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신문] 이 글을 읽는 당신이 얼만큼 부자인지 모르겠으나(혹은 무감각하거나)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5만달러’는 무시할 수 없는 액수일 것이다. 지금 연봉에서 추가로 5만 달러, 그러니까 5000만원 좀 넘게 더 생긴다면? 질문하여 뭘 하나? 진짜 좋을 것이다. 난 경제전문가가 아니기에 그런 돈을 버는 방법에 대해 여러분들에게 알려드리지 못한다. 하지만 ‘이렇게 하면 돈을 더 잘 벌 수 있지 않을까요?’라는 나의 의견을, 말해보고자 하는 것이다. 장르부터 말하자면 연애와 사랑이고, 정확하게 말하자면 성관계다.

[Marc Chagall “Gli Amanti in Blu” 1914]

캐나다 토론토 대학 연구팀이 발표한 바로, 일주일 1회 이상 정기적으로 성관계를 가지는 사람은 연봉에서 5만 달러를 추가로 버는 것과 같은 행복을 얻는다고 발표한 바 있다. 이러한 행복감은 애정이 있는 관계 속에서만 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들의 포옹과 눈맞춤, 키스 등 사랑의 기운이 가득한 행위 가운데서 이런 행복이 생산되기 때문이다. 반면 너무 잦은 성관계는 오히려 행복감을 감소시킨다고 했다. 하긴, 돈도 너무 많은 것보다 적당히 풍족한 게 좋지 아니한가.

그런데 예전에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그것도 어딘가에서 발표한 연구였다. 소득 수준이 높을수록 성관계 횟수가 많다는 것이었다. 반대로 소득이 낮을 경우 성관계를 적게 한다는 것이다. 당시에 나는 유명 포털사이트에서 이 기사를 보았었는데, 거기에 댓글을 보니 ‘뭐 이런 걸 굳이 미국 대학에서 연구를 하냐. 당연한 것 아니냐.’는 반응이었다. 네티즌들은, 이건 초등학생이라도 당연히 여길 만한 결과라 했다. 하물며 돈이 있어야 영화도 하고, 옷도 사 입지 않겠나. 20대들은 데이트할 돈도 없는데 섹스가 웬말이냐는 반응이었다.

그럼 정말 돈 많은 사람들은 만족스러운 데이트와 섹스를 할까? 마냥 그렇지도 않다. 물론 그저 욕구를 해소시키는 섹스의 기회는 더 많이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애정이 있는 파트너와의 섹스는 누구에게나 어렵다.

일단 돈이 많은 그는, 애정이 가는 상대에 대한 기준이 꽤 높을 확률이 크다. 그렇지 않겠나. 예전부터 그에겐 더 많은 기회가 있었고, 더 화려하며, 더 고차원적인 것들을 접했었을 테니 말이다. 하물며 어느 도시의 클럽을 가더라도 VIP존에서 가장 아름다운 미남미녀들을 보지 않았겠나. 내가 아는 한 지인은(잘생기고 돈이 많다) 도쿄 어느 클럽에서 빅토리아 시크릿 모델 둘과 술 마신 이야길 해주었는데, 여자였는데도 부러울 지경이었다. 그들이 보고 느낀 것들이 쌓은 기준은, 외모뿐만 아니라 학식이나 옷차림, 식사매너 등 대부분에서 그러하다.

이런 그가 반한 상대는, 다른 이성들에게도 분명 매력적으로 보일 것이다. 그는 경쟁을 해야 한다. 또 상대방이 자신을 좋아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러니 그들이 저러한 행복을 얻기란 더욱 어려울 수 있다.

반대로 돈이 풍족하진 않지만,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꿀 같은 행복을 얻어내는 사람들이 있다. 연봉 5만 달러를 추가로 버는 기분을 느끼는 사람들. 그리고 그들은, 정말로 그렇게 될 확률이 크다고 주장하고 싶다. 내가 왜 이런 생각을 가지게 되었는지 말하려면, 최근에 읽은 책의 내용을 언급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강신주 박사의 저서 중 <다상담1>에 연애에 관한 이야기가 나온다. 그는 거기에서 사랑하는 관계의 두 사람은 서로를 ‘주인공’으로 만들어준다고 했다. 그들은 연애 속에서 남자 주인공, 여자 주인공인 것이다. 세상에서 그들이 어떤 위치에 있든 상관없이, 둘 사이에선 그러하다.

이건 정말 맞는 얘기다. 나도 연애를 할 때 만큼은 멜로드라마의 여자주인공이었다. 물론 영화처럼 누가 죽거나, 웨딩마치를 하거나, 잊지 못할 첫사랑, 기억상실증 환자, 알고 보니 어릴 적 잃어버린 친오빤 아니었지만 말이다. 아무것도 아닌 내가, 상대방에게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가 무심코 던진 말 한마디가 마치 고요한 달처럼, 내 마음의 파도를 하루종일 일랑이게 했었다.

[Marc Chagall “Lovers In halfmoon”]

그러니까 이것이 ‘부자’의 성질로도 이어질 수 있는 거다. ‘주인공’이 되는 연습을 했기 때문이다. 사실 슬픈 이야기이지만 우리 대부분은 세상에 그리 큰 영향력을 뻗치고 살지 않는다. 어릴 적 우리 모두가 원대한 꿈을 꾸었었지만, 이젠 상당히 현실적으로 변해버린 것이다. 현실을 깨닫는다고 말하고 싶지 않다. 깨닫는다는 표현은 지나치게 오만하다. 아직도 세상에 대해 모르는 게 너무나 많기에.

그렇게 소극적으로, 세상에서 조연, 아니 단역이나 보조출연 정도로 사는 것에 익숙해져 버린 거다. 그런 배우가 과연 주연이 되었을 때에 잘 해낼 수 있을까? 아마도 연습이 부족하거나 무대 경험이 적다면 잘 해내기가 어렵다. 일단 주연에겐 늘 상대 배역이 있는 반면, 단역에겐 거의 없기 때문이다.

뮤지컬에 ‘언더스터디’라는 개념이 있다. 주연 배우에게 급작스러운 문제가 생겼을 경우를 대비해, (대부분)앙상블의 배우 하나가 주연의 것을 똑같이 준비한다. 앙상블로서의 자기 역할, 그리고 주연 캐릭터의 노래와 춤, 대본을 달달 외운다. 어마어마한 노력이다. 이런 배우라면 지금 작은 역할이더라도 나중에 큰 무대에서 주연을 잘 해낼 확률이 크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경험은, 우리에게 이러한 언더스터디를 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

나의 말 한마디가 얼만큼 큰 영향력을 끼치는지 연애를 통해 경험할 수 있다. 나의 조그만 손짓과 몸짓에 반응하는 상대방을 보며 신중함을 느끼게 된다. 나체로 누군가의 앞에 선다는 것, 그것은 그에게 자신감을 불러일으킨다. 우리는 이것이 연습이 되면, 혁신적인 생각들을 해내고 그것을 세상 앞에 꺼내 놓을 확률이 커진다. 이것은 ‘무기’이다. 주인공만 그러한 무기를 가질 수 있다. 영화만 봐도 주인공들은 빛나는 창이나 제일 큰 총, 멋진 투구를 쓰지만- 단역들은 어떠한가? 그들의 무기는 너무나 보잘 것이 없다. 어차피 무기를 쓸 줄도 모를 거다.

니체는 사랑에는 늘 ‘광기’가 있다고 했다. 가만 보면 우린, 세상이 정해준 식으로 연애하려는 경향도 보인다. 그럴 필요가 없다. 우리가 출연 중인 세상의 드라마가 어떤 장르인지 스스로 결정할 순 없지만, 두 사람의 드라마에선 서브 장르를 결정할 수 있다. 그 멜로 드라마가 반드시 세상이 인정해주는 꼴로 갈 필요가 있을까? 심지어 두 사람이 매일 한복을 입고 사극을 찍어도 누가 뭐라하겠나.

그리고 이제껏 세상에 발표된 ‘굉장한 것’들엔 대부분 광기가 있다. 아마 ‘당신 미쳤어’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던 이들은 거의 성실하고 보편적일텐데, 이들은 아주 친절하며 존재감이 없다. 이들은 혁신적이고 놀라운 것들을 전혀 만들어내지 못할 것이다. 세상에 조연도 되기 어렵다.

부자가 되는 방법에 대해 말해드리겠다 했었는데, 거짓말이었다. 대신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방법에 대하여, 그리고 그것을 꺼내는 자신감의 근육을 기르는 방법에 대해 말씀드린 거다. 그러나 그런 방법보다 ‘돈’이라고 해야 여러분들이 더욱 집중해주실 거 같았다. 왜냐하면 일단 우린 ‘자신감’의 냄새는 몰라도, ‘돈’이라는 단어를 떠올리면 돈 냄새를 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러분은 아마 돈냄새를 킁킁거리며 여기까지 읽어 오신 건지도 모른다.

[Marc Chagall ‘Lovers and Flowers’]

그러니 사랑하시라. 아마 사랑은 당신이 세상에서 단역으로 머무르려는 마음을 불편하게 만들 거다. 그러나 지금 이 시대의 주연인 자본가들은 우리가 단역으로 남아 주길 바라고 있을 거다. 오, 주연은 너무 힘들어! 대사도 많고, 욕도 많이 먹고, 감독님 성격이 사실 무지 별로야, 상대 배우 입냄새는 말도 못해 근데 키스신은 왜 이렇게 많은 거야? 그들은 그렇게 불평하면서도 절대 그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을 테지. 그러니 우리, 거기에 넘어가지 말자. 우리는 어서 세상의 주인공이 될 연습을 해야 한다. 사랑하자, 인생에서 사랑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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