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민-EU 관리 상대로 불어강습 기회 확대…EU 집행위원장 “영어에 길들어져 있는 것 옳지 않아”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국제무대에서 프랑스어의 사용을 진흥하기 위한 대책들을 내놨다.

[공감신문]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유럽연합(EU) 내에서 불어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방침을 내놨다. 

20일(현지시간) 마크롱 대통령은 국제 프랑코포니(불어사용권)의 날을 맞아 불어 진흥을 위한 30개 대책을 발표했다.  

프랑스 정부는 자국에 들어온 난민들에게 무료 불어강습을 현 250시간에서 400~600시간으로 늘리고, 유럽연합(EU) 관리들에 대한 불어강습 기회도 대폭 확대하기로 했다. 

이 대책에는 EU 관리들에게 프랑스어 교육을 확대하고 외국에 프랑스학교 설립을 늘리는 등 국제무대에서 불어의 위상을 높이겠다는 의도가 포함됐다. 이에 영어가 국제어의 지위를 굳힌 마당에 현실적이지 않은 목표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마크롱 대통령은 브렉시트(Brexit‧영국의 EU탈퇴)가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EU에서 영어가 지나치게 많이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EU내에서 프랑스어는 영어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으나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EU에 가입하면서 영어에 완전 밀린 상황이다. [Pixabay/CC0 Creative Commons]

그는 “지금 상황은 역설적”이라며 “우리가 브렉시트를 논의하고 있는 지금, 영어가 (EU 기구들이 모인) 브뤼셀에서 이토록 저변화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영어의 지배가 반드시 불가피한 것은 아니다. 우리가 어떤 룰을 정해서 프랑스어에 대한 접근성을 높일지가 관건”이라고 덧붙였다.

EU 내에서 프랑스어는 영어에 버금가는 지위를 누렸으나 2004년 동유럽 국가들이 대거 EU에 가입하면서 영어에 완전 밀린 상황이다. 현재 EU 회의석상에서는 주로 영어가 실무언어로 사용되고 있다.

2004년 이전에는 불어만 할 줄 알아도 EU 내에서 소통에 큰 문제가 없었지만, 이후에는 상황이 완전히 달라진 것.

프랑스어 진흥기구(IFO)에 따르면, 아프리카의 구식민지 국가들의 인구 급증으로 전 세계 프랑스어 사용인구는 2065년 10억명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추산이 맞다면, 현재 전 세계 사용자 기준으로 5위인 불어가 반세기 뒤에는 영어에 이어 제2의 언어가 되는 셈이다.

이 가운데 마크롱의 불어 진흥대책이 ‘신(新)식민주의’적 발상에서 나온 것이라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앞서 프랑스계 콩고인 작가 알랭 마방쿠 미국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는 ‘프랑스의 구식민지 국가들에 대한 변형된 형태의 개입시도’라고 비판했다.

영어에 능통한 마크롱 대통령은 영어로 직접 연설하거나, 외국 방송과 영어 인터뷰를 즐기는 등 프랑스 대통령으로서는 이례적인 파격을 보여주기는 했지만, 모국어인 불어에 대한 애착이 강하기로 유명하다.

마크롱 대통령은 특히 브렉시트가 논의되고 있는 와중에, EU에서 영어가 지나치게 많이 쓰이고 있다고 주장했다. [Max Pixel/CC0 Public Domain]

하지만 국제어의 지위를 상실한 불어가 다시 과거의 영광을 되찾기란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는 의견이 대다수다.

유럽 각국이 모인 EU 공식‧비공식 회의석상에서는 불어를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공식 석상에서야 통역이 있다지만, 연회나 리셉션 등에서 영어를 모르고 불어만 할 줄 아는 관리들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영어, 불어, 독일어에 능통한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 정부의 발표에 대해 “나는 다언어주의의 열렬한 지지자다. 왜 셰익스피어의 언어(영어)가 볼테르의 언어(불어)보다 우위에 있어야 하나. 우리가 너무 영어에 길들어있는 것은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그 역시 “영어는 EU의 일상적인 실무언어가 됐다. 브렉시트가 그걸 바꾸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은 프랑스의 옛 식민지였던 아프리카 국가들을 순방할 때도 프랑스어에 대한 강한 자부심을 드러냈으며, 프랑스어 진흥 특사로 2016년 공쿠르상을 받은 여성 작가 레일라 슬라마니를 작년 11월 임명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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