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소치밀코에서의 뱃놀이를 끝내고 주린 배를 채우려 뻴리뻬의 집 근처에 있는 작은 푸드코트에 갔다. 여러 음식점들이 건물의 사면을 둘러싼 가운데에 간이 테이블들이 놓여있고, 천장엔 색색의 수술들로 장식돼 있었다. 언뜻 보면 축제를 하고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우리는 일단 한 바퀴를 돌아보기로 했다. 벽면엔 고딕체로 가게 이름들이 적혀 있었으나, 우리의 눈엔 모두 똑같아 보였다. 

가게마다 큰 냄비에 무언갈 끓이고 있었고, 우리는 갖가지 향을 맡으며 입맛을 다셨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가장 맛있어 보이는 곳에서 먹자며 서성이던걸 포기하고 아무 데나 앉아버렸다. 어디든 상관없을 것 같았다. 

가게에서 일하는 청년이 우리에게 분홍색 종이로 된 메뉴판을 건넸다. 검은색 매직으로 귀엽게 써 내려간 글자들. 안타깝게도 우리는 알아볼 수 없었다. 순간, 어렸을 적에 봤던 홍콩 영화에서 한 외국인이 메뉴판을 읽을 줄 몰라 주문하는 족족 수프만 나왔던 장면이 떠올랐다. 멕시코 음식이라곤 타코와 부리또밖에 읽을 줄 몰랐던 우리에겐 어려운 문제였다.

청년에게 물어본다 해도 우리가 알아들을 수 없을 테니 허사였다. 우리는 모험을 해보자며 제일 맛있어 보이는 글자를 골랐다. 나는 손을 들어 청년을 불렀고, 그는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우리에게 다가왔다. 내가 손으로 알본디가스와 빤시따를 짚으니 청년은 엄지를 치켜세우며 “무이 비엔!”이라고 말했다. 맛있는 음식을 주문했다는 건지, 아니면 우리가 주문을 한 게 신기하다는 건지는 몰랐지만 그의 엄지가 왠지 믿음직스러웠다.

청년은 주문서를 전달하기 위해 주방에 갔고,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의자에 늘어져 있었다. 소치밀코에서의 승강이 때문인지 더는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건 말하는 입이 아니라 먹는 입이었다. 

이른 저녁이었지만 꽤 많은 사람들이 푸드코트를 찾았다. 저마다 접시 위에 치킨, 생선, 소시지를 올려놓고 친구들과 담소를 나누며 식사를 했다. 적당한 소음과 짭조름한 냄새가 빈자리를 채웠다. 주위를 둘러보는 사이, 청년이 머뭇거리며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가 어느 나라에서 왔는지 묻기에 한국에서 왔다고 답하니 좋아하며 돌아갔다. 주방 사람들에게 우리가 한국에서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는 듯했다. 이러한 관심이 생각보다 나쁘지 않아서 그들에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내 청년이 알본디가스와 빤시따를 가져왔다. 새빨간 국물이 눈에 띄었다. 미트볼과 감자가 있는 알본디가스와 소 내장(?)이 들어있는 수프인 빤시따는 우리의 눈에 너무나 생소해 보였다. 청년은 함께 내온 또르띠아와 음식을 번갈아 가리킨 다음 싸먹는 시늉을 해 보였다. 우리는 똑같이 그의 몸짓을 따라 하며 또르띠아와 함께 먹으라는 그의 뜻을 이해했다. “부엔 프로베초!” 청년은 유쾌하게 말하곤 떠났다. 

빤시따는 먹기에 꺼림칙한 모양새였고, 미트볼은 초라했다. 우리는 각자 적당한 크기로 찢어낸 또르띠아에 고기를 얹어 먹었다. 예상외로 입안 가득 감칠맛이 돌았다. 빤시따의 건더기도 쫄깃하니 또르띠아와 잘 어울렸다. 모험에 성공했다는 성취감을 느끼며 한창 식사를 하고 있는데, 청년이 다시 우리에게 다가왔다.

청년은 수줍은 미소를 띠며 우리에게 핸드폰 화면을 보여주었다. 화면엔 서툰 한국어 문장이 적혀있었다. ‘다행 내 이름은 알렉산더, 어떤 안녕, 배 쇠고기 국물을 먹고 미트볼입니다.’ 번역기 어플의 솜씨였다. 원래는, ‘만나서 반갑습니다. 내 이름은 알레한드로입니다. 이 음식은 쇠고기 배 국물과 미트 로프입니다. 나중에 봐요.’ 대략 이런 내용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배 쇠고기 국물을 먹고 미트볼입니다’라니! 청년은 자신의 인사가 어떻게 번역되었는지 전혀 모를 것이다. 뒤죽박죽이었지만 우리는 그의 이름이 알레한드로이고, 우리가 먹는 음식이 배 쇠고기 국물과 미트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청년에게 답장을 썼다. 감사의 인사와 함께 이름을 알려주었고 청년은 번역된 답장을 보고서 즐거워했다. 엉뚱한 번역, 명확한 대화. 청년은 주방으로 달려가 핸드폰을 보여주며 우리 이야기를 전했다. 주방 사람들이 우리에게 손을 흔들었고, 우리는 접시를 가리키며 쌍 엄지를 추켜 올렸다. 배만 채우고 끝날 줄 알았던 식사는 알레한드로 덕분에 인상적인 한 장면으로 남았다.

식사를 마치고 알레한드로에게 인사를 했다. “그라씨아스, 알레한드로. 아스따 루에고!” 나중에 보자는 말을 했지만 아마도 마지막 인사가 될 거였다. 푸드코트를 나와서도 선연히 떠올랐다. 우리에게 어떤 말을 건넬지 고심하며 인사말을 쓰고, 한국에서 온 친구들이라며 주방 사람들에게 소개하고, 서툴게 번역된 핸드폰을 건네며 수줍었을 청년 알레한드로의 모습이. 그리고 그를 떠올릴 때면, 내 머릿속에서 똑같은 문장이 계속해서 맴돌았다. ‘배 쇠고기 국물을 먹고 미트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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