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김정한 칼럼] 이별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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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김정한 칼럼] 이별에 대한 예의
  • 김정한 시인
  • 승인 2017.12.15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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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이별은 더 나은 만남을 위한 과정

[공감신문] 우리는 매일 수많은 이별 속에 살고 있어요. 익숙한 장소에서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 기분 좋게 식사를 하고도 헤어지죠. 익숙한 습관처럼 아침과 낮, 밤과 만나고 이별하는 것에 길들여져 있어요. 원하든 원하지 않든, 우리의 하루는 만남과 이별로 시작되고 끝나죠. 일상 여기저기에서 만날 수 있는 이별이지만, 이별은 전혀 익숙해지지 않고, 이별 앞에서는 두렵고 자꾸만 작아지는 자신을 발견하죠. 

“이 사람과 헤어지면 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내가 이 회사를 그만두면 더 괜찮은 회사에 갈 수 있을까.” 
“지금의 힘든 상황과 이별하고 싶은데…….”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이별은 사랑하는 사람과의 헤어짐만을 의미하지는 않아요. 방금 마주친 눈부신 햇살을 포함해서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는 것도 이별이고 익숙하게 길들여져 왔던 가족으로부터 독립하는 것도 이별이에요. 과거의 기억에서 벗어나는 것도, 타인과 비교하는 마음에서 해방되는 것도 이별이에요. 그러니 이별은 일상에서 마주치는 모든 것들 안에 있어요. 

그러나 어떤 것과 이별하든 이별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에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은 두려움, 불안, 위축, 외로움을 부르죠. 좋지 않게 이별하면 미래가 불투명해지고 답답한 상황과 마주하잖아요. 그러나 인연과 잘 소통이 되지 않고, 고집이 세고 결벽증이 심하면 분명 이별에도 서투른 법이죠. 그럼에도 이별을 해야 할 상황이면 좋은 이별을 해야죠. 좋은 이별은 더 나은 기회를 안겨주죠. 이별을 잘해야 새로운 만남에도 자신감이 생겨요. 이별을 하고 나면 가끔 그런 생각을 하게 되죠. 

'그 사람은 잘 지내고 있을까?' 

한 번쯤 물어보고 싶고 어떻게 지내나 궁금하기도 하고 그러면서 그 사람을 생각하게 되죠. 그러니까 이별에도 최소한의 예의가 필요해요. 남, 여 간의 이별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보통 헤어지자고 먼저 손 내미는 사람은 이미 마음의 정리가 끝난 거예요. 

그러나 이별을 통보받은 사람의 입장에서는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상태이기 때문에 당황할 수밖에 없죠. 이런 이별은 좋은 이별이 아니죠. 무작정 통보가 아니라 시간적 여유를 가져야 해요. 일주일에 두 번 만난다면 한 달에 두세 번으로 횟수를 줄여가며 생각할 시간을 서로가 갖는 거죠. 그러다 보면 서로에 대한 믿음이 깊으면 더 깊은 사랑을 나누는 거고 서로에 대한 의혹이 더 큰 불신으로 다가오면 자연스럽게 멀어지게 되는 거예요. 

그럼에도 이별은 끝은 최소한의 예의를 지켜야 해요. 자존심을 건들며 마음의 상처를 안기면서까지 냉정하게 돌아서거나, 말없이 잠적하거나, 문자로 이별 통보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이에요. 물론 이미 끝난 관계인데 그게 무슨 소용인가 하겠지만. 적어도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의 이별인데 서로에게 몰입하며 행복했던 마음은 존중해줘야죠. 그러니까 최소한의 인간적인 감정으로 그동안 함께 사랑한 것에 대한 관용은 베풀어야 해요. 

아무리 이별해도 그 사람과 함께 했던 순간은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이 지워지지 않잖아요. 이별을 한 후에도 더 좋은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 사람을 그리워하게 되는 거예요. 좋은 이별인지 나쁜 이별인지는 이별한 뒤에나 깨닫게 되니까요. 아무리 헤어진 사람과 인연을 끊으려고 하지만 쉽지가 않아요. 

누구를 만나든 늘 그 사람은 비교대상이 되거든요.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더라도. 더 좋은 사람으로 기억되거나, 좋지 않은 사람으로 기억되는 거예요. 현재 만나는 사람에 대한 만족도에 따라 달라지는 거예요.

어쨌든 한 때 서로 사랑했고 아름다운 추억도 함께 공유를 했기에 이별에 대한 최소한의 애도는 해야죠. 그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앞으로의 나를 위해서죠. 당장 헤어지더라도 그 사람과의 즐거웠던 기억은 사라지지 않잖아요. 그러니까 그 사람의 앞길에도 행운을 빌어주어야 해요. 잠시나마 서로에게 행복을 안겨주려고 노력했으니까요.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좋은 이별을 하기란 어려운 거예요. 그럼에도 좋은 이별을 해야 내게 남은 상처가 잘 아물며 치유가 되는 거예요. 이별도 힘든 과정이지만 잘 견뎌내야 하거든요. 아름답게 사랑하는 것만큼 아름답게 이별하는 것도 능력이에요. 물론 사랑이 억지로가 아니라 저절로 노력하고 싶은 마음이라면 이별은 억지로 희생하면서 애써도 이전으로 회복되지는 않겠지만요. 물론 협의해서 서로가 '우리 다시 잘해 보자' 란 결론에 이르면 더 좋아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한 사람은 이별통보를 하고 한 사람은 매달리면서 '내가 더 잘 할게'라고 한다면 그건 절대로 좋은 사랑이 아니라고 봐요. 이유는 한 사람은 철저하게 희생을 강요당해야 하니까요. 사랑에 있어서도 갑과 을의 관계가 된다면 그것은 바로 주종관계로 이어지고 서로에게 애증만 남긴 채 파국으로 끝나버리죠. 보통 이별에 대해 ‘찼다’, ’ 차였다’는 표현을 많이 쓰잖아요. 이 말속에 갑과 을, 주종 관계에 대한 자존심을 세우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차 있어요. 

그러나 완전한 이별은 일방적이지 않아요. 물론 누가 먼저 이별을 선언하느냐이지만 관계의 끈은 항상 두 사람에게 있으니까요. 완전하고 좋은 이별은 그에게 머물렀던 나의 기대와 환상을 회수하는 거예요. 나아가 내가 정확히 누구인가를 스스로 깨닫게 되는 기회가 되죠. 또 '이 사람이 내 짝이야'라는 확신이 드는 사람을 만났을 때 비로소 이별이 종료되는 거예요. 그와 동시에 새로운 사랑이 시작되는 거고요. 

사랑은 반드시 수평적이 관계가 계속되어야만 오래 지속될 수가 있어요. 물론 갑과 을의 관계도, 주종의 관계로 진정으로 사랑한다면 어떤 때는 받아들이게 되죠. 서로가 번갈아가면서 주고받는 관계가 된다면.

좋은 이별은 합의 이별이에요. 함께해온 시간들을 함께 정리하면서. 이별의 아픔도 공유하는 것이에요. 내 안의 내밀한 것들까지 공유했던 사람이기에 존중해줄 필요가 있어요. 그러니까. 우선은 마음의 정리를 할 시간을 가져야 해요. 그래도 안된다면 이별식은 반드시 만나서 얼굴을 보며 선명하게 하는 거예요.

어차피 헤어질 사람이라면 더 이상 상대방에 대한 비난이나 원망 같은 것은 하지 않는 것이 좋아요. 그리고 행복을 빌어주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이별에 대한 예의예요. 물론 그게 쉽지 만은 않죠.

분명 이별은 성숙의 단계로 접어드는 과정이에요. 그에게 쏟았던 마음은 분명 또 다른 사람이 나타나면 다시 회수가 되는 거니까요. 절대로 낭비한 시간도 아니도 부끄러운 시간도 아니에요. 반드시 더 나은 사랑을 위한 과정일 뿐이에요. 이별의 경험은 더 나은 사랑을 할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에요. 어떤 환상이 서로에게 실패를 안겨주었는지를 정확하게 깨닫게 해주죠. 성찰의 시간은 충분한 애도의 시간이 되고 애도를 통해 더 단단한 마음의 근육이 생기는 거예요. 

[Pixabay / CC0 Creative Commons]

그러니까 사랑한 후에 이별은 성숙으로 가는 치유의 과정이에요. 소설가 최인훈은 '광장'에서 "사람은 한 번은 진다. 다만 얼마나 천하게 지느냐, 얼마나 갸륵하게 지느냐가 갈림길"이라고 했어요. 이별도 마찬가지예요. 얼마나 거룩하게 이별의 고통을 견뎌내느냐에 따라 다음에는 완전한 사랑을 할 수가 있으니까요. 

이별하면서 삶은 단단해지죠. 이별에 대한 상처를 안고 거꾸러져 봐야 삶의 본질을 정확히 깨닫게 되니까요. 엄청난 이별을 체험한 후에는 새로운 만남을 선택할 기회도 주어지니까요. 이별은 새로운 출발을 의미하지만 이별 후에 찾아오는 지독한 슬픔과 고독을 잘 승화시켜야 해요. 이별하고 나서 울고 싶으면 실컷 울어야 하고요. 슬픔을 밖으로 아낌없이 토해내지 않으면 상실에 대한 고통과 얼룩은 그림자처럼 오래도록 따라다녀요. 

최대한 깊이 슬퍼하고 애도하는 것이 필요해요. 또 마음으로 다 내려놓아야 아름다운 이별이 되는 거예요. 진심을 담아 보내주고 잊어주는 게 사랑한 사람에 대한 예의예요.

가끔 추억이  치욕의 불길 속에서 활활 타오르더라도 견뎌내야 해요. 아름다웠던 기억보다 고통 속의 영상이 덮치더라도 충분히 애도를 해야 해요. 과거가 집착의 뿌리가 되어 나의 미래를 비틀어 끌려다니지 않기 위해서는요. 두 번 다시 누군가의 집 앞에서 차마 들어서지 못한 채 울고 있는 내가 되지 않기 위해서는 죽도록 애도하여 온전히 마음으로 보내야 해요. 그것이 한때 사랑했던 사람과 아름답게 이별하는 예의예요. 이별이 습관이 되지 않고, 좋은 이별이라면 더 나은 만남을 위한 과정이에요.

김정한 시인
김정한 시인|shin-wjd@hanmail.net <잘있었나요 내인생>외에 스물다섯권의 책을 써온 시인 김정한입니다.
늘 행간에서 춤을 추며 기쁘게 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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