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당 10년도 안 된 신생정당, 기성 정당 제친 전무후무 기록...31세 온건파 총리 탄생하나

[공감신문] 좌와 우로 나뉜 기성 정치체제의 부패를 심판하겠다는 구호 아래 탄생한 신생정당 오성운동이 창당 9년 만에 이탈리아 최대정당이 되는 기염을 토했다.

이탈리아 공영방공 RAI는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 이끄는 오성운동이 4일(현지시간) 이탈리아 총선에서 29.5~32.5%(하원 기준)의 득표를 얻었다고 보도했다.

이는 이탈리아의 단일 정당 가운데 가장 높은 득표율로, 2위 정당인 중도좌파 민주당(20~23%)과 최대 10%에 가까운 격차다.

루이지 디 마이오 대표가 이끄는 오성운동이 창당 9년 만에 이탈리아 최대 정당이 됐다.

이번 총선 결과는 이탈리아 정치의 근간을 뒤흔드는 파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전 총리가 이끄는 우파연합이 33~36%의 득표로 최다 의석을 차치할 전망이지만, 창당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정당이 수십 년 역사의 기성 정당들을 제치고 최대 정당이 된 것 자체가 전무후무하다는 분석이다.

오성운동의 뿌리는 시민운동이다. 신랄한 풍자로 유명한 코미디언 출신 베페 그릴로(69)와 컴퓨터 공학자 고(故) 잔로베르토 카살레조는 기성 정치권의 부패 척결과 투명성, 인터넷을 통한 직접 민주주의를 기치로 내걸고 지난 2009년, 오성운동의 시초가 된 변방의 시민운동을 발족시켰다.

다섯 개의 별이자 정당의 관심사를 뜻하는 오성(五星)의 의미인 물, 교통, 개발, 인터넷 접근성, 환경에 따라 오성운동은 직접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당답게 선거에 나갈 모든 후보와 주요 정책을 자체 사이트의 인터넷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오성운동 돌풍은 첫 총선 데뷔전인 2013년 총선에서부터 시작됐다. 기성 정치권에 대한 심판 여론에 힘입어 당초 예상보다 10%p나 높은 25%를 득표해 집권 민주당에 이은 2위 정당 자리를 차지했다.

창당 10년이 채 되지 않은 신생정당인 오성운동이 기성 정당들을 제쳐 이탈리아 정치의 근간을 뒤흔들고 있다.

이후 2016년 6월 지방선거에서 기성 정치권에 염증을 느낀 유권자들을 파고들며 수도 로마와 제4의 도시 토리노의 시장을 당선시켜 전국 정당으로 발돋움했고, 이를 계기로 집권을 향한 꿈을 본격적으로 꾸기 시작했다.

오성운동은 기존의 전통적인 좌파와 우파 범주로 재단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받는다. 저소득층을 위한 기본 소득 도입을 공약하고, 환경을 중시하는 등 좌파적 색채를 띠고 있으나, 폐쇄적인 이민정책과 이탈리아 우선주의를 주장하는 등 우파적 특성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안 없는 기성 정치권 비판으로 유권자들의 분노를 일으키는 데에만 골몰하고, 구체성이 결여된 공약을 내놓는 다는 점에서 ‘반체제 포퓰리스트 정당’이라는 꼬리표가 붙어왔다.

오성운동은 이에 집권을 위해서는 과격한 색깔을 지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보고, 총선을 반 년 앞둔 작년 9월 승부수를 띄웠다. 그동안 당의 간판 역할을 한 그릴로가 2선으로 후퇴하고, 말쑥한 외모에 온건적 성향을 지닌 디 마이오 하원 부의장을 새로운 대표로 내세웠다.

집권이 가능할 정도로 세력이 커진 상황에서 분노와 항의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그릴로가 전면에 나설 경우 표 확장성에 걸림돌이 될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디 마이오 대표는 총선을 앞두고 공개한 국정 운영 프로그램에서 유로존(유로화 사용 19개국) 탈퇴 여부를 국민투표에 부치겠다는 당의 오랜 방침을 삭제해 시장의 불안감을 해소하고, 반(反)EU 세력이라는 세간의 인식을 씻는 데 주력했다.

오성운동은 집권을 위해 과격한 색깔을 지우는 것이 절실하다고 보고 그릴로를 2선으로 후퇴시켰다.

또 다른 정당과의 연대를 원천 배제한 당의 기존 원칙에서 선회해 총선 이후 다른 정당과 정책 연대를 통해 공동 정부를 구성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밝히는 등 그동안 견지해온 오성운동의 원칙을 잇따라 완화했다.

저소득층을 위한 월 780 유로(약 100만원)의 기본소득을 공약으로 내세워 청년 실업에 신음하는 젊은 세대, 빈곤에 매몰된 낙후된 남부의 표를 적극적으로 공략하기도 했다.

총선을 앞둔 선거 전략들은 출구조사 득표율이 마지막 여론조사 지지율인 28%보다 더 높게 나타나면서 효력을 발휘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성운동이 향후 각 정당 간의 협상 과정에서 정부 구성을 주도할 기회를 잡게 될 경우 오성운동의 총선을 진두지휘한 31세 디 마이오 대표는 이탈리아 헌정 사상 최연소 총리 후보로 이름을 올리게 된다.

현재까지 역대 최연소 총리는 2014년 39세의 나이에 총리직에 오른 마테오 렌치 현 민주당 대표다.

한편, 이번 총선의 투표율은 67∼71%로 집계됐다. 이는 역대 최저였던 2013년의 75%보다도 더 하락한 것으로, 이탈리아 사회에 광범위하게 퍼진 정치에 대한 무관심을 방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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