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교양공감] 본격적인 설 연휴의 시작을 앞두고, 벌써부터 스트레스를 받기 시작하는 분들이 많다. 요새는 명절증후군이라고 해서, 명절 전후에 스트레스나 긴장을 하고 심한 경우 앓아 눕게까지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어디 그뿐이랴. 친척들의 잔소리는 학생이고 성인이고, 직장인이고 가리지 않는다. 거기에 꽉 막힌 고속도로나 고된 명절 노동까지 온갖 요소들이 우리를 괴롭히고 있다. 명절이 끝나갈 즈음, 부부가 서로에게 서운한 감정을 터뜨리는 것도 거의 연례행사처럼 일어나고 있으니까.

분명 반가운 이들을 만나는 즐거운 날이어야 하건만, 가끔은 정말 너무한다 싶을 때도 있게 스트레스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분명 소원해졌던, 한참 못 봤던 가족들을 만나는 날인데도 확실히 어깨 한 쪽이 무거워지기도 한다. 그래. 사실 우리가 명절을 그저 맘 편하게 즐길 수 없게 된지도 이미 오래 지났다. 물론 연속으로 며칠을 내리 쉴 수 있다는 점 때문이 이 시간을 기다려온 분들도 많지만, 요즘은 어째 안 그런 분들도 많다.

가족들을 마주하는 건 잠깐의 순간 반가울 뿐이고, 그 뒤로는 고통스러운 시간이 이어진다고 고백하는 이들도 엄청나게 많다. 그러니 연휴가 되면 인천공항이 붐비고, 1인용 도시락 등의 판매량이 느는 게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떠오르는 기억의 파편 하나가 있다. 까마득한 어린 시절이다. 우리가 아무 생각 없이 세뱃돈, 추석 음식 등을 손꼽아 기대했었던 그때 그 시절.

어릴 때는 집안 어른들로부터 사랑을 독차지했었던 이들도 많을 것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그때의 우리는 어렸고, 잔소리를 듣기보단 귀여움을 받는 편이었다. 그 귀여움을 받던 우리는 어른들이 두런두런 대화를 나누거나 기분 좋게 술 한 잔 하실 때, 방바닥이 따뜻한 방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다 함께 TV를 봤다.

당연한 말이겠지만 그땐 스마트폰도 없었다. 사촌형이나 누나가 고심 끝에 선정한 설 특선 영화를 다 함께 보거나, 그들에게 떼를 쓴 끝에 리모컨을 얻어내 만화 영화를 보기도 했다.

꾸역꾸역 디즈니 만화동산을 보기 위해 일찍 일어났던 어린 시절. 그 때의 우리는 지금과 참 다른 명절을 보내고 있다. [온라인 커뮤니티 캡쳐]

아무런 걱정도 없었던 그때, 가족들에게 둘러싸였던 그 시절 우리가 봤던 만화나 영화들은 어째 매년 똑같았던 것 같지만, 어린 날의 우리는 부득불 그 작품들을 지겹도록 보고, 또 봤었다.

이번 교양공감 포스트에서는 명절마다 돌아오는, 이제는 TV에서 보기 힘든 그 시절 추억의 명절 만화‧영화들을 되짚어볼까 한다. 지금처럼 오가는 잔소리나 친척간의 갈등, 자식자랑 배틀 등이 한결 덜했던 추억 속의 그 시절 우리가 좋아했던 작품들을.

 

■ 취권 (1979)

요즘 들어 이 영화를 다시 봐도 참 재밌더라는 후기들도 온라인에 속속 올라오고 있다. [취권 영화 포스터]

추억의 명절 특선 영화를 논할 때 어찌 이 영화를 뺄 수가 있을까! 한국인들에게 유독 친근한 우리의 따거, 성룡 형님이 등장하는 이 작품은 당시 매년 설, 추석마다 정말 지겹도록 방영됐다.

황기영의 아들이자 제자인 황비홍(성룡, 이름만 황비홍일 뿐 ‘그’ 황비홍과는 연관이 없다)은 게으른 말썽쟁이다. 망나니 같은 아들을 개과천선시키기 위해 황기영은 소화자 노사에게 아들의 수련을 부탁한다. 하지만 황비홍의 눈에 소화자 노사는 그저 술주정뱅이에 불과한데… 그 술주정뱅이가 ‘수련’이라며 매일 혹독한 수련을 시킨다!

캬, 성룡 따거 참 젊었따리 젊었다. [취권 영화 스틸컷]

이 영화는 지금까지 왕성하게 활동 중인 성룡의 젊은 시절 모습을 살펴볼 수 있는 귀중한 작품이다. 영화 '취권'은 술을 마셔서 오르는 '취기'를 기반으로 날렵하고 예측 불가능한 무술을 다루고 있다.

생수통 들고 물을 머금으며 비틀비틀거렸던 추억은 방울방울… [취권 영화 스틸컷]

헌데 사실 취권이란 무도는 실제 존재하지 않으며, 이 영화에서 창작된 것이 여기저기에 카피된 것 뿐이라고 한다. 참고로 이 가공의 무술은 우리나라의 무술배우 황정리 씨(극중 악역으로 등장)가 취객의 아이디어를 참고해 만든 것이라고 한다.

뭐 그런 디테일한 얘기를 배제하고, 술에 취해 비틀대면서 상대를 제압하는 영화 속 소 노사와 황비홍의 모습은 그 시절 우리의 기억 속에 상당히 인상적으로 남았다. 당시 영화를 보고 난 우리는 저마다 깔깔거리면서, 비틀거리면서 취권을 흉내 냈었다. 물론 그렇게 까불거리다 씩씩거리며 싸우고 엉엉 울었던 기억도 난다.

 

■ 머털도사 (1989)

더벅머리인데다 머리카락을 가지고 도술을 부리니 '머털'이란 이름도 퍽 잘 어울린다. [머털도사 만화 장면]

실사보다는 그림, 만화를 조금 더 좋아했던 분들이라면 아마 취권이 아니라 머털도사를 더 기억하고 계실지 모른다. 이 만화는 설이면 설, 추석이면 추석마다 거의 항상 볼 수 있을 정도로 자주 방영됐는데, 1989년 첫 방영 당시에는 54.9%라는 경이적인 시청률을 기록하기도 했었다고 알려져있다.

긴 더벅머리가 특징인 머털이는 누덕도사 밑에서 도술을 배우려는 소년이다. 그러나 누덕도사는 도술은커녕 ‘머리카락 세우기’만 가르쳐주고 온갖 잡일에 머털이를 부려먹기만 한다. 그러던 어느 날 머털이는 머리카락을 곤두세우면 ‘변신’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허영심에 라이벌 꺽꿀이와 도술 대결을 벌인다.

화상으로 인한 흉터, 머리카락 전소. 주인공은 무조건 잘생겼던 당시엔 나름 신선한 충격이었다. [머털도사 만화 장면]

그러나 머털은 대결 도중 꺽꿀이의 도술에 머리카락, 눈썹을 홀라당 태워먹고, 그 와중에 누덕도사는 꺽꿀이의 스승 왕질악 도사에게 살해당하는 등 비극을 맞게 된다. 꺽꿀이는 자신의 스승까지 넘어서면서 폭정을 일삼고, ‘머대리’가 된 머털은 복수를 기약하며 머리카락이 자랄 때를 기다린다.

머털도사는 오랜 시간 동안 사랑받으면서 몇 차례 리메이크되기도 했었다. [만화 머털도사 장면]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이 흐르고, 머털이에게도 고대하던 머리카락이 다시 자란다. 그러나 화상을 입기 전처럼 머리카락을 곤두세울 수가 없었고, 머털이는 도술도 부릴 수 없었다. 대신 머털은 자신의 머리카락을 뽑아 ‘후’ 하고 불면 분신이 생겨나거나 다른 대상을 변신시킬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이 새로운 도술을 토대로 꺽꿀이에게 복수를 한다.

많은 어린이들이 이 만화영화 때문에 제 머리, 아니면 옆 사람의 머리카락을 참 많이도 뽑아댔더랬다. 그땐 머리카락을 잃은 머털이의 모습이나, 자신의 머리카락을 툭툭 뽑아 도술을 부리는 모습을 보고도 재밌어했지만, 어느새 이마가 점점 후퇴하는 나이가 되고 보니 그리 재밌는 장면은 아니었던 듯 싶다…

 

■ 흙꼭두장군 (1991)

쬐그만 흙꼭두장군은 2012살이 훨씬 넘었지만, 12살 빈수에게 "그까짓 2000 떼버리고 너랑 나랑 12살 동갑으로 하자"는 대인배의 면모를 지녔다. [만화 흙꼭두장군 장면]

머털도사보다 아주 약간 뒷 세대인 어린이들은 명절마다 이 만화영화를 봤을 것이다. 흙꼭두장군은 1991년부터 MBC에서 매해 명절마다 방영되다가, 어느 순간부터 TV에서 종적을 감췄다.

그 이유에 대해 알려진 바에 따르면 하도 명절마다 같은 만화영화가 재탕된다는 항의가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이 영화는 그만큼 당시 어린이들이 줄줄 꿰고 있을 정도로 여러 차례 방영된 작품이다.

신통방통한 마술도 부릴 줄 알았던 흙꼭두장군. [만화 흙꼭두장군 장면]

시골마을의 빈수는 어느 날 우연한 기회에 밭에 묻혀있던 토기인형, ‘흙꼭두장군’을 득템한다. 이 토기인형이 글쎄, 신통방통하게도 살아 움직이고 말도 한다! 처음에 깜짝 놀라지만, 흙꼭두장군은 자신이 왕릉의 수문장이고 왕릉에 들어가는 꽃열쇠를 잃어버렸다며, 자신을 도와달라고 한다. 이렇게 동행하게 된 빈수와 흙꼭두장군은 꽃열쇠를 찾기 위해, 그 과정에서 왕릉 보물을 훔치려는 도굴꾼들로부터 왕릉을 지키기 위해 고군분투하게 된다.

그렇게 비를 맞으면 망가진단 말이야 바보야ㅠㅠ [만화 흙꼭두장군 장면]

이 작품은 영락없는 아동용 만화처럼 보이지만, 사실 상당히 깊은 이야기를 지녔다. 병에 걸린 딸의 수술비를 마련하기 위해 도굴꾼을 돕는 한새길네 아버지의 눈물겨운 부성애, 왕릉 주인인 한꽃님 왕과 왕비의 로맨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자그마한 흙꼭두장군과 빈수의 아름다운 우정까지 담고 있다.

 

■ 벤허 (1959)

워낙에 갓띵작인지라 재개봉도 수차례 된 1959년 작품 벤허. [벤허 영화 포스터]

‘일찍 자는 착한 어린이’이길 거부했던 우리는 종종 늦은 밤 시간에 방영해주던 설 특선 영화들도 볼 수 있었다. 그 시간대엔 주로 우리 또래가 아닌, 성인들을 위한 영화를 상영해주곤 했는데 피어스 브로스넌이 나오는 90년대 007 영화나 ‘장군의 아들’ 등은 우리가 보기에 다소 자극적이었다. 헐벗은 본드걸이나 무시무시한 악당, 다소 폭력적인 장면 등이 등장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부모님들은 우리가 그런 영화를 보지 못하게 하셨다.

그땐 전체적인 줄거리까진 몰라도 저 전차 모는 장면만 기억했었드랬다. [벤허 영화 장면]

반면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등 명작으로 손꼽히는 영화에 대해서만큼은 한결 관대해지셨다. 그리고, 부모님의 관용으로 당시 밤이 깊도록록 봤던 명작영화 중 하나가 바로 ‘벤허’다. 벤허는 고전 미국 소설을 토대로 만들어진 영화로, 여러 차례 영화화된 바 있으며 지난 2016년에도 재차 영화화된 바 있다. 이중 우리 추억 속에서 가장 많은 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바로 1959년작 벤허다.

그래서 결말이 어떻게 됐었더라… 어릴 적 몇 번을 봤어도 결말부분에 가서는 잠이 들어버려 기억이 나질 않는다. [벤허 영화 장면]

벤허는 예루살렘의 대부호 유다 벤허(찰턴 헤스턴) 모종의 사건에 휘말려 노예 신세가 되고, 3년 동안 배를 젓는 고된 노동을 하게 된다. 이 힘든 시간을 벤허는 복수심 하나로 버티고, 우연한 계기에 함대 사령관 아리우스의 눈에 들어 로마의 전차 경기에 나선다.

장장 4시간의 상영시간을 당시 꼬꼬마였던 우리가 끝까지 버텨내기란 쉽지 않은 일일 터였다. 그래서 우리는 벤허가 결국 복수에 성공하는지를 미처 보지 못하고 잠들기도 했다. 그 다음 해에도 똑같은 영화를 방영했지만, 영화를 끝까지 감상하지는 못했었던 기억이 난다.

 

■ 추억의 명절특선 영화들 속으로

만화 검정고무신 역시 명절마다 돌아오는 레퍼토리 중 하나였다. [라면 빌런들 / 검정고무신 만화 장면]

지금 우리의 명절 풍경이 어떤지, 예전만큼 마냥 기대가 되는지 혹은 피하고 싶은 자리가 돼 버렸는지는 모두 각기 다를 것이다. 앞서 언급한 대로, 명절마다 찾아오는 온갖 스트레스 요소들이 즐비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로는 지겹도록 이 ‘명절특선’ 영화들을 감상했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지기도 한다. 그땐 누가 우리에게 ‘학교에서 몇 등이나 하냐’거나, ‘대학은 어디로 갔냐’, ‘취직은 아직 멀었냐’, ‘아이는 언제 낳냐’ 등등 잔소리를 하지도 않았으니까. 세뱃돈을 주기보다는, 받는 데 익숙했었으니까(물론 종종 빼앗기기도 했었지만).

떠돌이 까치도 기억난다. 옹기종기 모여앉아 지켜봤던 까치의 성장기. [떠돌이 까치 만화 장면]

하지만 우리와 조금 서먹한 친척 아이들, 걔들은 명절만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을지 모른다. 따뜻한 이불 속에 옹기종기 모여 장난감을 가지고 놀던 그때의 우리처럼, 매년 똑같은 만화, 영화를 보면서도 ‘사촌들과 함께’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참 즐거웠던 그때 그 시절 우리처럼.

이제 어른이 된 우리에겐, 그 쬐그만 녀석들처럼 명절이 그리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당시의 우리와 같았던 그 녀석들에게 즐거운 추억을 만들어주지 못하는 건 또 아니다.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며 서로 서먹해하기보다는, 그때 우리가 무엇을 보고 무엇에 즐거워했는지를 한번 알려줘 보는 건 어떨까?

어쨌거나 저쨌거나 가족과 다시 만나 함께 하는 설 연휴가 돌아왔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건강하게, 행복하게 보내시길 바란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많은 분들이 기다리셨을 연휴가 드디어 내일부터 시작된다. 말도 많고 탈도 많고, 갈등도 많고 분쟁도 많고, 걱정과 스트레스도 많을 게 분명하다.

하지만 우리 현대인들에게 추석이나 설은, 그저 단순한 명절이 아니다. 우리가 그간 바빠서, 피곤해서 등 여러 이유로 보기 힘들었던 가족들을 만날 수 있게 해주는. 반가운 고향 친구들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일년 중에서도 아주 고마운 시간임에 틀림없다. 한 해 중 우리에게 몇 차례 주어지지 않는 그 귀중한 시간을 스트레스 받으며 보내지 않으시길 바란다. 교양공감팀은 여러분들이 이번 설 연휴를 어린시절의 추억처럼, 옹기종기 모여앉아 화목한 시간으로 보내실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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