 상사들은 통상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남에게 자신의 생각을 주입시키려는 의지가 강하다. 심한 경우에는 남을 함부로 깔보거나 무시하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이런 타입의 상사들은 자기애가 넘치는 스타일로, 이야기를 잘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부하직원을 좋게 볼 가능성이 크다. 업무와 크게 관련 없는 자기자랑을 남발할지언정, 남에게 직접적인 해를 끼치는 경우는 적기 때문에 적당히 상대하고 듣기 싫은 소리는 알아서 흘려듣는 지혜가 필요하다. 
 

“기분파타입” 불과 몇 시간 전에 지시한 내용도 잊어버리고 “내가 언제?”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사는 상사 분들도 계시다. 이렇게 건망증이 심한 상사들일수록 논리적이지 않은 말을 자주하고, 감정기복도 심한 편이다. 더러는 말도 안 되는 지시를 내리기도 하고 그마저도 지시사항이 여러 번 바뀌는 데다 뭘 지시하는 건지 알 수 없을 때도 많다. 

일본에서는 이런 상사들을 가리켜 기본적으로 상사로서의 역량과 능력이 부족한 것이라고 단정 짓고 있다. 애초에 상사의 그릇이 아닌 이들이기 때문에, 적당히 맞춰주면서 기다리다 보면 알아서 자멸하게 될 것이란다.(...)
 

“성악타입” 남을 헐뜯는 데서 자신의 자존감을 찾으려는 이들은 어느 관계에서나 존재한다. 하지만 권력을 가지고 있는 상사가 이런 케이스에 속한다면 부하 직원 입장에서는 정말 최악 중에 최악일 것이다. 이 타입의 상사들은 부하 직원들의 험담을 자주 하고, 자신이 미워하는 직원에 대한 정당한 평가도 내리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 부하직원을 성장시키지 않고 오히려 부하직원을 밟고 올라가려는 이들도 성악타입에 속한다. 

하지만 아무리 상사가 나를 나쁘게 본다고 해도 표면상으로는 좋은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게 좋다. 이런 타입의 상사들은 나쁜 쪽으로(!) 명석한 경우가 많기 때문에 반격을 하게 된다면 신중히 접근해야 할 것이다. 
 

“이중인격타입” 상대에 따라 태도가 180도 급변하거나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는 상사라니, 생각만 해도 비호감이다.(...) 이런 타입의 상사들은 자신보다 윗사람에게는 상냥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고압적인 경우가 대다수다. 

이런 이들은 대개 표면적으로는 평판이 좋은 인물인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겉으로 드러내는 얼굴과 뒤에 가려진 얼굴의 양면성을 잘 파악하는 것이 포인트. 이중인격타입의 상사를 만나게 되면 너무 신뢰하지 말고, 필요 이상으로 가까워지지 않는 편이 좋다고 한다. 
 

“독재자타입” 버럭! 말도 꺼내기 전에 일단 화부터 내는 상사들도 많을 것이다. 자주 호통을 치고, 폭력적인데다 입까지 험한 그 상사는 바로 독재자타입에 해당한다. 부하 직원들에게 무턱대고 무리한 일을 강요한다거나, 무시하고 괴롭히는 데 어려움이 없는 이들도 마찬가지다.

이 타입의 상사들은 대개 본인이 ‘파워하라’를 행하고 있는지조차 알고 있지 못하는 경우가 대다수기 때문에 이해를 구해도 들으려 하지 않는다. ‘독재자’ 상사에게서 폭력·폭언을 당한 경우엔 당사자 간의 대화로 해결하려하기 보다는 관련 기관에서 상담을 받는 것이 좋다. 

 

■ 어디서 많이 들어본 얘기라고?
지금까지 일본의 ‘파워하라’ 이야기를 쭉 들어봤다. 그런데 읽으면서 왠지 어디서 많~이 들어본 이야기라고 생각하신 분, 분명히 있으실 테다. 아직 잘 모르시겠다고? 그렇다면 ‘파워하라’를 ‘갑질’이라는 단어로 바꿔보면 어떤가. 

땅콩회항 사건은 몇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대표적인 갑질 사건으로 꼽힌다.

우리나라 역시 직장 내 갑질 문제가 몇 년 째 근절되지 않는 사회문제로 화두에 올라 있다. 대한항공 조현아 전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에서부터 간호사들의 열악한 실태를 알린 ‘성심병원 간호사’ 사건까지. 사회적 공분을 일으킨 사건들 중 대다수가 직장 내 갑질, ‘파워하라’에 속한다. 

크고 작은 갑질문제가 끊이지 않는 탓에 얼마 전에는 ‘직장갑질119’라는 민간 공익단체도 생겨났다. 200여명의 노동활동가, 변호사, 노무사 등이 이 단체에서 자원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11월 1일 처음 출범한 ‘직장갑질119’이 한 달 간 받은 ‘갑질제보’는 무려 2000건에 달한다고 전해진다. 얼마나 많은 이들이 직장에서 고초를 겪고 있는지 엿보이는 대목이다. 

지난 11월 처음 출범한 민간공익단체 직장갑질119.

하지만 아직 정부차원의 이렇다 할 ‘갑질 근절’ 대책은 없는 형편이다. 앞에서 소개했던 바와 같이 일본 정부에서 몇 년째 관련 통계를 내고, 파워하라 예방 및 안내 핸드북까지 발간한 것과는 대조적인 모습이다. 

 

■ 건강한 직장을 만들기 위해서는 
일본 후생성은 파워하라를 예방하고 해결하기 위해 여러 가지 대응 방안을 추진한 결과 가장 효과가 좋았던 것으로 ‘강연과 연수회 실시’를 꼽았다. 특히 관리직을 대상으로 파워하라에 대한 강연 등을 진행한 기업 중 무려 74.2%가 효과를 체감했다고 한다. 

교육을 통해 오랜 기간 굳어진 인식을 변화시킨 사례라고 볼 수 있겠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이는 아마도 오랫동안 ‘상명하복식’의 수직적 조직문화가 이어져 내려온 탓에, 많은 상사들이 자신의 행동이 파워하라임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반증하는 게 아닐까?

그리고 어쩌면 여러분을 괴롭히는 그 상사도 이런 행동이, 이런 한 마디가 누군가를 괴롭히는 것이라고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것일 수도 있다. 달리 생각해보면 그들도 지금껏 그런 시간을 거쳤을 테니 말이다. 정부차원의 대책이 필요한 것도 여기에 있다. 개개인의 노력만으로는 수년 간 쌓아올린 인식의 변화를 이끌어내기 어렵기 때문이다. 

굳이 윽박을 지르지 않아도, 업무를 잘 수행해나갈 수 있다는 것은 여러분도 알고 우리 상사분들도 알고 계실 거다. (딸랑딸랑) [pexels/CC0 License]

악습은 언젠가 후퇴하기 마련이다. 아마 ‘갑질’, ‘파워하라’ 등의 단어가 생겨난 것도 이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타파하기 위해서일 테고 말이다. 하지만 이로 인해 누군가가 계속해서 부당하게 피해를 받고 있다면, 하루라도 빨리 이를 개선해나가는 노력이 더욱 더 필요하지 않을까. 

상사와 부하 직원, 회사와 근로자 등 당사자들뿐만 아니라 사회와 정치권이 모두 다 함께 노력해나간다면, 언젠가 ‘갑질’ 같은 단어는 역사 속 뒤안길로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란다. 

언젠가 갑질이라는 단어가 우리 사회에서 영원히 사라지는 날이 오기를 바란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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