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1인 가구 수가 점차 증가하면서 반려동물을 키우는 사람들도 점점 늘고 있다. 이제는 그저 집에서 키우는 ‘애완’의 개념이 아닌, 한 평생을 같이하는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수의학의 발달로 이전보다 동물들의 수명이 늘어난 것도 큰 몫을 했을 것이다.

다양한 품종 개량 등으로 강아지나 고양이는 물론이거니와 이전에는 생각지 못했던 동물들도 집안에서 키울 수 있게 됐다. 

장승업 <송록도>

우리 선조들은 이전부터 자연을 아끼고 사랑해야 한다는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다. 유교가 들어오기 전, 국교인 불교를 믿던 선조들은 작은 것이라도 그 생명의 크기는 작지 않고 똑같이 소중하다고 여겼다.

이 때문일까? 우리 선조들은 다양한 동물에 관심을 가지며, 심지어 그런 동물들을 곁에 두고 키웠다. 지금처럼 과학이 발달하지 않았으며, 동물에 대한 정보도 부족했을 시기다. 그들은 과연 어떤 반려동물을 키웠을까?

겸재 정선 <추일한묘>

물론 우리 선조들은 서민들도 동물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졌었지만, 비교적 먹고 사는 것이 풍족했던 왕들의 삶을 통해 이를 살펴보고자 한다.

(※ 더 생동감 있는 이해를 돕고자, 미술활동이 활발했던 조선 후기의 그림들을 첨부했습니다)

■ 동물 애호가, 성종

성종의 동물 사랑은 유별날 정도였다. 성종이 현 시대에 살고 있었더라면 아마 ‘동물농장 아저씨’를 자처했을 것이다. 그가 기른 동물들만 보자면, 거의 동물원 수준이다. 

<안하이갑도> 작자미상

성종은 원숭이를 참 좋아했었다. 성종이 키우던 원숭이는 당시 류큐 왕국이었던 일본에서 전해진 것으로 우리가 지금 알고 있는 ‘일본 원숭이’의 모습이었을 거라 추정된다. 당시 원숭이가 추워하자 성종은 옷을 만들어 입히자 했고, 신하들은 추운 백성 한명을 더 입히는 것이 낫다며 설전을 펼치기도 했다. 한복을 입은 일본 원숭이의 모습이라니? 상상이 잘 되지 않는다. 

성종은 즉위 17년에 새로운 동물에 눈 뜨게 되는데, 그건 바로 ‘낙타’였다. 낙타의 여러 가지 특성에 대해 알아본 그는 신하들을 모아놓고는 외국에 가서 낙타를 사오라 하지만 신하들은 백성들의 사정을 돌보는 게 우선이라며 반대한다.

이외에도 성종은 앵무새, 백조, 공작, 노루, 사슴 등 수 많은 동물을 키운 것으로 알려져 있다.

 

■ 사슴이 반려동물이었다고?

김홍도 <사슴과 동자>, 동자가 사슴에게 꽤나 친근한 시선을 건네고 있다.

지금은 야생동물이던 사슴도 조선시대에는 반려동물이었다. 조선시대와 사슴, 반려동물이라는 키워드를 연결하는 인물 역시 성종이다. 성종은 사슴에 대한 유명한 일화가 있는데 그 중심엔 연산군이 있다. 

아버지 성종이 아끼던 사슴이 세자였던 연산군의 손을 핥자 연산군은 화가 나 사슴을 때렸고, 성종은 연산군을 크게 꾸짖었다. 이후 왕위에 오른 연산군은 손을 핥았던 사슴을 활로 쏘아 죽게 만들었다.

아버지인 성종과 달리 연산군은 동물애호가라고 할 수 없을 만큼 사냥을 즐겼다. 대신 사냥을 더 잘하기 위한 사냥견은 매우 아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 못 말리는 애묘가, 숙종

김홍도 <황묘농접도>

숙종은 못 말리는 애묘가로 알려져 있다. 숙종은 키우던 고양이 ‘금묘’를 끔직이 아꼈다. 

수라상을 받을 때 금묘에게 직접 고기를 먹이는가 하면, 금묘를 품에 안은 채로 정사를 돌보기도 해 후궁들이 금묘를 질투하기도 했다. 

세 차례의 큰 당파싸움을 비롯해 인년왕후의 죽음과 희빈 장씨의 폐위 등 재위 동안 수많은 풍파를 겪었던 숙종에게 금묘가 큰 위로가 됐던 것일까. 금묘 역시 숙종을 어미처럼 따랐다.

변상벽 <묘접도>

1720년 숙종은 재위 46년 만에 세상을 떠나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주인을 잃은 금묘도 생을 달리한다. 인원왕후는 숙종이 아끼던 금묘에게 비단옷을 입혀 숙종 무덤 옆에 묻었다.

 

■ 동물에게도 성군이던 세종대왕

이암 <모견도>

성군이었던 세종 역시 동물을 사랑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일평생 여러 가지 질병과 알러지로 고통 받아야했지만 그렇게 건강이 좋지 않은 와중에도 동물을 아꼈다. 

그는 궁에서 강아지를 키운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의 아버지인 태종이 자신의 아들이 마음을 바로 잡지 못하고 흔들릴까봐 동물을 기르지 말라고 한 반면, 세종은 오히려 동물을 선물로 줄 정도였다. 

그는 자신의 늦둥이 아들 영흥대군에게 날다람쥐와 독수리 새끼를 선물했다. 이를 위해 강원도 관찰사 조수량에게 날다람쥐 두 마리와 독수리 새끼 두 마리를 바치라는 어명을 내렸다. 

영흥대군은 글씨와 그림에 뛰어나며 음악을 좋아했던 왕자였는데 특히 동물도 매우 좋아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동물들의 행복한 삶에 건강한 책임감 가져야

김홍도 <삼공불환도> 중 일부

김홍도의 <삼공불환도>를 보면, 지금은 멸종 위기에 놓인 동물인 두루미가 당시엔 애완동물로 길러졌다는 걸 추측해볼 수 있다.

두루미의 고고함과 우아함은 조선시대 선비들의 사랑을 독차지할 만 했다. 사실 두루미는 야생동물이기에 집에서 기르지 쉽지 않았을 터. 선조들은 두루미의 깃털을 잘라 날지 못하게 했었다는 이야기도 있다.

신사임당 <초충도>

우리 선조들의 이전부터 지금으로 따지자면, 상당히 ‘세계적인’ 자연관을 가지고 있었다. 신사임당의 그림만 보더라도, 그녀가 쥐 한 마리, 작은 풀벌레 하나까지 그 존재를 충분히 표현하려 하였으며 애정으로 시선을 드리운 것이 여실히 느껴진다. 아래의 쥐 두 마리도 제각기 표정이 다르다. 

우리의 건국 신화인 단군 신화, 그리고 김시습의 금오신화, 각 지역의 설화 등을 통해 우리 인간이 자연과 동물이 한데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살아야함을 강조했던 선조들의 정신을 느낄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많은 동물들이 멸종 위기에 처해있는 지 오래되었고, 지구온난화 등의 영향으로 동물은 물론이거니와 어느 지역에서는 인간의 생존권 역시 위협받는 지경이 이르고 있다.

선조들로부터 이런 정신을 이어받아 우리와 더불어 살아갈 지구 환경과 동물들의 행복한 삶에 건강한 책임감을 가져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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