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 2△ + 2○ + 2V + 8< = LOVE - 알버트 아인슈타인’

[공감신문] 그 이름의 명성을 드높이는 일이란 때론 업적 그 자체에 있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알만한 무언가를 발명해냈을 때- 그러니까 에디슨의 전구라던지 라이트 형제의 비행기, 세종대왕의 훈민정음 그리고 이순신 장군이 가져다 준 평화같이 우리 일상에 밀접하게 닿아서는 충만케 해주는 무엇일 때에만 그 자체로 영광스럽다. 그 밖엔? 그가 무너뜨린 상대가 매우 강력할 때, 그 명성은 상대를 넘어선다.  

발명왕 토마스 에디슨 제작의 영화 'The kiss'(1896). 스크린 위에서 펼쳐진 위대한 ‘첫키스’였다고 한다.

이를테면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에서도 그렇지 않나. 극중 나름 조용히 학교생활을 하던 현수는 ‘말죽거리 다 먹는다’고 알려진 종훈을 때려눕힌다. 그는 어떤 체계적인 스텝을 밟지 않고 단번에 그 김현수라는 이름의 영광을 드높였다. 우리나라 국민들은 삼성이 대단한지 알고는 있었지만, 애플(apple)과 기술에 대한 소송에서 엎치락뒤치락 한다는 뉴스를 보며 새삼 다시 한 번 놀랐을 것이다. 어쨌든 ‘서양 것’에 대한 유전적인 열등감은 어쩔 수가 없던 지라 더욱 그러했다. 

그렇게 때로는 그가 무엇을 했는지 보단, 누굴 상대했는지가 더 각인되기 마련이다. 심지어 승패를 떠나 대결 구도가 성립 되었다는 자체만으로도 인지도가 달라진다. 

지금 여러분이 어디에서 이 글을 읽고 계신지 모르겠다. 나는 이 글을 12월 26일 저녁 7시 32분에 쓰고 있으며, 누군가는 내일 오후 시내버스 안에서, 또 누군가는 내년 봄쯤 나를 알게 되어 우연히 찾아 읽을 수도 있다. 그곳이 서울일 수도 있고, 자카르타일수도 있다. 이 모든 게 가능해진 건 과학의 발전 때문인데, 이러한 과학은 사실- 내가 여러분에 대해 알지 못하듯 상당히 모호한 것 투성이다.

우리는 과학이 철저하게 논리적이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툭- 던져놓고 제대로 마무리를 짓지 못했던 과학자들이 꽤 많다. 일단 ‘가설’이라는 말의 무드 자체는 굉장히 과학적이며, 과학을 굳이 남성적 여성적으로 따지자면 남성적인 느낌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영광스러운 안장 위에 올라타는 걸 좋아했던 남자들이, 왜 쉽게 가설들을 세웠었는지 알 것도 같다. 

보통 남자들은 남자를 상대해왔다. 이것은 단지 그들의 필드(field)안에 남자들이 더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과거의 많은 여자들이 한 남자를 필드에 우뚝 세우기 위하여 희생했기 때문이다. 많은 여자들은 빛을 바래어갔고, 남자들은 그 영광을 그녀에게 나누어주지 않았다. 

그들이 영광스러워지고자 했던 이유는 상대-즉 적대자에게서 앗아올 수 있는 전리품 때문이었으니까. 그것은 단연, 새롭고 아름다운 여자였다. 그러니 남자들은 줄곧 남자를 상대해왔던 것이다. 남자가 여자를 상대해서 이겼다한들- 그것이 영광스러운 남성적 매력으로 비춰질까? 별로 그렇지 않다는 것이 여자인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근/현대 과학 분야에서 공식과 수식들은 마치 창과 칼 같았다. 

아인슈타인은 그다지 성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그는 뉴턴의 법칙에 대해 배우던 수업시간에 이의를 제기했다. 스스로 뉴턴의 ‘상대’가 된 것이다. 그는 머릿속에서 상상해온 가설을 입 밖으로 꺼내었다. 그의 이야기는 당시로선 허무맹랑했겠지만, 아예 근거 없는 자신감은 아니었다. 그러니까 한마디로, 주먹 휘두르는 방법 정도는 알았다는 뜻이다.

아인슈타인은 자신이 똑똑한 게 아니라 그저 상상력과 호기심이 풍부할 뿐이라고 했었다. 그의 천재성과 발칙함은 당연히 그를 영광스러운 자리에 올려놓음과 동시에 수많은 공격의 대상이 되게 하였다. 

사실 아인슈타인의 여성편력은 굉장했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영광스러운 발톱을 드러낼 때부터 그러했었다. 학창시절 자신을 뒷바라지해주던 마리를 차버리고는, 당시 유일한 여자 동급생이던 밀레바와 사랑에 빠진다. 그녀는 물리학 전공 가운데 유일한 홍일점이었으며 학업 성적이 우수했고, 아인슈타인에게 엄청난 지적 자극과 영감을 준 ‘피지컬 뮤즈’였다. (physical은 물리적이란 뜻도 있다.)

아인슈타인과 밀레바

그러나 그녀는 아인슈타인과 함께 지내며 자신의 학문적 빛을 잃어버린다. 그녀에게 남은 건 아인슈타인과 두 아들뿐이었지만, 이미 학문적 성과와 영광을 얻고 있던 아인슈타인은 다른 마음을 품는다. 

후에 아인슈타인은 그녀에게 굴욕적인 조건을 제시하기도 했다. 하루 세끼 식사를 시간 맞춰 방에 가져와야 하며, 사회적으로 필요한 경우를 제외하곤 자신과 함께하는 시간을 포기해야한다(!). 또 어떠한 친밀감도 기대하지 말아야하고, 자신이 원할 때는 언제든 입을 다물 것, 자신이 요구할 때는 침실이나 서재에서 나갈 것, 그 어떤 일로도 아이들 앞에서 자신을 비하하지 말라 요구했다고 한다. 그는, “나는 와이프를 파면할 수 없는 종업원으로 취급한다.”고 쓴 적도 있다.

이후 아인슈타인은 그녀와 이혼하고 이종사촌인 엘자와 재혼했는데, 엘자에게 들킨 외도만 6번이라 한다. 이런 영광스러움(?)을 탐닉한 건 비단 아인슈타인뿐만이 아니었다. 

양자역학은 오늘날까지 과학계에서 항상 뜨거운 이슈이자 논쟁거리다. 리처드 파인만은 ‘이 세상 아무도 양자역학을 이해한 사람은 없다’라고 했다. 아마 양자역학의 모든 것을 증명해낸다면, 인류가 할 수 있는 경험들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이러한 양자역학의 혁명적 발견은 하이젠베르크와 닐스보어로부터 이루어졌다(1925). 반박은커녕 이해조차 어려워하던 이때에, 아인슈타인과 함께 더불어 ‘No!’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으니 그 이름 영광스러운, 슈뢰딩거 되시겠다. 

여기서 잠깐 짚고 넘어가자면- 난 이 글에서 과학 원리에 대하여 논할 생각이나 지식이 없으며, 단지 그들이 받은 트로피의 이름과 본질에 대해 밝히고 싶을 뿐이다. 

에르빈 슈뢰딩거(Erwin Schrodinger)

슈뢰딩거는 엄청난 바람둥이였다. 전설적이었다고 한다. 나중에 그의 아내는 그에게 여자를 소개해주는 지경에 이르렀다고 하니, 감히 상상 그 이상이었으리라. 

그의 가장 큰 업적 중 하나는, ‘슈뢰딩거의 방정식’의 완성이 아닐까. 1925년 겨울, 그는 옛 연인과 스위스 어느 곳으로 스키 여행을 떠난다. 크리스마스를 함께 보내기 위함이었다. (아, 물론 당시 그는 유부남이었다.) 여행을 마친 그는 다음 해 1월 초에 돌아왔는데, 이때 보어나 하이젠베르크의 개념을 궁지에 몰아버리는 파동방정식- 즉 ‘슈뢰딩거의 방정식’을 완성해 돌아왔다! 물론 그는 더욱 큰 영광을 얻게 되었으며, 자신이 영광을 쓰는 방법에 대해 스스로 정당성을 부여했을 것이다. 동료 교수의 와이프까지 범할 정도였던 걸 보면(...)

예술가들이 사랑에 잘 빠지는 이유는 단순하다. 상상력이 풍부하기 때문이다. 사실 ‘그 사람’ 자체에 빠지는 게 아닐지도 모른다. 그 대상에게 기대하고 상상한 바에 빠지는 건 아닐까. 예술가들의 상상은 비교적 다른 사람보다 다양한 모습이기에- 늘 부지런히 사랑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예술가보다 과학자들은 한 술 더 뜬다. 가설에, 가설을 더한다. 심지어 그것에 대한 신념이 투철하다. 목숨을 내 걸 정도다. ‘지구는 돈다’라고 말했던 것도 예술가가 아닌 과학자였다. 아인슈타인은 스스로, ‘상상력을 자유롭게 이용하는 데 부족함이 없는 예술가’라고 표현했었다.

그러면서 그는 ‘진정한 예술’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지경에 이른다. 그건 창조적인 예술가의 견딜 수 없는 충동에 의해 탄생한다고. 음, 그 충동은 어디에서 발현하는데?... 그렇게 발현된 충동과 창의력은 어마어마한 가설을 세우며 여기까지 온 것이다.

‘창의성의 비밀은 자신의 창의력의 원천을 숨길 줄 아는 것이다.’ 
...근데 감히 난, 그 원천을 알 것 같은 기분이 드네...

다윗과 골리앗의 피지컬 차이는 확연했다. 그래서 다윗이 골리앗을 상대한다는 자체만으로도 놀랄만했다. 예술이나 과학처럼 피지컬하게 드러나지 않는- 보이는 게 다가아닌 분야에선, 누가 어떤 무기를 가졌을지 아무도 모르는 일이다. 학창시절 수학을 못해서 아내 밀레바의 도움을 받아야했던 아인슈타인에게, ‘상상력’이라는 어마어마한 무기가 있을 거라고 동급생 친구들이 상상이나 했겠는가.

올해가 저물어간다. 한 해 동안 난 무수히 다양한 것들에 호기심을 가졌으며. 정말 ‘넓고 얕게’ 그것들을 탐닉했었다. 올해 여름까지 날 사로잡은 건 철학이었고, 얼마 전까진 진화생물학이었다. 그래서 약 3주전 글에, ‘철학이 인류에 대한 사상가들의 말장난이라면 진화생물학은 증거가 있는 추리소설 같다’고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물리학은, 로맨스 소설이더라. 

양자역학은 정말 헛소리 같고, 알면 알수록 이해가 되질 않지만 부정하기엔 너무 아름답다. 아인슈타인은, ‘이 세상에서 가장 이해할 수 없는 말은 이 세상을 이해할 수 있다는 말’이라고 했다. 물리학도, 사랑도 그러하다. 그러니 이 사랑이 사랑이 아니라 말하려면 슈뢰딩거처럼 고양이라도 걸어보시지!

슈뢰딩거는 양자역학의 불완전함을 설명하기 위해 고양이를 가지고 상상실험을 했었다. 사진=TED-ed 유튜브 채널

이 모호한 원리와 가설들 속에 그나마 명확한 건, 상대성(relativity)이론이다. 물리학자이자 예술가인 아인슈타인은 그것을 해냈다. 이 대단한 발견의 원천이, 누구를 상대(대적)해서 누구와 물리적 관계를 맺을 지(physical relationship)와 아예 관계가 없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아인슈타인은 만유인력도 사랑을 책임지지 않는다고 했으며, 사랑은 의무보다 나은 스승이랬다. 로맨틱해 보이는가? 아니, 그의 사랑은 무책임해 보인다.

아인슈타인의 수업을 듣던 한 학생이 질문했다. 

“박사님은 모든 물체 사이에 작용하는 상대성 원리를 발견하였고 수식화 하셨는데, 그렇다면 사람 사이에 오가는 사랑도 방정식으로 표현할 수 있으신가요?”

한참을 고민하던 아인슈타인은 칠판에 이런 수식을 적었다고.

‘2□ + 2△ + 2○ + 2V + 8 = LOVE’

덧붙여 설명했단다. 

“가지 않으면 안 될 길을 마지못해 떠나가며 못내 아쉬워 뒤돌아보는 그 마음! 
갈 수 없는 길인데도 따라가지 않을 수 없는 간절한 마음! 그 마음이 바로 사랑이다.” 

아, 장난치는 것도 아니고.

영광스러운 안장에 올라탄 이는 한 곳에 머무를 수 없으며, 갈 길이 많았으리라. 그것을 과연 사랑이라 부를 수 있을지, 저게 ‘사랑’에 대한 방정식인지 혹은 아인슈타인 스스로에 대한 변명인 지 아직 과학적으로 증명되진 않은 것 같다. 남성적으로- 그에게 이의를 제기하고 싶지만, 별로 영광스럽진 않을 것이다. 아인슈타인의 그 많은 수식 중, 사랑에 대한 저 방정식은 비교적 그 저명함이 미미한 수준에 그치지 않기 때문이다. 

박사가 사랑했던 수식이 선사하는 영광스러움은 내겐 별로 구미가 당기는 성질이 아니다. 그런데 내가 찾는 그 사랑스러운 영광의 비밀이 혹시 양자역학 안에 있을 것 같아서, 어서 누가 조금의 비밀을 벗겨내고는 그 영광스러움을 얻어가길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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