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의 역사…역대왕조에서 空島정책으로 비워둬

[공감신문=이섬 섬 전문가] 필자가 25년 동안 섬을 연구하면서 섬에 대한 종합적인 섬 전문가가 됐다. 원래 섬에서 태어나서 공부를 하다가 섬이 싫어서 섬을 버린 사람이다.

고향 완도 노화도에는 전기, 수도, 교통, 교육, 중학교, 물 사정, 선착장, 의료, 식량난 등 아주 가난한 섬이었다. (지금은 전복의 고장으로 부자 섬임) 동력선이 막 나오면서 풍선과 노젖는 배가 같이 다니던 시절이다.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이 태어난 고향을 사랑한다. 어느 누구 보다도 내 고향을 사랑한 나도 전라남도 완도군 노화도를 사랑했지만 어릴 때 그 고향을 버리고 말았다. 한번은 배를 타고 초등학교 6학년 시절 아버지를 따라서 밤에 목포에 들어갔다가 엄청난 문화 충격을 받고 그만 고향이 등지고 말았다.

 

결혼도 하고 자녀도 둘이나 생기면서 어느 날 뜻한바가 있어 신학교에 다니면서 바나바선교회 소속 섬 선교사로 1989년 11월에 고향 노화도로 내려가게 되었다. 노화도 근처에 교회가 없는 조그만 섬이 모두 14개가 있었는데 그 섬에 등대호를 타고 선교 목적으로 일주일에 한 번씩 다니면서 섬 사랑에 빠진 1년 동안 열악한 섬의 모습을 보게 되었다.

전기가 없고, 선착장 시설, 물 사정, 교육, 의료, 교통, 문화 등이 낙후하여 이번에는 선교와 복지 사업을 하면서 섬에 대한 연구가 시작되었다. 우리나라에는 3,400여 개의 섬이 있다. 그중 유인도는 약 447개 정도로 알려져 있으나 유인도 중에는 지금도 무인도로 변해가는 섬이 있는가 하면, 섬이 비교적 커서 문화 시설이 잘 갖추어진 섬도 많이 있다.

또 예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흔적을 찾아서 전국 곳곳의 섬을 방문 한다는 것은 국가도 하지 않는데 후원도 없이 일개 개인이 시도한다는 자체가 불가능한 일인지도 모른다.

섬 연구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던 시기인 그 당시 처음에는 섬에 대한 관심이 선교 목적이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가난하고 소외된 섬마을에 복지사업도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되어 점차 그들의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가게 되었다.

그때 이름난 섬이 아닌 보통의 섬에 관하여 일반적인 자료조차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지금까지의 그런 무관심이 나의 감성을 흔들고 있었다. 그 짜디짠 눈물 속에서 체계적인 조사와 정리 그리고 연구의 필요성을 깨닫게 되었다. 그러나 전국의 섬을 탐사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이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섬을 사랑했고, 분명 가치 있는 일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앞으로 섬에 대해서 연구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작은 보탬이 되고, 새로운 길을 가는 이들의 디딤돌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섬에서 또 다른 섬으로 이어지는 길을 가게 되었다.

가. 왜구의 섬 침략과 공도(空島) 정책

일본은 바다를 통해 한반도를 제 집 드나들 듯이 다니면서 들어와 해적질을 하였다. 왜구는 고려 말과 조선 초기에 약 70년 정도 우리나라 연안에 침입하였다. 특히, 고려 말 나라가 어지러울 때 약 40년간은 그 피해가 많았다. 그 중에서도 일본과 가까운 서남해 연안과 섬이 피해가 컸다.

제주도와 한반도 중간에 위치한 추자도는 오랫동안 전라도에 소속된 섬으로 제주도로 편입된 지 불과 101년 되었다. 여기는 수산자원의 보고로 예전부터 남해안에 살던 어민들이 건너와 살았던 한반도와 탐라와의 중간에 있는 교통 요충지였다.

추자도는 육지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해적인 왜구들이 시도 때도 없이 와서 노략질을 일삼았다. 『탐라기년』에 보면 ‘1350년(충정왕 2)에 추자도 주민을 조공포(朝貢浦=도근내 포구) 냇가로 옮겼다. 이는 왜적이 자주 침입하기 때문이다’라고 소개하고 있다. 이것은 일본의 해적들이 얼마나 괴롭혔는지 추자도 주민들을 이주시켰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 대목이다. 왜구들은 섬과 세곡선을 습격하고 노략질 때문에 고려 말에는 큰 폐허가 되어갔다.

왜구들은 바다를 통해 마음대로 들락거린 것은 고려 말과 조선초기이다. 이때 해금정책을 실시한다 . ‘사사로이 바다에 나가 외국과 교역하는 자는 곤장 100대’ 이것이 조선의 해양 정책이었다.

조선이 바다를 버리고 제해권을 상실했다. 제해권이란 해상의 군사, 통상, 항해 따위에 관하여 국가 이익과 안보를 위하여 실력 행사를 할 수 있는 권리인데 조선은 해구와 섬은 육지와 멀리 떨어진 관계로 다스리기가 어렵다고 포기하고 쇄국정책을 쓴 결과 마침내 강제 개항과 함께 나라는 망하고 말았다.

일본은 원래 섬나라로 바다를 잘 알았기 때문에 임진왜란을 일으켰다. 임진왜란은 1592년부터 1598년까지 7년 동안 두 차례에 걸쳐 일본이 조선을 침략하여 일어난 전쟁이다. 일본은 임진왜란 이후 우리나라처럼 쇄국 정책을 쓰다가 375년만인 1853년 7월 8일 일본이 개항을 한다.

 

나. 삼별초와 공도 정책

몽골은 13세기 이후에 유라시아대륙을 석권하는 전무후무한 대제국을 건설해 갔으니, 그 과정에서 송나라 정복을 위한 사전 조치로 1231년부터 배후에 있는 고려를 대대적으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고려의 무인정권은 1232년에 정부를 강화도로 옮기는 천도를 단행하여 장기전에 대비하였다.

그러나 장기간의 전쟁으로 극도의 피로감에 싸여 있던 고려왕 원종은 마침내 1270년 5월 23일 개경 환도를 결행하여 몽골의 정치간섭 하에 정권을 유지하는 쪽을 택했다. 이에 삼별초 세력은 개경 환도의 명령에 따르지 않고, 6월 1일 강화도를 점령하고 왕족인 승화 후 왕온을 고려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6월 3일에 1,000여척의 배를 동원하여 공사의 재물과 사람들을 싣고서 강화도 구포를 떠나 남으로 향했다.

삼별초 일행이 최종 목적지 진도에 도착한 것은 강화도를 떠난 지 70일이 넘은 8월 19일이었다. 1주일도 채 안 걸릴 거리를 70일 이상 넘게 항해했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바이나, 아마도 서해안의 도서연안지역을 경략하면서 서서히 항해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된다. 그리고 서남해의 도서연안지역을 장악하여 일종의 해상왕국을 건설하였다.

당시 삼별초가 거점으로 활용한 섬으로는, 진도와 제주도 이외에도 전남해역의 압해도․ 완도, 경남해역의 남해도․ 창선도․ 거제도, 충청·경기해역의 영흥도․ 자연도(영종도)․ 대부도․ 고란도 등이 거명되고 있다. 진도의 삼별초가 30여개의 서남해 섬들을 점거했던 것으로 되어 있어, 삼별초 해상왕국의 위세가 대단하였음을 알 수 있다.

나중에 여몽연합군의 맹공으로 진도가 1271년 5월 15일 함락되었고, 제주도로 옮겨 서남해 섬과 바닷길을 장악하며 해상 항전을 계속한 나머지 삼별초 세력마저 1273년 4월 28일에 패망하고 말았다. 이로써 1231년 이후 계속해온 몽골에 대한 항전은 40여년 만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때 해양 세력의 뿌리를 뽑기 위하여 1271년 거제도를 시작으로 14세기 중엽까지 진도․ 흑산도․ 압해도․ 장산도․ 남해도․ 창선도 등의 사람들을 육지로 옮겨 더부살이하게 했다. 이것이 ‘공도’의 조치를 보여주는 사례이다.

여기서 저는 몽고와 맞서서 용감히 싸운 삼별초의 항전을 치하하고 싶지만 섬들은 막대한 피해를 입는다. 수십 년 수백 년 살았던 정든 고향 땅, 전답, 집, 조상의 묘소가 있고, 사시사철 바다에 나가면 고기와 해산물 온갖 먹거리가 풍성한 보배로운 고장인 섬을 버리고 떠나가라는 말은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영산포에 지명은 그 당시 흑산도와 영산도 사람들이 이주해 와서 사는 곳이었다. 풍선을 몰래 타고 가서 고기와 해산물을 채취하여 다시 영산포로 돌아오고 하였다. 또 어떤 섬은 관군 몰래 들어가 살다가 다시 쫓겨나고 이런 숨바꼭질을 150년 동안 했다. 그래서 조선의 유교는 바다와 뱃사람의 천시 사상과 맞물려 그때부터 이런 고얀 놈들이 또 섬에 들어와 하면서 섬놈, 뱃놈 하는 한 것은 밑바닥에 이런 가슴 아픈 역사가 숨어 있다.

그래서 섬의 입도조는 임진왜란 이후이며 그 전에도 사람들이 살았지만 왜구와 공도 정책 때문에 섬이 타의에 의하여 200년 정도 비워둔 역사가 있었다.

 

(이글은 2015년 11월 27~27일 강원도 삼척문화원에서 「2015 이사부 장군 울릉도 정벌항로 고증 및 전선 선형에 관한 연구」라는 주제로  열린 세미나에서 이섬씨가 발표한 내용을 발췌한 것입니다. /편집자주)

 

이재언(필명 이섬)
▲전남 여수시 ▲현) 국립 목포대학교 도서(섬) 문화연구원 ▲포털 사이트 네이버 재정 후원 작가 ▲ 전남일보 섬 전문 기자 ▲저서:‘한국의 섬’ 8권 출간, 2016년 5월까지 8권 출판 계획 ▲메 일: koreaisland3400@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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