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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신문 정세음 칼럼] 밀림 속에서 아무도 모르게 - 빨렝께, 멕시코

[공감신문] 숨을 들이 마시자, 습한 공기가 입안 가득 들어왔다. 삐질삐질 끈적한 땀이 온몸에 젖어들었다. 드디어 빨렝께에 도착했구나. 마야의 한 사냥꾼이 스페인 성직자에게 ‘돌 궁전’에 대해 말해주지 않았더라면, 800년보다 더 오랜 시간 잠들어있었을 빨렝께는 마야의 고대 도시다. 당시엔 15만 평의 공간에 500개 이상의 건축물들을 보유하고 있었지만, 지금은 어렴풋이 그 규모를 짐작할 수 있을 뿐이다.

입구에 들어서자 피라미드와 신전 건축물들이 축축한 냄새를 풍기며 서있었다. 색 바랜 돌덩이들이 켜켜이 쌓여있었는데, 수 세기의 시간의 무게 때문인지 몸서리가 쳐졌다. 나는 고작 삼십 년도 채 안 되는 시간을 겪어왔을 뿐이니까. 우선 가장 가까이 있는 신전 앞으로 가 안내판을 보았다. ‘해골의 신전’이라니. 이름에서 냉기가 느껴졌지만, 나는 흘러내리는 땀을 닦으며 티셔츠 목부분을 마구 들척였다.

(해골의 신전)

어째서 신전의 이름에 ‘해골’이 붙어있는 걸까. 억겁의 시간이 와르르 무너지진 않을지 조심하며 계단을 올라가 보았다. 비교적 낮은 높이였기에 큰 힘 들이지 않고 꼭대기에 도착할 수 있었다. 둘러보니 신전의 기둥에 새겨져 있는 귀여운 부조가 눈에 띄었다. 하트 모양의 눈, 코 그리고 커다란 앞니를 가진, 해골.

나는 피식 웃어버렸다. 그래서 ‘해골의 신전’이었구나. 그러고 보니 ‘빨렝께’의 원래 이름은 아직 알려지지 않았다(이웃 마을의 이름에서 따왔다). 건축물의 이름들도 나중에 ‘붙여졌을’ 것이다. 이 신전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이 해골 부조였으니, ‘해골의 신전’이라는 이름이 괜히 붙여진 건 아니었다. 나는 앙증맞은 해골을 뒤로한 채 계단을 내려왔다.

(비문의 신전)

마야 문자에 따르면, 빨렝께엔 기원전 3세기부터 사람이 살기 시작했다. 빠깔부터 찬 발룸까지, 두 왕들이 통치한 시기 동안 마야 문명은 크게 부흥했고, 이들 문명은 영원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찬 발룸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마야 문명은 급속히 쇠퇴하였고, 이후 820년경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이들이 사라진 이유는(물론 가설들이 많지만) 여전히 수수께끼로 남아있다. 그렇게, 빨렝께는 미스터리만 남긴 채 밀림에 뒤덮이게 된다.

의문점 투성이인 빨렝께 유적 중에서 가장 중요한 건축물은 ‘비문의 신전’이다. 675년 빠깔이 착공하여 683년 찬 발룸이 완성한 비문의 신전은 9층 높이의 피라미드 위에 세워져있다. 신전에서 지하로 27m 정도 내려가면 빠깔의 묘실이 있는데, 그곳에 있는 묘비엔 약 200년에 걸친 빨렝께 왕가의 역사를 담고 있는 마야 문자가 빽빽이 새겨져 있다. 600자가 넘는 이 기록은 마야 문명에서 가장 중요한 기록으로도 꼽힌다.

마야 문자는 사람, 동물, 사물 등을 상형한 문자인데, 언뜻 보면 세련된 아이콘처럼 보인다. 노점상이나 기념품 가게에서 마야 문자를 상품화한 것들이 많은 것도 마야 문자의 미학성을 인정해서일 것이다. 이곳 빨렝께에서도 길을 지날 때면 밀짚모자를 쓴 상인들이 기념품을 불쑥불쑥 내밀기도 한다. 그럴 때면 나는 단어의 의미가 궁금해진다. 마야 문자는 기본적으로 단어문자이기에 사각형 글자 하나가 하나의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나는 해독을 할 줄 모른다. 만약 예쁘다는 이유로 마야 문자 열쇠고리를 샀어도, 나는 그 문자가 무엇을 뜻하는지 모를 것이다(‘못생김’을 뜻하는 열쇠고리를 자랑스럽게 달고 다닐 수도 있다).

(궁전)

비문의 신전 앞에 선 채 더운 숨을 몰아내쉬며 손부채질을 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아껴둔 물을 벌컥벌컥 마시곤 궁전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왕이 살았던 궁전이라 하기엔 아담하고 어딘가 초라해 보였다.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우선 한 바퀴 돌아보았다. 남서쪽에 4층 높이의 석탑이 있는데, 이곳은 천문 관측소로 추정된다. 마야 문명에서 가장 뛰어나다고 손꼽히는 것은 수학과 천문학이다. 마야인 태양력에서의 1년은 365.2420일인데, 오늘날 우리의 1년인 365.2422일과 오차가 거의 없다. 달의 운행과 금성의 주기까지도 그렇다. 이는 마야 문명이 어느 정도로 뛰어났었는지 짐작게 하는 부분이다.

한 바퀴를 돌고서, 궁전의 안쪽으로 들어서니 복잡한 미로에 들어온 듯했다. 네 개의 작은 정원들이 군데군데 있었고, 주거 건축물들이 균형감 있게 자리했다. 여기서 이들은 어떤 생활을 했을까. 왜 사라진 걸까. 떼오띠우아깐에서처럼, 나는 눈을 똑바로 뜬 채로 ‘그들’을 떠올려 보았다. 쉽지만은 않았다. 그저 영화 <아포칼립토>에서, 피라미드 꼭대기에서 마야인들이 인신공양을 하던 장면들만 떠오를 뿐이었다. ‘그들’을 불러오는 데에 실패한 나는 무력하게 궁전 밖으로 나왔다.

(십자가의 신전)

다른 유적지로 안내하는 길을 따라가니, 몇 채의 신전들이 우두커니 서있었다. 그중 ‘십자가의 신전’이 한눈에 들어왔는데, 이곳이야말로 ‘해골의 신전’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음침한 기운이 흘러나왔다.

십자가의 신전은 마야 우주관의 중심인 세이바 나무를 나타내는 십자가 문양의 패널이 건물 안에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마야인들에게 이 세상은 원형이 아닌 사각형이었다. 그 중심과 모서리엔 ‘세이바’ 나무가 서있는데, 나무의 기둥은 천국인 ‘깐’으로, 나무의 뿌리는 지하 세계인 ‘시발바’로 가는 길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신전의 계단을 보면 오히려 지하 세계로 ‘올라가는’ 계단처럼 보였다. 신전에 오를 수는 없었는데, 어쩌면 다행이었는지도 몰랐다. 마야인들은 깐으로 가버린 걸까, 아니면 시발바로 내려가 버린 걸까. 명확하게 밝혀진 것은 없었고, 내가 명확하게 알게 된 것 또한 없었다. 나는 그저 안내판을 훑어보곤 유적지를 올라가거나 기웃거릴 뿐이었다. 어땠을까? ‘진짜’ 마야인들은.

그런 생각도 잠시, 나는 한 겹 남은 티셔츠를 벗어버리고픈 충동에 시달렸다. 이미 속옷까지 흠뻑 젖었다. 정말이지, 도대체 왜 이런 곳에 도시를 건설했을까? 마야인들에 대한 관심은 (안타깝게도)에어컨 바람을 쐬고 싶다는 열망으로 대체되고 말았다. 나는 다시 우리의 세상-출구-을 향해 걸어갔다. 아직 미련이 남았는지, 나도 모르게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우거진 수풀에 빨렝께의 모습이 점점 가려지고 있었다. 800년 전 아무도 모르게 잠들어있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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