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루마상이 굴러왔다, 희미하게 그가 비틀거렸다, 지긋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 오소마츠상<다루마상이 굴러간다> 중에서

 

[공감신문] 미소라 고교 2학년에 재학 중인 타카하타 슌군은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소년이었다. 그건 그의 ‘남다른’ 차분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는데, 인생이 너무도 지루하다고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는 ‘신이시여. 내 인생은 너무도 따분합니다’라고 외쳤다. 신은 그의 고요한 비명을 여러 차례 들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서였을까? 슌군은 상당히 흥미로운 하루를 선물 받는다. 여느 때와 같던 수업 시간이었다. 별안간 선생님의 머리가 터지며, 교탁 위로 떠오른 오뚝이 인형!

다루마상가코론다 MV 한국어 버전(鏡音リン&初音ミク, だるまさんがころんだ)

이들은 ‘다루마상가 코론다’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게임의 법칙은 간단하다. ‘다루마상가 코론-’까지 움직여도 되지만, ‘다!’하고 이 음절이 끝나는 순간 움직임이 발각되면 걸리는 거다. 작은 미동도 용납되지 않는다. 무시무시한 오뚝이 인형에게 걸린 학생은 선생님의 뒤를 따르는 안타까운 제자가 되어야했다(...)

이것은 일본 인기 만화이자 영화로도 제작되었던 <신이 말하는 대로>의 내용이다. 이 만화는 국내에서도 인기를 누렸었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첫 게임인 ‘다루마상가 코론다’의 룰은 우리에게도 참 익숙하다. 그렇다. 어릴 적 많이 했던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와 상당 부분 유사하다. 동네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겠지만. 

그도 그럴 것이, 이 놀이의 원조가 ‘다루마상가 코론다’이기 때문이다. 즉, 일본에서 들어온 놀이라는 것이다. 언제? 일제 강점기에. 일제는 한반도 구석구석을 강제 점령했고, 전국 방방곡곡 아이들은 이 놀이를 하고 놀았다. 

영화 '신이 말하는대로' 중에서

문화, 의식주, 삶의 보편적인 모든 양식 측면에서, 누가 ‘원조냐’는 논란은 항상 있어왔다. 우리가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없으니 고증된 자료를 가지고 유추해볼 뿐이다. 물론 동서고금 사람 사는 게 별반 다르지 않았다만-, ‘문화’이자 ‘양식’이 되면 그 의미의 무게가 달라진다.

송년회, 신년회, 효도 관광, 뒤풀이, 고속버스, 수학여행, 축제, 이별, 타향살이... 삶의 한 가운데- ‘트로트’ 음악은 항상 우리 곁에 있었다. 쿵짝쿵짝 쿵짜작 쿵짝- 정말 세상사 모두가 네 박자 쿵짝-이더라. 

트로트의 원조는 일본 ‘엔카’(演歌)라고 알려져 있다. 뭐, 인정하긴 싫지만 그런 줄로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그 어떤 음악 장르 중에서도 트로트만큼 국민적인 정서가 들어찬 음악은 없기 때문이다. 우리를 위로하며 다시금 웃게 하는 힘을 가진, 위대한 뽕삘! 그런데 이 ‘뽕삘’이 ‘니뽕삘’에서 온 게 아닐 지도 모른단 얘기가 심심치 않게 들린다. 엔카의 원조가 ‘한국’이라는 얘기다!

엔카의 대부인 고가 마사오는 일본 대중가요계의 살아있는 전설이다. ‘고가 멜로디’에 영향을 받지 않은 엔카가 없을 정도다. 그는 8살 때 조선에 건너와 인천과 경성에서 선린상업학교(현 선린인터넷고등학교)를 다녔었다. 그가 1931년 발표한 최초의 엔카가, 1926년 발표된 그의 친구였던 가수 전수린의 ‘조용한 장안’을 표절했었다는 논란도 있었다. 

고가 마사오(古賀政男)

일본엔카협회 이사장 다카기 이치로는 어느 인터뷰에서, ‘일본 엔카 역사의 한 획을 그은 사람들은 대부분 한국 피가 섞여 있고, 엔카 멜로디 원조는 한국’이라고 말했으며 이어 고가 마사오에 대해서는 ‘그는 후쿠오카 출신이지만 한국 부모님 사이에서 태어나 유년시절 한국에서 교육받은 사람이었다. 일본에 건너와 그가 탄생시킨 엔카의 멜로디는 한국의 것이다. 그러니까 엔카의 원조는 한국’이라고 했다.

그의 말대로라면, 엔카를 완전히 일본 음악이라 할 수 있을까? 고가 마사오의 국적이 일본이었던 건 사실이지만, 뿌리는 한국이었다. 빼앗긴 우리의 유물들이 외국 어느 박물관에 있다고 해서 그것이 그 나라의 것은 아니지 않나.

몇몇 일본 뮤지션들을 좋아해서 찾아듣는 편인데, 그중 하나가 Ego-wrappin(에고랩핑)이다. 그녀의 음악은 엔카와 재즈를 접목시킨 느낌이다. 영화 <모던보이>에서 김혜수가 부른 ‘Midnight Dejavu’ 역시 에고랩핑의 곡이다. 

왜 경성의 모던보이들은, 이 무드 속에서 피우는 담배를 더 맛있게 느꼈을까. 왜 여기에 매혹되었던 걸까?

그건 한(恨)을 가득 머금은 상처투성이 맨발 같은 ‘엔카’가, ‘째즈’라는 구두를 신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어느 곳으로도 나아갈 수 없던- 나라와 용기를 잃은 경성의 모던보이들은, 그러한 엔카가 좋았다. 한치 앞을 모르고 변주되는 즉흥적인 리듬의 째즈의 앞날은 언제나 유쾌했다. 안개 속에 갇혀 나아갈 방향을 찾을 수 없으니, 제자리에서 째즈를 신고 춤을 출 수 밖에. 

영화 '모던보이' 중에서

일본만 뭐라 할 게 아니다. 우리 역시 착각하고 있는 것들이 꽤 많다. 가장 국민적인 주류인 소주는 사실, 고려 때 ‘몽고군’에 의해 도입된 것이다. 배고프던 시절, 풍부한 영양은 물론- 고기 맛을 느낄 수 있게 해주던 대표적 서민(?)음식 설렁탕. 영화 속 경찰서 씬이나, 정치인들이 출연하는 광고에도 자주 등장하는 이 토속 느낌적인 느낌의 음식도 몽고풍이다. 

한국인들도 잘 못 알아보는 어느 아이돌그룹의 노래를, 12시 땡! 하자마자 동유럽 10대 소녀가 따라 부르는 이 시점에, ‘그래서 이거 내꺼 거든?’하는 게 무슨 큰 의미가 있겠냐만- 최소한 알고는 있자는 거다. 그 출발지를 말이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가 원래는 ‘다루마상이 굴러온다’는 놀이였다는 것을. 우리 이모할머니 이름 끝 글자의 ‘자(子)’는 일본어로 ‘-꼬’라고 읽으며, 그건 창씨개명의 영향이었다는 것을. ‘혜자(智子)’는 ‘토모코’로, ‘경자(慶子)’를 ‘게이코’라고도 읽을 수도 있다는 걸 말이다. 

그런데 내가 이런 이야길 한다면 어느 누군가는 비웃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너희 나라는 언제부터였는데?’ 아마 이렇게 물을지도.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당연히 단군 왕검이야기를 꺼낼 것이다. 반만년 한반도의 역사라고! 하지만 우리 스스로 역사에 대해 헷갈려하는 부분이 상당히 많음을 인정해야 한다. 아니, 헷갈리는 게 아니다. 외면하는 자들이 헷갈리게 하려 했지.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광복절 행사 경축사에서, ‘건국 68주년이자, 광복 70주년’이라고 표현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지난 해였던 2017년 광복절에 문재인 대통령은 행사에 참석해서 이렇게 말했다. ‘광복 72주년을 맞았으며, 2년 뒤 2019년엔 건국 100주년이 된다.’

응? 2015년엔 광복 70주년, 2017년엔 광복 72주년... 그건 맞는데, 2015년에 건국 68주년이었다가 4년 뒤엔 100주년이라고?! 이건 공식적인 행사에서 나온 대통령 발언들이다. 두 사람이 얼마나 다른 역사관을 갖고 있는 지 여실히 드러나는 부분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건국년’은 이승만이 정부를 꾸리고 수립을 선포한 1948년이며, 문재인 대통령에게 ‘건국년’은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되었던 1919년인 것이다! 

1876년(고종 13년)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일본은 본격적인 침략을 감행했다. 이후 일본은 크게 세 가지의 식민 정책을 썼는데, 그 마지막은 ‘민족 문화 말살 정책’이었다. 무력으로 안 되니 문화를 건드리자는 전략이었다. 그들은 ‘문화통치’라 했다. 물론 통치보단 ‘탄압’에 가까웠다. 건국에 대한 개념을 어떤 식으로 잡을 지는 찬찬히 생각해볼 문제다. 그러나 해외에 그들의 강제성을 알리고 저항하였으며, 법까지 제정했던 엄연한 우리의 정부가 있었다는 사실은 잊지 않아야 한다. 

일제강점기 당시 독립운동에 많은 지원을 했던 단체 중 민족 종교인 ‘보천교’가 있다. 의열단의 몇몇 간부 및 신채호 선생의 부인도 보천교였다고 알려져 있다. 우리보다 훨씬 다양한 종교관을 가진 일본은, 보천교를 ‘유사 종교’라 칭했었다. ‘유사’ 종교? 사이비란 얘기다. 일제에 저항했으므로. 

당시 역사학자이자, 경성 제국대 교수 그리고 ‘조선사편수회’의 위원이었던 이마니시 류는 우리 상고사가 담긴 <삼국유사>를 조작했다. 환‘국’에서 환‘인’으로 교묘하게 글자를 바꿔, 마치 한 국가가 아닌 한 사람의 ‘인물사’인 냥 만들어버린 것이다! 왜곡을 넘어 엄연한 조작이었다. 한 개인의 직업 윤리상, 스스로 민망하지 않았는지 묻고 싶다. 

삼국유사 임신본 조작 부분

단군왕검이 고조선을 세웠다는 이 날을 왜 ‘개천’절이라 할까? ‘개천(開天)’, 하늘이 열렸다는 뜻이다. 당시는 제정일치 사회였는데, 우리 민족을 하늘이 내렸다는 이념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 어떤 국경일보다도 우리의 민족성과 고유성이 두드러지는 날이다. 그런데 김영삼 전 대통령 때부터 대통령들은 이 행사에 출연하지 않았다. 이명박 전 대통령이 서울시장이던 시절, 그는 ‘서울을 하나님께 봉헌하겠다’는 말을 했었다. 물론, 그 역시도 개천절 행사에 참석하지 않았었다. 

이렇듯 ‘건국’에 대한 개념은 물론, 기타 다른 역사에 대한 해석에 대해 우리끼리도 말이 많은데, 내가 어디 가서 ‘엔카의 원조는 한국이야’라고 한들 누가 들어나 주려나. ‘그래, 머리 복잡한 너희 한국 사람들 실컷 불러라-’ 할 것 같다. 

봉준호 감독의 영화 <설국열차>의 원작은 프랑스 만화였으며, 박찬욱 감독의 영화 <올드보이>의 원작은 일본만화였고, 이후 이 영화는 미국에서 리메이크되었으며, 영화 속 ‘장도리’ 씬은 수많은 영화 액션 씬의 오마쥬가 되고 있다. 앞으로도 이런 크리에이션은 더욱 팽창될 것이다. 

이들의 공통점이라면, 그것에 대한 깊은 탐구가 있었다는 거다. 박찬욱, 봉준호 감독이 저 영화들을 만들기에 앞서 원작을 얼마나 많이 연구했겠는가. 그 원작에 대한 DNA 분석이 끝났기에 더욱 자유로이 창조하고 응용할 수 있었던 게 아닐까. 많은 분야의 컨텐츠가 빠르게, 덩달아 소모적으로 변해버렸다. 문화를 맘껏 나누고 즐기되, 그 뿌리를 함께 알면 더 흥미로운 요소가 많다. 

다루마상가 코론다... 
다루마상가 ‘개천으로’ 코론다.... 다루마상은 ‘개천開天’하여 세워진 나라로 굴러왔다....
그리곤... ‘개천이, 코론다!’ 했다. 

‘ころぶ’. 코론다 코로부는 일어로 ‘구르다, 넘어진다’는 뜻도 있지만, 사전적으로 ‘탄압을 받아서 개종하다, 전향하다’라는 의미도 있다. 다루마상이 굴러온 결과, 개천(開天)하여 세워진 이곳 사람들은 탄압을 받거나 전향되었었다. 

새해 벽두부터 무슨 글을 쓸까, 얕은 고민을 했었다. 해가 바뀐다고 여느 날과 크게 다르겠냐만- 일단 올해는 ‘가능성이 무한하며 섹시한 한해’가 될 거라 의미를 집어넣어보았다! 일단 ‘8’의 생김새는 킴 카다시안 못지않게 상당히 육감적이며, 그것을 눕혔을 때는 ‘무한대’를 의미하는 알파가 되니까. 오, 상당하다. 이렇게 대단한 한해를 잘 쓰기 위해선 자유가 필요하다. 타카하타 슌군 친구들처럼 오뚝이 인형놀이에 놀아나지 않으려면! 

‘희미하게 그가 비틀거렸다, 지긋이 그쪽을 바라보았다.’
어휴, 마음껏 춤을 췄으면 억울하지도 않지, 겨우 희미한 비틀거림 때문에 머리가 터져버리다니! 

왜곡과 오해가 설 자리를 없는 한 해 이길 바란다. 사랑한단 말을 곧이곧대로 믿을 수 있기에- 희미하게 흔들리기보단 기뻐 춤출 수 있길. 마음속에 응어리 없이 하고픈 말을 시원히 꺼내놓을 수 있기를. 용서와 관용이 있기를. 역사와 사회는 물론,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왜 당신은 나에게 섭섭했는가.’, 그 문제와 원인을 바라볼 수 있기를 바란다. 

덧붙여- 올해 ‘유급’ 작가로 일한지 햇수로 8년째가 된다. 정말- ‘덕분이에요’라는 말밖에!  8년째를 맞은 2018년, 한계 없이- 말도 못하게 섹시한 글과 시간을 쓰는 한 해를 보내겠다고, 또 다짐해본다. 글을 읽는다는 건, 글쓴이의 생각의 지도를 따라 읽는 것과 같단 이야길 들은 적이 있었다. 

그러니 독자 여러분도 2018년 저와 함께 그 무한히 섹시한 길을 함께 걷자 초대하고 싶다. 한마디로 계속 읽어 주시라, 이 말입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저작권자 © 공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