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로 독일 위험성이 커지고, 영국은 상대적 안정감 갖는다는 평가

[공감신문 김인영 기자] 조지 소로스. 그는 1992년 10월 영국 파운드화 폭락에 개입해 10억을 투자해 10억을 남긴 전설적인 헤지펀드 매니저다. 우리에게도 잘 알려져 있다. 1998년 외환 위기때 방한해 김대중 대통령을 만나 한국 투자를 약속했고, 한 푼의 외화가 아쉬울 때 그는 구세주와도 같았다.

그는 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를 반대했다. 소로스는 브렉시트 반대파들에게 기부금을 대고 영국이 EU에 남도록 응원했다.

하지만 그의 투자는 달랐다. 그는 영국 브렉시트 국민투표 결과가 발표되기 앞서 영국 파운드를 사고(long position) 독일 최대은행인 도이체방크 주를 팔았다. 그가 이중적 모습을 보인 이유는 무엇일까.

조지 소로스 /연합뉴스

브렉시트 투표 결과가 나온 직후인 지난 27일 소로스의 대변인은 "소로스는 국민투표를 앞두고 영국이 유럽에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투표 직전에 파운드 약세에 베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오히려 그는 파운드화 강세에 베팅했다고 그의 대변인이 밝혔다. 브렉시트 결정 직후 파운드화는 당일 8%, 그다음날인 27일 3% 폭락했다. 파운드는 소로스가 예상한 것의 절반가량 급락한 다음 상승세로 돌아섰다.

소로스는 오히려 독일의 글로벌 은행 도이체방크에 숏포지션(short position)을 걸었다. 즉 도이체방크 주식을 내다 팔았다.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브렉시트 결정 이후 2거래일 만에 20% 가까이 폭락했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소로스펀드는 브렉시트 당일인 24일 도이체방크 지분 0.51%(약 700만주)에 숏포지션을 걸었다. 도이체방크의 주가는 브렉시트 결정 당일인 24일 14%, 2거래일째인 25일에는 6% 각각 떨어져 이틀 사이에 20% 가까이 빠졌다. 소로스의 투자 금액이 약 1억 유로나 그 이상으로 추산된다. 금융가에서는 소로스가 이번 거래에서 1억 유로 정도 이익을 보았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런던에 있는 또다른 헤지펀드 마샬웨이스도 지난 24일 도이체방크에 대해 숏포지션을 취했다.

 

소로스의 이같은 이중적 행동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첫째 소로스는 정치적 활동과 투자를 분리한다는 점이다. 그는 정치적으로는 민주주의 후원자이자, 반공주의자이지만, 투자에서는 돈 많은 외환투기자라는 평을 받는 두 얼굴의 사나이다. 그는 나치 치하의 헝가리에서 태어나 2차대전후 조국이 소련에 점령되자 영국으로 도망쳤다. 그는 런던에서 칼 포퍼 교수를 만나 ‘열린 사회’라는 개념을 배웠다. 나치나 공산주의는 독재의 범주였고, ‘열린 사회’의 적이었다. 그가 브렉시트를 반대한 것은 영국 경제를 걱정해서가 아니라,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유럽의 군사동맹이 약화되고, 러시아의 압력에 휘둘릴 가능성이 커진다고 보았다. 그는 열린 사회인 유럽을 보호하기 위해 영국의 EU 탈퇴를 반대했고, 파운드가 20% 폭락할 것이라고 겁을 주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둘째로, 그는 실제 투자할 때는 영국 화폐의 강세에 베팅하고, 독일 은행의 취약함에 걸었다. 그 이유는 그가 파이낸셜타임스등 여러 언론에 기고한 글을 모아 저술한 「유로의 미래를 말하다」(2012)라는 책에 잘 설명돼 있다.

 

유로화 창시자로 불리는 오트마르 이싱은 “유로화는 공동통화를 통화 공동체를 만들기 형성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며, 정치적 공동체를 지향한 것은 아니다”고 밝힌 바 있다. 유로의 맹점은 여기에 있다. 정치적 공동체가 만들어지지 않는한 단일통화는 불가능하다.

유로존은 중앙은행(ECB)를 구성했지만, 재무부를 따로 두지 않았다. 유로 가맹국들이 동일한 금리를 적용받지만, 세금을 걷고 사용할 중앙 재무부를 두지 않은 까닭에 위기 발생시 대처가 불가능했다.

소로스는 이를 “수레 앞에 말을 단 게 아니라, 말 앞에 수레를 단 격”이라고 비유했다. 각국이 재정을 개별적으로 운영하면서 EU 시스템이 움직이다 보니, 불균형이 발생했다. ECB에 의해 각국의 금리가 똑같이 적용됐고, 스페인이나 그리스에 자금이 흘러들어갔다. 독일에 적용되는 저리의 금리가 적용되었으니, 고리대에 허덕이던 스페인과 그리스에겐 공짜 돈이나 다름 없었다. 스페인과 그리스에 유입된 자금의 상당수가 EU내 경제력이 가장 강한 독일의 은행들이었다. 그리스나 스페인 사람들이 잘못한 게 아니다. ECB가 역내 공동금리를 적용한 게 잘못이다. 싼 금리가 있는데 고리의 자금을 사용할 사람은 없다. 결국 과잉 유동성이 그리스와 스페인, 포르트갈등 이른바 PIGS 국가들에게 흘러들어가 문제가 된 것이 2010년대 위기였다.

소로스는 유로가 불완전한 통화이며, EU는 불완전한 결합체라고 지적했다. 1991년 마스트리히트 조약은 막연한 규정을 두었다. EU의 토대가 된 이 조약은 “역내에 장벽 없는 영역을 창조하고, 궁극적으로 단일 통화를 창조한다”고 규정하면서 정치적 결합을 뒤로한 채 공동통화 발행을 서둘렀다. 정치적 결합의 가장 중요한 문제는 EU재무부의 설립이었다. EU가 각국 재정의 돈줄을 통제해야 하는데, 독일을 비롯해 주요국 정부가 내주지 않았다. 재정적자만 GDP의 4% 이내에서 제어한다는 규정만 있을뿐, EU는 재정운용에 아무런 권한이 없었다.

그리스가 파산 위기에 처했을 때 EU의 한계가 단적으로 드러났다. 독일 앙겔라 메르켈은 처음엔 그리스가 스스로 알아서 처리하라고 했다. 하지만 EU 금융시스템 전체의 위기로 돌아오고, 독일 은행들의 익스포저가 많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회원국의 분담금으로 구제금융에 나선 것이다.

두 차례의 그리스 파산 위기는 EU가 언제 깨질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고 있다.

 

이제 영국은 EU의 위기에서 자유로워졌다. 영국은 독자적인 재무부와 영란은행을 통해 파운드를 지켜갈수 있게 됐다.

하지만 독일은 더 위험해졌다. 영국이 일부 떠맡았던 회원국의 재정위기 분담금을 더 안게 됐다. 도이체방크등 독일 은행들의 대외리스크도 커졌다.

소로스의 정치적 발언과 투자 패턴의 차이점을 요약하면 이렇다.

“러시아의 유럽 영향력을 봉쇄하기 위해서는 영국이 EU를 떠나서는 안된다. 하지만 브렉시트로 불완전한 EU의 결합력이 더 취약해 졌으며,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은행들이 다른 회원국의 위기에 가장 크게 노출될 것이다. 영국은 다소의 혼란이 있겠지만, 안정감을 찾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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