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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시사공감] 대한민국에서 소방관으로 살아남기소방관들의 노고를 되새겨보는 주말추천 시사공감 포스트

[공감신문 시사공감] 연말 분위기로 무르익어가 던 지난 12월 말, 충북 제천의 한 건물에서 많은 이들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화재사고가 일어났다. 29명의 아까운 이들이 사망한 이 화재사고가 발생한 이후 많은 언론들은 앞 다퉈 소방관의 부실한 대처에 대한 비판보도를 냈다.

사고로 처참하게 변해버린 충북 제천의 스포츠센터

하지만 그 내막을 들여다보면 불길을 제대로 잡을 수 없었던 것을 소방관의 탓으로만 보기엔 어렵다는 지적이다. 일단 사고 건물 관계자의 늑장대응이 불길을 키운 데다, 주변 불법 주차차량들로 인해 소방차 진입로 확보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다. 게다가 건물 뒤편에 설치된 LPG 가스통 폭파위험과 불법 증축 등도 불씨를 꺼뜨리는 데 걸림돌이 됐다.

여기에 소방인력조차 부족했다. 사고 당시 1차 출동한 소방인원은 13명으로, 이 가운데 의무소방대원과 현장조사 인력 등을 제외한 진압대원은 단 3명에 불과했다.

화재로 인해 서교동 일대의 하늘이 새카만 연기로 뒤덮였다.

제천 화재사고의 여파가 채 가라앉기도 전인 지난 3일, 서울 서교동의 한 공사장에서 주변 하늘을 시커먼 연기로 가득 뒤덮을 정도의 큰 화재가 발생했다. 공사현장에는 6명의 인부가 작업 중이었지만 다행히 인명사고는 일어나지 않았다. 이 사고에 투입됐던 소방인원은 총 99명에 달하며, 1차 출동 인원만 보더라도 제천의 배를 훌쩍 뛰어넘는 40명이었다.

연달아 일어난 이 두 번의 화재사건을 통해 새삼스레 소방관 역할의 중요성을 다시금 깨닫게 된다. 사실 대형 재난상황이나 화재사고가 일어날 때마다 이처럼 소방관들의 인력충원과 처우개선의 목소리가 나오곤 한다. 그러나 몇 번의 비슷한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체감할 만큼의 큰 변화는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연달아 발생한 두 화재사고를 통해 소방관의 중요성이 다시금 화두에 올랐다.

우리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지키는 한국의 소방관. 하지만 그들이 한국에서 소방관으로 살아남기란 아직도 만만치 않은 현실이다. 그들은 지금 어떤 환경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좀 더 안전한 나라로 가기 위해 어떤 변화가 필요한지 오늘 시사공감에서 함께 고민해보는 시간을 가져보기로 하자.

■ 열악한 현실과 마주하다
소방관의 열악한 근무여건이 알려진 것은 이미 오래 전 일이다. 열악한 현실을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때마다 터져 나오곤 한다. 그래서 그들의 환경이 나아졌느냐, 하면 ‘글쎄, 아직은 좀?’이라고 답하겠다.

일부 소방관들은 소방장갑 등의 장비들을 개인 사비로 구입하고 있다고 해 많은 이들의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3~5년 주기로 교체돼야 하는 방화복과 헬멧 등의 소방관 개인안전장비의 노후율은 12~15%에 달한다. 게다가 이런 장비들을 사비로 구입하고 있다는 일부 소방관들의 고백이 한때 파장을 일으키기도 했다. 펌프차, 물탱크차, 사다리차 등의 주력 소방차량 중 20.74%가 내용연수가 경과한 노후 차량이라는 조사결과도 있다.

인력난은 더더욱 무시할 수 없는 문제다. OECD 자료에 따르면 우리나라 소방관 1명이 담당하는 인구수는 1181명으로, 미국(1075명), 프랑스(1029명), 일본(820명) 등 선진국보다 훨씬 많은 수준이다.

지방으로 갈수록 인력부족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강원도 소방관 1인이 담당하는 면적은 6.11㎢로, 서울(0.09㎢)보다 약 68배나 더 넓다. 지난달 화재사고가 발생했던 충북 제천시의 경우 소방관 1인당 담당 면적이 6.85㎢다.

인력이 부족해 소방관들은 제대로 쉴 여유조차 없다고 고충을 토로한다.

소방관들은 다른 무엇보다 인력충원이 시급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2016년 당시 국민안전처가 발표한 바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필요한 최소 소방인력은 5만1857명이지만, 실제 근무 소방관은 3만2343명으로 집계됐다. 부족한 소방인력이 1만9514명이나 되는 것이다.

참혹한 현장과 자주 맞닥뜨려야 하는 이들의 건강 문제도 짚고 넘어갈 수밖에 없다. 매년 평균 7명의 소방관이 순직하고, 300여명이 부상을 당한다. 신체적인 고통뿐일까. 전체 소방관의 40%가량이 불면증, 트라우마, 우울증 등의 정신적 고통을 호소하고 있다고 한다. 정신적 트라우마로 인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이들의 수는 순직자보다 많다.

하지만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 구조 활동 후 이들이 받는 위험수당과 화재진압수당은 다 합쳐도 14만원에 불과하다. 직업에 대한 만족도가 낮다 보니 임용 5년 후 이직을 선택하는 이들은 20%에 달한다.

■ 소방관을 바라보는 국민들의 시각
한국의 소방관들은 불만 끄지 않는다. 일선에 따르면 119 업무 중 화재 건은 10% 미만에 불과하고 구급이나 기타 출동 사항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기본적으로 대민업무를 맡고 있다 보니 아무리 황당한 신고내용일지라도 소방관들은 출동할 수밖에 없다.

달아난 황소를 잡는 것도 소방관의 몫(....)이다.

최근 서울시 소방재난본부가 내놓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3년간 ‘문을 열어 달라’는 신고에 출동한 건은 4만8255건에 달한다. 전체 안전사고 대응활동의 70%가 잠금장치 개방과 관련한 출동인 셈이다.

‘문이 잠긴 집안에 어르신이 혼자 있는데 연락이 되지 않는다’, ‘아이들이 갇혀 있다’부터 ‘술을 마시고 귀가했는데 아내가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까지. 5~10만 원의 출장 열쇠수리 비용을 아끼려고 119에 전화를 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방관들은 차라리 문을 열어달라는 요청이면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 소방청이 집계한 바에 의하면 2013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51만3605건의 전국 119 화재출동 가운데 오인출동 건수는 무려 31만1902건에 달한다. 60.7%가 허위·오인 신고로 인한 출동이라는 것이다. 명백한 소방인력 낭비가 아닐 수 없다.

긴급 출동에는 신발을 갈아 신을 시간마저 없다.

위험을 무릅쓰고 출동한 현장에서는 폭행을 당하는 일이 빈번하게 발생하곤 한다. 지난해 11월을 기준으로 최근 5년7개월 간 소방관들이 업무 중 폭행 피해를 입은 건수는 무려 870건에 달한다. 소방기본법에서는 출동 소방대원에 폭행 또는 협박을 행사한 이들에게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원 이하의 벌금형을 부과하도록 하고 있다. 하지만 민원인을 대상으로 처벌을 내리기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소방 교통 관련 인식을 개선하자는 목소리가 나온 것 역시 이미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갈 길은 먼 듯하다. 새해 첫날 해맞이를 하러 경포대를 찾은 차량들이 소방서 주차장을 무단 점령하는 일이 벌어지는가 하면, 소방차량 양보의무를 위반해 과태료를 부과하는 건수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소방차 길 터주기 캠페인은 몇 년째 이어지고 있다.

몇 년간 지속적으로 이어진 캠페인에도 ‘양보의무’ 인식이 제대로 자리 잡지 않는 것은 처벌강도 미미하기 때문이라는 지적도 일고 있다. 미국 오리건주의 경우 양보의무조항 위반 시 최대 720달러(약 83만원)의 벌금을 내도록 하고 있으며, 러시아의 경우 응급차량에 양보하지 않는 이에게는 막대한 벌금에 면허정지 처분을 내리고 있다. 캐나다도 긴급차량 150m 내에서 뒤따르는 차량에 최대 53만원의 벌금과 2년 자격정지 등의 조치를 취한다.

■ 탄탄한 정책과 지원이 필요한 때
소방관들은 현재 지방직 신분이다. 때문에 지자체 형편에 따라 소방관의 환경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소방인력이 지역별로 큰 편차를 보이는 것도 여기에서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해달라는 요구가 나온 것도 벌써 오래된 일이다.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는 2014년 1인 시위 당시 모습 [wikimedia]

지난해 10월 행정안전부는 2019년부터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전환할 것이라는 반가운 소식을 내놨다. 이는 문재인 대통령의 후보시절 공약이기도 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방의 날 기념사를 통해 지역마다 다른 소방관 처우와 인력, 장비 격차를 해소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정부는 2022년까지 소방인력을 2만 명 더 확대할 계획이다.

소방차량 양보의무도 더욱 강화된다. 지난달 19일 국무회의를 통과한 ‘소방기본법’을 보면 앞으로 소방차 진로 양보의무를 어기는 운전자에게는 최대 20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앞으로 소방차 진로 양보의무를 어기는 운전자는 200만원의 벌금을 물게 될지도.

그 동안은 소방 활동 중 현관문이 부서지는 등의 재산 손실이 일어날 경우 소방관이 사비로 이를 보상해야 했지만, 앞으로는 고의나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형사상 책임이 줄거나 면책된다. 소방청은 ‘손실보상심의위원회’를 신설해 관련 보상여부 등을 심사해 의결하기로 했다.

아울러 이보다 앞서 국회를 통과한 ‘소방장비관리법’에 따라 일부 민간 인증형태로 운영되던 소방장비 인증은 앞으로 국가가 담당하게 된다. 소방청은 인증제도 운용을 위해 표준 규격을 개발하고 있으며, 올해 말까지 인증기준을 마련해 전문인증기관을 지정할 방침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소방관이 눈물 흘리지 않는 나라를 만들겠다 공언한 바 있다.

요구의 목소리뿐, 지지부진하기만 했던 소방관 지원책이 하나 둘씩 가시화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풀어나가야 할 숙제들은 남아있다. 하루라도 빨리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정치권에서의 세심한 노력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 SAFETY KOREA를 꿈꾸며
제천 화재사고에서 본 것처럼 소방관들을 위협하는 것이 화마만은 아닌 듯하다. 가장 최전방에서 구조 활동을 벌이는 이들인 만큼, 비난의 칼끝이 향하기도 쉬우니 말이다. 제천의 한 소방관은 “차라리 한 두 명이라도 죽었더라면 이렇게까지 심화가 됐겠냐”고 토로하기도 했다고.

소방관들이 짊어진 책임의 무게는 함부로 가늠할 수 없다.

그들이 짊어지고 있는 책임의 무게가 어느 정도인지 우리가 다 알 수는 없다. 하지만 그 짐을 조금이라도 덜어주기 위해 할 수 있는 일들은 있을 것이다. 가령 잠긴 문을 열어야 할 때 119 말고 열쇠수리공에게 전화를 하는 등의 그런 당연하고 상식적인 일들 말이다.

오늘 포스트에서 정말 많이 등장한 말이지만, 소방관에 대한 인식개선 요구의 목소리는 오래 전부터 이어져 왔다. 이제부터는 자성과 비판보다도 실질적인 개선의 효과가 보여야 할 때이지 않을까?

그들도 결국 안전을 필요로 하는 사람일 테다.

소방관을 가리켜 혹자는 ‘슈퍼맨’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사람들의 생명을 구하고 위험 속으로 거침없이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슈퍼맨과 다름없다고. 하지만 소방관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어느 누군가의 자식이자 가장일 뿐이다. 그들에게 충분한 근무여건이 갖춰진다면 우리의 안전도 지금보다 더 든든하게 보장될 수 있을 것이다.

    시사공감팀 | pjs@gokorea.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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